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E 샤르코 & 엔벨 시리즈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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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그 황홀하고도 섬뜩한 이기(利器)>

 우리는 수없이 많은 매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라디오, TV, 신문 같은 고전적인 매체 뿐 아니라,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매체를 총괄해 버리는, 그것의 주인이 인간인지, 그것이 인간의 주인인지 모를 스마트폰이라는 물건 하나를 늘 지니고 다닌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너무도 쉽게 매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전파되는 매체. 그 매체에 어떠한 악의적인 사인(sign)을 몰래 주입하여 대중들에게 노출시킨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런 질문에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 p.234 놀랍고도 끔찍하다. 이성적인 장벽을 거치지 않은 채로 영상과 무의식의 통제에 지배받는 세계.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자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일까? 』

 

<불안한 그녀 뤼시 엔벨>

 뤼도비크 세네샬이란 영화광은 어느날 아주 희귀한 영화를 접하게 되고, 그 후 눈이 멀어버린다. 그는 전 여자친구였던 형사 뤼시 엔벨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한다. 뤼시는 한창 여름 휴가 중이었는데, 쌍둥이 딸 중 하나의 병간호 중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영화를 보고 난 뤼시는 영화 속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것에 대한 본능을 억누를 수 없어 결국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사건을 파헤칠수록 뤼시는 형사로서 감내해야하는 숙명에 대해 회의하고, 또한 쌍둥이 딸들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녀의 숙명에 중독되어 버린 자신을 깨닫는다.

 

『 p.16 그녀는 즉시 출동하는 구급차의 회전경보등을 바라보면서 생은 언제나 그녀 몫의 골칫거리를 안겨다 준다고 생각했다. 』

 

<피폐한 형사 프랑크 샤르코>

 샤르코는 과거의 비극적인 어떤 사건으로 아내와 딸을 잃고, 그 죄의식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행동분석가이다. 어느날 뇌와 눈이 적출된 채 매장된 다섯 구의 시신이 발견되고, 과거의 불운한 사건 이후 현장엔 좀처럼 나서질 않던 샤르코는 그 사건 현장으로 호출된다.그 역시 형사로서의 숙명이란 것에 중독되어 버린 터. 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강렬한 흥분을 느끼며 수사에 착수한다, 그 과정에서 16년전 이집트에서 있었던 사건과의 연관성을 알게 되고 이집트로 향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닌 위기의 연속일 뿐이다.

 

『 p.37 샤르코는 수사 최초의 전율을 감지했다. 그 어느 시점보다 수사가 시작될 때 그는 가장 강렬한 흥분을 느꼈다. 이곳에는 죽음의 냄새가, 불도저의 휘발류와 습기가 진동한다. 하지만 이 역겨운 냄새들을 자신이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문득 깨닫고 말았다. 아드레날린과 암흑의 수액을 온몸으로 빨아들일 시간이었다. 』

 

<형사와 형사가 조우하면 생길 수 있는 일.>

 마플 여사와 홈즈가 만난다면? 깁스(NCIS)와 그리썸(CSI)이 합동 수사를 한다면? 수사물(소설 시리즈나 미드나 영화나 기타 등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해볼 것이다. 그럼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몇 배가 될텐데!하고 말이다. 이 소설은 이와 같은 독자들의 성화로 탄생한 작품이라 한다. 같은 작가의 두 시리즈의 주인공인 샤르코와 엔벨. 두 형사는 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사건을 추적하다 결국 두 사건은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알게 되고 결국 조우하게 된다. 이 두 시리즈의 팬이라고 생각해 보라! 이 순간 독자는 어마어마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그녀의 만남의 순간을 애가타게 기다리며 책장을 넘겼더랬다. 국내에도 '엔벨 시리즈'와 '샤르코 시리즈'가 먼저 각각 소개되고 이 '샤르코&엔벨' 시리즈가 소개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걸 아쉬움도 남는다.

 자, 그럼 상상해보라. 같은 숙명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동병상련의 형사와 형사가 만났다. 그러니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콤비 플레이어와,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시너지. 다른 한편으로도 생각해보자.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여자는 불안하고, 남자는 피폐하다. 남자와 여자는 수많은 위기에 봉착하고,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한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뻔하지 않은가! 여자는 남자를 통해 불안을 채울 것이고, 남자는 여자를 통해 치유가 되는 스토리. 어쩌면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묵직하디 묵직한 이 스릴러 소설에서 오히려 독자들의 가쁜 호흡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여 매력적이다.

 

<호환 마마 보다 더 무서운 그것, 그리고 우리의 뇌>

 예전에 비디오 꽤나 보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를 무서워했지만, 당시엔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불법 비디오였다. 지금도 IPTV로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 시작전에 선정성이나 폭력성의 등급과 함께 시청 가능한 연령을 표시한다. 그러고보면 어쩜 이미지나 영상이란 것이 사람의 폭력성을 자극하고 조장한다는 이론은 꽤나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미지로 폭력성을 주입하고, 어떠한 도화선으로 그 폭력성을 발현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흔히 흉악 범죄자들의 소식으르 접하다 보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저 인간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길래 저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나."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뇌를 전부 해부하여 연구하면 그들의 뇌속에서 우리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인간의 폭력성이 가진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이런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결국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소설. 책을 읽는 사이 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 나 또한 이런 조작된 이미지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섬뜩함을 느꼈다.

 

『 p.304 컴퓨터, 텔레비전 앞에 있거나 휴대전화에서 손을 떼지 않는 수백만의 밀집된 사람들. 어떻게 보면 이미지의 세계에 접속된 정신을 가진 인류의 거대한 집단이야말로 집단 히스테리의 매우 현대적이고 위험한 형태가 아닐까? 그 누구도 헤어 나올 수 없는 현대적인 광기. 』

 

<결말은 다시 시작으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소설은 샤르코&엔벨 시리즈의 서막이다. 각각 다른 지역의 두형사인데 다음 작품에서는 어떻게 콤피 플레이어가 이어지는 걸까 궁금했다. 또 공조 수사면 식상할텐데 걱정되었다. 그런데 나를 기다리고 있던 너무도 충격적인 이 시리즈의 결말이자, 다음 시리즈의 서막. 그리고 뱉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소리 없는 아우성. "빨리 다음편을 주세요!"

 

『 p.112 그녀의 익숙한 습관들, 매일 저녁 보는 영화, 영화를 볼 때면 꿰어 신는, 쌍둥이들이 - 그리고 어머니가 - 생일날 선물해준 토끼 슬리퍼 역시 소중한 일상의 조각이었다. 가장 단순해 보이는 것들로부터 멀어졌을 때에야 마침내 우리는 그런 단순해 보이는 것들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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