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다이아나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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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작문도 좋아하던 나름(?) 문학 소녀였었다. 늘 똑같은 밋밋한 일상이 지겨워 일기 대신 시를 대신 써서 제출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편지 쓰는 일을 즐겼으며, 어른도 이해하기 힘든 세계 문학을 탐독하기도 했었다. 빨강 머리 앤처럼 공상도 즐겼고,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입시에 치여 하루 중 반 이상을 학교에서 살아가고, 점점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사고 방식이 나를 잠식해 소녀 시절의 풋풋한 감성은 그렇게 점점 잊혀져 가고 말았다. 그런데 디아아나와 아야코가 그 옛날 소녀였던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시절을 벌써 다 잊어버린 거냐고......

 

『 p. 27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빨리 어른이 되는 거. 어른이 되면 뭐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잖아. 먹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

 

 노랑 머리의 다이아나. 머리색과 이름만 본다면 외국인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다이아나는 온전한 일본인이며 노랑 머리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탈색의 산물이다. 16세에 자신을 낳은 호스티스 엄마 티아라와 둘이 살아가는 편모 가정의 아홉살 난 아이이다. 이런 가정 배경과, 눈에 띄는 외모와, 괴상한 이름 덕에 오히려 다이아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고 점점 폐쇄적이 되어 간다. 그러다 운명처럼 만난 아야코라는 아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상한 아빠, 다정한 엄마와 함께 사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아야코와 그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이아나는 <숲속의 다이아나>라는 동화 덕에 교감하며 절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녀들은 점점 성장을 해나간다. 각자의 삶의 방식대로. 그리고 주어진 환경대로.

 

『 p. 132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사는 세계가 결정적으로 달라지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에 그 어떤 말로도 메울 수 없는 간격이 가로지르고 말았다. 』

 

서로 교차가 되어 이어지는 다이아나의 이야기, 그리고 아야코의 이야기.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어갈 수록 과거 소녀였던 '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고... 너도 이렇게 성장해왔었다고...

 

친구가 전부이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시절 나의 전부이던 그 친구들 중 아직 곁에 남아 있는 친구는 거의 없음에 씁쓸해져버리기도 했다. 첫 월경을 시작한 아야코를 볼 때엔 그 시절의 나와 너무도 닮아서 아야코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릿한 추억과 감상에 젖어 버리기도 했다. 그 시절엔 지금 이렇게 공개적인 글에 월경이란 단어를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니까^^; 아홉살 다케다의 뜬금없고 저돌적인 고백엔 초등학교 시절 생각만해도 가슴 뛰던 첫사랑 소년이 떠올라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아나와 아야코의 이야기가 모두 순수하고 예쁘지만은 않다. 그녀들의 어떠한 오해로 서로 사이가 틀어져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며 교류가 끊기게 된다. 이 또한 태어난 환경 만큼이나 너무도 다른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상하게 그녀 둘 모두의 이야기가 전부 내 이야기인것만 같아 자주 자주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다.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잃게 비슷하게 성장해가는 거구나. 빨강 머리 앤에서의 유별나고 특출난 '앤'이 아닌 평범하고 보통인 '다이아나'처럼 말이다. 그런 공감과 깨달음 덕에 과거를 추억하며 한없이 감상에 젖어 씁쓸함을 느끼던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말았다.

 

소녀였던 우리는 성장하여 여자가 되고,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누구나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단 것이다. 누구나 소녀였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엄마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야기. 그래서 소녀였던 나와 당신과 그녀들에게 위로를 던져주는 따뜻한 이야기.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 p. 316 모두가 하나같이 앤처럼 날아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여자는 마을에서 산다. 조역인 다이아나야말로 수많은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진정한 친구'일 수 있는 존재니까...... 앤처럼 유별난 아이가 그 조그만 마을에 받아들여진 것은 다이아나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이아나는 앤의 좋은 점을 자연스럽게 끌어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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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싱 - 돌아온 킬러 의사와 백색 호수 미스터리 밀리언셀러 클럽 119
조시 베이젤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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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57 세상의 문제는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자기들한테 더 이로운 거에 따라 이성을 켰다 껐다 하는 사람들이 문제죠.

 

 

<괴물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호수여행>

 전직 마피아(킬러)이자 현재 선의로 바다를 떠돌던 '아지무스'는 '마모셋 교수'의 호출로 '렉빌'이라는 부자의 의뢰를 받는다. 이 의뢰라는 것은 백색호수 괴물의 진의를 밝히고 미녀고생물학자 '바이올렛'의 경호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아지무스'와 '바이올렛'은 포드로 향하게 되고, 레지의 산장에서 여러 인물들과 만나고, 괴물을 찾아 나서는 호수 탐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백색 호수의 괴물의 진상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데...

 

<미스터리와 스릴과 모험과 액션과 풍자와 코미디와 로맨스>

 이 책이 재밌는 것은, 소설이 독자에게 줄 수 있는 재미들이 총 집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단 이 작품 전체적인 흐름인 백색 호수의 괴물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백색호수 근처에서 죽은 네명의 사람은 정말 괴물에게 살해당한 걸까?...하는 미스터리가 있다. 그 괴물을 찾아 호수 깊숙한 곳에 머물며 마주치게 되는 스릴과 모험이 있다. 거기에 때때로 사람들의 행태를 비틀어 웃음을 유발하는 풍자와 코미디가 있다. 그리고 양념처럼 선남선녀의 조금은 노골적이고 발칙한 로맨스도 있다. 이렇게 많은 요소들이 등장하다 보면 작품이 산만해질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이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이고 촘촘히 얽히고 설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아직 경력이 많은 작가가 아님에도 대단한 역량을 뽐내는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것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기저가 지극히 미국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적'이라는 본질이 아쉽다기 보다는, 그들의 문화와 우리 문화의 차이로 인해 그들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같은 독자들은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게 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자주 벌어진다는 점이 아쉽다는 말이다. 결국 이는... 내가 무식하기 때문이란 생각에 조금 서글프기도...^^;;;

 

<각주와 각주와 그리고 또 각주와 부록과 참고문헌과 다시 각주>

 처음 책을 들고 펼쳐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보이는 각주와 각주와 각주와 각주와 그리고 또 각주. 며칠전에 읽은 책의 서평에 '번역할 때 각주를 넣어 조금만 더 친절을 베풀었더라면...'이란 말을 쓴 적이 있는데...공교롭게 그 책 바로 다음에 읽게 된 이 책은 온통 각주 물결이다. 그래서 이정도 각주는 너무 과하지 않나 싶었는데...놀랍게도 이 각주들은 번역할 때 넣은 것이 아닌 원작에도 있던 각주였다. 심지어 각주를 넣은 주체가 '작가'가 아닌 이 소설의 서술자인 '아지무스'였던 것이다. 이 각주는 소설 전반적인 사건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서 꼭 읽지 않아도 되지만, 왠지 읽다 보면 중독성이 생기며 심지어 각주가 없는 페이지에서는 섭섭함까지 느끼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은 바로 이 '각주'인 것이다. 그리고 작품이 끝나고 부록(바이올렛의 논문?)과 어마어마한 분량의 참고 문헌이 이어지는데... 우습게도 여기 또한 각주의 물결이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고, 어쩐지 각주 물결이 귀여워 웃음이 나버렸다. 이정도면 주객전도도 이런 주객전도가 없는데, 앞에서도 언급했듯 참으로 매력적인 주객전도였다. 나중에 각주만 다시 읽고 싶어질 정도로... 그러니 이 소설을 읽게되실 독자여러분들! 귀찮다고 그냥 넘기지 마시고 각주 꼭꼭 챙겨보시길 권한다!

 

 

<괴물에 관하여...>

  깊고, 은밀하고, 넓고...이런 이미지 때문일까? 세계 곳곳의 '호수'엔 '괴물'이 출몰한다는 전설이나 소문이 유독 많은 것 같다. 나부터도 어렸을적에 백두산에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천지 괴물이 정말 있나 확인하고 싶어서였으니까 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버린 영국 네스호의 괴물은 '네시'라는 별칭까지 얻어 캐릭터 사업과 더불어 네스호 관광객 유치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니, 이쯤되고 보면 없는 괴물도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리라. 이런 사람들의 심리와 네스호의 괴물에서 영감을 얻어 작가가 탄생시킨 소설이 바로 '와일드싱'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괴물...하면 사실 나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한강 괴물...그 괴물로 인해 내재해 있던 잔인성이 폭발하게 되는 진짜 괴물인 '인간들'. 때문에 내게 있어 괴물은 바로 인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때문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결국 백색 호수의 괴물은 결국 '인간안에 내재된 악(이기심, 탐욕 등등)'일 것이라고 단정했었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이었느냐고? 진짜 정체 불명의 괴물? 아니면 결국엔 인간?

 둘 다 일수도, 혹은 둘 다 아닐 수도... 그러니 그 답은 책 속에서 직접 찾아 보시기를!! ^^

 

<시리즈는 역시 순서대로 읽어야 제 맛>

 와일드 싱은 비트 더 리퍼라는 전작이 존재한다. 비트 더 리퍼를 읽지 않더래도 와일드싱을 읽는데 전혀 문제는 없지만...... 작가가 참으로 깜찍하고도 교묘하게 와일드싱 곳곳에 떡밥을 뿌려놓았다. 때문에 비트 더 리퍼를 읽지 않고 와일드싱을 읽는 독자들은 분명 나처럼 백퍼센트 파닥파닥 낚이게 되리라. 역주행이지만 어쩔 수 없다. 조만간 비트 더 리퍼를 읽어봐야지. 그러니 아직 두 권 모두 읽지 않으신 분들에겐 왠만하면 순서대로 두 권 모두 읽으시길 권하는 바다.

 

 

 아지무스를 내세워 교묘하게 독자를 낚는 작가의 이 깜찍한 각주를 좀 보시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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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드롬 E 샤르코 & 엔벨 시리즈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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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그 황홀하고도 섬뜩한 이기(利器)>

 우리는 수없이 많은 매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라디오, TV, 신문 같은 고전적인 매체 뿐 아니라,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매체를 총괄해 버리는, 그것의 주인이 인간인지, 그것이 인간의 주인인지 모를 스마트폰이라는 물건 하나를 늘 지니고 다닌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너무도 쉽게 매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전파되는 매체. 그 매체에 어떠한 악의적인 사인(sign)을 몰래 주입하여 대중들에게 노출시킨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런 질문에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 p.234 놀랍고도 끔찍하다. 이성적인 장벽을 거치지 않은 채로 영상과 무의식의 통제에 지배받는 세계.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자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일까? 』

 

<불안한 그녀 뤼시 엔벨>

 뤼도비크 세네샬이란 영화광은 어느날 아주 희귀한 영화를 접하게 되고, 그 후 눈이 멀어버린다. 그는 전 여자친구였던 형사 뤼시 엔벨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뤼시는 한창 여름 휴가 중이었는데, 쌍둥이 딸 중 하나의 병간호 중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영화를 보고 난 뤼시는 영화 속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것에 대한 본능을 억누를 수 없어 결국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칠수록 뤼시는 형사로서 감내해야하는 숙명에 대해 회의하고, 또한 쌍둥이 딸들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녀의 숙명에 중독되어 버린 자신을 깨닫는다.

 

『 p.16 그녀는 즉시 출동하는 구급차의 회전경보등을 바라보면서 생은 언제나 그녀 몫의 골칫거리를 안겨다 준다고 생각했다. 』

 

<피폐한 형사 프랑크 샤르코>

 샤르코는 과거의 비극적인 어떤 사건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그 죄의식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행동분석가이다. 어느날 뇌와 눈이 적출된 채 매장된 다섯 구의 시신이 발견되고, 과거의 불운한 사건 이후 현장엔 좀처럼 나서질 않던 샤르코는 그 사건 현장으로 호출된다.그 역시 형사로서의 숙명이란 것에 중독되어 버린 터. 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강렬한 흥분을 느끼며 수사에 착수한다, 그 과정에서 16년전 이집트에서 있었던 사건과의 연관성을 알게 되고 이집트로 향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닌 위기의 연속일 뿐이다.

 

『 p.37 샤르코는 수사 최초의 전율을 감지했다. 그 어느 시점보다 수사가 시작될 때 그는 가장 강렬한 흥분을 느꼈다. 이곳에는 죽음의 냄새가, 불도저의 휘발류와 습기가 진동한다. 하지만 이 역겨운 냄새들을 자신이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문득 깨닫고 말았다. 아드레날린과 암흑의 수액을 온몸으로 빨아들일 시간이었다. 』

 

<형사와 형사가 조우하면 생길 수 있는 일.>

 마플 여사와 홈즈가 만난다면? 깁스(NCIS)와 그리썸(CSI)이 합동 수사를 한다면? 수사물(소설 시리즈나 미드나 영화나 기타 등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해볼 것이다. 그럼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몇 배가 될텐데!하고 말이다. 이 소설은 이와 같은 독자들의 성화로 탄생한 작품이라 한다. 같은 작가의 두 시리즈의 주인공인 샤르코와 엔벨. 두 형사는 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을 추적하다 결국 두 사건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되고 결국 조우하게 된다. 이 두 시리즈의 팬이라고 생각해 보라! 이 순간 독자는 어마어마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그녀의 만남의 순간을 애가타게 기다리며 책장을 넘겼더랬다. 국내에도 '엔벨 시리즈'와 '샤르코 시리즈'가 먼저 각각 소개되고 이 '샤르코&엔벨' 시리즈가 소개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걸 아쉬움도 남는다.

 자, 그럼 상상해보라. 같은 숙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동병상련의 형사와 형사가 만났다. 그러니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콤비 플레이어와,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시너지. 다른 한편으로도 생각해보자.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여자는 불안하고, 남자는 피폐하다. 남자와 여자는 수많은 위기에 봉착하고,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한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뻔하지 않은가! 여자는 남자를 통해 불안을 채울 것이고, 남자는 여자를 통해 치유가 되는 스토리. 어쩌면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묵직하디 묵직한 이 스릴러 소설에서 오히려 독자들의 가쁜 호흡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여 매력적이다.

 

<호환 마마 보다 더 무서운 그것, 그리고 우리의 뇌>

 예전에 비디오 꽤나 보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를 무서워했지만, 당시엔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불법 비디오였다. 지금도 IPTV로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 시작전에 선정성이나 폭력성의 등급과 함께 시청 가능한 연령을 표시한다. 그러고보면 어쩜 이미지나 영상이란 것이 사람의 폭력성을 자극하고 조장한다는 이론은 꽤나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미지로 폭력성을 주입하고, 어떠한 도화선으로 그 폭력성을 발현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흔히 흉악 범죄자들의 소식으르 접하다 보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저 인간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길래 저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나."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뇌를 전부 해부하여 연구하면 그들의 뇌속에서 우리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인간의 폭력성이 가진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결국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소설. 책을 읽는 사이 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 나 또한 이런 조작된 이미지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섬뜩함을 느꼈다.

 

『 p.304 컴퓨터, 텔레비전 앞에 있거나 휴대전화에서 손을 떼지 않는 수백만의 밀집된 사람들. 어떻게 보면 이미지의 세계에 접속된 정신을 가진 인류의 거대한 집단이야말로 집단 히스테리의 매우 현대적이고 위험한 형태가 아닐까? 그 누구도 헤어 나올 수 없는 현대적인 광기. 』

 

<결말은 다시 시작으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소설은 샤르코&엔벨 시리즈의 서막이다. 각각 다른 지역의 두형사인데 다음 작품에서는 어떻게 콤피 플레이어가 이어지는 걸까 궁금했다. 또 공조 수사면 식상할텐데 걱정되었다. 그런데 나를 기다리고 있던 너무도 충격적인 이 시리즈의 결말이자, 다음 시리즈의 서막. 그리고 뱉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 "빨리 다음편을 주세요!"

 

『 p.112 그녀의 익숙한 습관들, 매일 저녁 보는 영화, 영화를 볼 때면 꿰어 신는, 쌍둥이들이 - 그리고 어머니가 - 생일날 선물해준 토끼 슬리퍼 역시 소중한 일상의 조각이었다. 가장 단순해 보이는 것들로부터 멀어졌을 때에야 마침내 우리는 그런 단순해 보이는 것들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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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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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믿고 읽는 미미여사니 기대가 큽니다^^ 이 책이 요즘 논란이 많이 되는 것 같은데...그렇다고 이 책을 사서 읽는 독자들을 전부 싸잡아 죄인처럼 몰아가는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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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5-05-20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출판사가 다르네요. 그렇지만 읽고 싶으니 주문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의 애환? 이랄까요....:(

이지드 2015-05-24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들한테 뭐라하는 글이 잇나요?
 
나와 춤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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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그리고 첫인상>

 길에서 자주 마주치는 얼굴이 있다. 이름도 모르고 말 한마디 섞어 보지 않은 데서 오는 낯섦과, 자주 마주치다 보니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것 같은 친근함을 동시에 느끼는 사람. '온다 리쿠'는 나에게 바로 그런 작가였다. 내가 읽는 책의 상당 부분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일본 소설이기에 자주 들어 친숙하기 이를데 없는 바로 그 이름. 하지만 정작 작품은 전혀 읽어 보지 못한 낯섦. 그렇게 자주 마주치는 사이인데 인사 한번 건네 볼까 하는 생각 비슷한 것으로 접하게 된 작품이 바로 '나와 춤을'이다.

 작가와의 첫만남이 '책'이라면, 책의 첫인상은 '표지'일 것이다. 서평을 쓰며 표지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이 어쩌면 우습기도 하지만, 이 책은 표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알록달록 봄날 같은 색감에 여러 단편들에서 소재를 따온 일러스트들이 오르골 위에 몽환적으로 펼쳐져 있다. 이 겉표지도 꽤나 매력적이지만 내가 표지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이 겉표지를 벗겼을 때 등장하는 양장 커버 자체의 디자인 때문이다. 평소 독서 습관대로 양장본의 겉 표지를 벗겨내고 책을 읽으려는데, 자줏빛 매혹적인 양장 커버가 나를 반긴다. 그런데 거기에는 책 제목이 아닌 '교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다. 어찌 보면 주문 같기도 한 기묘한 문장들. 알고 보니 그것은 총 19편의 단편들 중 마지막 작품인 '교신'이었다. 마지막 작품이 제일 처음 나를 반긴다. 그것도 표지에서 대놓고, 하지만 은밀하게 숨어서. 그 깜찍한 은밀함을 발견한 기쁨으로 이미 첫인상은 합격점이다.

 

 

 

 

 

<경쾌하고 몽환적인 스타카토와 심호흡의 향연>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단편 소설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다. 장대하고 화려하고 복잡한 서사를 즐기기에, 서사나 플롯 보다는 '은유'에 치중하는 단편 소설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에는 무려 1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러니 당연히 '은유'가 강한 작품들도 상당수이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싫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개별 작품들은 마치 스타카토처럼 짧은 호흡이 느껴진다. 그런데 한 작품을 그렇게 빨리 읽어내리고 나면 그를 음미하기 위한 긴긴 심호흡이 이어진다. 퀵퀵, 슬로우 슬로우. 마치 제목처럼 작가가 나를 리드하며 추는 춤 같다. 그 춤사위는 때론 경쾌하고, 때론 몽환적이다. 그렇게 그 춤에, 그녀의 이야기에 시나브로 빠져든다.

 

 

『 몸이 그렇게 가볍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더없이 해방되었다. 기쁨이 느껴지고, 음악이 들렸다. p.246 - 나와 춤을 』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빚어 낸 노스탤지어>

  가끔 새벽에 잠 못 들 때, 혹은 새벽에 잠이 깨었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적막감을 달래려 TV를 켜 채널을 이리 저리 바꿔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하루는 문득 어떤 프로그램의 배경 음악이 너무 좋아 TV 화면에, 아니 그 음악에 잔뜩 취해 넋을 잃었던 적이 있다. 새벽이면 으레 찾아오는 센치함의 절정 때문이었는지 흔히 듣던 가요나 팝과는 너무 다른 제 3 세계 음악(아마 아일랜드 음악이었던 것 같다.)의 몽환성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만 그 순간 감성이 폭발하여 울고 말았다. 그날 그 감성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것은 바로 오랫동안 고향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늘 가슴 한켠에 존재하면서도 애써 잊고 지냈던 향수와 이젠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였다. 이젠 내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원시에의 노스탤지어.

 이 작품들 중 상당수를 읽으며 나는 다시 한번 그날 새벽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향수를 느꼈다. 아마도 먼 미래의 어느날이 배경인 듯한 '소녀계 만다라'에서는 시간 뿐만 아니라 공간 까지도 움직이고 있음을 묘사한다. '타이페이 소야곡'과 '화성의 운하'는 과거라는 시간이 특정 장소로 인물들을 이끌고, 다시 그 장소가 과거로 인물들을 되돌린다. '성스러운 범람'과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나', '꼭두서니 빛 비치는'등의 작품들에선 과거에 찍힌 사진 한장이 우리를 그 사진 속 장소와 시간으로 끌어들였다 다시 내놓기도 한다. 이렇게 작가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아주 가볍게 허물고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원시에의 향수를 아주 멋지게 빚어낸다. 아아, 참으로 부럽고도 탐나는 재능. 때문에 이런 작품과 이를 써 낸 작가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질투와 동경을 감출 수가 없다.

 

<온다 리쿠, 그녀와 점프, 점프, 점프.>

  친근하지만 또한 낯설었던 온다 리쿠,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첫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19편의 단편 중에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의 후일담 같은 것들이 몇 편 있다. 나는 그 작품들을 전혀 모르는데..... 때문에 공통 화제를 찾지 못해 대화 중 때때로 어색함이 끼어드는 것처럼 아직은 그녀와 조금 데면데면하기도 하다. 그 어색함을 어서 떨쳐 버리고 싶기에, 이제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봐야겠다. 그럼 그녀는 내게 다시 멋진 춤을 청하리라. 그렇게 작가인 그녀와 독자인 나는 함께 점프, 점프, 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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