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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처음 다산북스 페이스북에서 도서 홍보차 올려놓은 표지 (띠지 벗기기 전과 벗긴 후)를 보고 완전 반해버렸었습니다. 이런 표지 디자인을 가진
소설이라면, 분명 유쾌하고 재밌을 게 뻔하라리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흔치 않은 지극히 한국적인 코지미스터리라니요!
무순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서울로 도시로 나갔던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장레를 치르기 위해 충청도의 완전 깡촌
마을은 아홉모랑이로 모여들지요. 그렇게 무사히(?) 장례는 치렀으나, 이대로 식구들이 떠나고 나면 홀로 남겨질 할머니가 걱정입니다. 배우자를
여의고 난 직후가 가장 위험하다는데...... 그래서 가족들(고모들, 큰아버지, 아빠)이 모종의 회의를 거쳐 삼수생 강무순을 할머니곁에 한동안
남겨두기로 결정하고 다음날 이른 아침 무순이가 늦잠을 자고 있을때 그들은 도망치듯 할머니댁을 떠나가지요. 그렇게 할머니와 둘이 남게 된
무순.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텔레비전도 고작 k사만 간신히 나오는 상태. 무순은 멘붕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시골의 아침이란 시간하곤
상관없이 해가 뜨면 시작인지라, 해가 긴 여름엔 새벽 대여섯시면 하루가 시작되지요. 때문에 할머니는 늘 해가똥꾸녕을 쳐들 때까지 자는
무순이를 게으르다고 타박이십니다. 무순이는 무순이대로 미칠 노릇입니다. 심심해서. 폰도 안되고 텔레비전도 안나오니 심심해서 돌 지경이었지요.
그러다 자신이 6살에 남긴 보물지도를 발견하고, 6살 강무순이 남긴 보물 다임개술을 찾기 위한 모험이 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15년전 마을에서
일어났던 4명의 소녀 실종사건을 알게 되고, 의도치는 않았으나 홍간난여사와 강무순양은 이 사건의 진상을 점점 파헤치게 됩니다.
솔직히 이 작품은 독자를 이야기속에 미치도록 몰입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때문에 용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들의 긴장감을 유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저는 이 소설의 반전 비스무리한 걸 이야기
1/3 지점에서 짐작했고 결말에선 그것이 여지 없이 맞어떨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천재인 걸까요? 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미치도록 재밌습니다. 서술자 무순이의 말투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가 특유의 경쾌한 문체가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합니다. 홍간난 여사를 대표로하는
시골 할매들의 생활상 묘사 또한 저희 할머니를 떠올리게 해서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었던 건 역시 손녀 강무순과 할매
홍간난 여사의 미친 케미스트리였지요. 격한 말이 오고가는 와중에 서로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둘의 콤비플레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습니다.
거기에 감초처럼 종종 등장해 이야기의 비주얼(?)을 살려주시는 꽃돌이도 그렇구요. 역시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캐릭터였고, 매력적인
캐릭터에 환장하는 저는 당연히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이 소설, 마냥 웃기고 코믹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결말로 치달을수록
밝혀지는 15년 전 사건의 진실은 굉장히 씁쓸하고 안타깝거든요. 가끔 한스러운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눈물이 나게도 하구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 인생사가 원래 그런 것을......
책을 먼저 읽으신 어떤 분의 서평을 보니, 사계절 시리즈로 내면 좋겠다고 하던데... 그 서평을 보고 전 이미 다른 계절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무순양이 드디어 대학 입학을 앞두고 홍간난 여사 댁에 방문한 겨울의 이야기 정도가 어떨까요? 편집자님의
스토킹으로 작가님을 설득하여 이 작품이 탄생했다고 하던데, 그 편집자님의 스토킹을 다시 한번 응원하는 바입니다!
p.359 깔끔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어떤 일이 칼로 자른 무처럼 깨끗한 시작과 결말을 갖는 걸 본 적이 없다. 낮과 밤은 분명 구분할 수 있지만, 낮이 밤이
되는 순간을 특정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그렇게 명료하지 않다고. 인터뷰까지 할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한 말이니까 아마 맞는
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