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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브리지트 지로 지음, 편혜원 옮김 / 관수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언젠가부터 죽음에 관한 소재에 깊이 빠져있는 나의 독서 습관을 발견하고 선뜻 놀란 적이 있다. 나처럼 죽음이란 것과 멀리 있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주위에 아픈 사람도 없고, 최근에는 정말 이별할 경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그리운 사람이 내 곁을 떠난 적도 없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나라는 인간은 갖가지의 필수 감정들이 생활에 필요하기에, 부족한 요소들은 알약을 삼키듯이 책을 통해 채우는 것이라고 자평을 한 적도 있다.
소설을 분류하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지만, 내가 창안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거시적 소설과 미시적 소설이라는 것인다. 거시적 소설은 굵은 플롯에 의해 휙휙 지나가듯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이고, 미시적인 소설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등장인물의 삶과 감정을 치밀하게 파헤치는 소설을 뜻한다. 내 취향은 거시적인 소설을 좋아하지만, 가끔 미시적인 소설에 끌리기도 하는데 [그래도, 이제는..]이 이러한 책이다. 아마 죽음이라 소재를 미시적으로 접근해서인 것 같다.
남편이 죽고 미망인이 된 여자가 , 그 소식을 통보 받고 장례를 치루고, 더 이상 그가 없는 집으로 돌아갈때까지의 이야기이다. 그의 죽음을 경계로 그녀의 삶은 확연히 달라지는 모양이다. 작가는 그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의 삶에 대한 감정을 풀어 놓고 있다. 죽음을 통해 삶을 재확인하듯, 자신과 주의의 삶에 대해서 관찰하고 있기에, 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의 것이라 보인다. 다만 그 관찰의 대상이 주인공 자신이기에 마치 '유체 이탈'의 경험을 풀어 놓은 듯 냉정하다. 그 냉정함 속에서 꾹 참고 있는 슬픔을 발견할 수도 있고, 오히려 솔직한 표현은 '멍한 상태'인 주인공의 심정을 묘사해 놓았다.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 채 바뀌는데 세상은 그대로이고, 각자 자기의 삶으로 돌아가고 침실로 들어가 동반자와 섹스를 나누는 타인의 삶을 참을 수 없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만큼 죽음이란 이별은 상처가 큰 모양이다.
죽음으로 충만한 정서의 소설을 읽고 나는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내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내고 각오를 다시 다진다. 그러기에 죽음에 관한 소설은 내게 삶을 위한 필수 비타민인 것 같다. 나는 살아있고, 내 사랑하는 사람도 살아있으니 다시 삶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