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다이아나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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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작문도 좋아하던 나름(?) 문학 소녀였었다. 늘 똑같은 밋밋한 일상이 지겨워 일기 대신 시를 대신 써서 제출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편지 쓰는 일을 즐겼으며, 어른도 이해하기 힘든 세계 문학을 탐독하기도 했었다. 빨강 머리 앤처럼 공상도 즐겼고,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입시에 치여 하루 중 반 이상을 학교에서 살아가고, 점점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사고 방식이 나를 잠식해 소녀 시절의 풋풋한 감성은 그렇게 점점 잊혀져 가고 말았다. 그런데 디아아나와 아야코가 그 옛날 소녀였던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시절을 벌써 다 잊어버린 거냐고......

 

『 p. 27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빨리 어른이 되는 거. 어른이 되면 뭐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잖아. 먹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

 

 노랑 머리의 다이아나. 머리색과 이름만 본다면 외국인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다이아나는 온전한 일본인이며 노랑 머리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탈색의 산물이다. 16세에 자신을 낳은 호스티스 엄마 티아라와 둘이 살아가는 편모 가정의 아홉살 난 아이이다. 이런 가정 배경과, 눈에 띄는 외모와, 괴상한 이름 덕에 오히려 다이아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고 점점 폐쇄적이 되어 간다. 그러다 운명처럼 만난 아야코라는 아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상한 아빠, 다정한 엄마와 함께 사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아야코와 그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다이아나는 <숲속의 다이아나>라는 동화 덕에 교감하며 절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녀들은 점점 성장을 해나간다. 각자의 삶의 방식대로. 그리고 주어진 환경대로.

 

『 p. 132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사는 세계가 결정적으로 달라지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에 그 어떤 말로도 메울 수 없는 간격이 가로지르고 말았다. 』

 

서로 교차가 되어 이어지는 다이아나의 이야기, 그리고 아야코의 이야기.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어갈 수록 과거 소녀였던 '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고... 너도 이렇게 성장해왔었다고...

 

친구가 전부이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시절 나의 전부이던 그 친구들 중 아직 곁에 남아 있는 친구는 거의 없음에 씁쓸해져버리기도 했다. 첫 월경을 시작한 아야코를 볼 때엔 그 시절의 나와 너무도 닮아서 아야코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릿한 추억과 감상에 젖어 버리기도 했다. 그 시절엔 지금 이렇게 공개적인 글에 월경이란 단어를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니까^^; 아홉살 다케다의 뜬금없고 저돌적인 고백엔 초등학교 시절 생각만해도 가슴 뛰던 첫사랑 소년이 떠올라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아나와 아야코의 이야기가 모두 순수하고 예쁘지만은 않다. 그녀들의 어떠한 오해로 서로 사이가 틀어져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며 교류가 끊기게 된다. 이 또한 태어난 환경 만큼이나 너무도 다른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상하게 그녀 둘 모두의 이야기가 전부 내 이야기인것만 같아 자주 자주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다.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잃게 비슷하게 성장해가는 거구나. 빨강 머리 앤에서의 유별나고 특출난 '앤'이 아닌 평범하고 보통인 '다이아나'처럼 말이다. 그런 공감과 깨달음 덕에 과거를 추억하며 한없이 감상에 젖어 씁쓸함을 느끼던 나는 마음이 따뜻해지고 말았다.

 

소녀였던 우리는 성장하여 여자가 되고,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누구나 '소녀'였던 시절이 있었단 것이다. 누구나 소녀였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엄마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야기. 그래서 소녀였던 나와 당신과 그녀들에게 위로를 던져주는 따뜻한 이야기.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 p. 316 모두가 하나같이 앤처럼 날아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여자는 마을에서 산다. 조역인 다이아나야말로 수많은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진정한 친구'일 수 있는 존재니까...... 앤처럼 유별난 아이가 그 조그만 마을에 받아들여진 것은 다이아나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이아나는 앤의 좋은 점을 자연스럽게 끌어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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