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행군 - 대성당의 비밀/정복자의 군대/아른의 복수
장 클로드 갈, 장 피에르 디오네 외 글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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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만화책'이라고만 알았다.

'문학동네에서 최초로 펴낸 만화책'

그런데 이 책의 첫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이 책은 내게 만화책 그 이상의 예술적인 감동을 안겨주었다.

(만화도 예술도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책에 실린 작가 소개에, '아른의 복수'는 13년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씌여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떤 만화길래 13년이나 걸려서 그렸단 말인가 의아했었다. 그 의아함이 바로 풀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만화라면 나에게 평생을 주고 따라그리라고 해도 못할 거다. 아니, 대성당의 그림 한 장만이라도.

 

장 클로드 갈,이라는 인물이 무척 궁금해져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지만 정보가 별로 없었다.

이 책에 실린 작가 소개를 그대로 옮겨보겠다.

 

장 클로드 갈 Jean-Claude Gal

1942년 프랑스 디뉴 지방에서 태어난 장 클로드 갈은 1972년 파리 근교의 중학교에서 데생을 가르치다 만화계에 데뷔했다. 1977년 시나리오 작가 장 피에르 디오네와 함께 <정복자의 군대>를 펴냈으며, 1980년에 시작한 영웅 판타지 <아른의 복수>는 13년에 걸친 장고의 작업 끝에 완성되었다. 그는 극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묘사 때문에 생전에 모두 다섯 권의 만화 작품집밖에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집들은 프랑스의 모든 만화 도서관에 애장 도서로 소장되어 있다. 만화의 선진국이라 할 프랑스 국민에게 자긍심이었던 갈은 1994년 휴가를 보내던 스코틀랜드에서 뇌출혈로 쉰두 해의 생을 마감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한 컷 한 컷 '극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묘사'는 정말 보는 이를 감탄 감탄 또 감탄하게 만든다.

평소에 만화를 거의 보지 않지만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만화책이라 하여 관심이 가서 보게되었는데,

내 생에 이런 만화책 만날 수 있었음은, 정말 크나큰 행운이다!

 

<죽음의 행군>에는 '대성당의 비밀', '정복자의 군대', '아른의 복수' 세 편의 만화가 실려있다.

'전쟁 대서사시'라고 소개되어진 것처럼 '전쟁'에 관한 스토리지만, 그 저변에는 '오만'과 '복수'라는 키워드가 깔려있다.

이는 세 편의 만화를 감상하고 난 뒤, 마지막 부분에 실려있는 김정란 시인의 해설을 통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림을 감상하느라 글이 주는 메시지를 미처 포착하지 못했거나, (부끄럽지만) 나처럼 읽고도 잘 모르는 독자들은,

김정란 시인의 해설을 통해 세 편의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해설이 딸린 만화책 또한 처음이다.)

 

살면서 한번쯤은 꼭 만나봐야할 책이다.

2009년에는 출발부터 연이어 좋은 책,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책들만 만나져서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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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정끝별 해설, 권신아 그림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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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는 읽은 모든 책의 서평을 남기기로 했다. 

2009년에 읽은 첫 책은 바로<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이다.)

 

작년에 사서는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었던 이 책을, 올해의 첫 책으로 빼어들었다.

(사실 새해 들어 읽기 시작한 책이 이미 여러권이니, '제일 먼저 끝을 본 책'이라 함이 더 정확하겠다.)

2008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책도 두 권의 시집-정호승의 <포옹>, 신경림의 <낙타>-이었다.

평소에 시를 잘 읽지 않지만, 요즘은 왠지 시가 끌린다.

그러고보니, 가끔 마음이 헛헛할 때, 내가 찾는 것이 책장에 몇 권 안 꽂혀있는 시집이었다.

시를 잘 모르면서도, 그 짧은 글 속에서 내 시린 마음에 위로를 얻었던가 보다.

새해 첫 책으로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또 어떤 위로를 받았는가...

 

이 책은 작년에 발간되었을 때부터 무척 관심을 가지고 있던 책이다.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은 누구이며 그들의 '애송시 100편'은 무엇일까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그때 막 눈에 익기 시작한 정끝별 시인과 이미 몇 권의 시집을 사서 읽었던 문태준 시인의 해설이 함께 들어있다 하여 더욱 기대가 되었다.

내가 만나본 1권은 정끝별 시인의 해설과 함께였다.

얼마 전에 정끝별 시인의 시집 <와락>을 무척 따뜻하게 읽은 까닭에, 시와 함께 실린 정끝별 시인의 글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정끝별 시인의 아름다운 해설과 권신아 님의 눈에,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그림과 함께 50편의 시를 만나보았다.

50편의 시 중에서 내가 아는 시는 20편이 채 안되었다.

'애송시'라는 단어 때문에, 시를 잘 모르는 나도 "아~ 이 시!"할 만한 시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시인들의 애송시여서인지, 아니면 내가 시를 너무 몰라서인지 (물론 후자이겠지만),

낯선 시들이 많아서 조금은 서먹하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좋은 시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어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는 시가 나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모르는 시가 나오면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으로.

 

시와 함께 실린 정끝별 시인의 해설은, 시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시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녀의 시집에서 받은 느낌 만큼이나 참 아름답고 따뜻하고 재밌는 해설들을 만나보았다.

평소에 그림 있는 시집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는데, 시 옆에 실린 그림을 통해서 시의 이미지를 더 잘 떠올려볼 수 있었다. (특히 61쪽에 실린 시 '잘익은 사과'는 그림을 통해 시에서 말하는 이미지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겐 신선한 경험이었다.) 시를 잘 보여주는 그림 한 편 한 편을 감상하는 맛도 아주 훌륭하다.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해준 애송시 100편 중, 나머지 50편도 얼른 만나봐야겠다.

문태준 시인의 해설은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 황인숙 '칼로 사과를 먹다' 중에서.

 

철길이 철길인 것은

길고 긴 먼 날 후 어드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아직 내팽개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길이 이토록 머나먼 것은

그 이전의, 떠남이

그토록 절실했다는 뜻이다.

만남은 길보다 먼저 준비되고 있었다.

아직 떠나지 못한 내 발목에까지 다가와

 

             - 김정환 '철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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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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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남동생이 읽고 싶다하여 샀던 <하악하악>을 나는 해가 바뀌고서야 읽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여름, 학교 도서관에 가서 이외수 작가님 책들만 대출 제한 권수에 꽉 차도록 빌려 안고 와 밤을 새며 읽었던 날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때나,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이나, 이외수 작가님의 책들은 긴글, 짧은 글 모두 내 가슴에 풍족한 양식을 제공해준다.

 

인터넷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작가 이외수,의 모습이 잘 드러난 책이었다.

인터넷 용어와 친하지 않은 나는 아직 써보지 않은 말들, '즐!' '캐안습' '옵하' '쩐다' 같은 단어들을 만나며 유쾌한 웃음이 터진다. 이외수 작가의 힘이다. 다른 책에서 만났더라면 '뭥미?'했을지도 모르겠다. '흠좀무'라는 도무지 감도 안 잡히는 단어를 만나 무릎을 꿇기도.(서평을 쓰다 문든 궁금해져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은 알지 않을까 해서 물어보니 남동생도 모른단다. 모르는 건 네이버씨에게 물어봐야지. 검색했더니,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서운걸요' 정도의 어감이라고 나온다. 이외수 작가님은 '아름다운 언어의 달인' 뿐만 아니라 '인터넷 용어의 달인'까지? 그의 인터넷 이력이 문득 궁금해진다.)

 

길어야 열 줄이 넘지 않는, 대부분 네다섯 줄 정도의 짧은 글들이지만, 이 책을 읽는 데 드는 시간은 그리 짧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생각할 게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사람을 행복하게, 또 고민스럽게도 하는 질문 하나가 나를 맞이했다.

"자기가 마음대로 돈을 그려서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대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아, 이 질문에 대답을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접착메모지에 나의 대답을 적어 붙여두었다.

"해는 왜 아침마다 빙그레 웃으면서 떠오르는 것일까." "꽃병을 없애주세요. 애완용 강아지나 고양이가 예쁘다고 머리를 절단해서 실내를 장식하지는 않잖아요." "변명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느려지고 반성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빨라진다." "인생의 정답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정답을 실천하면서 살기가 어려울 뿐." 등등, 때로는 작가님이 던지는 질문에, 때로는 나의 의견을 말해보고 싶은 글에, 때로는 곰곰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에, 나는 계속해서 접착메모지를 붙이고 나의 생각을 적었다.

글은 짧지만, 읽은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생각에 잠기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요즘 나는 무언갈 생각하는 시간이 무척 많이 줄었다.

작년에 나의 관상을 봐주신 분이(인터넷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공짜로 관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손금에 감정선(?)이 두 줄이라 감성이 매우 풍부하고,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했었다. 실제로 '공상' '상상' '쓸데없는 생각하기' 등등은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유난히 '생각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읽고 읽고 또 읽고, 여가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활자들을 읽어내리기 바빠서 내 머리가 다른 일을 할 틈이 없었던 거다. 생각을 하지 않는 독서는 반쪽짜리 독서도 안 됨을 깊이 깨달았다.(책을 읽고 머리에, 마음에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은 여간 슬픈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많이 읽기보다는 '생각하는 읽기'를 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연초부터 잘 만났다, 이 책. 깊은 밤, 나의 생각을 적을 접착메모지와 좋은 글에 밑줄을 그을 형광펜을 들고 정신없이 빠져들며 읽고, 생각한 책이다.

 

'언어의 연금술사' 이외수 작가님의 책은, 이렇게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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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귀울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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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상깊은 구절

비판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눈살을 찌푸리지 마라. 업신여기지 마라. 비판은 심신을 긴장시키고, 경멸은 감정을 마모시킨다. 이 맹속력으로 질주하는 대도시에서 거덜 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아주 약간 핥는다든지 깨문다든지 쓰다듬어 봐야 한다. 호기심을 잃은 순간부터 사람은 조금씩 죽어간다. 눈앞의 현실을 자신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판단한 순간부터, 받아들인 현실은 체를 치듯 숭숭 빠져나간다.









온다 리쿠, 유명한 작가인데 아직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작품을 가장 많이 들어봤지만, 어쩌다 이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책 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다가, 한 책 제목에서 그만 눈길이 멈췄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아, 그 제목을 어찌 잊으리오!

그 책이라면 작넌에 2주 가량 나를 힘들게 했던,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겨우 읽어나갔던 책이 아닌가!

어찌나 힘들게 읽었던지 그만 저자 이름 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이 책이 온다 리쿠와의 첫 만남이 아니었다. 구면인데, 하필이면 그게 별로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긴...

그래서 이 책의 첫장을 펼치기도 전에 나는 슬그머니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웬일로 책 소개 조차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읽단 책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별로 좋은 습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평소에는 책 소개를 꼼꼼히 읽어보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단편 쯤에 이르렀을 때에야, '으응....?' 머리에 물음표를 가득 달고 책을 뒤집어 뒷 표지에 실린 글을 한 번 읽어보았는데,

아 그렇구나, '주옥같은 단편 11편'...

단편소설집인줄 모르고 장편처럼 읽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연결이 제대로 안 됐겠지만,

<호텔 정원에서...>의 느낌이 떠올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고 있었던 것...

단편집이란 걸 알고, 앞의 글을 다시 후루룩 읽어보니 그제야 마침표가 하나 찍힌다.

 

이 책에는 온다 리쿠의 추리 단편 11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코끼리와 귀울음'은 4번 수록작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우연히 들은 '한 마디'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등이 단서가 되어 사건을 추리한다는 전개이다.

바닷가에서 한 아이가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라고 말을 하거나,

기차역 대합실에서 한 남자가 '7시 3분에 마중 나와라'라고 말한다.

바다에 있는 것이 인어가 아닌 거나, 7시 3분에 마중 나오라는 것이 어떻게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거지?

그 추리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조금은 억지로 상황을 거기에 맞게 엮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도 없잖아 있지만,

평소에 추리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은 나로써는 그런 추리가 무척이나 신기하고 대단해 보이는 게 사실!

 

나는 첫 번째로 수록된 '요변천목의 밤'이 주는 느낌이 가장 좋았는데,

소설 속 다완이 실제로 등장한다니,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보고 싶다. 밤 하늘에 가득한 별이 들여다 보이는 다완...

아무튼, 이 책을 읽고나니 <호텔 정원에서...>로 얻은 이미지는 이제 그만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매력적인 인물 세키네 다카오의 공이 크다!

그리고 앞으로 세키네 씨 세 자녀의 추리 공방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 한 가득!



온다 리쿠, 유명한 작가인데 아직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작품을 가장 많이 들어봤지만, 어쩌다 이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책 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다가, 한 책 제목에서 그만 눈길이 멈췄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아, 그 제목을 어찌 잊으리오!

그 책이라면 작넌에 2주 가량 나를 힘들게 했던,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겨우 읽어나갔던 책이 아닌가!

어찌나 힘들게 읽었던지 그만 저자 이름 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이 책이 온다 리쿠와의 첫 만남이 아니었다. 구면인데, 하필이면 그게 별로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긴...

그래서 이 책의 첫장을 펼치기도 전에 나는 슬그머니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웬일로 책 소개 조차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읽단 책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별로 좋은 습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평소에는 책 소개를 꼼꼼히 읽어보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단편 쯤에 이르렀을 때에야, '으응....?' 머리에 물음표를 가득 달고 책을 뒤집어 뒷 표지에 실린 글을 한 번 읽어보았는데,

아 그렇구나, '주옥같은 단편 11편'...

단편소설집인줄 모르고 장편처럼 읽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연결이 제대로 안 됐겠지만,

<호텔 정원에서...>의 느낌이 떠올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고 있었던 것...

단편집이란 걸 알고, 앞의 글을 다시 후루룩 읽어보니 그제야 마침표가 하나 찍힌다.

 

이 책에는 온다 리쿠의 추리 단편 11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코끼리와 귀울음'은 4번 수록작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우연히 들은 '한 마디'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등이 단서가 되어 사건을 추리한다는 전개이다.

바닷가에서 한 아이가 '바다에 있는 것은 인어가 아니다'라고 말을 하거나,

기차역 대합실에서 한 남자가 '7시 3분에 마중 나와라'라고 말한다.

바다에 있는 것이 인어가 아닌 거나, 7시 3분에 마중 나오라는 것이 어떻게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거지?

그 추리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물론 조금은 억지로 상황을 거기에 맞게 엮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감도 없잖아 있지만,

평소에 추리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은 나로써는 그런 추리가 무척이나 신기하고 대단해 보이는 게 사실!

 

나는 첫 번째로 수록된 '요변천목의 밤'이 주는 느낌이 가장 좋았는데,

소설 속 다완이 실제로 등장한다니,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보고 싶다. 밤 하늘에 가득한 별이 들여다 보이는 다완...

아무튼, 이 책을 읽고나니 <호텔 정원에서...>로 얻은 이미지는 이제 그만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매력적인 인물 세키네 다카오의 공이 크다!

그리고 앞으로 세키네 씨 세 자녀의 추리 공방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 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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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없는 사람들
하산 알리 톱타시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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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이발사에게 비둘기 그림을 손수 그렸냐고 물었다.
"예, 벌써 말씀드렸을 텐데요."
이발사가 대답했다.
"기억이 안 나는데요. 제가 까먹었나 봅니다."
"틀림없이 또 잊고 다음에 다시 물으시겠지요."
"우리네 삶이라는 게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이발사가 내 옆에 앉더니 예의 사형집행인 눈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반복의 반복으로 이루어지지요."









한 마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내 영혼이 줄어든다!"고 외친 즌글 누리가 제일 먼저 사라졌고,

그 마을의 아리따운 처녀 귀베르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젠네트의 아들이 귀베르진 납치의 용의자가 되어 '고문'에 가까운 추궁을 받지만,

결국 젠네트의 아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실종'되고 만다.

일련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큰 도시들에 이 일을 알리러 떠난 읍장도 감감무소식이다.

 

이렇게 사라지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이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포스트 오르한 파묵! 터키의 카프카! 이런 수식어들에 혹해서 읽은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어내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이발사(준글 누리)가 사라진 건지, 사라지지 않은 건지, 돌아온 건지, 언제 돌아온 건지

이 책이 끝날 때까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 즈음에 가서는 더 헷갈려 버렸다.)

즌글 누리는 아내에게 자기의 영혼이 줄어든다고 외치고 사라진 인물이다.

하지만 즌글 누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이 마을에는 여전히 즌글 누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새로온 이발사가 어쩌면 즌글 누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즌글 누리는 애초에 사라지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작중에서 1인칭으로 나오는 '나'가 또 그 모든 인물인 것도 같고, 혼란의 도가니다.

장면도 이발소였다가 읍장 집이었다가, 오늘 아침이었다가 읍장의 과거였다가, 이리저리 수도 없이 전환되어

안 그래도 이해력 둔한 내가 따라가기에는 조금 벅찬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을 찾는 과정을 따라다니다 보니,

문득,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잃어버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가 내 주변의 누가 되었든, 혹은 나 자신이 되었든.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영혼을 상실한 기분이랄까.(즌글 누리의 표현을 빌려, '영혼이 줄어드는' 기분?)

나는 늘 마을에 있지만, 사람들은 나의 존재를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제각각이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아닌 '그림자만 남긴' 사람이 되어버린 듯.

또한 사실 그 사람은 늘 내 옆에 있었지만 나는 그의 존재를 망각하고 만다.

내 앞의 그 사람에게 태연하게 이전에 내가 알던 그 사람 이야기를 한다.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사실은 눈 앞의 그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러고는 이런 질문이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 "글쎄요, 제가 누구일까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굉장히 헛헛하다.

이 책 속에 그만 나의 그림자를 두고 나와버렸다.

아니, 어쩌면 내가 늘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지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지도.

한 번 쯤은 읽어보면 좋을 소설이다.


한 마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내 영혼이 줄어든다!"고 외친 즌글 누리가 제일 먼저 사라졌고,

그 마을의 아리따운 처녀 귀베르진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젠네트의 아들이 귀베르진 납치의 용의자가 되어 '고문'에 가까운 추궁을 받지만,

결국 젠네트의 아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실종'되고 만다.

일련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큰 도시들에 이 일을 알리러 떠난 읍장도 감감무소식이다.

 

이렇게 사라지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이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백하자면, 포스트 오르한 파묵! 터키의 카프카! 이런 수식어들에 혹해서 읽은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어내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이발사(준글 누리)가 사라진 건지, 사라지지 않은 건지, 돌아온 건지, 언제 돌아온 건지

이 책이 끝날 때까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 즈음에 가서는 더 헷갈려 버렸다.)

즌글 누리는 아내에게 자기의 영혼이 줄어든다고 외치고 사라진 인물이다.

하지만 즌글 누리가 사라지고 나서도 이 마을에는 여전히 즌글 누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새로온 이발사가 어쩌면 즌글 누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즌글 누리는 애초에 사라지지 않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작중에서 1인칭으로 나오는 '나'가 또 그 모든 인물인 것도 같고, 혼란의 도가니다.

장면도 이발소였다가 읍장 집이었다가, 오늘 아침이었다가 읍장의 과거였다가, 이리저리 수도 없이 전환되어

안 그래도 이해력 둔한 내가 따라가기에는 조금 벅찬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을 찾는 과정을 따라다니다 보니,

문득,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잃어버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존재가 내 주변의 누가 되었든, 혹은 나 자신이 되었든.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영혼을 상실한 기분이랄까.(즌글 누리의 표현을 빌려, '영혼이 줄어드는' 기분?)

나는 늘 마을에 있지만, 사람들은 나의 존재를 그만 잊어버리고 만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제각각이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아닌 '그림자만 남긴' 사람이 되어버린 듯.

또한 사실 그 사람은 늘 내 옆에 있었지만 나는 그의 존재를 망각하고 만다.

내 앞의 그 사람에게 태연하게 이전에 내가 알던 그 사람 이야기를 한다.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사실은 눈 앞의 그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러고는 이런 질문이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그런데 당신은 누구시죠?" "글쎄요, 제가 누구일까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굉장히 헛헛하다.

이 책 속에 그만 나의 그림자를 두고 나와버렸다.

아니, 어쩌면 내가 늘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지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지도.

한 번 쯤은 읽어보면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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