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시 읽는 어린이 5
송상홍 지음, 민경순 그림 / 청개구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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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로는) 처음 만나본 동시집이다.

동화책들 사이에 꽂힌 동시집을 빼서 살짝 넘겨보다가 쉽고 재미난 시들에 마음이 끌려 데려다 읽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읽혀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은 시,

집에서 함께 사는 강아지를 그려내어 무척 공감이 가는 시,

이제는 그리움으로만 남은 가족들을 그려내 뭉클해지는 시,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마음과 지혜를 담아 반성하게 하는 시,

 

이런 시들을 이 동시집에서 만났다.

맑고 깨끗하고 예쁘고 뭉클하고 사랑스러운 책!

 

 

잠을 깨도

다시 눕고 싶을 때가 있어

월요일인 줄 알았는데

일요일일 때

 

그땐 강아지처럼 기지개를

쭈욱 켜는 거야

 

햇살이 코끝을 간질여도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

일찍 일 나가신 엄마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기지개를

쭈욱 켜는 거야

 

또 있지

맞춰 놓은 시각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오 분 정도 남았을 때

그땐 잠자지 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려 _ 「다시 눕고 싶을 때」 전문

 

 

아웅, 정말, 잠에서 깼지만 다시 눕고 싶어 무척 갈등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그런 마음을 이렇게 예쁘게 그려내었다니.

"그땐 잠자지 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려." 어이쿠, 정신이 번쩍 든다!!

기억할 것. 그땐 강아지처럼 기지개를 쭈욱 켜기!

 

 

처음 왔을 때

조그만 상자만 주었는데

 

허드레 부엌

현관

마루

드디어 안방

온 집 안을 점령하였네?

 

엄마 우리가 강아지 집에서 사는 거지? _ 「우리집 맞아?」 전문

 

 

나도, '강아지 집'에 살아서, 이 시를 읽으며 공감의 고갯짓을 끄덕끄덕끄덕!

조그마한 강아지가 새식구가 되어 낯선 듯 한구석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다가 이내 부엌이며 현관이며 마루며 안방까지 점령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정말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모습.

 

시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짓게 되고,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느낌이 참 좋았다.

어린이 책의 세계,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는 것이 참 아쉽게 느껴지며,

이 예쁘고 맑은 책들, 앞으로도 많이많이 읽으리라 다짐!

 

 

처음 만났다고 모른 척하지 마

알 듯 말 듯한 웃음이라도 먼저 보내고

엷은 눈짓이라도 보이거든

아무 말이라도 나눠 봐

 

말을 나누다 보면

고향이 같고

할아버지가 같고

잃어버린 이야기가 같을지

누가 알겠니?

 

마주 보고 눈 이야기라도 나누다 보면

네 눈동자 속에 박힌 내 모습

남인 줄 알았는데

네 맘속에 자리하던

친구일지 누가 알겠니? _ 「남인 줄 알았는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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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죽여라
구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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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는 정말이지, 게으름을 죽여야 했다. 아니, 게으름을 죽여야 한다.

할 일이 잔뜩 쌓였는데 세월아 네월아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기보다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할 일이라고는 게으름 피우는 것밖에 없기라도 한 듯한 나날인데……

 

그는 평소 오랜 시간 잠을 잤다. 열네 시간이나 열다섯 시간. 깨어 있는 시간은 고작 열 시간이나 그 이하였다. 깨어나봐야 할 일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할 일이 없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 그를 괴롭혔다.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으면서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또한 그를 괴롭혔다. 그는 괴로워서 잠을 잤고 잠이 잠을 불러왔다. 잠을 자는 동안은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다소 행복해할 수도 있었다. (207)

 

요즘 나는 잠을 많이 잔다. 열네 시간, 열다섯 시간까지는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자는 것보다는 많이. 아침(이라고 해봐야 이미 해가 중천에 떴을 시간)에 눈이 떠져도 그냥 도로 잔다. '일어나도 할 일도 없는데 뭐……'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잠자는 일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내 삶을 꿈나라에 버리고 있는 중이다.

나도 이렇게, 평생을(?) 놀고 먹어온 인간은 아닌데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러니까, 지금 내 처지가 '한여름 누렁이' 짝인 게 큰 원인이긴 하다.

 

한가할 때는 한여름 누렁이처럼 늘어지다가도 일단 의뢰가 들어오면 심심한 누렁이에게 쫓겨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암탉 신세가 되는 게 바로 나였다. (56)

 

그래, 그게 바로 나다. 직업은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 번역가', 현실을 말하면 '반(半) 백조'.

일이 몰릴 때는 미친 듯이 몰려 심심한 누렁이에게 쫓겨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암탉 신세가 되어 꽥꽥꽥 울부짖으며 일하다가도, 일이 끊기면 그야말로 '뚝!', 그렇다 '뚝!!' 끊기고 말아 나는 한여름 누렁이 모드로 돌입. (뭐, 이것도 굳이 따지자면 일감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은 내 탓이기도 하겠지만.) 요즘이 바로 그 '한여름 누렁이' 모드여서 나는 정말이지,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다. 아니, 이미 빠져든 것 같다.

 

밤이면 밤마다 밤을 새워 책을 읽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책은 왠지 벌건 대낮보다 컴컴한 밤에 읽어야 죄책감(?)이 없으니까, 밤이 되면 책을 읽고, 읽다가 중간에 덮어두기도 하고, 다 읽었으면 독후감 쓰고, 이게 요즘 내 '게으름'의 모습이다. 다른 '생산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 (조카 돌보는 것은 이미 필수 일과이므로 빼고.) 그러다가, 문어발 식으로 읽은 책 몇 권이 머리를 딱딱하게 만들어버려 책 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 날, '아니, 내가 지금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거라곤 책 읽는 거밖에 없는데 이것마저 하기 싫어지면 그 다음 차례는 숨 그만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필코 읽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집어든 책이 이 책, 『게으름을 죽여라』였다. 지난번에 얼핏 보니, '백수소설'의 새 지평을 연 작가라고 했다. 그래, 인정하기는 싫지만 '백수소설'이라면, 지금 내게도 많은 부분 공감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여, 독서로 지친 마음을 풀어줄 것 같았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조금 서글프지만, 이 책의 수많은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그래, 그렇다니까!' '어이쿠, 딱 내 얘기네, 내 얘기야!!' 쉴새없이 추임새를 넣으며 책을 읽었다. 지금 나는 100% '무기력 백수'의 모습이었던가 보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에 공감하는 문장들을 보며,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달았다.

 

그때 못 이기는 척하고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게 옳지 않았을까? 못 이기는 척 결혼을 하고 못 이기는 척 회사에 나가고 못 이기는 척, 남들처럼, 그럭저럭, 살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아는 거라고는 현재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내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지? (30~31)

 

내 인생이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지는 모르겠다. (정말 몰라? 이게 다 네 인생에 대한 너의 '무책임함' 때문은 아니고?!) 하지만, 현재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지금은 '한여름 누렁이'이지만, 곧 '암탉'이 될지도 모르고, 그때가 되면 또 닭 멱따는 소리로 울부짖으며 '백수 탈출'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담당 PM 말로는 다음달부터 새 프로젝트 들어간다고 했던가? 제발, 하루 빨리 시작해줘요!) 그리고 내게는 언제나 꿈이 있으니까. 비록 지금은 그 꿈마저도 흐릿해져갈 지경이긴 하지만, 다시 달리면, 잘 달릴 수 있을 거다. 그때는 게으름을 완벽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이고!

 

지금 내 처지에 비추어보다 보니 백수의 모습과 심경에 상당히 많이 공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소설 속 모든 주인공이 놀고먹는 건 아니고 모두 게으른 것도 아니다. 게으름과 상관 없는 이야기도 실려 있고. 이야기 한 편 한 편, 향긋한 허브 오일처럼 지친 머리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며 나를 다시 '즐거운 독서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그 밤, 이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이젠 책조차도 읽을 수 없게 된 거냐고 한탄하며 우울의 구덩이를 더 깊게 팠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여러모로 고마운 책이다. 다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 때는 지금 그은 밑줄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스쳐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훗, 그때 나는 깊은 백조의 나락에 빠져 있었군. 지금은 아니지 말입니다.' 하면서 말이다.

 

패배의 쓴잔을 높이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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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들어주는 아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사계절 저학년문고 26
고정욱 지음, 백남원 그림 / 사계절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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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된 첫날, 석우는 같은 반 친구 영택이와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일 년 동안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주라는 선생님의 부탁을 받는다. 영택이는 양 팔꿈치에 목발을 끼고 걸어야 하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다. 매일 등하굣길에 영택이 집에 들러 가방을 받고 건네줘야 하는 임무는, 2학년 석우에게는 쉽지 않다. 아니, '2학년'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일 년 동안 다른 사람의 일을 책임지게 된다면 쉬울 리가 없다. 자진해서 하는 일이라도 쉽지 않을 텐데 선생님의 부탁으로 하게 된 일이니 불쑥불쑥 불평이 생기는 그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축구도 한판 하고 싶지만 영택이 가방이 석우의 발목을 잡는다. 영택이 가방 때문에 마음껏 놀지도 못하다니! 매일 교과서와 준비물로 꽉 찬 가방은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 힘들기도 하다. 게다가 가방을 두 개나 들고 다니는 석우를 보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마구 쑤근거린다. 공부 못 하는 아이인가보다는 둥, 숙제를 많이 했나보다는 둥. 이 모든 일이 석우에게 짜증을 불러오긴 하지만, 어린 석우, 꽤나 의젓하다. 불평불만은 속으로 삼키고 영택이 가방 대신 들어주는 일을 일 년 동안 꾸준히 잘 해내니 말이다. 그리고 가방 들어주는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방구 아저씨에게는 친구 가방 들어주는 착한 아이라고 사탕도 받고, 영택이 어머니는 고맙다며 석우가 구경도 못 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주기도 한다.

 

이런 석우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문득 조카를 돌봐주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일하는 엄마'인 동생 때문에 매일 오후 조카를 돌봐야 하는 임무를 맡은 내 모습이, 친구의 불편한 다리 때문에 매일 가방을 들어줘야 하는 석우 모습에 겹쳐져서. 석우가 투덜거리는 장면들도, 내게는 익숙하다.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조카는, 조금 무겁다. "업어, 업어!" "안아, 안아!" 칭얼거리는 조카를 업고 안고 할 때는, 무거운 가방 두 개 드는 석우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고, 오후에 놀자고 친구들이 연락해 와도 조카를 돌봐야 해서 못 나갈 때는, 학교 끝나고 축구 하고 싶은 석우 마음과 같을 것이다. '내 것'도 아닌 것을 건사하느라 석우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 석우처럼 나도 조카 돌봐주는 착한 이모 소리도 듣고, 가끔 동생이 고맙다며 사다주는 선물도 받곤 하지만, 역시 석우처럼 그런 소리를 들으며, 그런 선물을 받으며 마음이 썩 편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석우의 귓가에 맴돌고, 내 조카 내가 돌보는데 꼭 뭐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은 찝찝함은 내 마음속에 생기고. 처음에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 도와주는 '봉사'를 권장하는 이야기려니 생각하고 별 기대없이 집어들었다가, 이래저래 석우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져, 생각지도 못 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나름대로 진지하게 읽게 만든 동화였다.

 

일 년이 다 지나간 후, 이제 석우가 가방 들어주는 임무에서 '해방'될 때, 과연 석우가 어떻게 할 것인가 무척 궁금했는데, 아이다운 갈등을 겪으며 흘러가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석우는 이제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온 마음으로 느끼게 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임무도, 봉사도 아닌, '우정'이겠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우정'을 석우는 진심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평소에 동화책을 읽지 않다보니 동화 작가 이름은 참 낯선데, 고정욱 작가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인가보다. 앞으로 죽는 날까지 동화라면 장애를 다룬 것만 쓰겠다고 마음 먹으며, 새로운 장애는 끊임없이 생겨나는데 자꾸 나이를 먹어가는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작가. 작가는 언젠가 한 아이가 보내준 상장을 받은 적이 있다 한다. 장애를 소재로 좋은 글 써주어서 감사하다는. 글을 읽은 아이가 감동과 감사로 보내온 그 상장이 얼마나 값진 것일까. 이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진심을 울릴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를 알게 되었구나 싶어 참 기쁘다. 앞으로도 꾸준히 작가의 글을 찾아서 읽고 싶다. 동화, 정말 사랑스럽다. 맑고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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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는 힘들어 - 레벨 2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조성자 지음, 최정인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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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서 조카를 데려오는 길, 조카가 방향 지시등처럼 "이쪽" "저쪽" 가리키는 쪽으로 돌아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 멀다.

(집에서 5분 거리인 어린이집을 조카와 함께 오면 1시간 반은 너끈!)

그러던 중, 이날은 어찌어찌 동사무소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가 민원에는 볼일이 없으니 2층에 마련되어 있는 문화센터 겸 책방으로 올라갔는데, 책 본 김에 동화를 몇 권 빌려 왔다. 한 시간 반 돌아돌아 집에 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이날 빌린 동화들을 읽으며 동화책에 마음을 쏘옥 빼앗겨, 이모 '뺑뺑이' 돌린, 그리하여 이렇게 동화책도 만나게 해 준 조카에게 내심 고마운 마음.

 

주인공 설이는 이야기꾼이다. 할머니가 이야기를 좋아하셔서 손녀 이름을 '최이야기'라고 지으려다가 한 발 양보해서 지으신 이름이 '최설(說)'. 이름값 톡톡히 해내는 이 귀여운 꼬마 친구가 반 친구들 앞에서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를 재치있게 묘사해 들려주니 친구들이 무척 좋아한다. 계속 해보라며 부추기는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설이는 기어이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어 할머니가 왕년에 가수였다고 내뱉고는 '아뿔싸!'하고 입을 막아보지만, 이미 일은 커져버렸다. '카수'가 꿈인 친구 가영이는 수시로 카수 할머니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고, 선생님은 학예회 때 할머니를 초대 가수로 모시겠다고 한다. 흥에 겨워 툭 튀어나가버린 거짓말에 커다란 마음의 짐을 지게 된 설이. 표지 그림 속 설이는 '거짓말쟁이'라는 단어로 가득 찬 커다란 보따리를 힘겹게 어깨에 메고 있다. 그 어린 나이에 거짓말은 눈밭에 구르는 눈덩이처럼 한없이 커져만 가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다. '카수 할머니'라는 거짓말을 지켜내기 위한 설이의 고군분투. 그리고 설이의 거짓말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재미난 이야기들.

 

'거짓말쟁이' 설이가 어떻게 될 것인가 흥미진진하게 읽느라, 잠깐 조카는 혼자 놀게 내버려 두었더랬다(조카님 미안!). 정신없이 책에 빠져 그렇게 읽다보니, 나 어린 날, 따뜻한 담요 덮고 누워 이야기 속 재미에 한없이 빠져들던 그때 생각도 아련하게 떠오르고, 그때 읽었던 동화책들도 무척 그리워지고.

작년에도 한 동화책을 만나 무척 행복해했고, '동화'는 '아이들 이야기'일지는 몰라도 '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었는데, 앞으로 동화책도 많이 읽어야지 다짐 했었는데, 그 마음도 떠오르고 말이다.

순수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읽고 읽다보면, 내 마음도 깨끗하게 정화될 것 같다.

그나저나, 설이 이름 참 예쁜 걸. '최설', '최이야기'. 이야기를 사랑하는 할머니, 그 사랑을 손녀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

할머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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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문학과지성 시인선 353
강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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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본 것들을 믿지 마시고 내가 그린 것은 더욱 믿지 마시오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만 겹의 얼굴 뒤에

  불온한 얼룩으로 묻은 시간의 고름일 뿐이오

  나를 믿느니 속옷에 묻은 당신의 부끄러운 땀 냄새나 오래 바라보시오

 

  내 얼굴이 문득, 꿈에 본 당신의 속마음으로 읽힌다면

  만 권의 책을 덮고 오래 켜둔 불빛을 잠그시오

  어둠 속에서 만개하는 그림들이 지평선을 바꾸는 순간,

  당신은 어디에도 없는 나의 유일한 그림자라오

 

  그렇지 않겠소?

  어찌해도 당신은 내게 속아 넘어갈 뿐,

  대체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용서하지 마시오 _ 「자멸의 사랑」 부분

 

어렵게 읽힌 시집 한 권을 막 덮고, 빼든 시집이었다. 그 밤은 유난히 시가 끌렸고, 이전에 읽어보지 않은 새로운 시인의 시를 읽어보고 싶었다. '첫 만남'이 주는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읽으면, 왠지 시집에, 시인에 더욱 애정이 샘솟을 것 같은, 조금쯤은 터무니없고 조금쯤은 그럴 듯한 이유로 연이어 시집 두 권을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권의 시집 모두 내게는 조금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시집이 내겐 어렵다. 내가 아직 시를 몰라도 한참한참 모르는 탓이겠지……)

 

그래서, 머리가 좀 딱딱해진 밤이었다.

 

시집 곳곳에는 그림이 함께 실려 있어 독특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림들은 예쁘다기보다는, 대부분이 나신이며, 시의 분위기와 얼마쯤 닮아 있는 그런 느낌의 그림들이었다. 여러모로 신선한 느낌을 전해준 시집임에는 틀림없다.

 

지난해부터 벼르던 시집을 드디어 만났다는 기쁨을 가슴에 품으며, 다음에 머리가 좀 덜 딱딱한 밤에 다시 만나봐야겠다. 그때 혹 새롭게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새로 리뷰를 작성한 그 시집처럼.

 

 

  낯설어진 몸 안으로 스며온 봄은

  전 생애를 통과해나간 기억보다 밝고 길어

  아무리 집을 옮겨 살아도

  내가 나를 만날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내가 처음 보는 풍경들은 언제나

  내가 처음 만든 풍경들일 터이나

  生時 전의 눅눅하게 물 찬 그림이

  걸레질 끝난 창밖에 액자처럼 떠오르는 광경을

  詩라고 부르려니

  식어빠진 내 육체의 화덕이 푸슬푸슬 비웃는 소리가

  봄밤의 질긴 불면보다 정겹게 허망하다

  누군가의 빈자리로 넘실대는 방 구석구석을 덧대어 잇는

  이 습관성 자기비하에

  이 작은 집이 만화처럼 들썩거리기만 한다면

  나는 또 웃을 수 있겠지만

  노을빛으로 산산이 쪼개지는 웃음은

  황혼 저편의 별자리처럼 욱신욱신

  내 몸에서 너무 멀다 _ 「이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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