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엉덩이에 입맞춤을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9
에펠리 하우오파 지음, 서남희 옮김 / 들녘 / 2008년 7월
평점 :
'엉덩이에 입맞춤을'이라니! 내용을 짐작키 어려운 기상천외한 제목, 거기다 표지에 떡하니 드러내고 있는 엉덩이들. 그 엉덩이 뒤로 보이는 배경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보았던 한 엽서 속의 밀림을 떠오르게도 한다. 그리고 엉덩이에 딱 달라 붙어 있는 파리 한 마리! 사람 몸을 숙주로 삼아 알을 낳는다는 무시무시한 파리 이야기가 생각나 순간 오싹해진다.
사람의 시선을 확 끄는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들쳐본 책 날개에서 저자의 소개를 보고는 바로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피지의 작가이자 인류학 교수' '파푸아 뉴기니에서 태어났다' '파푸아 뉴기니, 통가, 피지, 오스트레일리아'...오스트레일리아에 잠깐 머물 때 주변국 여행을 꿈꾸며 많이 봤던 나라 이름들. 물론 그 꿈은 이루지 못했고, 그래서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이루지 못한 꿈이자,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꿈으로 남아있는 나라들. 그 나라들의 이름이 나를 한껏 유혹했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피지 문학!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만나본 피지 작가의 소설이다. 한때 신혼여행지로 엄청난 각광을 받았던,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아름다운 섬나라. 이 정도가 내가 피지라는 나라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거의 전부이다. 내가 보는 외국 문학 작품이라고 해봐야 일본, 중국, 미국, 프랑스 등 나라의 작품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가끔씩 낯선 나라의 문학을 만날 때면 참 설레곤 한다. 이번에 만나볼 피지 문학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무척 기대되었다.
이 책은 과거 헤비급 챔피언이자 현재 여당 예비상원의원인 오일레이 봄베키의 '똥구멍'에 관한 이야기다. 좀 더 정확히는 '똥구멍 통증'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날 갑자기 '그곳'에서 시작된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인데, 어떻게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다가, 뒤에 실린 작가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엄청난 이야기가 바로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 작가가 실제로 항문통증으로 고생을 하고는 그때의 상황을 현실감 있게 살려놓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그 끔찍한 고통과 다소 허무맹랑해 보이는 그 치료법들이(설마 전부는 아니겠지) 저자가 경험한 것이었다니. 일단 그런 고통을 이겨내고 그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가에게 찬사를 전하고 싶다.
저자는 그 은밀한 곳의 통증 치료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면서, 동시에 인류학자로서의 모습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오일레이의 엉덩이 치료에 큰 실수를 하고 나서 세루 드라우니카우가 들려주는 툭툭들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인체를 터전으로 하여 산다는 인간 비슷하게 생긴 툭툭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툭툭이라는 재미있는 존재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거기에서 드러나는 계급 제도나 '인종 차별', 잔인하고 사악한 지도자의 독립 세력에 대한 지배 야욕, 억압받는 자들의 반란 등은 인류의 모습을 반영하면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소설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런 요소들이 이 소설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소설이 끝난 후 실려있는 저자와의 인터뷰 내용도 무척 좋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그곳의 문화적인 배경들을 저자 인터뷰 내용을 통해 이해해볼 수 있었고,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이 소설을 읽어본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더욱 깊이 있게 이 소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소설을 통해서 거침없이 풀어내는 이야기의 재미와 인류학적 지식, 그리고 내가 이 소설을 읽게 된 커다란 계기인 '그 곳' 문화에 대한 이해, 이 세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었다. 내 생애 첫 피지 소설은 나의 기대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