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여름 스토리콜렉터 4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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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날고 기는 넬레 여사의 신간이라지만 솔직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컸습니다. 제 주변분들에게서 여름을 삼킨 소녀가 별로라는 평을 많이 들었거든요. 게다가 타우누스 시리즈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독일식 지명과 인명이 상당히 곤혹스러웠던 기억 때문에 더욱 우려되었지요. 그런데 이 소설은 배경이 독일이 아닌 미국이더군요. 덕분에 가독성은 타우누스 시리지보다 나았던 것 같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어느 한 집안의 존속 살인이 일어나면서입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강력계 형사인 조던이 출동을 하지요. 때문에 분명 스릴러 장르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번 작품은 스릴러인가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이 소설은 전혀 범죄 소설이 아니더군요. 성장 소설 같기도 했고, 가문 소설 같기도 했고, 로드 무비 같기도 했습니다. 또 많은 면이 더글라스케네디의 '빅픽처'를 떠오르게도 했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엔 두 주인공이 있습니다. 셰리든과 조던. 두 사람은 이 작품을 통해 전 인생을 통해 매우 중요한 지점을 지납니다. 하지만 그 지점을 통과하고 난 후의 두 사람의 모습은 전혀 다르지요.

 

셰리든은 참 가여운 인물입니다. 이제 고작 20년 조금 넘게 산 인생에 웬 곡절이 그리도 많은지... 그리고 너무나 쉽게 사랑에 빠지며 그 사랑 때문에 계속 상처를 받는 그녀가 안타까웠습니다. 부디 그녀의 바람대로 이제는 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길 기원하지만 폴에게 아직 모든 걸 털어놓지 못한 그녀의 인생이 결코 평탄지 않으리라 예상돼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빅픽처를 읽을 때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올렸던 질문인데, 자기 자신을, 자기의 뿌리를 잊고 사는게 과연 가능할까요? 그리고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이에 반해 조던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입니다. 처음엔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인줄 알았는데, 셰리든처럼 이 작품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인물이더군요. 3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말이죠. 그래도 조던은 이제 그의 근원과 목적지를 전부 찾았으니 진정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의 마음의 짐은 여전하며, 셰리든과의 일을 해결해야하겠지만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막장적인 요소가 다분해 분명 제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막장이 욕하면서 보며 중독되잖아요. 또 앞서도 밝혔지만 배경이 미국이어서인지 엄청난 가독성을 자랑합니다. 때문에 분명 제 취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리즈의 다음 작품도 나오리라 예상되는 이 시점에 셰리든의 다음 행보는 어찌될지 궁금할 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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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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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콜트레인의 명곡이야. Lush Life. 풍요로운 인생. 좋잖아? 난 지금 이 순간, 다른 장소에서 이 시간을 살고 있는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있어. 그렇게 장담할 수 있고말고. 상상해봐, 멍청한 실업자는 물론이고 잘 살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는 도둑이나 종교인을 통틀어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누구보다도 풍요롭게 살고 있어. 』

 

<인생은 릴레이.>

며칠전 서울에 잠시 나갔었는데 지하철 역에서 어떤 할머니께서 (아마 지방분이었지 싶습니다.) 길(?)을 물으시길래 가르쳐드렸습니다. 전 지하철에서 내리고 할머니는 막 타시려던 참이었어요. 그래서 역을 나와서도 할머니께서 잘 타셨는지 괜히 신경이 쓰이더군요. 그 할머니 목적지까지 잘 가셨겠죠? 그리고 그 할머니는 지금쯤 무얼 하고 계실까요? '러시라이프',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의문에서 파생된 상상으로 시작되고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은 다른 인물과 스치죠. 그리고 그 다른 인물은 또 자신의 이야기속에서 스쳤던 앞의 인물은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지 상상해 봅니다. 이렇게 다섯개의 이야기, 다섯개의 시점이 릴레이처럼 진행됩니다. 마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지만, 내 주변 인물들의 인생 속에선 조연일 것이고, 또 길에서 그저 스치는 사람들의 인생에선 엑스트라인 우리 인생사처럼 말입니다.

 

『 p.15 세상은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을 통해 어떻게든 잘 풀릴 거라고 믿는 구석이 있었다. 』

『 p.15 '연결'이라는 그림이 굉장히 좋았어. 그건 릴레이를 의미하는 거지? 분명 모두들 누군가에게 배턴을 넘겨주기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거야. 오늘 나의 하루가 다른 사람의 다음 하루로 이어지는 거지. 』

 

<신의 레시피.>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습니다. 또 그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 또한 또다른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을 테고요. 이처럼 나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기에 한 사람의 인생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작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어디에서 누굴 만나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수가 없지요. 그래서 우리는 흔히 '운명'이란 단어를 쓰곤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운명'이란 거창하거나 진부한 단어가 아닌 '신의 레시피'라는 말이 자주 언급됩니다. 동료를 배신하고 거대 화상 밑으로 들어간 시나코, 빈집을 털러 온 대학 동기를 마주치는 도둑 구로사와, 17층에서 뛰어 자살한 아버지를 둔 가와라자키, 내연남과 남편을, 그리고 내연남의 아내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 교코, 정리해고 후 40번의 면접을 보고 40번 모두 미끄러진 도요다. 누구나 한 번 사는 인생, 하여 각자의 인생에서는 아마추어이기에 이들은 모두 각자 기구하고 긴박하고 스펙타클하고 파란만장한 하루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마추어인 그들이 겪는 사연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더 큰 이야기가 되는 건 모두 어쩌면 신이 미리 준비해놓은 레시피 대로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들은 인생에 관해서 모두 아마추어인 우리들에게 이런 위로를 전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에 있어서 신인이고 아마추어이며 이 인생이 바로 첫 출전이라고, 인생에 프로는 없다고. 처음 시합에 나간 신인이 실패했다고 낙담하면 안된다.'고 말이죠.

 

『 p.263 인생에 관해서는 모두가 아마추어야, 그렇잖아? 모두가 첫 출전이야, 인생에 프로는 없어. 뭐, 이따금 자기가 인생의 프로인 것처럼 으스대는 놈도 있지만, 어쨌든 실제로는 모두가 아마추어고 신인이지. 처음 시합에 나간 신인이 실패했다고 낙담하면 안 돼. 』

 

<매력적인 플롯과 복선 & 이사카 코테일>

이 작품이 재미있는 건, 인물과 인물의 각각의 이야기가 산발적, 동시다발적으로 각기 진행되다가 막판에 하나의 이야기로 짜 맞추어 진다는 점입니다. 각각 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공통으로 언급되는 소재들이 있긴 하지만 그거야 같은 도시(센다이)에 살고 있기에 공통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서 도무지 이 이야기들이 어떻게 합을 이루게 될 지 감이 잘 오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작품 말미에 가면 아주 자연스럽게 합을 이루며, 그 절묘한 자연스러움에 놀라게 되지요. 마치 1000피스 퍼즐 조각을 처음 흩뜨려 놓고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하나 하나 맞추어 큰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는 크나큰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이야기가 말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갑자기 느닷없이 짠! 하고 맞춰지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작가가 작품 초반부터 은근하고 은밀하고, 그러면서 매우 치밀하게 복선들을 곳곳에 뿌려놓았던 것이지요. 저는 이 작품을 수년 전에 이미 한번 읽은 상태였고, 이번에 개정판이 출간되어 재독을 하는 거였기에 세세한 줄거리는 잊어버렸지만 이야기의 큰 구성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그 복선들을 모조리 찾으면서 읽어보자 마음 먹었지요. 물론 몇몇 복선들은 눈에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독으로 재독을 끝내고, 삼독이랄 수까지야 없겠지만 두어시간에 걸쳐 다시 한번 책을 훑다보니 그 복선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음을 깨닫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신 분이라면 꼭 완독 후 바로 속독으로 재독을 해보십시오. 곳곳에 뿌려진 복선을 줍는 재미가 쏠쏠하며 그 치밀한 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사카코타로라는 작가 앞에 흔히 붙는 수식어가 '천재'라는 진부한 단어인데, 러시라이프라는 소설을 읽고나면 그 진부한 단어를 작가 이름 앞에 붙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플롯이 상당히 복잡하면서 복선들은 치밀하고 상세하니 허구일 뿐인 이야기에 디테일이 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과연 작가는 다섯 개의 이야기를 각각 써서 적당히 잘라 섞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독자들이 읽게 되는 순서 그대로 이야기를 썼던 것인지, 정말이지 궁금합니다. 영화 감독 봉준호의 연출은 그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사람들은 흔히 그를 봉테일이라고 부르는데(여담이지만 저는 국내 감독중에 봉준호 감독을, 그리고 그의 디테일한 연출을 사랑합니다.) 이사카코타로도 이쯤되면 이사카 코테일이라고 불러야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 p.78 다정하다는 건 남의 근심을 헤아린다는 의미라고 생각해. 다정하다는 건 그런 뜻이요. 요컨대 상상력이야.

 

<만담 속 잔소리의 미학>

이사카코타로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참 쉽게 읽히고 가독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흔히 가독성이 높은 소설들은 서술이나 묘사 보다는 대사가 많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러시라이프를 비롯한 이사카코타로의 대부분의 작품들 역시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사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평론가들로부터 '만담 같다.'라는 평을 듣고는 한다더군요. 서술이나 묘사가 거의 없고 대사로만 이루어진 소설은 평단에서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카코타로가 평단에서도 좋은 평을 받는 이유는 제가 생각하기엔 그의 작품에 담긴'잔소리의 미학'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속에서 예를 들어보자면, 도둑인 구로사와는 빈집에 침입한 대학 동기를 마주칩니다. 그런데 구로사와는 전혀 당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매우 즐기며 도둑이 된 친구와 계속 대화를 시도하지요. 그렇게 그 친구 또한 구로사와에게 감화되어 대학 시절의 추억담, 현재의 각박한 삶 등을 늘어놓습니다. 그것도 무슨 예능이나 토크쇼에서 진행자와 게스트가 대화하듯이 말이죠. 상황도 말도 안되지만, 그런 상황에서 주고 받는 두 인물의 만담 같은 대화라니 상상하면 상당히 우습습니다. 그리고 그런 만담 같은 대화 속에 여러 사회문제(경제문제, 부부문제, 노인문제, 종교문제 등)라든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충고라든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잔소리(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사고를 해야한다, 즐겁게 살아라 등)를 담아놓습니다. 잔소리를 잔소리로써 전하면 듣는 사람은 매우 지겹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데, 이사카코타로는 독자에게 그런 잔소리 같은 메시지들을 이런식으로 자신의 작품 속 인물들의 유쾌한 만담 속에 은근하고 은밀하게 담아 전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런 잔소리는 대부분 독자들을 웃게하며,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 및 격려가 됩니다. 작가의 이런 상당히 치밀한 구석이 있는 만담 속 잔소리의 미학을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p.399 구로사와는 보행자 통로의 벤치에 걸터앉아 길을 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돈을 가진 사람, 돈이 없는 사람, 사치스러운 사람, 빈곤한 사람, 미래를 찾는 사람,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 포기한 사람, 다양한 인생이 지나간다. 모두들 심각한 얼굴이었다. 좀 더 편하게 살아. 구로사와는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

 

<Welcom to 이사카월드>

앞서도 밝혔지만 저는 이 작품을 수년전에 읽고 이번에 개정판이 출간되어 재독을 했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즈음엔 읽는 소설 마다 제 취향에 꼭 들어맞았기에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을 미친듯이 무턱대고 대중없이 찾아 읽는 중이었었습니다. 출간 순서와 상관없이 뒤죽박죽 말이지요. 그런데 이사카코타로의 작품들은 사실 크고 작은 연관성을 가지며 오밀조밀, 그리고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를 '이사카월드'라고 부르지요. 러시라이프라는 소설은 작가가 오듀본의 기도라는 작품으로 데뷔한 후 나온 두번째 작품입니다. 때문에 오듀본의 기도와 함께 이사카월드의 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그것을 수년 전 처음 읽을 때는 잘 몰랐다가 이번에 재독을 하며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오듀본의 기도에 나오는 말하는 허수아비와 주인공 이토, 동물원의 엔진에 나오는 동물원에서 잠을 자는 남자, 원래 직업은 도둑이었는데 중력 삐에로에서는 탐정이라는 부업을 하고 있는 구로사와. 이 모든 이야기가 알고보니 러시라이프에도 담겨있었던 겁니다. 러시라이프라는 작품은 그 자체가 다섯 인물들의 릴레이처럼 이어진 하나의 큰 이야기이면서, 결국 초기 이사카월드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이었던 것이지요. 때문에 러시라이프를 재독하고 났더니 이제는 오듀본의 기도나 중력삐에로, 피시스토리(...안에 동물원의 엔진이란 단편이 수록되어있습니다.)도 재독을 하고 싶어지는군요. 그런데 아마 그 작품들을 재독하면 또 그 안에서 다른 작품과의 연계가 형성이 되기 때문에 또 다른 작품들을 재독하고 싶어지겠지요. 그야말로 돌고도는 웰컴 투 이사카월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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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전이의 살인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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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쾌하고 따뜻하거나, 아니면 사회 문제에 대한 주제 의식을 담거나 하는 이야기를 선호해서인지 생각해보면 저는 '본격'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미스터리 소설을 거의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누가 죽였는지, 트릭은 무엇이었는지에 집중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소설 속에 공간 구조도라든가 수식이라든가 인물 관계도 같은 것이 첨부되어 있는 소설들 말이죠. 간혹 그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런 첨부 이미지가 있으면 저는 솔직히 대충 보고 흘려버리기 마련이었습니다. 왠지 귀찮아서이기도 하고 활자로만 읽어도 어차피 결말즈음에 가면 충분히 어떤 내용었는지, 어떤 트릭인지 이해가 되기도 하니까요.

 

외계인이 설치해 놓고 간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미국의 S시에는 군사상 비밀 장소가 존재합니다. 그곳에서 연구되는 것은 사람들간의 인격이 서로 전이되는 것. 이를 잘만 이용하면 훌륭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미국 CIA는 아크로이드 박사를 시켜 이를 연구하게 합니다.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면 규칙성 및 인격 전이를 멈추는 방법을 알아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아크로이드 박사 또한 인격전이의 피해자(?)가 되어버리지요. 역시 군사상 인격 전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지만 이를 다른 다라(중국이나 러시아)가 이용하는데 성공을 하면 큰일이니 미국은 그 장소를 개발하고 거대 쇼핑몰을 세워버립니다. 하지만 연구가 이루어지던 연구동은 없앨 수가 없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쇼핑몰 내의 작은 햄버거 가게에 그대로 문이 잠긴 채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어느날 햄버거 가게엔 6명의 손님이 찾아오고 그때 마침 지진이 일어나 이를 피하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인격 전이의 판도라의 상자가 다시 열리고 맙니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인격전이가 일어나는 과정에 여러건의 살인이 일어나게 됩니다. 과연 이 범인(그러니까 육체가 아닌 인격)은 누구였을까요?

 

솔직히 처음엔 인물들, 그러니까 육체(=인격) 이런 식으로 표기되는 인물들이 많이 헷갈리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끊임 없이 인격전이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어지럽기 시작합니다. 주어나 목적어가 항상 쌍으로 존재하니 미치도록 헷갈립니다. 게다가 인물들이 외국인들이라 이름이 어려워 더욱 그렇지요. 때문에 이 책에도 앞서 언급했던 첨부도들이 구석 구석 배치되어 있는데 초반엔 늘 그렇듯 대충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중후반을 넘어가자 그 첨부도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안내도가 되더군요. 마치 수능 준비하며 수학이나 과학 문제집을 푸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짜증도 조금 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며 책을 읽어야지?...하면서요. 그런데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는 그에 비례한 큰 희열감을 느끼듯 트릭이랄지, 진범을 눈치챘을 땐 희열감을 느꼈지요. 아아, 이런 것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본격 추리소설을 읽는 거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빠르게 읽히되, 자꾸 곱씹어야 하는 이 소설은 그렇다고 추리에만 치중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혹은 외국)에서의 일본(혹은 동양인)들이 갖는 열등감에 대한 묘사를 볼 때는 씁쓸해지기도 했고, CIA 및 미국을 비꼴 때는 약간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크로이드박사의 일종의 일류애에 대해서는 약간의 감동도 느꼈구요. 무엇보다 마지막 두 주인공의 대사에서는 유쾌함마저 느꼈습니다. 때문에 역자 후기에서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이면서 SF소설이기도 하고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적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제가 평소 즐기지 않던 장르들을 아주 다양하게, 그러면서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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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메트로
카렌 메랑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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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가 사는 동네는 서울 인근이기는 해도 굉장한 촌구석이기에 지하철이 다니질 않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탈 일이 거의 없지요. 가끔 서울에 볼 일이 있을 때도 버스를 주로 이용하구요.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좀 불편하더라구요. 그 불편한 점 중 하나가 승객들이 마주 보고 앉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창밖에 눈을 두고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 되는 버스와는 달리 지하철에선 도무지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난감하더라구요. 저는 길을 지나면서나 카페나 식당 등에서도 절대 사람을 관찰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거든요. 불필요한 오지랖을 떨기 싫어서,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넓히기 싫어서...라고 변명해 보지만 어쩌면 개인주의에 찌들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 저랑은 완전히 다른,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 삶의 낙인 주인공이 있습니다. 스물 여덟의 반짝 반짝 빛나는 마야. 몇해 전 부모님 댁에서 독립하여 혼자 살고 있는 그녀는 헤어제품 브랜드 팀장입니다. 매일 출퇴근 길에 지하철을 이용하며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두피를 관찰하고 그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과 삶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야는 휴대전화를 도둑 맞고, 그 과정에서 흑인 노숙인 로제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마야는 대화가 잘 통화는 이 노숙인을 친구로 생각하게 되고 그를 돕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해야 지하철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나, 혹은 나아가 노숙인 생활을 청산할 수 있나...에 대해서 로제는 전혀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오지랖을 발휘해 그를 돕고 싶어하지요.

 

그렇게 쌓여가는 둘의 우정... 혹은 사랑.... 그리고 등장하는 또다른 남자. 그리고 로맨스^^ 거기에 가족 이야기도 많이 등장합니다. 유대인 집안인 마야네 대가족. 할머니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형제 자매 이야기에서는 우리랑 많이 닮았구나 싶기도 하지요. 분류는 로맨스로 되어 있지만, 실상은 사랑과 우정과 직장 생활,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다룬 곧 '사람 사는 이야기'였습니다. 가볍고 유쾌하게 읽히지만 끝은 감동적이고 따뜻한, 가정의 달에 읽기 딱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p.331 마야는 생각했다. 인생이란 지하철과 비슷한지도 모른다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나면 그 끝에는 항상 환히 빛나는 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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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온 스노우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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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아내를 사랑한 킬러,

사랑하는 여자를 죽여야 하는 킬러.

 

어찌보면 느와르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그럼에도 올라브라는 인물은 전혀 식장하지 않고 매력적입니다.

 

난독증이 있지만 엄청난 다독가인지라 나름 뇌섹남이고,

금사빠이지만 또 그 사랑에 엄청 충실한 사랑꾼입니다.

 

게다가 킬러이면서도 한없이 여린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가 그리고 자신의 현실이 괴로워 이야기를 만드는 걸 즐기는 공상가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조금은 빤한 반전이었지만 가엽고 애처로워질수록 그 매력을 더하는 올라브이기에 결말 또한 마음에 들었습니다.

 

춥디 추운 오슬로의 날씨와 눈과 대조를 이루는

올라브의 뜨거운 핏빛 감성

그 차갑지만 뜨거운 묘사와 서사들.

 

이에 올라브도 올라브지만 요쌤의 필력에 다시 한번 반하게 되네요.

역시 저도 이미 요쌤의 팬이 되어버린게지요.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영화화 되는 것을,

제가 사랑했던 캐릭터가 구체적인 어느 한 배우의 이미지로 고착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여,

좋아하는 소설이 영상화된 것을 애써 부인하며 즐기지 않는데...

올라브 만큼은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이미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와 다름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영화 블러드 온 스노우도 많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덧1) 벌써 닷새전인가 다 읽고 리뷰를 미루다 결국 단편적인 감상만 몇자 적어봅니다.

블러드 온 스노우의 2년후의 이야기이며 인물들이 살짝 겹친다는 미드나잇 선도 출간되었더군요.

이 작품 역시 재빠르게 읽어보야겠습니다.

 

 덧2) 작품 제일 뒤의 '납치'라는 작품과 '블러드 온 스노우' '미드나잇 선'의 관계에 관한 사연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요쌤의 의도대로 되지 않은 점은 저 또한 유감입니다.

 

<밑줄긋기>

p.194 나는 호숫가에 앉아 반짝이는 호수의 표면을 바라보며 저게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수에 이는 서너 개의 잔물결. 한동안 거기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마치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것처럼. 마치 우리도 처음부터 여기 없었던 것처럼.

 

p.179 나는 뜻이 통하지 않는 세상, 일관성 없는 세상을 내다보았다. 다들 자기들에게 주어진 삶만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역겨운 욕망은 모조리 본능적으로 충족시키고, 우리가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찾아오는 죽음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한 걱정은 질식시켜버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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