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영화배우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 지음, 정지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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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섹시한 표정의 마릴린 먼로가 독자들을 한껏 유혹하고 있는 이 책, 표지부터 심상치 않았다. 책등에는 도도한 오드리 헵번의 사진이 귀여운 사이즈로 실려있다.(말이 '귀여운 사이즈'이지, 책등이 이렇게 사진을 실을 수 있을만큼 두껍다는 얘기!)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보는 순간, 늘 내가 "오드리~!"라고 불렀던 친구가 생각났다. 고등학교도 같이 다니고 대학도 2년 정도 같이 다녔던 친구인데, 외모가 오드리 헵번 판박이였다. 이 친구를 보자마자 "오드리다!"라고 외치곤 그 후 함께 학교를 다닌 내내 내게 그녀는 '오드리'였다. (못 본지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 것 같은데...보고싶어 오드리!!)

 

책등에 실린 오드리 헵번의 사진 때문에 나는 어떤 배우를 떠올리기 전에 친구와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책장을 넘겼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으응? 흑백사진. 게다가 내가 아는 배우는 하나도 없군. 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후루루 넘겨 보는데 그제서야 연도별로 분류되어 있음이 눈에 들어온다. 제일 첫 장에 실린 배우는 자그만치 1868년에 태어나 1946년에 사망한(우리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조지 알리스였다. 나는 평소에 영화를 많이 보지 않기에 영화배우에 관해서도 무지한 터라 앞부분에 실린 배우들은 거의 알 수가 없었다. 아, 그 옛날에는 이런 배우가 있었고, 이런 영화들이 있었구나, 하고 내가 모르는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배우 한 명당 한 페이지씩, 조금 더 비중있는 배우는 2~3페이지에 걸쳐 소개가 되어 있는데, 본명과 출생사망 시기, 스타성 등이 소개 되어 있고, 그들의 출연작들이 함께 실려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개글이 참 재미있었다. 짧은 글이지만 그들의 출연작에 관한 설명은 물론 배우가 된 계기가 실려있기도 하고 영화 외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기도 하다. 그리고 배우들이 남긴 말이 한 마디씩 따옴표에 담겨져 크게 표시되어 있는데, 가히 명언이라 할 만한 말들도 많았다. ("인생을 어렵게 만들지 말라. 그저 주어진 멜로디를 연주하라. 가능한 한 단순하게."-재키 글리슨, "예술가는 많은 것들을 시도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과감히 실패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존 카사베츠, 등과 같은 글귀이다.)

 

236페이지에 실린 비비안 리의 사진을 보니 또 고교 시절의 추억이 한 자락 떠오른다. 1학년 때였던가 시험에 중국의 유일한 여성 황제의 이름을 묻는 주관식 문제가 있었다. 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바로 이름을 묻는 문제.(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름 외루는 건 젬병이다.) 빈 칸 네 개가 주어졌지만 그때는 그 이름 '측천무후'가 죽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내가 빈 칸에 채워넣은 그 찬란한 이름, 바로 '비비안리'... 시험에서 빈칸은 절대 남기지 않는 스타일인지라 아무거나 적고 보자고 그렇게 적었던 것인데, 나는 그 일로 인해서 내 생애 처음으로 교무실로 불려가고 말았다. 황당한 표정의 선생님 앞에서 당황한 내가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 놓고 있는데,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근데 왜 하필 비비안 리냐? 비비안 리가 중국사람이냐?" ... "이씨잖아요. 비비안 '리'..." 어이 없어 하시던 선생님 표정이 떠오를 듯 하다.(죄송했어요!) 추억 속의 그녀를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아마 영화 마니아들이라면 나보다 훨씬 많은 추억 여행들을 할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한 권쯤 꼭 소장하고 싶어지는 책, 한 번씩 궁금해지는 배우들을 찾아볼 수 있는 책, 가히 영화배우 '백과사전'이라 할 만한 책을 만나서 참 좋다. 아,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501명의 배우들 중에 한국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일본이나 중국 배우들은 적지 않게 눈에 띄는데 그 속에서 한국 배우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언젠가는 우리나라 스타들도 이런 책에 이름 올릴 날이 왔으면 좋겠다.(지금도 충분히 그럴 만한 배우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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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바람이 되다 - 집시처럼 떠돈 289일, 8만 3000Km 아메리카 유랑기
김창엽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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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계절을 보내면서 많은 여행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나도 적지 않은 여행서를 접하고 있다.

허나 이 책 <길 위의 바람이 되다>는 '여행서'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뭔가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 마음 속 책꽂이에서도 여느 여행서들과는 다른 한 켠에 자리한 이 책은, 책 표지에도 쓰인 '유랑기'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책이다. 정처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닌 이야기. 이는 여행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전적인 의미만 봐도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인데, 이 책의 저자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닌 것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한 것이 아니라 '정처없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닌' 것이기 때문이다. 제목 그대로 길 위의 바람이 되어, 불고 싶은 방향으로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돌았다.

 

20년 가까이 신문기자 생활을 했던 저자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역마살을 어찌하지 못하고 '이국의 하늘 아래서 죽음을 맞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2006년 8월,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이미 2000년부터 6년을 미국에서 보낸 뒤였지만, 이번의 미국행은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소망했던 '떠돌이'가 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깨달음을 갖고 돌아오라'는 아내의 당부에 '그냥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는 걸로 만족해달라'며 떠난 길이었다. 이번 여행길에서 그와 함께 한 것은 그의 발이 되어주고 잠자리가 되어주고 보호막이 되어준 미니밴 한 대와 약간의 짐과 지도 한 장이 전부였다. 그가 챙겨간 것은 그 정도뿐이었지만, 실상 그와 함께한 것은 미국이란 대륙의 광활한 대자연이었다. 미국의 산과 들과 물과 바람과 바위가 그와 함께 했다.

 

2006년 늦여름 샌타바버라에서 출발한 저자의 '유랑'은 2007년 초여름 시애틀에서 막을 내렸다. 장장 289일 동안 거대한 미국 대륙의 이곳 저곳을 열심히 떠돌았다.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러 구경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저 열심히 내달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함께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감을 중시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일정을 하루 이틀 줄이는 데 있지 않다. 먼 여행길에서 옷깃을 스치듯 나눈 인연에 더 많은 여운이 있고 더 많은 얘기가 자리잡듯이, 가벼운 만남이 불러오는 끝없는 상상을 즐기고 싶은 게 내가 속도를 내는 이유다.' 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광들이 주는 무한한 상상. 바로 그 상상을 즐겼던 것이다. 또한 '차창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즐기고, 콘크리트 구조물이 가득한 도시보다는 자연에 훨씬 애착을 느끼는' 스타일은 나와도 잘 맞아 나는 저자와 함께하는 이번 미국 여행길이 별 다섯 개도 부족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자이언캐니언의 천지개벽을 연상케하는 아침 풍경, 수피리어 호수의 안온한 일출, 빠져도 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마이애미의 비췻빛 바다, 미시시피 강의 동서로 펼쳐진 대평원, 사람의 존재를 모래 한알과 같이 만들어버리는 콜로라도 고원...책 속의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글로 만나는 모습들이었지만 내 가슴에는 내내 가벼운 흥분이 일었다.

  

내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I ♡ NY'이라는 이미지로 대표되는 거대한 도시 뉴욕이었다. 미국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없어 떠오르는 것도 많지 않지만 그 외에 연상되는 것도 전부 고층빌딩 숲 사이로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대도시의 모습들 뿐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면서 아메리카 대륙이 품고 있는 대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바로 이것이 미국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던 '미국=I♡NY'이라는 이미지는 이제 장엄한 대자연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내가 미국을 방문할 일이 생긴다면, 이 책 속에 나와있는 것 같은 대자연의 이미지를 느끼러 가고 싶다. 그때가 되면 나도 저자처럼 열심히 달려야지. 그리고 그 짧은 만남이 주는 무한한 상상 속으로 빠져보고 싶다.

 

* 책 속 밑줄 긋기.

 

- 세상은 때때로 넋을 놓고 봐야 아름답다. (p.28)

- 산에서 내려다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런 세상을 한동안 보고 있노라면 이번에는 내가 달라진다. 한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면 세상도 세상일 터다. 그렇다면 변한 것은 애초부터 세상이 아니고 나였을 것이다. (p.107)

- 세상에 안 미친 사람이 어디 있나요.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미쳐서 살지요. (p.112)

- 고향, 내 것, 우리 것은 절실한 것이다. 마이너리티라면 특히 사무치게 그리운 대상이기도 하다. 집을 떠나와 밖으로만 나돌면서 문득문득 그런 것들이 떠오를 때면 뼛속이 다 시린 듯 절절한 심정이었으니까. (p.131)

- 나의 존재를 한없이 가볍게 한 것은 아마도 억겁의 땅이 가진 심원한 무게였을 것이다. ... 콜로라도 고원에서 사람의 존재는 바위 꼭대기에 앉아 있는 모래 한알쯤과 별로 다를 게 없다. 한순간 존재하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져서 이런저런 원소들로 낱낱이 분해돼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게 유기물의 한계이고 보면, 모래 한알만도 못한 게 인생사인지도 모른다. (p.284)

- 현실은 때때로 꿈의 천적이다. 단 한 번의 망치질로 꿈을 산산조각 내는 힘이 있다.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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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우산을 펼치다 - 세상으로의 외침, 젊은 부부의 나눔 여행기!
최안희 지음 / 에이지21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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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도. 이 나라가 내 마음 속에 깊이 각인 되었던 것은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만나면서였다. 그 책을 만나면서 '인도'라는 나라는 내가 살면서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고, 그래서 해마다 여행서를 볼 때마다 인도에 관한 책이 거의 빠지질 않는다. 꼭 가보고 싶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 인도, 이 나라가 올해는 <마음속 우산을 펼치다>라는 책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던 날 밤, 마침 창 밖에 빗소리가 들려왔다. 타탁타탁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도 저자와 함께 내 마음속의 우산을 펴들고 인도의 어느 거리로 발을 내딛었다. 마치 저자의 일기장을 들여다 보듯 진솔하고 꾸밈없는 이야기들에 마음이 금세 편안해지며,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고민들도 다 사라지고 그대로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이 책은 무척 따뜻했다. 저자 최안희 부부의 따뜻한 마음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꾸 사슴 밥을 사라며 귀찮게 구는 아이를 떨궈내기 위해 사진을 찍어주었다가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후에 인도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보며, 언젠가 내가 폴로라이드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가고 싶어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처럼 사진이 일상화 되지 않은 그 사람들에게는 사진 한 장도 정말 소중한 인생의 추억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 인도에서 사이클릭샤를 너무 저렴한 가격에 탄 게 마음에 걸려서 꼭 갚고 싶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다시 찾아간 인도에서 사이클릭샤를 탔는데, 예순도 넘어보이는 릭샤꾼이 안쓰러워보여서 남편이 대신 자전거를 끌고 릭샤꾼을 뒤에 태우고 달렸다는 이야기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릭샤 삯도 충분히 드리고 사진까지 찍어 건네드리고는 그제서야 몇 년 전의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부부. 이렇게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전해주는 인도 이야기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내 마음에 인도를 품은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가보질 못했다. 아마 아키오가 이런 나를 본다면 "아직도?"라고 놀라며 말하겠지... 저자가 인도 전통 악기 타블라를 배우려고 마음 먹었다가 계속 미루기만 했는데, 몇 달 뒤에 타블라를 멋지게 연주하는 아키오를 보며 타블라를 사기로 마음 먹고 아키오에게 이렇게 말했다. "델리에 가면 타블라 살까 고민 중이에요." 그때 아키오의 반응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직도?" 이 짧은 대화가 내 마음 속에 찌릿한 전류를 흘려주었다. '아직도!' 나는 정말 '아직도' 고민만 하고 행동에 못 옮기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10년 전부터 꿈꾸어 왔던 인도 여행을 포함해서 말이다. 아키오와 나와의 대화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 피아노를 배울까 생각중이에요." "아직도?"(이 일 역시 10년 넘게 '아직도'이다..) "나 수영 배울까하는데.." "아직도?"(이것도 재작년부터 '아직도'...) 이제는 '아직도'를 버리고 그 동안 꿈꾸어 왔던 일들을 '드디어!' 행동에 옮기도록 해봐야겠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인도 여행, 가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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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입맞춤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9
에펠리 하우오파 지음, 서남희 옮김 / 들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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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입맞춤을'이라니! 내용을 짐작키 어려운 기상천외한 제목, 거기다 표지에 떡하니 드러내고 있는 엉덩이들. 그 엉덩이 뒤로 보이는 배경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보았던 한 엽서 속의 밀림을 떠오르게도 한다. 그리고 엉덩이에 딱 달라 붙어 있는 파리 한 마리! 사람 몸을 숙주로 삼아 알을 낳는다는 무시무시한 파리 이야기가 생각나 순간 오싹해진다.

 

사람의 시선을 확 끄는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들쳐본 책 날개에서 저자의 소개를 보고는 바로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피지의 작가이자 인류학 교수' '파푸아 뉴기니에서 태어났다' '파푸아 뉴기니, 통가, 피지, 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레일리아에 잠깐 머물 때 주변국 여행을 꿈꾸며 많이 봤던 나라 이름들. 물론 그 꿈은 이루지 못했고, 그래서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이루지 못한 꿈이자,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꿈으로 남아있는 나라들. 그 나라들의 이름이 나를 한껏 유혹했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피지 문학!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만나본 피지 작가의 소설이다.  한때 신혼여행지로 엄청난 각광을 받았던,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아름다운 섬나라. 이 정도가 내가 피지라는 나라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거의 전부이다. 내가 보는 외국 문학 작품이라고 해봐야 일본, 중국, 미국, 프랑스 등 나라의 작품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가끔씩 낯선 나라의 문학을 만날 때면 참 설레곤 한다. 이번에 만나볼 피지 문학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무척 기대되었다.

 

이 책은 과거 헤비급 챔피언이자 현재 여당 예비상원의원인 오일레이 봄베키의 '똥구멍'에 관한 이야기다. 좀 더 정확히는 '똥구멍 통증'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날 갑자기 '그곳'에서 시작된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인데, 어떻게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다가, 뒤에 실린 작가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엄청난 이야기가 바로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 작가가 실제로 항문통증으로 고생을 하고는 그때의 상황을 현실감 있게 살려놓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그 끔찍한 고통과 다소 허무맹랑해 보이는 그 치료법들이(설마 전부는 아니겠지) 저자가 경험한 것이었다니. 일단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그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가에게 찬사를 전하고 싶다.

 

저자는 그 은밀한 곳의 통증 치료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면서, 동시에 인류학자로서의 모습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일레이의 엉덩이 치료에 큰 실수를 하고 나서 세루 드라우니카우가 들려주는 툭툭들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인체를 터전으로 하여 산다는 인간 비슷하게 생긴 툭툭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툭툭이라는 재미있는 존재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거기에서 드러나는 계급 제도나 '인종 차별', 잔인하고 사악한 지도자의 독립 세력에 대한 지배 야욕, 억압받는 자들의 반란 등은 인류의 모습을 반영하면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소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런 요소들이 이 소설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소설이 끝난 후 실려있는 저자와의 인터뷰 내용도 무척 좋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그곳의 문화적인 배경들을 저자 인터뷰 내용을 통해 이해해볼 수 있었고,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이 소설을 읽어본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더욱 깊이 있게 이 소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소설을 통해서 거침없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재미와 인류학적 지식, 그리고 내가 이 소설을 읽게 된 커다란 계기인 '그 곳' 문화에 대한 이해, 이 세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었다. 내 생애 첫 피지 소설은 나의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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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 - 와세다 대학 탐험부 특명 프로젝트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강병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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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괴물 소식이 간간히 인터넷에 올라오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천지에서 괴물이 찍힌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드넓은 수면 위의 조그마한 점 정도로만 보이는 게 대다수이고, 조금 자세히 찍혔다 싶은 사진은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거짓으로 판명되고. 천지 괴물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속시원히 알 수가 없다. 20년 전에 콩고공화국의 텔레호로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으러 떠났던 와세다 대학 탐험부가 다시 뭉친다면 천지 괴물의 정체를 밝혀줄 수 있지도 않을까?

 

모켈레 무벰베(mokele mbembe), 콩고공화국의 밀림지역에 살고 있다는 수수께끼의 생명체이다. 이 책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를 만나기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 일대에서는 천지 괴물보다 더 유명하고, 신비한 생명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끊임없이 받아온 존재인 것 같다. 그 신비의 생명체를 찾아 와세다 대학 탐험부가 콩고 공화국으로 떠났다. 이 책의 저자 다카노 히데유키를 리더로, 9명의 부원과 별난 사회인 두 사람이 패기로 똘똘뭉친 이 탐험대의 무벰베를 찾기위한 악전고투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하다.(그들은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들기도 하고, 무척이나 힘들었겠지만, 편안히 앉아 글자로 그들의 모험을 읽자니 정말 재미있었다!)

 

고지마와 대학 탐험대가 아프리카 오지로 괴물을 찾으러 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카노 히데유키와 무벰베의 인연이 시작된다. 고지마와 대학 탐험대의 콩고 원정대 부대장을 만나 그들의 탐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어릴 때부터 꿈꿔온 괴물 탐험이라고. 탐험부 토의 시간에 콩고 괴물 탐험을 제시하고, 결코 쉽지 않은 준비 과정을 거쳐 이들은 정말 콩고의 괴물을 찾기위해 떠난다.(당시 언론에서도 '대서특필'까지는 아니었는지 모르겠으나 어느정도는 주목을 받은 듯 하다.) 이 준비 과정에서 '아, 이 사람 다카노 히데유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콩고 정부를 설득하고 콩고의 권위적인 생물학자 아냐냐 박사와 연락하는 등은 그냥 얼렁설렁 떠나는 탐험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고, 또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콩고인을 찾아 현지어를 배우는 것을 보면서 그 열정에 감탄을. 그런 추진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탐험대가 콩고로 출발할 수 있었고, 또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텔레호에 도착한 탐험대원들은 33일, 784시간의 완전 감시 체제에 돌입한다. 20년 전에 있었던 그들의 무벰베 탐험을 지켜보는 내 마음에도 가벼운 흥분과 긴장감이 일었다. 호수 위에 어렴풋이 보이는 저 까만 물체는 무엇일까? 정말 무벰베를 만나는 구나! 아, 고열에 시달리는 이 대원은 무사히 귀국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마치 그들과 함께 탐험을 하고 있는 듯 정말 생생하고 긴장감이 있었다. 정말 저자의 글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사실 이 책은 저자가 탐험을 다녀와서 그냥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기분으로 적은 책이라고 한다. 글 쓰는 사람이 정식으로 쓴 글이 아닌가 보았다. 그런데도 이정도라니!) 다카노 히데유키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아직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꼭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다. 20년 전 그 젊은이들의 패기와 열정, 그리고 숱한 고생으로 탄생한 이 책을 만나보 수 있어 정말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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