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호텔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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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낸 신인 작가의 첫 발걸음을 함께 했다.

『고양이 호텔』은 김희진 작가의 첫 책이지만, 내가 읽은 작가의 1.5번째 책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지금 인터파크 문학 웹진에 두 번째 장편  『옷의 시간들』을 연재 중이고, 나는 그 연재의 '열심 독자'이다.

그 연재 소설을 통해 김희진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고, 연재 도중 작가의 첫 책 출간 소식에 무척 반가워하며 당장 구입해 읽었다.

 

백 마리가 넘는 고양이와 거대한 저택에 사는 베스트셀러 작가 고요다. 생애 첫 책으로 엄청난 상금이 걸린 문학상에 당선되었지만 철저한 신비주의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데다 첫 책을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까지 한 작가 고요다를 인터뷰하기 위해 출동한 강인한 기자.

둘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가 진행되는 연애 소설인가 했는데, 나의 시시한(?) 예상은 살짝 빗나갔다.

둘이 사랑에 빠지기를 기대하는 설렘은 책을 읽는 내내 유지되었으나, 그보다 더욱 흥미롭게 치고나오는 다른 이야기들이 존재했다.

일테면 고요다가 사는 인근 지역에서 몇 년 간 계속되어 온 연쇄 실종 사건, 고요다가 털어놓기를 주저하는 개인의 이야기들, 고양이 목에 걸린 빨간 줄의 비밀...

어쩌면 이것이 '고양이 호텔'의 진짜 이야기.

흠, 섣불리 손가락을 놀렸다가는 몽땅 미리니즘이 되어버리므로, 세세한 감상을 적을 수는 없지만,

연애+추리+공상이 다 잔잔하게 녹아 있는, 그런 소설이었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간 것도, 표지에 귀엽고 도도해 보이는 고양이들이 빼곡한 것도 마음에 들었고,

고양이 수가 늘어나는 이유가 궁금하냐고 묻는 마케팅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정말로 궁금했거든. 고양이 수가 늘어나는 이유가.

 

그리고 책을 끝까지 읽고서 알게 된, 그 이유는...

가슴이 저리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각자 저마다의 사연으로 그렇게 고양이를 늘리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다.

그래서 고요다처럼 철저히 자신을 가두기까지는 않더라도, 속으로 속으로 고양이 호텔을 짓고 있는 사람이...

그러면서도 나는 마지막에, 고요다의 옆에 빨간 목걸이를 한 고양이가 한 마리 더 늘어나기를 살짝 바라고 있었다며...? 흠.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성 같은 집에 자신을 가둬두고 사는 주인공 고요다가 마음에 든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더 이상 사랑이란 걸 할 수 없게 돼 버린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나인지도 모르겠다."

라고 자신의 불행을 정의하는 고요다가, 마음에 든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통한다.

 

 

(아, 소설 속에서 작가 고요다가 지은 책 제목은 『뒤꿈치』인데, 뒤꿈치가 무척 예쁜 여자가 주인공이란다.

그래서 괜히 내 뒤꿈치는 어떻게 생겼나 쳐다봤다. 아악, 이렇게 못생겼다니!!! 충격이었다.

도대체 예쁜 뒤꿈치는 어떤 걸까 궁금했는데, 아아, 아가 조카의 뒤꿈치는 정말 예쁘더라. 아무런 상처도 굳은살도 없는, 완전무결 순결한 뒤꿈치!!)

 



여름 끝자락의 바람이 창으로 불어온다.

그 바람이 창가에 놓인 책의 책장을 넘긴다.

바람이 책을 읽어 가는 고요한 시간이다.

_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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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리퍼블릭 - Orange Republic
노희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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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그리고 오렌지 리퍼블릭. 결코 내것일 수 없는 상처를, 가만히, 어루만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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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열병을 앓았다. 엄마는 한데 나앉아 있다가 동장군이 든 거라 했지만
나는 마음을 태워 없애는 중이었다. 감정을 재료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의 장막들을 베어 없앨 칼 하나를 담금질하는 중이었다. _ 17
 

밝고 따듯한 곳에 있는 당신이어서, 춥고 어두운 곳에 있는 내가 애처롭다고?
조금만 기다리시라.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는 당신의 삶이, 모닥불을 향한 당신의 욕망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가르쳐줄테니. _ 87

 

부메랑을 뽑고 나니 가슴 한복판에 외눈이 생겨 있었다. 녀석은 장님이었다.
앞도 못 보는 주제에 자주 눈을 깜박거렸다. 자꾸만 속눈썹이 면 티를 스쳤다. 명치에 힘을 주어 꼭 닫고 있어야 했다.
잠시라도 딴청을 피우면 녀석은 그새 눈을 떴고, 그러면 나는 손바닥까지, 발바닥까지 속살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_ 98

 

민주주의 사회는 공평했다. 종과 유를 막론하고 동일한 게임을 택해야 했다.
일테면 포유류거나 어류거나 똑같이 수영 실력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포유류는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어류는 하던 대로 하면 그만이다. 자유경쟁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냐? _ 102~103

 

 

 

첫사랑이란 가슴에 모양틀을 뚫는 일이었다.
삼각형으로 뚫리면 삼각형으로, 동그라미로 뚫리면 동그라미로, 별 모양으로 뚫리면 별 모양으로,평생 동안 감정이란 반죽을 잘라내게 되는 거였다. _ 143

 

상처는 상처가 아니었다. 진짜 상처는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었다.
잘못 아문 상처의 흔적이야말로 진짜 상처였다.
어떤 사람한테는 술이고, 어떤 사람한테는 잠수고, 또 어떤 사람한테는 섹스이거나 자해이거나 폭력일 수도 있는 그것.
어떻게든 상처는 낫게 마련이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은 일생을 두고 반복될 수도 있다. _ 217~218

 

그걸 사랑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놓치면 도망가고, 붙잡으면 파고드는.
가까이 있으면 가볍고, 멀리 떨어지면 무거운.
마음에 품으면 버겁고 아프고 화나고 무섭고, 몸으로 밀어내면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하고 비참한, 

그걸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_ 234

 

 

 

사람은 변하지만 바뀌지는 않는다. 세상은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다.
변치 않는 세상 속에서 변해가는 게 인생이고, 바뀌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게 정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 만에 나는 더 이상은 아무것도 믿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얗게 눈이 깔린 캠퍼스를 걸으며 더 이상은 아무것도 '싶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각했다, 생각했다. _ 268

 

끊임없이 새로운 물결에 밀려나고 마침내 뭍에 부딪쳐 사라지고
날씨에 따라 수천 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는 게 기억이다. _286

 
 

사랑해달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겠습니다.

_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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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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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시린 가을이다.

내 생애 단 한 번뿐인 이천십년의 가을, 이렇게 내게 잔인하게 굴다니,

이 가을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빨간약을 집어들고 가슴 언저리에 바르게 될 것만 같다.

아니다, '가망 없는 감정의 소모'를 이제 막 끝낸 참이니, 나는 오히려 홀가분해야 옳다.

 

괜찮지? 괜찮아. 그러면서 나는 정말 괜찮아졌다. 이제 모든 것은 소소한 과거사가 되었다. _ 79

 

그 소소한 과거사를 정리하며 괜찮아지는 과정 중에 나는 빨간약을 바르는 대신 붉은 열매들을 따먹었다.

수확의 계절 가을. 

일부 농가들에서는 곤파스의 무자비한 칼질에 흉년을 맞은 가을이겠지만, 여기, 내 정원에는 붉은 열매가, 참 탐스럽게도 주렁주렁 열렸다.

나는 그 붉은 열매들을 누가 따가기라도 할세라 욕심스럽게 거둬들여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깨물어 먹었다.

붉은 열매에서 흘러나온 붉은 즙이, 내 심장에 닿아, 괜찮지? 괜찮아, 하면서 스며들었다.

까진 무릎에 바른 빨간약보다, 더 탁월한 효과로 내 심장을 어루만져준 이 붉은 열매들 덕분에, 잔뜩 성나 있던 심장이 이제야 긴장을 푼다.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_ 80

 

이제 막 일 년여에 걸친 짝사랑을 정리한 탓인지, 책 속에서 사랑에 관한 구절들이 유난히 마음을 사로잡았다.

참 우습지. 짝사랑도 사랑이라고 실연의 시련을 겪고 있는 이 내 마음이 말이다.

그 보잘것없는 아픔에 나는 보잘것없지 않은 따스한 위로들을 많이 받았다. 참, 염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더 괜찮아야 하고, 나는 정말 괜찮아졌다.

아픈 마음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그 상처가 결국은 보잘것없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인 이유는 차미령 씨의 해설에 적힌 대로인 것 같다.

 

그 처절함을 바깥에서 제어하고자 하는 작가 특유의 사색과 통찰이, 이 이야기들을 소설 속 주인공에 국한된 체험이 아니라 너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체험이 되게끔 이끌어간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이 어쩐지 바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것은 모든 소설의 본성이 아니라 좋은 소설에만 가능한 자질이다. _ 275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처럼 영원히 그 자리에 매달려 있을 붉은 열매.

봄여름가을겨울, 언제고 나는 내 정원을 찾아가 이 붉은 열매들을 따먹을 것이다.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새콤하게 내 마음의 허기를 달래줄, 이 붉은 열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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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에트가 웃는다
엘자 샤브롤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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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쥘리에트가 웃었다.

쥘리에트와 함께 나도 웃었다. 오랜만에, 책 읽으며 킬킬거렸다.

 

책 소개를 읽고, 느낌이 왔다. 이 책, 왠지 유쾌하겠군!

 

 

"피에로가 떠나요? 왜 떠난대요?"

"여자를 찾고 싶답니다."

 

근육질 거한에 나이는 마흔일곱 살이지만 산골 오지인 풀리주악 마을에서는 가장 어린 '꼬맹이' 피에로. 틈만 나면 모든 것을 고치고, 설치하고, 특히 운전을 해서 장을 봐주는 이 녀석, 착하고 듬직한 이 녀석이 떠나면 노인들만 남아서 어떻게 산담? 열 명뿐인 마을사람들은 피에로를 붙들어두기 위해 비밀리에 색싯감을 찾기 시작하는데, 그녀는 피에로를 사로잡을 만큼 예뻐야 하지만 다른 홀아비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정도로 너무 예뻐서는 안 되고, 훌륭한 친구로 삼을 만큼 똑똑해야 하지만 피에로가 열등감을 느낄 수준이어서는 안 되고, 피에로만큼 착해야 하지만 물러 터져서도 안 된다.

거참 간단하군,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이 쥘리에트가 나서야겠어!

시간이 멈춰버린 마을에서 드디어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한 살 독신 노부인 쥘리에트를 웃게 만든 풀리주악의 연애시대.

 

 

이야기의 배경은 프랑스의 오지 마을 풀리주악. 이곳도 한 때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곳이었으나, 이제는 백한 살 노부인 쥘리에트부터 마흔일곱 살 꼬맹이 피에로를 포함해 열 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남은 초고령화 마을이 되어버렸다. 미리 만들어둔 무덤 석판에 새겨진 날짜를 한참 넘기도록 살아 있는 쥘리에트를 중심으로, 식료품 가게 주인(이었던) 리폴랭과 지네트, 쥘리에트의 집에 들러 청소와 요리를 해주는 오렐리, 풀리주악을 망하게 할 3대 재앙(전쟁, 콜레라, 그리고 그녀)인 오렐리의 모친 비베트, 쥘리에트의 집과 발코니를 마주한 방귀쟁이 로베르, 숫처녀로 죽을까봐 두려운 여든여덟 노처녀 '두더지' 레오니, 은퇴 후 여생을 보낼 마을로 풀리주악을 선택 해 이사온 프란츠와 마르틴 부부, 마을의 유일한 '젊은이'이자 마을의 든든한 기둥 피에로 등. 이들이 펼치는 풀리주악의 새로운 연애시대가, 요즘 내 마음에 잔뜩 드리웠던 먹구름을 거둬가고 짱짱한 햇빛을 내쏘아 주었다. 아아, 재미나!!!

('프랑스 소설'이라는 건 방금 리뷰를 쓰기 위해 저자 프로필을 검색하던 중 알게 되었는데, '프랑스 소설'이라면 왠지 어렵게만 느껴져 지레 피하던 나였건만, 오홋, 요렇게 재미난 책을 만나고 보니, 앞으로는 '프랑스 소설'이라도 미리 겁먹고 도망 가지만을 않을 듯!)

 

폴리주악의 어르신들이 꼬맹이 피에로를 마을에 붙들어두기 위해 펼치는 007작전과 같은 '러시아 처녀 타티아나 모시기', 그리고 그와 함께 점점 마을에 드리워지는 (가끔은 '소돔과 고모라'라는 표현도 등장하게 되는) 화기애매한(?) 분위기는, 정말이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유쾌하게 만들어주었다. 제목처럼, 자꾸, 웃는다. 아아, 어쩌면 좋아, 너무나 사랑스러운 풀리주악의 연애시대!

 

요즘, 감정의 롤코를 타느라 책을 영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한데, 간만에 한 권 완독! 그것도 아주 유쾌하고 신나게!

요 사랑스럽고 애정 돋는 풀리주악 마을 사람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참, '한국출판문화대상 번역상 수상'에 빛나는 이상해 님의 번역 역시 감탄이!

 

"근데 피에로 짝이 될 여자는 어디 있나?" 방귀쟁이가 물었다.

"아, 제발 깝치지 좀 말아요!" 오렐리가 면박을 줬다.

 

ㅠ_ㅠ 아아, (내가 많은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책에서 '깝치다'라는 요런 표현 처음 만나 봄!

'깝치지 좀 말아요'!! (비록 비속어이지만) 정말 살아 팔딱대는 번역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책이 시종 유쾌할 수 있는 건, 원작의 힘은 물론이지만, 번역자의 힘 또한 크게 한몫 하는 것이지.

 

이 가을,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우울의 동지들,

<쥘리에트가 웃는다> 읽으며 함께 웃어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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