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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늙어갈 것이다
카미유 드 페레티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380여 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요양원의 하루가 그려져 있다.
아직 젊디젊은(이라고 믿고 싶은) 내가 요양원의 하루에 관심을 갖다니, 나 스스로도 조금 의아하지만, 어쨌든, 요양원의 하루가 문득 궁금했다.
내가, 지금의 내 나이만큼을 더 먹은 뒤에, 어쩌면 그보다도 더 나이를 먹은 뒤에 혹시라도 보내게 될지도 모를 하루가, 미리 궁금해졌던 거 같다.
많은 등장 인물과 그에 따라 빈번한 장면 전환 등의 영향인가 소설에 집중하지를 못 했다.
그래서 이 한 권을 거의 일주일 가까이 붙들고 있었다.(평소 이 정도 두께라면 이틀 안에 다 읽는데, 이 책은 꽤 오래 걸렸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책의 세세한 장면장면이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 책 속 등장인물들,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언젠가는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까?
제목 그대로 우리는 함께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니, 나는 요만큼 늙었고, 당신은 이만큼 늙었는데, 이게 어떻게 함께 늙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된다면,
어쨌든, 우리는 모두 늙어갈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난 뒤의 우리들 모습이 어떠할지 미리 예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물론 이 책 속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노년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노년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뭐,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의 노년이란 이렇다.
나는 가늘고 둥근 금테 안경을 끼고 우아한 백발을 곱게 빗어 내리고(혹은 쪽찐 머리??) 얼굴에는 가득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자상한 할머니다. 서재의 원목 책상 앞에 앉아 그때까지도 왕성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을 하고 있고, 나랑 비슷하게 늙어가고 있는 강아지(가 아니라 개)와 느릿느릿 산책을 하고, 마당 한 켠의 텃밭을 일구다가 지치면 손을 씻고 나무 그늘로 들어가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멀미 하진 않겠지?)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려오면 가슴에 절로 기쁨이 샘솟으며 정겹기 그지없는 통화를 한다.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과 다탁에 둘러앉아 향긋한 차를 즐기고, 절로 인품이 배어나는 목소리로 담소도 나눈다. 뭐, 기타 등등.
하지만 책 속의 주인공들은 이런 노년을 보내고 있지 않다. 누군가는 요양원에서 찾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어쩌다 찾아온 자식을 다른 노인들 앞에 뽐내고 싶어 안달이 나고, 누군가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헛된 망상을 하는 '병'에 걸려 있고, 누군가는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것도 모자라 요양원 측의 실수로 시체에 개미가 들끓고 뒤늦게 찾아온 가족들은 노인의 통장에 잔고가 없음만을 통탄한다. 이 책에서 함께 늙어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 대부분은, 내게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싶은 노년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굳이 외면하거나 타인의 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내게도 찾아올 수 있는 노년이니까.
그런 마음을 계속 간직하면 좋겠다.
'몇 십 년 후 나의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어떤 마음에 들지 않는 노년의 모습을 주변에서 보게 된다 해도 인상 쓰거나 불쾌해 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때, 왜, 할머니께, 더, 잘, 해드리지, 못, 했을까.
할머니는, 늙으셨고, 힘이, 없어졌고, 사고력도, 더, 흐려졌고, 태어났을,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던, 중일, 뿐이었는데.
늘 내 마음속에 맺혀 있는 아픔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더 짙고 시꺼멓게 멍이 들었다.
잊지 말아야지. 우리는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걸. 언젠가는 내가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걸.
"잘 지내셨어요? 우리 파스칼 씨?"
"물론 잘 지내죠. 그리고 잘 지내지 않을 때도 잘 지내게 만들어야죠.
어제는 날씨가 정말 고약했는데. 오늘은 다행히 좋군요."
모두가 동의를 표한다.
"그래. 그래, 잘 지내게 만들어야지"
"설사 내일 비가 오더라도 오늘은 좋아야지"
"어쨌든 일기예보에서 그러더군. 화요일까지는 좋을 거라고"
"그래, 그후부터 점점 나빠진댔어"
"그래, 그래도 오늘은 그렇게 나쁘지 않네."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