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F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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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직까지도 소설은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믿는 촌스런 독자에게, 요즘은 입 맛에 딱 맞는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그 소재가 '가족'에서 출발한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얻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어서 대부분의 소설은 작가의 신세 타령과 형이상학적인 미사여구를 힘들게 참다 책 장을 덮은 일이 다반사이다.

그러나, 일본 소설 [비타민 F]는 오히려 가족이란 소재를 통해 생생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익숙한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 보거나, 절실한 공감의 이야기를 속삭여 독자의 시선을 붙잡은 것이다.

7편의 단편이 이 소설집을 이루고 있다.  [어머니 돌아오다] 에서는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며 가족과의 단절을 시도한 어머니를 ,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인 아버지가 용서해 자식들이 아연해 지는 신선한 소재이다.  [주먹]은 이제는 쇠락해 가는 삼십대 중반의 남성이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러 볼 각오를 하고, 그 결과 여전히 가족으로 이어진 한 부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활력을 얻는 이야기이다.  [떨어진 복권]은 영원히 당첨되지 못할 복권을 사모으며 일탈을 꿈꾸는 가장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를 추억하고 아들과의 세대차를 감내하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이다.  [판도라]에서는 아직 어린 줄 알았던 딸이 성관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 아버지의 충격이,  [셋짱]에서는 이지메의 문제를,  [바닷가 호텔]에서는 첫 사랑의 추억이 담긴 호텔을 이혼의 위기에선 부부가 가족여행으로 방문하며 겪는 감정의 변화를 그려냈다.  마지막 단편인 [부스럼 딱지 눈꺼풀]은 내게는 가장 문학적으로 완성되었고, 공감이 많이 가는 작품이었다.

대학시절 1학년 2학기에 교내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내게, 2학년이 되어 맞은 신입생 후배는 부담스러웠다. 경력 상 한학기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후배들에게 선배의 권위를 내세우려 노력했고, 그 결과 후배들은 힘들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한 후배가 '형은 왜 이렇게 강한 척 하세요'라고 던진  질문은 아직까지 기억에도 선명하다.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부스럼 딱지 눈꺼풀]에서는 가장으로 입장을 바꿔 구경할 수 있었다. 완벽해 보이려고, 모범이 되려고 노력하는 가장의 모습이 자식들에게 누적된 답답함으로 부담이 되었고, 어느 날 폭발한다. 그 폭발의 순간 보여준 인간적으로 약한 아버지의 모습에 오히려 자식들은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

가정이란 이런 곳인 것 같다. 잘되고 완벽한 모습을 서로에게 기대하지만 사람이기에 지닐 수 밖에 없는 결점과 상처마저 보듬고 안아주는 곳이고, 잘 난 사람을 통해 분발하지만 못 난 사람들을 통해서도 쉴 수 있는 것이 우리들 인간의 심리인 모양이다. 아무리 망가지고 못난 짓을 해도 최후의 순간 돌아갈 곳이 있다면 그것이 가정일 것이다.  대학 시절 후배들에게 조련사가 아니라 쉼터로서 자리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지금 후회하듯, 나의 가정을 인재양성소가 아니라, 최후의 보루로 안온하게 만들어야 겠다는 깨달음이 생겼다.  그것이 '가족의 힘'이고 이러한 각성이 이 '이야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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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브리지트 지로 지음, 편혜원 옮김 / 관수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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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젠가부터 죽음에 관한 소재에 깊이 빠져있는 나의 독서 습관을 발견하고 선뜻 놀란 적이 있다.  나처럼 죽음이란 것과 멀리 있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주위에 아픈 사람도 없고, 최근에는 정말 이별할 경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그리운 사람이 내 곁을 떠난 적도 없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나라는 인간은 갖가지의 필수 감정들이 생활에 필요하기에, 부족한 요소들은 알약을 삼키듯이 책을 통해 채우는 것이라고 자평을 한 적도 있다.

소설을 분류하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지만, 내가 창안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거시적 소설과 미시적 소설이라는 것인다. 거시적 소설은 굵은 플롯에 의해 휙휙 지나가듯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이고, 미시적인 소설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등장인물의 삶과 감정을 치밀하게 파헤치는 소설을 뜻한다. 내 취향은 거시적인 소설을 좋아하지만, 가끔 미시적인 소설에 끌리기도 하는데 [그래도, 이제는..]이 이러한 책이다. 아마 죽음이라 소재를 미시적으로 접근해서인 것 같다.

남편이 죽고 미망인이 된 여자가 , 그 소식을 통보 받고 장례를 치루고, 더 이상 그가 없는 집으로 돌아갈때까지의 이야기이다. 그의 죽음을 경계로 그녀의 삶은 확연히 달라지는 모양이다. 작가는 그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삶에 대한 감정을 풀어 놓고 있다. 죽음을 통해 삶을 재확인하듯, 자신과 주의의 삶에 대해서 관찰하고 있기에, 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의 것이라 보인다.  다만 그 관찰의 대상이 주인공 자신이기에 마치 '유체 이탈'의 경험을 풀어 놓은 듯 냉정하다. 그 냉정함 속에서 꾹 참고 있는 슬픔을 발견할 수도 있고, 오히려 솔직한 표현은 '멍한 상태'인 주인공의 심정을 묘사해 놓았다.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 채 바뀌는데 세상은 그대로이고, 각자 자기의 삶으로 돌아가고 침실로 들어가 동반자와 섹스를 나누는 타인의 삶을 참을 수 없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만큼 죽음이란 이별은 상처가 큰 모양이다.

죽음으로 충만한 정서의 소설을 읽고 나는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내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내고 각오를 다시 다진다. 그러기에 죽음에 관한 소설은 내게 삶을 위한 필수 비타민인 것 같다. 나는 살아있고, 내 사랑하는 사람도 살아있으니 다시 삶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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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킹의 [총알차 타기]는 정말 빈약한 책이다. 택시를 탓는데 총알같이 빨리가고 알고보니 드라이버가 몬스터란 스토리다. 내게는 이 책이 흉물스런 몬스터처럼 느껴졌다.

스토리도 빈약하고 양도 얼마되지 않는다. 여기에 책 값은 무려 5,200원이나 한다. 이 책을 주문했을 당시 너무 화가나 출판사에 항의서한을 보냈을 정도이다. 인터넷에서 다운받는 형태의 e-book을 문학사상사에서 단행본 출판했다. 당시 인터넷 다운비에 비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은 비쌌다.

스티븐 킹이 이 책을 썼을 당시... 돈이 무척 궁했나보다. 이 책을 읽고 스티븐 킹에 대해 실망하는 독자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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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 14억, 젊은 부자의 투자 일기
조상훈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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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의 14억의 자산을 모은 저자의 이야기는, 부자가 되고픈 모든 사람에게 흥미거리일 것이다. 보통 독자라면 품었을 '빨리 부자가 되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장 두장 페이지를 넘기고, 지은이의 재태크 에피소드를 읽다, 어느 순간 '오홋'하고 놀라게 되었다. 저자 조상훈은 재테크 비법과는 다른 경지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하고 있었다.

비법이 궁금한 보통 사람의 궁금증을 채워주기 위해 살짝 요약한다면 다음의 세가지이다. 첫째, 진정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어라.  둘째, 보수적으로(이말은 '안정적으로' 또는 '게으르게'라는 저자 특유의 단어가 사용되었다) 투자할 곳을 찾아라. 셋째, 성실하게 인생을 계획하라는 것이다.

사실 저자의 이런 비법들은 언듯 보면 최근의 '부자학' 도서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논지는 전술적인 접근이 아니다. 한 개인의 삶의 방식과 인생을 통괄하는 인생지침을 다루고 있는 전략적인 방안들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 서적은 '부자학'관련 도서가 아니라 인생의 계발을 위한 삶의 지침서가 되어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 너의 꿈이 부자가 되고프냐'라는 저자의 질문을 뼈아플 것이다. 부자가 되면 할 수 있는 소비의 단꿈은 꾸면서도, 실지로 부자가 될 수 있는 활동은 전무 상태인 우리들.. 조상훈씨는 인생을 다시 설계하라고 혼을 낸다. 어느 시점 '리셋'버튼을 누르고 다시 부팅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각오를 가지고 계획을 세워 덤비라는 것이다. 시종일간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하라는 설명이다. 이런 기회는 자주오니 서두르지말고 완벽한 찬스에 들어가라는 '게으른' 투자론은 독자에게 새로운 충격을 준다.  흔히 있는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마라'는 포트폴리오론에 대한 저자의 반론과, 철저히 이기적이어야 사회를 도울 수 있다는 저자의 논법은 참신하기만 한다. 끝까지 읽어보면 부자학에 눈뜨기 보다는 인생 담론에 철학적 고뇌를 담게 되니, 나름대로 저자의 부자학은 깊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인생의 깊이와 절제를 갖춘 저자는,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다. 군 장교 출신답게 목표를 정하고 자신을 통제하며 고지를 접근해 가는 저자의 방식은, 그 반대인 자유스런 삶을 추구하는 이에게는 질리게 하는 면이 있다. 이것이 저자가 설파한 방법론의 문제일 수도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인생관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방식을 바꿀 의지나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무용지물이다.

여기에 인생의 선택방식이 있다. 현재를 즐기고 최대한 이용하자는 쾌락주의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참아내는 절제의 방식이 있다. 당신은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 저자의 방식은 당연히 두번째이다. 단 빨리 절제의 삶을 시작할 수록, 빨리 고지에 오를 수 있다는 주장의 저자가 독자에게 해주는 격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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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과장 1
히로카네 겐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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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학을 졸업하고 내 인생의 진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의외로 선택할 수 있는 진로는 몇 가지 되질 않았다. 첫째, 어느 회사에 들어가 직장인으로 월급쟁이 생활을 하는 것, 둘째, 집안의 돈을 끌어들여 사업이나 장사를 해서 사장이 되는 것, 셋째, 대학원에 진학해 계속 공부하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집안에 돈이 많지도 않고, 계속 공부할 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었다. 그렇기에 [시마과장]은 내게도 아주 재밌는 만화였다.

어느 직장에도 있을 계파(라인의 문제),  남의 성공에 시샘하고 분통을 터뜨리는 직장인들, 자신의 무능력에 좌절하기도 하고 반대로 조직의 성공에 편승하기도 하는 직장 생활의 면면이 생생한 드라마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시마과장]은 직장인의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오히려 환타지에 가깝다.

특별히 작업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절세의 미인들이 척척 달라 붙는다. 그녀들은 나와 뜨거운 잠자리를 나누고 쿨하게 제갈길을 간다. 그러나 그녀들의 가슴에 나는 영원한 연인으로 남아 있다. 재회할 수록 그녀들의 아쉬움은 커져 간다. 한편 그녀들은 교묘하게 내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와 연결돼 나의 성공을 내조한다. 남성의 환타지이다.

내가 존경할 수 잇는 훌륭한 상사가 있다. 능력있고, 공명정대한 그 상사와 난 서로 흉금을 터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다. 그 상사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고, 자연스레 나를 이끌어 내게도 승진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직장인의 환타지이다.

낮에는 직장에서 시달리고 밤에는 가장으로서 의무에 시달리는 우리 남성들. [시마과장]은 다행히 어느날 아내가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며 별거를 선언한다. 얼마 후 남자가 생겨 이혼을 요구한다. 이제부터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가 시작된 것이다. 아내의 귀책사유로 이혼했기에, 예쁘게 잘자란 딸 아이는 언제나 아빠편이다. 외로울 수 있는 명절이나 쉬는 날, 언제나 딸이 찾아 오고, 딸이 없을 때는 여러 여자들이 나를 외로울 틈이 없게 만든다. 중년 남성의 환타지이다.

[시마과장]을 읽고 있을 때, 다행히 아내와 아들은 아빠를 내버려 두었다. 가족이 만들어 준 달콤한 휴식시간에 남편은 만화 속에서 환타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가정이 휴식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현실은 씁슬하고 세상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해결되는 [시마과장]의 세계는 그래서 환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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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4-03-09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 환타지 속 세상이 좋았는감? 영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