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에 남동생이 읽고 싶다하여 샀던 <하악하악>을 나는 해가 바뀌고서야 읽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여름, 학교 도서관에 가서 이외수 작가님 책들만 대출 제한 권수에 꽉 차도록 빌려 안고 와 밤을 새며 읽었던 날들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때나,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이나, 이외수 작가님의 책들은 긴글, 짧은 글 모두 내 가슴에 풍족한 양식을 제공해준다.

 

인터넷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작가 이외수,의 모습이 잘 드러난 책이었다.

인터넷 용어와 친하지 않은 나는 아직 써보지 않은 말들, '즐!' '캐안습' '옵하' '쩐다' 같은 단어들을 만나며 유쾌한 웃음이 터진다. 이외수 작가의 힘이다. 다른 책에서 만났더라면 '뭥미?'했을지도 모르겠다. '흠좀무'라는 도무지 감도 안 잡히는 단어를 만나 무릎을 꿇기도.(서평을 쓰다 문든 궁금해져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은 알지 않을까 해서 물어보니 남동생도 모른단다. 모르는 건 네이버씨에게 물어봐야지. 검색했더니, '흠, 그게 사실이라면 좀 무서운걸요' 정도의 어감이라고 나온다. 이외수 작가님은 '아름다운 언어의 달인' 뿐만 아니라 '인터넷 용어의 달인'까지? 그의 인터넷 이력이 문득 궁금해진다.)

 

길어야 열 줄이 넘지 않는, 대부분 네다섯 줄 정도의 짧은 글들이지만, 이 책을 읽는 데 드는 시간은 그리 짧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생각할 게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표지를 넘기자마자 사람을 행복하게, 또 고민스럽게도 하는 질문 하나가 나를 맞이했다.

"자기가 마음대로 돈을 그려서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대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아, 이 질문에 대답을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접착메모지에 나의 대답을 적어 붙여두었다.

"해는 왜 아침마다 빙그레 웃으면서 떠오르는 것일까." "꽃병을 없애주세요. 애완용 강아지나 고양이가 예쁘다고 머리를 절단해서 실내를 장식하지는 않잖아요." "변명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느려지고 반성을 많이 할수록 발전은 빨라진다." "인생의 정답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정답을 실천하면서 살기가 어려울 뿐." 등등, 때로는 작가님이 던지는 질문에, 때로는 나의 의견을 말해보고 싶은 글에, 때로는 곰곰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에, 나는 계속해서 접착메모지를 붙이고 나의 생각을 적었다.

글은 짧지만, 읽은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생각에 잠기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요즘 나는 무언갈 생각하는 시간이 무척 많이 줄었다.

작년에 나의 관상을 봐주신 분이(인터넷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공짜로 관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손금에 감정선(?)이 두 줄이라 감성이 매우 풍부하고,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했었다. 실제로 '공상' '상상' '쓸데없는 생각하기' 등등은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유난히 '생각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읽고 읽고 또 읽고, 여가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활자들을 읽어내리기 바빠서 내 머리가 다른 일을 할 틈이 없었던 거다. 생각을 하지 않는 독서는 반쪽짜리 독서도 안 됨을 깊이 깨달았다.(책을 읽고 머리에, 마음에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은 여간 슬픈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많이 읽기보다는 '생각하는 읽기'를 하리라 마음 먹었는데, 연초부터 잘 만났다, 이 책. 깊은 밤, 나의 생각을 적을 접착메모지와 좋은 글에 밑줄을 그을 형광펜을 들고 정신없이 빠져들며 읽고, 생각한 책이다.

 

'언어의 연금술사' 이외수 작가님의 책은, 이렇게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