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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 p.212 그날 이후로 나는 진심으로 웃을 수가 없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그랬다. 피붙이가 살해된 가족은 일상생활 속에서 웃을 때조차 죄책감을 느낀다. 유카리 누나가 살해된 그날 이후로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머나먼 존재가 됐다. 』
피붙이가 살해 당한 피해자의 유족.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일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과연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편하게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면 유괴범에게 자식을 잃은 전도연이 그 고통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종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종교 덕에 마음의 평화를 찾고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가해자를 면회하러 가지요. 하지만 그 가해자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이었습니다. 그 가해자도 교도소 안에서 종교에 귀의해 신으로부터 자신이 용서 받았다 생각하고, 때문에 평화를 찾게 되었던 겁니다. 그걸 본
전도연은 가해자와 더불어 신에게조차 분노하게 됩니다. 결국 전도연은 가해자를 용서할 수도, 편안해질 수도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친족이
살해당했을 경우 복수을 어느 정도 용인해줬었다고 합니다. 피해자 가족들의 원한을 어느 정도 이해했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복수를 한다고 해서
살해된 피붙이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복수가 진정한 답도 아마 아닐 겁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열다섯 생일날 누나를 잃은 슈이치라는 남자입니다. 열다섯이 되어 비로소 아버지의 직업인 이발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를 물여 받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던 슈이치. 아버지 또한 그의 성장이 대견해 성인으로서 인정하는 의미에서 그에게 나이프를 생일
선물로 전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날, 단란했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소년은 자라서 경찰이 되지만, 열다섯 생일날 갖게 된
분노때문에 경찰직도 잃게 되고, 결국 선배 경찰이 퇴직하고 만든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의 분노와 증오는 여전합니다.
그런데 탐정 사무소에 기이한 의뢰가 들어옵니다. 자신의 아들을 십수년전 살해했던 가해자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 그래서 자신들이 그 가해자를 용서해도 되는지 판단해 달라는 의뢰. 슈이치는 물론 그 일을 거절하고 싶지만, 소장인 고구레가 이를 받아들여
어쩔 수 없이 조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카가미라는 인물을 조사하게 된 슈이치는 누나의 사건을 떠올리며 괴로워합니다. 사카가미라는 인물은
역시 어떤 범죄행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슈이치는 어쩐지 그가 아주 싫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내적 갈등 또한 겪게 되지요. 그렇게
조사는 계속되고 조사 결과는.............
『 p.75
범죄 피해자가 가장 괴로운 순간은 가해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다. 가해자가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를 눈곱만치도 반성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다. 그럴 때는 증오의 불꽃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처럼 마음속이 격렬하게 날뛴다. 』
첫 의뢰에 아이디어를 얻은 고구레 소장은 이제 아예 대놓고 '범죄 전과자에 대해서 알아봐 드립니다.'하고 탐정 사무소 광고를 합니다.
때문에 연이어 이런 식의 의뢰가 들어오게 되지요. 그렇게 등장하는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 가해자, 가해자의 가족들의 심도 깊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넘어선 심도 깊은 고민을 담은 이야기들이 펼쳐지지요.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두번째 단편인 <복수>였습니다. 엄마의 방치로 집에 두달 동안 갇힌 어린 형제가 있었습니다.
간난쟁이 동생은 결국 숨을 거두고, 세살의 형은 죽은 동생이 부패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생쌀을 씹어 생계를 이었습니다. 요즘 뉴스에
왕왕 언급되는 친부모나 친족에 의한 아동학대문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며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세번째 단편인 <유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가족 입장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가족이 범죄자라른
이유로 세상의 온갖 손가락질을 받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가해자의 가족이야기. 단죄는 범죄자가 받아야하는건데 우리 사회에서도 가해자의
가족에게 행해지는 연좌제의 횡포가 참 많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결말에서의 어머니의 유품과 누나의
결정이 조금 뭉클하기도했던 이야기였습니다.
『 p.105
사건을 벌인 장본인은 담장 안에 들어가 보호를 받아요. 튼튼한 벽이 피해자 유족의 증오와 세상의 규탄을 막아 줘요. 하지만 우리는 그 증오와
규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어요.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
슈이치는 이런 의뢰들을 조사하는 한편으로 누나를 살해한 범인들의 행적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개의 단편을 하나의 장편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죠. 누나 유카리를 살해한 범인들은 사건 당시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들 중 한명의 행적을 파악한
슈이치는 그를 지켜보게 되고 그 안의 고독과 증오의 불꽃은 점점 거세져만 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사건들이 터지는데......
『 p.243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악당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아. 그래서 용서라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걸 구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아.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아.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라는 거다.
』
생일날 누나를 잃은 슈이치, 그를 향한 동정과 연민. 이야기가 고스란히 슈이치의 관점으로 서술되다 보니, 슈이치에 한껏 몰입해 슈이치만큼
불타오르게 되는 증와 분노. 하지만 슈이치가 부디 '악당'이 되지 않길 바라는 염려. 부디 그가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고, 그와 행복해지길
바라게 되는 간절한 염원. 이 모든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다 보면 금세 책 한권이 뚝딱입니다.
묵직한 고민들을 이야기속에 흥미롭게 녹여 낸 작품.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는데 아무래도 이제 이 작가의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작품의
결말을 보니 시리즈로서의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 같던데, 결코 불행하지 않고, 웃을 수 있게 된 슈이치의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 p.220
언제든 웃어도 된단다. 아니, 웃어야만 한다. 우리는 절대로 불행해져서는 안 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