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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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이야기이다.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대신해 하룻밤 동안 장거리 도보여행을 하는 이야기이다. '보행제'라고 한다. 그저 걷기만 하는 반복적인 상황이 이 소설의 겉모습인데 별 이야기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독자들의 마음에 주인공 고다와 도오루의 갈등이 쑤욱 마음에 들어와 맺힌다. 그리고 소설 속의 아이들은 성장하고 독자의 마음속에 아릿한 자국이 생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고민하고, 열려지 않은 세상을 동경하던 청소년 시절을 누구나 겪었다. 왠지 모르게 열기가 있던 시절, 몸은 컸으나 마음을 어렸던 시절, 그 풋풋한 시간이 되살아난다. 인생을 벼리는 그 시간이 지치고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도 친구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내게는 이 소설이 친구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였다.


몇 년 전 집안의 우환으로 주위 아는 사람에게 헌혈을 부탁하는 처지에  놓인 적이 있었다. '네 피를 뽑아다오'라는 부탁을 해 본 사람은 공감할 테지만 아무에게나 부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지만 '야, 네 피좀 빌리자.'라고 연락했던 그들이 생각해보니 내게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지금 잘난 체하며 살고 있지만, 내가 코 찔찔 흘리던 유치한 시절을 기억하는 그들이 내 친구들이다. 내 친구들에게 [밤의 피크닉]을 권한다. 기회가 되면 '바로 너희가 내게는 [밤의 피크닉]에 나오는 도오루나 시노부와 같은 친구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온다 리쿠는 내 독서 구장에서 2연타석 홈런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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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풍수와 함께 하는 잡동사니 청소
캐런 킹스턴 지음, 최이정 옮김 / 도솔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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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를 끼고 사십니까?


저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합니다. 말로만 추구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번잡하게 늘어놓고 정리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인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을 보았을 때 화끈하고 볼이 빨개졌습니다. 저를 가리키는 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 같이 평소에 잡동사니를 치우지 않아 강박관념이 있는 분들이 이 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제가 가진 잡동사니는 다음과 같은 부류들이 있습니다.


먼저 언젠가 다시 쓸 것이라 쌓아두는 것입니다. 예전의 옷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전자제품이나 공구들, 읽겠다고 사고 내버려둔 책들이 이런 부류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기념품들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선물로 준 것이기도 하고 여행을 갔다 구해온 물건들이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가족의 취향이나 집의 분위기에 맞지 않아 그냥 짊어지고 가는 물건들입니다. 도대체 삼십 대에 받은 대형 미키 마우스 벽걸이 시계는 왜 아직도 보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빈약한 존재감의 잡동사니들입니다. 이것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 집의 다락방이나,  보일러실, 문 뒤쪽, 장롱의 윗부분에 방치된 채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자의 글은 마사 스튜어트류의 아름다운 집 정리정돈보다는 심오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집안의 잡동사니들이 에너지의 흐름을 막아 좋지 않다는 풍수론을 제기합니다. 오래된 물건, 방치된 물건은 나쁜 에너지 또는 파동을 가지고 있어 긍정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막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저자는 이 주장의 근거로 확실한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잡동사니를 치워보고 그 효과를 경험하라는게 저자의 목소리입니다. 물론 저자의 책이나 강연을 듣고 효과를 본 사람들이 보낸 편지가 제시되기도 합니다.


논리는 빈약하지만 저는 저자의 주장에 동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느 구석에 치워둘 물건이 방치되어 있다면 저도 모르게 신경을 쓰기에 에너지를 조금씩 쓸 것이라 생각합니다. 방치된 기간이 오래될수록 소모되는 에너지는 그만큼 많을 것입니다. 반대로 뭔가 치우기 시작했다면 묵은 체증이 내려간 시원함이 제게 플러스 에너지로 변할 것입니다.


이 책은 제 마음에 있는 찜찜함의 도화선에 불을 댕겼습니다. 오랜만에 묵을 때를 걷어내고 안 쓰는 물건을 내다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고장 난 BOSE 라디오를 팔아 오만원의 용돈도 챙겼으니 구체적인 이득도 생겼습니다.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유모차와 카시트도 이 책을 계기로 버렸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입지 않은 옷과 도서도 정리할 생각입니다.


저자는 단순히 잡동사니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몸 안의 숙변을 비롯해 심리적인 잡동사니를 버릴 것을 권합니다. 최종적으로 물질에 대한 부질 없는 욕망을 버릴 것을 권합니다.


신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분에게는 좋은 촉매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미니멀리즘,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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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코스모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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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K형!


오랜만이요. 추운 겨울에 함께 일했는데 이제 봄이 되었습니다. 잘 지내시죠?

[초콜릿 코스모스]란 소설 읽어보셨어요?


온다 리쿠라는 일본 작가의 소설인데 형이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영화에 TV에 연극에 바쁘시겠지만, 형 같은 배우들이 읽어 볼만한 소설이에요. '유리 가면'이란 만화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이 소설도 틀림없이 재미있을 거에요.


[초콜릿 코스모스]는 갈색의 코스모스 꽃을 이르는 말인데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가냘픈 꽃 한 송이에 우주(코스모스)가 실려 있다면 그것은 소우주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세계라며, 작가는 연극 무대를 '초콜릿 코스모스'란 단어를 빌어 표현했어요. 작은 무대에서 세상의 삼라만상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온다 리쿠의 [초콜릿 코스모스]는 이런 무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요. 극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합니다. 모두 한 편의 공연을 올리는 데 필요한 사람이에요. 얼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로운 연극 프로듀서 세리자와 다이지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연기에 한계를 느낀 배우 아즈마 교꼬, 재능을 있지만, 글의 물꼬가 터지지 않는 작가 가미야씨가 [초콜릿 코스모스]에 나오는 주요 인물이에요.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천재 연기 소녀 사사키 아스카를 발견하고 세리자와의 신작을 위한 오디션에 모여들어요. 세리자와의 연극에 출연할 배우를 오디션 하는 과정에 이들은 연기자로서 자신의 삶과 연극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맞아요. 글로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 배틀도 흥미롭지만 제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연기에 대해 작가가 보여준 여러가지 생각이에요.


사실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우리 친하잖아요. 긴 시간 형은 저의 연출을, 저는 형의 연기를 보아 왔으니 서로 할 말이 많다면 많을 수 있지요. 근데 새삼스레 형에게 이 책을 권하는 것은 매너리즘 때문이예요. 언제부터인가 형의 연기가 재미가 없어요. 교과서 같은 정답의 연기를 보여주시는데 그게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신선하지가 않아요. 연기자가 아니라 월급쟁이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냥 고개는 끄덕거려지지만 '아하'하고 감탄은 나오지 않는 연기에요. 이 책을 보면 연극인들의 치열한 모습이 재미있어요. 더 나은 경지에 닿으려고 어려운 과제를 내고 자신을 몰아붙여요. '무대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곳이구나' 하는 감상이 생기고 더불어 자신의 교만함과 진부함을 반성하게 돼요. 그래서 형한테 이 책을 권해봅니다. 많은 이들에게 초심으로 돌아가 최고의 경지를 추구하게 하는 자극을 줄 것 같아요. 워낙 빨리 변하는 곳에서 일하니 잠시만 방심하면 구태의연해 보이잖아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로 이 책을 읽어보세요. 투지를 불타오르게 합니다.


형, 봄이 가기 전에 다시 만나요. 다음에 만나면 [초콜릿 코스모스]를 읽은 소감을 서로 나누어봐요. 신선한 자극을 받고 투지를 불태우며 다시 일합시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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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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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자주 쓰는 사람이다. 신입 사원 시절 사보에 글을 낸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그 글이 사내외에 알려지더니 여기저기서 글 청탁이 왔었다. 그래서 한동안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자부했는데 이런 착각에서 깨어나게 된 사건이 있었다. 기획 안을 작성하는데 함께 일한 작가가  내가 써온 기획 안을 놓고 첨삭을 하면서 빨간 펜을 휘둘렀다. 그는 논술 과외 선생을 오래했는데 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수정안은 '피바다'가 되었다. 그때야 깨달았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고 자주 쓰는 사람이란 것을. 그 일의 후유증으로 그 후 글 부탁을 될 수 있는 대로 거절한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부럽다. 특히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쓰는 사람이라면 정말 부럽다. 나는 쉬운 내용도 어렵게 보이게 만드는 고난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글쟁이들]은 나 같이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 아니면 '글 잘 쓴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도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대한민국의 글 잘 쓰는 사람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저자 구본준이 찾아낸 열 여덟 명의 글쟁이들의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자기가 쓰는 분야에 대해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자료를 수집한다. 글 쓰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규칙적으로 시간을 배분한다. 가능한 쉽고 재미있게 쓴다.  나는 열 여덞 명의 글쟁이 중 첫 번째 정 민 교수가 알려준 문장을 단출하게 추리는 방식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조금이라도 쓸데없으면 글을 쳐낸다. 내 글에 적용해보니 글의 군살이 없어져 읽기 쉽고 보기 좋다. 여행가 한 비야의 수정 방식도 도움이 된다. 글을 쓰고 낭독하면서 운율과 리듬을 점검하는 그녀의 비법은 쉽지만 큰 효과가 있다. 변화 경영 저술가 구본형의 책 만드는 방법은 저술가로 직업을 삼으려는 사람들은 한쪽에 메모해두고 실천해야 할 내용이다.


이 책의 단점도 있다. 한국의 글쟁이로 뽑힌 이들이 어떤 조건으로 선정되었는지 애매하다. 뒤로 가면서 저자의 관심 분야인 미술 쪽으로 작가의 선정이 몰려 있는 것도 아쉽다. 골라낸 작가의 숫자만큼 다양한 글쓰기 방식이 나왔으면 했는데 대동소이한 내용이 많다. 책의 기획 의도와는 달리 여러 글쟁이의 신상 정보와 책 안내에 치중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인문학 적으로 다양한 저자와 책들이 소개되어 새로운 독서의 돌파구를 열어주기에 단점을 보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열심히 잘 쓰다 보면 구본준 기자와 만날 일이 있을까? '자주 쓰는 사람'보다는 '잘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전에 내용을 채우는 일이 먼저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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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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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한 신경의학자의 임상 기록이다.


글의 전반부를 읽어보면 인간이 오직 물질로만 설명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느껴진다. 우리의 생각, 지식, 판단 등 모든 사유가 두뇌 속 특정 부위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의 과정과 결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뇌의 기능이 문제가 되는 환자들의 특징적 사례는 새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글의 중반부를 넘어서며 저자는 그들이 인간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보이는 행동을 주목한다. 곧 물질로서 설명되는 존재를 넘어 '영혼'이라는 추상어로 이해하고 싶은 인간성의 발현을 찾아보는 것이다.


단기 기억상실증, 장기 기억상실증, 자폐증, 두뇌 활동의 결함으로 획득한 천재성, 세부는 볼 수 있으나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병 등 이 책에는 드라마의 소재로 삼을 만한 증후들로 가득하다. 정보원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그러나 뇌기능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존엄성을 찾는 본능적인 노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 번에 머리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두고두고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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