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매서운 추위가 예고된 초겨울의 한 날, 내 마음 속에 봄이 왔다. 보옴.

내 안에 봄을 틔워준 책은 바로 『강우근의 들꽃 이야기』.

강우근의 '봄꽃' 이야기도 아니고, '들꽃' 이야기인데, 굳이 한 계절, 봄을 그리워하는 건, 내가 사랑하고 기다리는 꽃 중에 봄꽃이 많기 때문일 거다.

꽃은 봄 뿐 아니고,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피고, 그리고 겨울에도 피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다리게 되는 건 아무래도 봄꽃.

기나긴 추위 내내 언제 봄이 오려나, 동구 밖에 님 마중 나가 있듯이 기다리게 되는 봄꽃. (봄꽃과 비교하자면 여름꽃, 가을꽃은 계절 따라 휘유휘유 흘러가다보면 절로 앞에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봄맞이꽃이며 꽃마리며 별꽃이며 현호색이며 양지꽃이며 자운영이며, 내가 사랑하는 꽃들과 눈을 마주치게 되는 그 봄이 내게는 천국.

화려하고 예쁜 꽃들보다는 들판 여기저기, 혹은 보도블럭 틈새에, 혹은 전봇대 밑에 아무데서나 옹기종기 혹은 외로이 자라는 작은 꽃들을 더 좋아한다. 길을 가다 작은 꽃 앞에 멈춰 있는 나를, 작은 꽃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나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거리기도 한다. 저기에 뭐 볼 게 있나 싶은 거다. 간혹 "뭐 찍으세요? 아무 것도 없구만."이라고 물어오는 이도 있다. 들꽃은, 아는 이에게만 보이지. 그들에게 관심없고 알고 싶은 마음도 없는 이들에게는 그저 '이름 없는 풀' '잡초'에 지나지 않지만, 일단 그들과 마음이 통하고 나면 꽃가게를 장식한 그 어떤 꽃들 못지않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두 각자의 이름을 가진 꽃이고 풀이다. 남들은 눈길 주지 않는 그런 작은 들꽃들을 나 혼자 마음껏 누린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도 덤으로 맛보며, 이 작은 꽃들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하다.

 
 

이 책에는 그 작은 꽃들,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과 나무들이 풍성하게 담겨 있다.

제목 하나하나에서 꽃이름을 보며 그동안 내 눈에 담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언젠가 이름을 익혔던 건 분명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이들의 사진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 식물의 이름이 등장하는 책 제목이며 시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책 한 권을 읽으며 참 많은 만남을 가졌다.

 

식물을 좋아해 (많이는 못 읽어도) 일 년에 몇 권은 식물에 관한 책을 읽게 되는데, 그 동안 읽었던 책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을 하나 느꼈다면, 그건 바로, "'쓸모없는 식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 쓰임을 모를 따름"이라는 것이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을 아니지만) 다른 책들에서는 귀화 식물 중 많은 식물들을 생태계 교란이니 뭐니 해서 뽑아 없애야 할 식물로 지정하는 경우가 많고, 내가 한창 활동하던 들꽃 카페에서도 역시 모모 식물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식물이니 뽑아버리는 게 좋습니다, 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 왔는데, 이 책에서는 그 모든 식물을 '두둔'하고 있다. 내게도 낯설지 않은 퇴치 명단에 오른 식물들이 이 책에 많이 등장하지만, 지은이는 그 어느 풀 하나도 "뽑아 없애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내가 무시무시하게 생각하고 있는 환삼덩굴조차.(책을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다. 이 책에 환삼덩굴도 나올까? 무시무시한 기세로 밭을 점령하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갗을 그어버리는 그 풀에게는 과연 어떤 쓸모가 있는 걸까? 하고 말이다. 과연 이 책에서는 환삼덩굴에 대해서 "가시덤불 같은 내 삶의 의미는 도대체 뭘까?"라는 심오한 질문과 함께 그 '쓸모'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이쯤 되어서는, 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널찍하고 시원스럽게 생긴 잎과 곧 예쁜 열매가 익을 것 같은 동글동글 구슬이 달린 풀을 보고 사진을 찍어 활동 중이던 카페에 이름을 문의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미국자리공'이었다. 많은 분들이 댓글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외래종이니 눈에 띄면 뽑아버리는 게 좋다고 했고, 그날 돌아가던 길에, 나는 그 아이를 뽑아 버렸다. 방금 낮에 예쁘다고 눈 마주치고 한참을 머물며 이리저리 사진도 찍었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새로 만난 예쁜 아이에 가슴이 설렜었는데 말이다. 그 후 내내 그 식물이 마음에 걸렸었다. 집에서는 화분에 난 '잡초' 하나도 웬만해서는 뽑아버리지 않고 공생을 주장하면서, 그 풀은 왜 그렇게 확 뽑아버렸는지. 이 책을 읽으며 그때 내가 뽑아버린 미국자리공이 생각나 다시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뽑아버리라고 하면 뽑아버리고 쓸모없는 식물 없으니 무작정 뽑아버릴 일은 아니라고 하면 또 금세 뽑으면 안되는가 싶고, 다 내가 식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일 같아, 이에 관련해서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책은 왜 여기저기서 철저히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그 풀들도 모두 감싸주는 건지, 정말 그렇게 무작정 뽑아버릴 일은 아닌 건지 궁금하다.

 

 

이 책의 리뷰를 쓰기 위해 블로그에 들어오니 마침 이지형의 '봄의 기적'이 흘러나온다. 안 그래도 마음속에 봄이 들끓고 있었는데, 아직 채 오지도 않은 겨울이 서운하게시리 봄이 더욱 기다려진다.

무작정 봄봄봄, 아직 때가 되지 않은 보옴만 기다릴 게 아니라 내일은 아직 길가에 피어 있는 개여뀌랑 인사라도 나누고, 꽃은 피어 있지 않아도 푸름을 간직하고 여기저기 옹송그리고 있는 작은 친구들을 만나봐야겠다. 이밤, 괜히 마음이 들썩들썩한다.

작고 여린, 하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강한 작은 식물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과의 만남이 참으로 행복했다.

오래 잊고 지냈던, '나의 들꽃 이야기'도 다시 가슴속에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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