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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ㅣ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란 소녀가 있습니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의 앤 셜리. 어렸을 적에 참 재밌게 봤던 애니메이션입니다. 그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백영옥 소설가의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작가는 번번이 등단에 실패하여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졌을 때 빨강머리 앤을 보고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그뒤로도 힘든 일이 생길 때,
그래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 에세이집을 내려고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 또한
빨강머리 앤을 보며 위안을 얻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20대 중반즈음 하는 일마다 번번이 실패하던 그 시절, 불현듯 어린 시절 보았던 빨강 머리
앤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라 1화부터 50화까지 내리 보았었더랬지요. 앤의 못말리는 수다에 킬킬 웃다가, 매튜 아저씨나 마릴라 아주머니 때문엔
펑펑 울다가, 길버트를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다가. 무엇보다 앤의 정직하게 순수한 초긍정의 캐릭터 덕에 덩달아 긍정의 에너지가 솟아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영옥 작가 또한 앤의 성장담 속에서 긍정의 에너지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며, 빨강 머리
앤에 이렇게나 주옥같은 대사가 많았었나 새삼 놀랐더랬습니다.
p.22 한 그루의 평범한 벚나무를 아늑한 자기만의 방으로 멋지게 바꿀 줄
아는 앤은 사랑스럽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앤의 그 말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다. 기다리고 고대하는 일들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게 실제 우리의 하루다. 하지만 그럴 때 앤의 말을 꺼내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희망이란 말은 희망 속에 있지 않다는 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그렇다고 작가가 빨강 머리 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이 '앞으로는 다 잘 될 거야.'라는 식의 메시지는 분명 아닙니다. 오히려
성공보다는 실패가 훨씬 더 흔히 일어나는 것임을, 때문에 우리가 실패라는 녀석을 당당히 받아들여야 함을 이야기 합니다. 또한 슬픔을 억지로
이겨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현실적이죠. 하지만 전 오히려 그래서 더욱 좋았습니다. 달콤한
무조건적인 희망에의 기대는 비현실적인데다가 희망고문만큼 잔인한 고문도 없는 것일 테니까요.
p.170 꿈과 현실. 그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두부를 자르듯 명확히 잘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살면서 어떤 종류의 고통을 참을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p.200 기운이 날 것 같지 않고, 나게 하고 싶지도 않다면, 슬픈 채로 있는
게 낫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이고, 울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무게는 덜어내는 게 아니다. 흘러 넘쳐야 비로소 줄기 시작한다.
그래야 친구들이 다가오고, 함께 슬퍼할 수 있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에야 슬픔은 끝난다.
거의 매 페이지에 애니메이션에서 가져 온 삽화들과, 앤의 주옥같은 대사들이 등장하는, 이 아기자기하고 예쁜 책은 아련한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나를 다독여주는 위로를 동시에 전해줍니다.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실패가 있고, 누군가의 웃음 뒤엔 다른 사람의 눈물이 있다는 말,
하지만 인생에 실패란 없다는 그 말을 되새기며 살아야겠습니다. 10대 때 즐겨 보았고, 20대 때 복습하며 위로 받았던 빨강 머리 앤. 30대인
지금 다시 본다면 또 어떨까요? 아무래도 조만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몽실서평단을 통해 아르테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