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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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다산북스 페이스북에서 도서 홍보차 올려놓은 표지 (띠지 벗기기 전과 벗긴 후)를 보고 완전 반해버렸었습니다. 이런 표지 디자인을 가진 소설이라면, 분명 유쾌하고 재밌을 게 뻔하라리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흔치 않은 지극히 한국적인 코지미스터리라니요!

 

무순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서울로 도시로 나갔던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장레를 치르기 위해 충청도의 완전 깡촌 마을은 아홉모랑이로 모여들지요. 그렇게 무사히(?) 장례는 치렀으나, 이대로 식구들이 떠나고 나면 홀로 남겨질 할머니가 걱정입니다. 배우자를 여의고 난 직후가 가장 위험하다는데...... 그래서 가족들(고모들, 큰아버지, 아빠)이 모종의 회의를 거쳐 삼수생 강무순을 할머니곁에 한동안 남겨두기로 결정하고 다음날 이른 아침 무순이가 늦잠을 자고 있을때 그들은 도망치듯 할머니댁을 떠나가지요. 그렇게 할머니와 둘이 남게 된 무순.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텔레비전도 고작 k사만 간신히 나오는 상태. 무순은 멘붕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시골의 아침이란 시간하곤 상관없이 해가 뜨면 시작인지라, 해가 긴 여름엔 새벽 대여섯시면 하루가 시작되지요. 때문에 할머니는 늘 해가똥꾸녕을 쳐들 때까지 자는 무순이를 게으르다고 타박이십니다. 무순이는 무순이대로 미칠 노릇입니다. 심심해서. 폰도 안되고 텔레비전도 안나오니 심심해서 돌 지경이었지요. 그러다 자신이 6살에 남긴 보물지도를 발견하고, 6살 강무순이 남긴 보물 다임개술을 찾기 위한 모험이 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15년전 마을에서 일어났던 4명의 소녀 실종사건을 알게 되고, 의도치는 않았으나 홍간난여사와 강무순양은 이 사건의 진상을 점점 파헤치게 됩니다.

 

솔직히 이 작품은 독자를 이야기속에 미치도록 몰입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때문에 용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들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저는 이 소설의 반전 비스무리한 걸 이야기 1/3 지점에서 짐작했고 결말에선 그것이 여지 없이 맞어떨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천재인 걸까요? 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미치도록 재밌습니다. 서술자 무순이의 말투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가 특유의 경쾌한 문체가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합니다. 홍간난 여사를 대표로하는 시골 할매들의 생활상 묘사 또한 저희 할머니를 떠올리게 해서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었던 건 역시 손녀 강무순과 할매 홍간난 여사의 미친 케미스트리였지요. 격한 말이 오고가는 와중에 서로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둘의 콤비플레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습니다. 거기에 감초처럼 종종 등장해 이야기의 비주얼(?)을 살려주시는 꽃돌이도 그렇구요. 역시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캐릭터였고, 매력적인 캐릭터에 환장하는 저는 당연히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이 소설, 마냥 웃기고 코믹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결말로 치달을수록 밝혀지는 15년 전 사건의 진실은 굉장히 씁쓸하고 안타깝거든요. 가끔 한스러운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눈물이 나게도 하구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 인생사가 원래 그런 것을......

 

책을 먼저 읽으신 어떤 분의 서평을 보니, 사계절 시리즈로 내면 좋겠다고 하던데... 그 서평을 보고 전 이미 다른 계절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무순양이 드디어 대학 입학을 앞두고 홍간난 여사 댁에 방문한 겨울의 이야기 정도가 어떨까요? 편집자님의 스토킹으로 작가님을 설득하여 이 작품이 탄생했다고 하던데, 그 편집자님의 스토킹을 다시 한번 응원하는 바입니다!

 

 

p.359 깔끔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어떤 일이 칼로 자른 무처럼 깨끗한 시작과 결말을 갖는 걸 본 적이 없다. 낮과 밤은 분명 구분할 수 있지만, 낮이 밤이 되는 순간을 특정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그렇게 명료하지 않다고. 인터뷰까지 할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한 말이니까 아마 맞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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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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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2 그날 이후로 나는 진심으로 웃을 수가 없게 됐다.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그랬다. 피붙이가 살해된 가족은 일상생활 속에서 웃을 때조차 죄책감을 느낀다. 유카리 누나가 살해된 그날 이후로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머나먼 존재가 됐다. 』

 

피붙이가 살해 당한 피해자의 유족.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일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과연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편하게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밀양'이라는 영화를 보면 유괴범에게 자식을 잃은 전도연이 그 고통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종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종교 덕에 마음의 평화를 찾고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가해자를 면회하러 가지요. 하지만 그 가해자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이었습니다. 그 가해자도 교도소 안에서 종교에 귀의해 신으로부터 자신이 용서 받았다 생각하고, 때문에 평화를 찾게 되었던 겁니다. 그걸 본 전도연은 가해자와 더불어 신에게조차 분노하게 됩니다. 결국 전도연은 가해자를 용서할 수도, 편안해질 수도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친족이 살해당했을 경우 복수을 어느 정도 용인해줬었다고 합니다. 피해자 가족들의 원한을 어느 정도 이해했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복수를 한다고 해서 살해된 피붙이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복수가 진정한 답도 아마 아닐 겁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열다섯 생일날 누나를 잃은 슈이치라는 남자입니다. 열다섯이 되어 비로소 아버지의 직업인 이발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를 물여 받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던 슈이치. 아버지 또한 그의 성장이 대견해 성인으로서 인정하는 의미에서 그에게 나이프를 생일 선물로 전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날, 단란했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소년은 자라서 경찰이 되지만, 열다섯 생일날 갖게 된 분노때문에 경찰직도 잃게 되고, 결국 선배 경찰이 퇴직하고 만든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의 분노와 증오는 여전합니다.

 

그런데 탐정 사무소에 기이한 의뢰가 들어옵니다. 자신의 아들을 십수년전 살해했던 가해자가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 그래서 자신들이 그 가해자를 용서해도 되는지 판단해 달라는 의뢰. 슈이치는 물론 그 일을 거절하고 싶지만, 소장인 고구레가 이를 받아들여 어쩔 수 없이 조사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렇게 사카가미라는 인물을 조사하게 된 슈이치는 누나의 사건을 떠올리며 괴로워합니다. 사카가미라는 인물은 역시 어떤 범죄행위를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슈이치는 어쩐지 그가 아주 싫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내적 갈등 또한 겪게 되지요. 그렇게 조사는 계속되고 조사 결과는.............

 

p.75 범죄 피해자가 가장 괴로운 순간은 가해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다. 가해자가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를 눈곱만치도 반성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다. 그럴 때는 증오의 불꽃에 기름을 들이부은 것처럼 마음속이 격렬하게 날뛴다. 』

 

첫 의뢰에 아이디어를 얻은 고구레 소장은 이제 아예 대놓고 '범죄 전과자에 대해서 알아봐 드립니다.'하고 탐정 사무소 광고를 합니다. 때문에 연이어 이런 식의 의뢰가 들어오게 되지요. 그렇게 등장하는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 가해자, 가해자의 가족들의 심도 깊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넘어선 심도 깊은 고민을 담은 이야기들이 펼쳐지지요.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두번째 단편인 <복수>였습니다. 엄마의 방치로 집에 두달 동안 갇힌 어린 형제가 있었습니다. 간난쟁이 동생은 결국 숨을 거두고, 세살의 형은 죽은 동생이 부패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생쌀을 씹어 생계를 이었습니다. 요즘 뉴스에 왕왕 언급되는 친부모나 친족에 의한 아동학대문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며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세번째 단편인 <유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가족 입장에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가족이 범죄자라른 이유로 세상의 온갖 손가락질을 받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가해자의 가족이야기. 단죄는 범죄자가 받아야하는건데 우리 사회에서도 가해자의 가족에게 행해지는 연좌제의 횡포가 참 많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결말에서의 어머니의 유품과 누나의 결정이 조금 뭉클하기도했던 이야기였습니다.

 

p.105 사건을 벌인 장본인은 담장 안에 들어가 보호를 받아요. 튼튼한 벽이 피해자 유족의 증오와 세상의 규탄을 막아 줘요. 하지만 우리는 그 증오와 규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어요.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

 

슈이치는 이런 의뢰들을 조사하는 한편으로 누나를 살해한 범인들의 행적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개의 단편을 하나의 장편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죠. 누나 유카리를 살해한 범인들은 사건 당시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들 중 한명의 행적을 파악한 슈이치는 그를 지켜보게 되고 그 안의 고독과 증오의 불꽃은 점점 거세져만 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사건들이 터지는데......

 

p.243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악당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아. 그래서 용서라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걸 구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아.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아.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라는 거다. 』

 

생일날 누나를 잃은 슈이치, 그를 향한 동정과 연민. 이야기가 고스란히 슈이치의 관점으로 서술되다 보니, 슈이치에 한껏 몰입해 슈이치만큼 불타오르게 되는 증와 분노. 하지만 슈이치가 부디 '악당'이 되지 않길 바라는 염려. 부디 그가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고, 그와 행복해지길 바라게 되는 간절한 염원. 이 모든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다 보면 금세 책 한권이 뚝딱입니다.

 

묵직한 고민들을 이야기속에 흥미롭게 녹여 낸 작품.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는데 아무래도 이제 이 작가의 팬이 될 것 같습니다. 작품의 결말을 보니 시리즈로서의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 같던데, 결코 불행하지 않고, 웃을 수 있게 된 슈이치의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p.220 언제든 웃어도 된단다. 아니, 웃어야만 한다. 우리는 절대로 불행해져서는 안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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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종가의 색목인들 셜록, 조선을 추리하다 1
표창원.손선영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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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남녀노소, 독서가 취미이거나 아니거나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단편 하나쯤 읽어보지 않았거나 그가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 한편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포진해 있다는 셜로키언들, 때문에 100년 넘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패러디 되고, 패스티시 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이 셜록 홈즈이지요. 그런데 작가가 밝혔듯, 우리나라에는 딱히 그런 작품들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운종가의 색목인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이야기는 셜록 홈즈가 모리어티 교수와 함께 계곡으로 추락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코난 도일은 이 이야기를 썼을 때만 해도 셜록을 회생시킬 생각이 없었다고 하죠. 하지만 수많은 독자들의 요청에 셜록 홈즈는 몇 년 후 회생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홈즈가 계곡으로 추락하였다가 회생하여 돌아올 때까지의 빈 시간을 채우는 이야기입니다. 작가(들)은 그 빈 시간 동안 셜록이 조선에 왔을 거라고 상상&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홈즈에겐 응당 그를 돕고, 중재하며, 그의 이야기를 기록해주는 왓슨이 있어야하지요, 하지만 왓슨은 셜록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시기이니 왓슨을 대신할(?) 인물이 등장합니다. 배경이 조선인 만큼 조선인으로 말이지요. 왓슨과 이름도 닮은 와선, 무려 여성으로 등장합니다. (약쟁이) 홈즈가 조선으로 오는 배에서 사경을 헤맬 때 그의 목숨을 살리는 간호사로 등장하는 와선은, 다름아닌 실존 인물이었던 이제마의 딸이었습니다. 서자였던 이제마는 조선의 현실적인 한계를 일찍이 깨달았기에 딸을 미국으로 입양을 보내 신문물을 터득하도록 했었습니다. 때문에 와선은 통역관 겸 주치의(?) 로 홈즈와 함께 하게 됩니다. 솔직히 저는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홈즈보단 와선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그녀의 시점으로 많은 사건들이 전개됩니다. 생각해보면 조선인으로서 홈즈라는 외국인을 맞이하는 것이니, 독자들의 공감을 더 잘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명탐정이 있는 곳엔 희대의 악당또한 존재하기 마련이지요. 조선 곳곳에서 색목인 길거리의 여자들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용의자는 지에커라고 불리는 영국인. 어랏!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인데? 시기도 비슷하고! 싶으시죠? 저역시 머릿속에 곧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 짐작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답니다. 진실은 책 속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아무튼 작품의 큰 줄거리는 이렇게 홈즈와 지에커의 대결을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무엇보다 셜록 홈즈라는 소설 속 가상의 인물과 알렌, 이제마 같은 실존 인물과 오롯이 이 작품으로 탄생한 가상의 인물들이 모두 함께 한다는 점입니다. 시기와 장소를 적절히 활용하여 이들을 참으로 자연스레 어울리게 만들어놓았지요. 때문에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100여년 전 조선에 실제로 이런 일이 이런 인물들에 의해서 벌어졌던 것은 아닌지 생각할 정도로 몰입하고 맙니다. 저는 이런 설정들을 몹시 좋아하기에 작가(들)의 이런 센스에 박수를 보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전부 읽진 않았습니다만 어설프게나마 원작에서의 셜록 홈즈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 원작의 홈즈와 이 작품 속에서의 홈즈의 성격에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그리 거북하거나 불편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꽤 재밌었습니다. 뭐랄까... 조금은 한국 사람들 취향에 맞게 변형된 셜록 홈즈의 느낌이 났다고나 할까요? 영드 셜록도 그렇잖습니까? 19세기의 홈즈가 21세기에 재창조 되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많이 바뀌었듯이 영국의 홈즈가 조선에 오면서 조선의 구미에(?) 맞게 바뀌었다는 느낌입니다. 때문에 시리즈가 계속되며 조선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점점 더 조선에 융화되어갈 '한국형 홈즈'가 저는 오히려 기대가 됩니다.

 

1880년대 조선은 상투적인 표현을 빌려 오자면, 그야말로 풍전등화같은 상황이었지요. 개화와 수구 사이의 갈등, 밀려드는 외부 세력들, 그리고 그들의 이권 다툼,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조선의 백성들. 이런 조선의 모습도 상당히 잘 담겨있습니다. 저는 워낙 이 시기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런 점들도 이 작품을 읽어가며 찾은 재미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런 조선의 상황에 필요한 인물들, 그 인물들 중 하나가 바로 홈즈라고 판단한 이제마의 선택. 그렇게 홈즈는 조선에 머물려 많은 사건을 해결해 나갈거라고 하는군요.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 말이죠. 홈즈가 조선에서 해결한 사건들, 그리고 홈즈와 이제마의 콤비플레이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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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퀸 : 유리의 검 1 레드 퀸
빅토리아 애비야드 지음, 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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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인 은혈, 피지배 계급인 적혈로 나뉘어진 세계. 은혈들은 각 가문에 따라 특별한 능력을 대물림 하는데, 이 능력을 바탕으로 적혈들을 지배하며, 또한 이웃나라와 오랫동안 전쟁중입니다. 하지만 은혈들에게만 있다고 믿어온 그 특별한 스킬이 적혈 소녀인 메어에게도 나타나게 되죠. 이때문에 궁에 살게 되며, 두 왕자와 썸도 타면서, 스승을 만나 자신의 스킬을 더욱 발전 시켰던 메어. 그러나 이런 소설이 보통 그렇듯 메어에게 찾아온 반전과 배신. 그렇게 1부 적혈의 여왕이 끝났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부 유리의 검이 출간되었네요. 1부에서는 주로 인물 소개, 세계관의 소개가 주를 이루었다면, 2부에서는 메어의 본격적인 모험이 주를 이룹니다. 일단 그녀의 행동 반경이 방대해져서 스케일 또한 어마어마하게 커졌지요. 반란군으로 몰려 쫓기게 된 메어와 칼, 죽은 줄로만 알았던 메어의 오빠 쉐이든의 등장, 주홍의 군대의 실체, 은혈은 아니지만 은혈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신혈'들. 이 모든 내용들을 담고 있기에 한편의 블럭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실제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하니 기대해봐도 좋겠네요.

 

2부 유리의 검의 묘미는 역시 더욱 화려하고 스펙타클한 전투씬이 아닐까 싶네요. 아예 나라의 군대가 통째로 메어를 쫓고 있는데다가 거듭 등장하는 신혈들의 놀라운 능력들. 역시 레드 퀸 시리즈는 로맨스라기 보단 모험, 액션 블럭버스터입니다.

 

그리고 작품의 스케일에 비례해 메어의 고난의 스케일 또한 점점 커져만 갑니다. 영웅 소설의 주인공이나 진배없으니 당연한 과정이겠지만, 좀 안됐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메어. 그래도 이 시리즈의 제목이 레드 '퀸'인데 시리즈 마지막 3부에선 결국 메어가 복수에 성공하고 승리하여 결국 '퀸'이 되는 거겠지요? 현재 작가가 3부를 집필중이라고 하던데...... 드디어 펼쳐질 메어의 성공담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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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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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란 소녀가 있습니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의 앤 셜리. 어렸을 적에 참 재밌게 봤던 애니메이션입니다. 그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백영옥 소설가의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작가는 번번이 등단에 실패하여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졌을 때 빨강머리 앤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그뒤로도 힘든 일이 생길 때, 그래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 에세이집을 내려고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 또한 빨강머리 앤을 보며 위안을 얻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20대 중반즈음 하는 일마다 번번이 실패하던 그 시절, 불현듯 어린 시절 보았던 빨강 머리 앤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라 1화부터 50화까지 내리 보았었더랬지요. 앤의 못말리는 수다에 킬킬 웃다가, 매튜 아저씨나 마릴라 아주머니 때문엔 펑펑 울다가, 길버트를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다가. 무엇보다 앤의 정직하게 순수한 초긍정의 캐릭터 덕에 덩달아 긍정의 에너지가 솟아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영옥 작가 또한 앤의 성장담 속에서 긍정의 에너지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며, 빨강 머리 앤에 이렇게나 주옥같은 대사가 많았었나 새삼 놀랐더랬습니다.

 

p.22 한 그루의 평범한 벚나무를 아늑한 자기만의 방으로 멋지게 바꿀 줄 아는 앤은 사랑스럽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앤의 그 말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다. 기다리고 고대하는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게 실제 우리의 하루다. 하지만 그럴 때 앤의 말을 꺼내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희망이란 말은 희망 속에 있지 않다는 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그렇다고 작가가 빨강 머리 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이 '앞으로는 다 잘 될 거야.'라는 식의 메시지는 분명 아닙니다. 오히려 성공보다는 실패가 훨씬 더 흔히 일어나는 것임을, 때문에 우리가 실패라는 녀석을 당당히 받아들여야 함을 이야기 합니다. 또한 슬픔을 억지로 이겨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현실적이죠. 하지만 전 오히려 그래서 더욱 좋았습니다. 달콤한 무조건적인 희망에의 기대는 비현실적인데다가 희망고문만큼 잔인한 고문도 없는 것일 테니까요.

 

p.170 꿈과 현실. 그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두부를 자르듯 명확히 잘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살면서 어떤 종류의 고통을 참을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p.200 기운이 날 것 같지 않고, 나게 하고 싶지도 않다면, 슬픈 채로 있는 게 낫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이고, 울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무게는 덜어내는 게 아니다. 흘러 넘쳐야 비로소 줄기 시작한다. 그래야 친구들이 다가오고, 함께 슬퍼할 수 있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에야 슬픔은 끝난다.

 

거의 매 페이지에 애니메이션에서 가져 온 삽화들과, 앤의 주옥같은 대사들이 등장하는, 이 아기자기하고 예쁜 책은 아련한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나를 다독여주는 위로를 동시에 전해줍니다.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실패가 있고, 누군가의 웃음 뒤엔 다른 사람의 눈물이 있다는 말, 하지만 인생에 실패란 없다는 그 말을 되새기며 살아야겠습니다. 10대 때 즐겨 보았고, 20대 때 복습하며 위로 받았던 빨강 머리 앤. 30대인 지금 다시 본다면 또 어떨까요? 아무래도 조만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몽실서평단을 통해 아르테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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