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전이의 살인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유쾌하고 따뜻하거나, 아니면 사회 문제에 대한 주제 의식을 담거나 하는 이야기를 선호해서인지 생각해보면 저는 '본격'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미스터리 소설을 거의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누가 죽였는지, 트릭은 무엇이었는지에 집중하는 이야기들. 때문에 소설 속에 공간 구조도라든가 수식이라든가 인물 관계도 같은 것이 첨부되어 있는 소설들 말이죠. 간혹 그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런 첨부 이미지가 있으면 저는 솔직히 대충 보고 흘려버리기 마련이었습니다. 왠지 귀찮아서이기도 하고 활자로만 읽어도 어차피 결말즈음에 가면 충분히 어떤 내용었는지, 어떤 트릭인지 이해가 되기도 하니까요.

 

외계인이 설치해 놓고 간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미국의 S시에는 군사상 비밀 장소가 존재합니다. 그곳에서 연구되는 것은 사람들간의 인격이 서로 전이되는 것. 이를 잘만 이용하면 훌륭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미국 CIA는 아크로이드 박사를 시켜 이를 연구하게 합니다.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면 규칙성 및 인격 전이를 멈추는 방법을 알아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아크로이드 박사 또한 인격전이의 피해자(?)가 되어버리지요. 역시 군사상 인격 전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지만 이를 다른 다라(중국이나 러시아)가 이용하는데 성공을 하면 큰일이니 미국은 그 장소를 개발하고 거대 쇼핑몰을 세워버립니다. 하지만 연구가 이루어지던 연구동은 없앨 수가 없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쇼핑몰 내의 작은 햄버거 가게에 그대로 문이 잠긴 채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어느날 햄버거 가게엔 6명의 손님이 찾아오고 그때 마침 지진이 일어나 이를 피하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인격 전이의 판도라의 상자가 다시 열리고 맙니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러운 인격전이가 일어나는 과정에 여러건의 살인이 일어나게 됩니다. 과연 이 범인(그러니까 육체가 아닌 인격)은 누구였을까요?

 

솔직히 처음엔 인물들, 그러니까 육체(=인격) 이런 식으로 표기되는 인물들이 많이 헷갈리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끊임 없이 인격전이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어지럽기 시작합니다. 주어나 목적어가 항상 쌍으로 존재하니 미치도록 헷갈립니다. 게다가 인물들이 외국인들이라 이름이 어려워 더욱 그렇지요. 때문에 이 책에도 앞서 언급했던 첨부도들이 구석 구석 배치되어 있는데 초반엔 늘 그렇듯 대충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중후반을 넘어가자 그 첨부도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안내도가 되더군요. 마치 수능 준비하며 수학이나 과학 문제집을 푸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짜증도 조금 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며 책을 읽어야지?...하면서요. 그런데 어려운 문제를 풀어냈을 때는 그에 비례한 큰 희열감을 느끼듯 트릭이랄지, 진범을 눈치챘을 땐 희열감을 느꼈지요. 아아, 이런 것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본격 추리소설을 읽는 거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빠르게 읽히되, 자꾸 곱씹어야 하는 이 소설은 그렇다고 추리에만 치중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미국(혹은 외국)에서의 일본(혹은 동양인)들이 갖는 열등감에 대한 묘사를 볼 때는 씁쓸해지기도 했고, CIA 및 미국을 비꼴 때는 약간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크로이드박사의 일종의 일류애에 대해서는 약간의 감동도 느꼈구요. 무엇보다 마지막 두 주인공의 대사에서는 유쾌함마저 느꼈습니다. 때문에 역자 후기에서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이면서 SF소설이기도 하고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적극 공감하는 바입니다. 제가 평소 즐기지 않던 장르들을 아주 다양하게, 그러면서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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