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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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소녀를 불러 깨우고, 그 소녀의 심장을, 머리를 쓰다듬어준 책. 소녀의 손을 잡아준 책.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

 

지난 삼 일 동안, 밤마다 키비Kebee의 음악을 들으며, 소년이 먹는 간식을 따라 먹으며, 소년을 만났다.

위로해주고 싶은 소년,이 아니라 나를 위로해준 소년을.

소년은 미국 유학을 중간에 접고 돌아온 친구와 함께, 이사 첫날 자신의 방 창문을 올려다보던 소녀와 함께, 자신을 향한 마음을 우정으로 질끈 묶고 곁에 있어주는 또 다른 소녀와 함께, 그리고 그런 소년을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 신민아 씨와 함께, 신민아 씨의 애인 재욱 형과 함께 열일곱, 그 찬란한 나이의 퍼즐을 맞춘다. 비록 천 조각, 이천 조각으로 나뉘어 있지만 미리 그려진 그림이 있고, 그 그림과 일치하게 하나하나 맞추면 되는 그런 퍼즐과는 시작도 끝도 그 과정도 같을 수 없는, 이 세상 그 어느 퍼즐보다도 어렵고 정답 도안도 없는 소년 인생의 퍼즐을.

이 모든 것의 시작은 G-그리핀이었던가? 무명의 십대 랩퍼 G-그리핀의 노래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소년의 우주를 흐르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도 역시 힙합을 즐겨 들었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랩 속에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이도 담겨 있었다. 소녀의 감수성으로 발라드를 흥얼거리기보다 '이게 바로 내 심정'이라며 랩을 외워 따라 부르곤, 아니 외치곤 했던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점차 부풀어 오르던 내 안의 소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소녀가 깨어났다.

나는 이미 지나온 그 소년소녀 시절의 이야기군, 하고 쓰윽 지나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로 돌아가, (아니, 어쩌면 나는 늘 그 시절의 소녀였는지도. 나는 하나의 나가 아니니까.) 그때 내가 했던 생각들,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 내 심장이 담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되살려 놓았다. 물론, 그 시절의 나는 소년의 반만큼도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얼마나 오랫만에 소녀처럼 두근거리며, 설레며, 볼을 붉히며 소설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자주 호흡을 멈추게 만든 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들은 또 얼마나 황홀했던가. 한 문장을 읽고 숨이 턱 막혀와 잠시 눈을 멈추고 밑줄을 긋고 다시 읽고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그런 문장들 역시 G-그리핀의 노래처럼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는 소년소녀들, 그리고 인생의 어느 한때 소년소녀였던 이 땅의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따스하고 수줍은 위로의 손길.

소년을 위로해주려다가, 내가 위로 받았다. 가슴이 따스함으로 충만해, 이 벅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커다란 헤드셋을 끼고 힙합을 들으며 달리고 싶은 밤이다.

'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의 고독한 떠돌이 소년. 소년을 위로해줘'

 

 

_ 고독은 학교 숙제처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슬픔은 함께 견디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슬플 때에는 반드시 네 곁에 있을게. (19)

 

_ 연우야, 이거 중요한 문제야. 약간 멀리 있는 존재라야 매력적인 거야. 뜨겁게 얽히면 터져. 알았지?(47)

 

_ 나라는 녀석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대체 어디까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소유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면 지레 포기하면서 마치 원하지 않는 척 허세를 부려온 건 아닐까. (104)

 

_ 비밀이 있다는 거 좋은 일이야. 비밀 그거, 사유재산이나 마찬가지지. 남몰래 인생의 부자가 되는 거니까. 근데 일단 있다는 걸 들켰으면 신고하고 세금은 내야 할걸. (243)

 

_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서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닿는 일, 팔이 길어지는 거지. 손가락이 닿는 순간 서로임을 확인하고 깍지를 낀다. 그런 다음 한 걸음씩 다가가며 둘 사이에 가로놓인 시간과 거리를 없애가는 거야. 서로 조금씩 가까이 가는 것, 두 눈은 나만 아는 소중한 너의 모습에 사로잡힌 채. 그래. 한쪽에서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는 게 아니고.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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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없음
배수아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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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해 지난 계간지를 뒤적이다가 배수아 단편 「올빼미의 없음」을 만났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 이런 짧은 감상평을 남겼었다.

'배수아의 「올빼미의 없음」. 아아, 이런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할까. 심장에 격랑이 인다! 올해 읽은 단편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 인상적이었다. 지금껏 읽어온 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느낌.

작가의 다른 소설들이 궁금했다.

(몇 해 전에 읽었던 그저그런, 별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책의 저자라는 건, 이번에 책 날개를 보면서 알았다.

이런 독특한 소설을 쓴 작가라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 같은데, 그 동안 그의 소설에 큰 변화가 있었거나, 나의 책 읽기에 큰 변화가 있었거나, 둘 중 하나일까?)

 

『올빼미의 없음』에 실린 단편 여덟 편은 내가 「올빼미의 없음」을 읽으며 받았던 그런 느낌을 고스란히 되살려주었다.

그래, 맞아, 바로 이런 글이었지! 그 여름 내 안에 강한 박자의 두근거림을 남긴 것은!

이야기를 읽는다기보다는 한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문장과, 깊고 깊은 사유의 바다 속에 헤엄치게 만드는 책.

때로는 작가 자신의 깊이 있는 사유를 그대로 옮겨 놓은 에세이인 듯한 느낌도 들고, 때로는 긴 호흡 노래하듯 흘러가는 산문시인 듯한 느낌도 들고, 때로는 우리말로 완벽하게 번역해낸 외국 철학 소설인 듯한 느낌도 들고...

여러모로 지금껏 즐겨 읽던 소설과, 특히 한국 소설들과 다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책 뒤쪽에 실린 전성태 소설가의 추천사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배수아 작품 어때?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난해하고 지루하여 못 읽겠다는 독자의 불평을 들을 때 나는 그야말로 우리 문학의 진정한 자존심이라 여겼다.' 때에 따라서는 '난해하고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스토리 위주의 소설이 아닌, 이처럼 깊고 깊은 사유를 따라가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본다면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을 것이다. '난해'할 수는 있겠다. 생각이라는 건, 늘 어려운 법이니까. 하지만 책 읽기로서의 어려움이 아니라, 다만 내 안에서 샘솟게 되는 여러 의문과 작가가 던져주는 화두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데 따르는 '난해함'일 뿐이다.

 

벌써 올 한 해 책 읽기를 정리해봐야 할 때가 다가왔다.

올해 만난 최고의 책, 올해 만난 최고의 작가 등등 나만의 순위를 매길 때, 나는 이 작품, 이 작가를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몇 해 전에 읽었던 그저그런, 별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책'(『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물론, 배수아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열심히 찾아 읽어야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작가를 알게 되어,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표현은 누가 가장 먼저 사용했을까.

뛰고 있는 심장, 살아 있는 것을 사로잡았을 때와 그렇게 사로잡혔을 때의 감정을 잘 아는 자인 그들은

사냥꾼이었을까. _ 84

 

올해, 내 마음의 사냥꾼, 배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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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모바일 혁명 - 아이폰+아이패드×트위터=미래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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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폰 홈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한 뒤 화면을 밀어 잠금을 해제하고 바로 트위터에 접속했다.

간밤에 타임라인에 올라온 글들을 읽고 몇몇 글들에는 멘션을 보내고 미투데이에 접속했다.

지난밤에 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 사귄 '미친'으로부터 온 댓글과 미친의 새글을 읽으며 나도 댓글을 달고 있는데 카톡 알람이 떴다.

어랏, 이 친구도 드디어 스마트폰을 장만했구나! 반가운 마음에 카톡에 들어가보니 고등학교 동창 친구 둘이 나란히 새친구에 떠있다.

친구 둘을 한 방에 불러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트윗과 미투 알람이 계속 떠서

카톡-트윗-미투-페북을 오가며 정신없이 '대화'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런, 책 읽어야 하는데!

불과 올 초에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나의 주말 아침 모습이다. 아이폰으로 바뀐 내 일상의 단면.

 

아이폰을 사용한 지도 어느덧 8개월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 동안 아이폰에 관한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다. 굳이 필요성을 못 느꼈다.

아이폰은 많은 '공부'가 필요한 기기이긴 하지만, 그저 내가 이리저리 만져보고 지인들과 머리 맞대고 탐구생활을 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내 의문을 몇 단어로 정리해 검색해보기만 하면 된다.

나보다 먼저 의문을 가지거나 오류를 경험한 '아이폰 선배'들이 친절하게 올려놓은 글들이 우수수 검색 결과 화면에 뜨니까.

그런데도 굳이 이 책을 읽어본 건, 공병호 박사의 글이어서,가 90% 정도.

공병호 박사의 '아이폰+아이패드x트위터=미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무엇을 하는지, 그가 바라보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현황과 전망은 어떤지, 그는 트위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서.

 

만일 내가 CEO라면, 내가 직장인이라면 무엇이 구체적으로 알고 싶을까. 스마트폰이나 트위터와 같은 신기술과 신서비스를 무엇(what)을 위해, 왜(why)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how) 활용해야 하며 어떤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지가 더 궁금하지 않을까.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오락이나 재미를 얻는 데만 사용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_ 7

 

저자는 바로 이런 시각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너무 아깝'게 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쓰고 있는 나는 사실 별로 고민해보지 않은 문제들이지만,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나의 아이폰+트위터 활용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깝'게 사용하고 있지만, 나는 그게 그다지 '아깝다'고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이폰과 트위터가 내게는 어떤 혁신이나 효용보다는 '삶의 재미'를 추구하는 의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으로 내 삶이 재미있고 늘 신세계를 경험하는 신비로움으로 충만해 있다면, 내게는 이것도 커다란 가치 아닐까? 아이폰과 트위터로 내가 기업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 신기술을 그저 한낱 놀이감으로 낭비하고 있구나' 하고 굳이 자학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나 트위터 등으로 '자신의 가치창조 역량을 강화하고 가치라는 성과를 더 많이 만들어내는 데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사람, '나이' 때문에 스마트폰 사용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에 뛰어들기를 주저했던 사람(나이 때문에 겁내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고, 책에서는 계속 응원의 힘을 보내준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나 트위터의 사용법을 전혀 몰라 그 사용법을 알고 싶은 사람 등이 읽으면 더 좋을 거 같다.

 

 

(네이버 책에 '경제'로 분류되어 있어서 말머리에 '경제'라고 쓰긴 했는데, 이런 책이 경제서로 분류되는 건가?

워낙 문학밖에 안 읽어서 그 외는 어떻게 분류되는지 모르겠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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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순간 세트 - 전2권 - 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우리가 보낸 순간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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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배달과 신문 연재, 가슴 설레게 잘 봤는데 드디어 책으로!!! 아아, 행복한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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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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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추위가 예고된 초겨울의 한 날, 내 마음 속에 봄이 왔다. 보옴.

내 안에 봄을 틔워준 책은 바로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

강우근의 '봄꽃' 이야기도 아니고, '들꽃' 이야기인데, 굳이 한 계절, 봄을 그리워하는 건, 내가 사랑하고 기다리는 꽃 중에 봄꽃이 많기 때문일 거다.

꽃은 봄 뿐 아니고,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고, 그리고 겨울에도 피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다리게 되는 건 아무래도 봄꽃.

기나긴 추위 내내 언제 봄이 오려나, 동구 밖에 님 마중 나가 있듯이 기다리게 되는 봄꽃. (봄꽃과 비교하자면 여름꽃, 가을꽃은 계절 따라 휘유휘유 흘러가다보면 절로 앞에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봄맞이꽃이며 꽃마리며 별꽃이며 현호색이며 양지꽃이며 자운영이며, 내가 사랑하는 꽃들과 눈을 마주치게 되는 그 봄이 내게는 천국.

화려하고 예쁜 꽃들보다는 들판 여기저기, 혹은 보도블럭 틈새에, 혹은 전봇대 밑에 아무데서나 옹기종기 혹은 외로이 자라는 작은 꽃들을 더 좋아한다. 길을 가다 작은 꽃 앞에 멈춰 있는 나를, 작은 꽃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나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거리기도 한다. 저기에 뭐 볼 게 있나 싶은 거다. 간혹 "뭐 찍으세요? 아무 것도 없구만."이라고 물어오는 이도 있다. 들꽃은, 아는 이에게만 보이지. 그들에게 관심없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이름 없는 풀' '잡초'에 지나지 않지만, 일단 그들과 마음이 통하고 나면 꽃가게를 장식한 그 어떤 꽃들 못지않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두 각자의 이름을 가진 꽃이고 풀이다. 남들은 눈길 주지 않는 그런 작은 들꽃들을 나 혼자 마음껏 누린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도 덤으로 맛보며, 이 작은 꽃들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하다.

 
 

이 책에는 그 작은 꽃들,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과 나무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제목 하나하나에서 꽃이름을 보며 그동안 내 눈에 담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언젠가 이름을 익혔던 건 분명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이들의 사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 식물의 이름이 등장하는 책 제목이며 시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책 한 권을 읽으며 참 많은 만남을 가졌다.

 

식물을 좋아해 (많이는 못 읽어도) 일 년에 몇 권은 식물에 관한 책을 읽게 되는데, 그 동안 읽었던 책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을 하나 느꼈다면, 그건 바로, "'쓸모없는 식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 쓰임을 모를 따름"이라는 것이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을 아니지만) 다른 책들에서는 귀화 식물 중 많은 식물들을 생태계 교란이니 뭐니 해서 뽑아 없애야 할 식물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고, 내가 한창 활동하던 들꽃 카페에서도 역시 모모 식물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식물이니 뽑아버리는 게 좋습니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 왔는데, 이 책에서는 그 모든 식물을 '두둔'하고 있다. 내게도 낯설지 않은 퇴치 명단에 오른 식물들이 이 책에 많이 등장하지만, 지은이는 그 어느 풀 하나도 "뽑아 없애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내가 무시무시하게 생각하고 있는 환삼덩굴조차.(책을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다. 이 책에 환삼덩굴도 나올까? 무시무시한 기세로 밭을 점령하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갗을 그어버리는 그 풀에게는 과연 어떤 쓸모가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과연 이 책에서는 환삼덩굴에 대해서 "가시덤불 같은 내 삶의 의미는 도대체 뭘까?"라는 심오한 질문과 함께 그 '쓸모'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이쯤 되어서는, 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널찍하고 시원스럽게 생긴 잎과 곧 예쁜 열매가 익을 것 같은 동글동글 구슬이 달린 풀을 보고 사진을 찍어 활동 중이던 카페에 이름을 문의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미국자리공'이었다. 많은 분들이 댓글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외래종이니 눈에 띄면 뽑아버리는 게 좋다고 했고, 그날 돌아가던 길에, 나는 그 아이를 뽑아 버렸다. 방금 낮에 예쁘다고 눈 마주치고 한참을 머물며 이리저리 사진도 찍었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새로 만난 예쁜 아이에 가슴이 설렜었는데 말이다. 그 후 내내 그 식물이 마음에 걸렸었다. 집에서는 화분에 난 '잡초' 하나도 웬만해서는 뽑아버리지 않고 공생을 주장하면서, 그 풀은 왜 그렇게 확 뽑아버렸는지. 이 책을 읽으며 그때 내가 뽑아버린 미국자리공이 생각나 다시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뽑아버리라고 하면 뽑아버리고 쓸모없는 식물 없으니 무작정 뽑아버릴 일은 아니라고 하면 또 금세 뽑으면 안되는가 싶고, 다 내가 식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일 같아, 이에 관련해서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책은 왜 여기저기서 철저히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그 풀들도 모두 감싸주는 건지, 정말 그렇게 무작정 뽑아버릴 일은 아닌 건지 궁금하다.

 

 

이 책의 리뷰를 쓰기 위해 블로그에 들어오니 마침 이지형의 '봄의 기적'이 흘러나온다. 안 그래도 마음속에 봄이 들끓고 있었는데, 아직 채 오지도 않은 겨울이 서운하게시리 봄이 더욱 기다려진다.

무작정 봄봄봄, 아직 때가 되지 않은 보옴만 기다릴 게 아니라 내일은 아직 길가에 피어 있는 개여뀌랑 인사라도 나누고, 꽃은 피어 있지 않아도 푸름을 간직하고 여기저기 옹송그리고 있는 작은 친구들을 만나봐야겠다. 이밤, 괜히 마음이 들썩들썩한다.

작고 여린, 하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강한 작은 식물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과의 만남이 참으로 행복했다.

오래 잊고 지냈던, '나의 들꽃 이야기'도 다시 가슴속에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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