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
유장근 지음 / 청암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

매년 20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중국을 방문하고, 외국에 나가는 한국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중국을 다녀온다고 한다. 거꾸로 한국에 입국하는 중국인 숫자도 일본과 1, 2위를 다툰다고 한다.


타이완이나 홍콩 입국자까지 포함시키면 매년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중 중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두 나라 사람들의 왕래는 역사 이래 가장 활발한 상황이라고 한다.

서점가에는 중국여행 경험을 엮어 낸 책 역시 수두룩하다. 여행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이 책들은 대부분 눈으로 보는 여행을 위한 정보들이 빼곡히 담겨있거나 여행을 통해서 보고, 듣고, 느낀 지은이의 감흥을 적은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유장근이 쓴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는 그동안 많이 출간된 중국여행 관련 책과는 다르다. 유장근은 중국근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과 교수다.

따라서, 중국변방을 여행하는 그의 발걸음도, 상해시내를 한가하게 산책하는 걸음도, 동네 사람들과 떠난 뱃놀이 여행도 늘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과 문화와 마주친다.

유장근은 이 책이 "30여 년 동안 매달려온 중국 역사 연구를 기반 삼아, 최근 몇 해 동안 중국 현지를 직접 관찰하면서 얻은 성과를 대중과 교감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밝히고 있다.

책에 실린 글들은 2004년 사천, 귀주 지방 여행과 2006년 상해 사범대학 방문교수로 지내는 동안 상해를 중심으로 곤명, 대리, 여강에 이르는 남방여행과 서안, 연안을 거쳐 거얼무, 돈황, 우루무치에 이르는 서북방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아울러, 여행지이면서도 1년 동안 머물렀던 생활터전으로서 상해를 중심으로 살펴본 중국인들의 일상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 바둑, 대장금, 축구, 한류를 통해 살펴보는 양국 교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붉은 수수밭, 홍등, 집으로 가는 길 등 장예모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영화로 본 중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엮어져 있다.

상해 사범대학에 교환 교수로 있는 동안 쓴 글들은 대부분 경남도민일보에 '지금 중국에선'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이다. 당시 그는 신문사로부터 '읽기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게'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가급적 그 기준에 맞추어 쓰려고 노력한 결과라고 한다.

지은이는 멜라민 파동과 같은 경험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가난하거나 혹은 싸구려 나라로만 인식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몇 년 사이 중국은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모순을 일으키고 충돌하면서도 상생을 추구해야 할 국가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이해의 수준도 이에 부응할 때가 된 것이다."(본문 중에서)

한국과 중국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맞추어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나 이해수준도 높아져야 하는데, 역사학자의 눈으로 탐색한 중화제국에 대한 관찰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중국은 '중화제국'인가?

유장근 책 제목을 왜 '중화제국'이라고 지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중국에서 변방은 내부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티벳이나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일어났던 신강지역 뿐만 아니라 서북방지역으로 갈수록 식민지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상해, 북경을 중심으로하는 중심지역과 변방의 관계가 제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통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가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정치, 경제적 관계에 있어서는 국가를 너머 이루어지는 제국의 지배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 말기 중국이 일시적으로는 패전국,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제국'의 속성을 가진 나라라는 것이다.

"중국인 친구들과 서북부 지역의 여행담을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의 경제적 격차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얼굴이 금방 어두워진다. 이 격차는 바로 한족과 소수민족이라고 하는 민족적 차별까지 내포하고 있으며, 나아가 두 개의 중국으로 분열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이러한 모순을 상징하는 사건이 2007년 연초에 신강에서 중국공안당국이 동투르키스탄 독립운동단체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여 18명을 사살하고 비슷한 인원을 체포한 일이다. 이 단체는 지난 2세기 동안 신강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동북 변방 우루무치를 갔을 때 그동안 갖고 있던 '중국'이란 개념에 혼란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그곳은 역사와 민족, 문화, 종교, 일상생활, 그리고 생태적 조건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과는 별도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내 소수민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피력하면서, "근대기 한족에 의해 강제된 식민지성에 주목"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여행을 통해 비한족 세계에 대한 한족의 지배력이 예전보다 더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모택동이 이국으로 보았던 티베트 동부 사회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중국의 일부가 되어 있다. 중국은 이 점에서 더 강해질 수 없을 만큼 동아시아에서 초강대국이 되어있다. 거기에 개혁 개방을 통해 종래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민족 문제는 좀 더 극적인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중국에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정부의 '민족 만들기' 작업 결과였다고 한다.

1950년대 해당 민족 자체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 독립된 민족이라고 규정한 민족수는 400여개였는데, 빈틈없는 통일국가의 유지와 민족 보호라는 전략에 따라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하여 한족과 소수민족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른바 민족동원론(民族同源論)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를 쓴 유장근의 중화제국 탐색에는 늘 중국과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교차한다. 그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중국인과 문화에 대하여 '바로 보기', '다시 보기'를 시도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오류, 한국 중심으로 중국을 이해하는 오류를 경계하고 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의 시선을 교차시키면서 중국을 바라보려고 할 뿐만 아니라 중국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노력 역시 진득하다.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경험을 비교해보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이런 지은이의 생각이 반영된 탓인지, 책에 포함된 중국 여행 지도에는 중국만 나와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한반도는 물론이고, 자신의 생활 터전인 마산이 다른 중국내 여행지처럼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유장근은 중국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 특별한 것,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한국과 비교하고, 유익한 것, 도움 되는 것을 볼 때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하는 고민을 잊지 않는다.

그중 특별히, 관심을 두고 소개하는 것은 구체구 황룡 같은 빼어난 관광지에 설치된 '잔도(棧道)' 이야기다. 잔도는 "시멘트나 나무기둥을 다리 삼고, 그 위에 두껍고 넓은 송판을 깔아 인도를 만든 단순한 형태"인데, 자연 경관이 빼어난 곳에 '잔도'를 설치하여 산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장근의 일행들은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산자락을 휘돌아 감는 잔도를 둔다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숲속을 거닐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정상을 향해 위 아래로 오르내리는 길만 있는데, 좌우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산책개념의 산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유장근과 일행들은 관광자원을 활용하는 중국시스템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동인을 사회주의에서 찾고 있다.

"자연경관에 대한 철저한 국가 관리나 대규모 개발은 사회주의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특히 토지가 국유인 까닭에 보호지구로 묶거나 개발을 한다고 하여도 국가에서 지불하는 비용은 우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적게 든다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티베트인들의 거주지 구채구, 종교 공간이던 황룡고사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적 목적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근대국가가 문화국가의 성격을 강조하는 수단으로써 문화재를 '창조'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의 문화재 '창조' 과정은 '혁명'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대장정 7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장정 루트를 따라가는 홍색 여행도 인기 있는 유행상품이었다고 한다.

대장정 70주년, 혁명은 관광으로 남는가?

유장근은 중국의 혁명 유적들을 둘러보면서 '혁명은 관광으로 남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성공한 자들은 이곳을 떠나 북경으로 갔고, 이후 혁명의 열정은 변색되어 갔다. 반면 그들의 성공을 도왔던 이곳의 노백성들은 여전히 어려운 자연 조건 아래서 예전처럼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 연안사람들에게 혁명은 무엇일까."(본문 중에서)

이런 회의 끝에 그의 상념은 연안에서 혁명을 꿈꾸던 조선인 혁명가들고, 님 웨일즈의 아리랑으로 유명한 김산에게까지 이어진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소멸된 연안파와 김산의 꿈은 어디에 있으며, 오늘날 그들이 연안에 남긴 흔적은 관광객들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주로 중국 변방여행기에 관한 소개다. 유장근이 쓴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주로 변방을 둘러보는 중국 여행기, 2부는 상해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중국사람들의 일상이야기, 3부는 한중 문화 비교와 영화를 통해보는 중국역사 이야기로 되어있다.

제 2부에는 한국과 다른 중국 대학 풍경, 중국의 과열된 월드컵 열기, 잘 갖춰진 중국의 학교 체육시설, 부활하는 귀뚜라미싸움, 상해에서 본 북한 식당, 상해의 역사기록관 '당안관' 등을 소개하는 글로 중국인들의 일상을 지켜보고, 평범한 중국인들과 교류하면서 느낀 이야기 그리고 세계최대도시 상해에 거주하면서 본 중국의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제 3부에는 상호교류의 시선으로 한국과 중국을 비교하는 글들이 실려 있는데, 특히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에 대한 중국인들과 중국 언론의 평가를 소개하는 글이 눈에 띈다. 유럽 축구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박지성을 소개하고 있을 분만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한국축구를 분석하는 것은 배울 점이라고 한다.

"요컨대 중국축구계의 정보 획득 노력과 그에 따른 분석은 우리가 경중(敬中)하면서 학중(學中)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소개된 영화를 통해보는 중국사회에 소개된 13편의 영화이야기 역시 꾸며진 이야기라는 본질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근현대 중국 역사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될 만한 글들이다. 독자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겨찾는 아마추어 평론가의 수준을 넘어서는 역사학자의 영화평론을 만날 수 있다.

<여행하며 중화제국을 탐색하다>를 쓴 유장근은 연구대상 중국과 실제 중국은 많이 달랐다고 한다. 그는 여행가이드의 말만 믿고 끌려 다니지 않으며, 책을 읽어보면 역사학자인 그가 지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관광지, 재래시장, 열차에서 만나는 중국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록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저자의 꼼꼼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장점이다.

역사학자가 탐색한 중화제국을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소개한 탁월한 여행기이지만, 교과서 같은 느낌을 주는 편집과 빼어난 비경을 흑백사진으로만 보아야 하는 것은 작은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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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하워드 진.도날도 마세도 지음, 김종승 옮김 / 궁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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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사건이 있은 후 7년이 지났다. 미국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안보 당국은 9.11테러 사건 직후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가 범인이라고 지목하였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오사마 빈라덴을 체포하고 알카에다를 체포하기 위하여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알카에다와 사담 후세인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거짓 정보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홍보하여, 이라크를 침공하는 주요한 명분 중 하나로 이용하였다.

이라크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여러 가지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지금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석유자원을 강탈하기 위한 침략전쟁이었을 뿐이며, 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루어진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60퍼센트가 알카에다와 이라크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미국인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의회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애국자법(테러대책법)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21세기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여전히 지배집단이 언론을 이용해 정치 선전활동에 필요한 지원을 받고,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고도의 사상 주입을 학교와 학생들에게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하워드 진의 주장이다.

“학생들은 정부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진실이라고 말하거나, 암시하거나, 제시하거나 연관 짓는 정부의 주장을 듣고 또 들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말 한마디로 그 주장을 부정한다고 해도 이미 산을 이룬 거짓말들을 간파할 수는 없다.”(본문 중에서)

노엄 촘스키 역시 “학교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열 살짜리도 이해할 수 있는 기초적인 사상에 대한 이해력은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여론조사를 비롯한 여러 증거들을 살펴보면, 교육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을 비판적이고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이 학생과 시민들의 복종심을 높인다.

오히려, 학교가 복종심을 높이고 독립적인 사고의 가능성을 차단하며 통제와 강제의 시스템 내에서 제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진보적인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과 보스턴대학 교수인 도날도 마세도의 글을 엮어낸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는 바로 이런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책이다.

교육학자인 도날도 마세도는 “우리(미국)의 교육체제가 변하지 않는다면, 학교는 아홉 살 된 아이도 쉽게 알 수 있는 너무나도 분명한 진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보지 못하는 고등교육자들을 계속 양산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도날도 마세도는 역사학자로서 하워드 진이 제시한 교수법에 따라 다양한 관점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기록과 맥락을 나란히 높고 비교한다면 학생들과 대중들이 현실을 좀 더 비판적이고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 한다.

여기서 하워드 진이 제시한 교수법이란 ‘역사 기록과 맥락등을 병치시키는 교육법’으로 모든 교육과정에 비판적 접근법을 도입하고, 모든 역사는 하나의 관점을 대변한다는 것을 직시하며, 역사는 적의 관점에서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말한다.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하워드 진은 학교가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고 한다.

“학교는 독립선언문을 가르치고,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교육하며, 평등과 모두를 위한 정의가 실재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학교는 젊은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성인교육 과정에 참여하는 나이 든 사람에게 조차 이런 이상이 날마다 어떻게 침해당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습니다.”(본문 중에서)

즉, 학교는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이상을 가르치는 대신에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 어떤 모순이 존재하는지를 분석할 수 있는 교육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는 돈이 어떻게 사회와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을 지배하는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지, 세입자나 실업자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흑인이나 유색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이것이 미국 교육체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결함이라고 주장한다.

“학교에서 젊은이들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해서는 배우지만 극소수의 부유층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그들 반대편에는 생사의 경계까지 밀려나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자녀들을 먹이기 위해, 또 학교에 보내기 위해 생활고와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계급사회의 실상은 전혀 배우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육체계가 안고 있는 커다란 결합입니다.”(본문 중에서)

학교는 모두가 ‘하나’라고만 가르친다.

하워든 진은 자신 역시 대학원을 졸업하고 역사학자가 될 때까지 이런 교육을 받아왔다고 말한다. 계급 격차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깃발, 충성, 서약, 맹세, 아메리카 이런 단어들을 통해 늘 모두가 하나라고 배웠다는 것이다.

세상일은 있는 그대로 발아들이도록 배웠고, 현실에 도전하는 것은 배우지 못했으며, 누군가는 부자로 누군가는 가난한 자로 살아가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교육 역시 현존하는 제도에는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으며, 역사 교육 역시 위대한 대통령과 전쟁 영웅 이외에도 다른 의견을 가졌던 사람들, 체제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배우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즉, “학교는 상황이 이러하니 너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굴어야 하며, 그저 현존하는 체제의 일부가 되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교육학자인 도날도 마세도 역시, 역사가 선택적으로 삭제되는 교육과정을 통해 미국은 모두가 평등하고 계급 없는 사회라는 잘못된 신화를 유포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이 계속되고 있다는고 한다. 결국 미국 제도권 교육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 미국의 계급제도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지배해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미국대통령선거를 관련지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무기를 갖추고 있다는 거짓말 알카에다와 관련이 있다는 허위사실로 미국 국민들을 속인 부시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민주당 오바마가 집권을 하면 미국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민주당 오바마가 집권하여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 하워드 진의 생각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는 현존하는 부와 권력 지형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주어지는 자유이며, 일정한 자유가 보장되는 미국체제의 유연성은 체제 존속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이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투표할 수는 있겠지만, 또 다른 대안을 원한다면 돈과 관료정치라는 엄청난 벽에 부딪칠 것이다. 엄청난 부를 쌓은 기업체도 지지 세력인 중산층에게 어느 정도 부를 나누어주기는 하겠지만, 사회의 음지에서 살아가는 3000만 혹은 4,000만 민중까지 배려하지는 않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와 같은 미국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한계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이 오바마가 미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는 모두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오바마와 매케인은 같은 지배계급이다.

클린턴은 재임기간 내내 공화당원들과 연합하여 빈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일삼았고, 기업주들의 배를 더욱 불리고, 엄청난 규모의 군사조직을 유지하며 그 힘을 해외의 힘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휘둘러왔다는 것이다.

“가난한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뉴딜 정책의 보장 비용을 폐기했고, 감옥을 증설하고 사형을 확대했으며, 대인지뢰금지협약 비준과 핵실험 중단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전 세계를 상대로 무기를 판매하며 경제 봉쇄를 이용해 이라크와 쿠바 국민들을 잔혹하게 학대했다.”(본문 중에서)

선거를 통해 미국인에게 주어진 자유란, 결국 민주당과 공화당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건국초기부터 계급과 인종, 그리고 출신 국가에 따라 분리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시무시한 계급투쟁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영국 식민지로부터 벗어나는 혁명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백인 이주민들에게는 해방전쟁이었지만 흑인 노예와 토착 원주민들에게는 영국의 지배가 미국인 지배로 바뀌는 것뿐 이었다고 한다.

그후 200년 미국 역사는 민주당이 집권을 하였던, 공화당이 집권을 하였던, 결국 한 계급이 지배한 국가 통제의 역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부자들과 굳게 손잡고 철도 왕들에게, 제조업자와 선주들에게 국가자원을 선물로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정부와 부자들은 노예와 노동자, 농민 그리고 대륙 토착민들의 저항에 부딪칠 때마다 군과 사법 제도를 동원하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서 인용한 2000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뉴욕타임스>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곳 주민들은 앨 고어와 조지 부시 두 사람 모두를 유복하게 태어난 사람, 집안 대대로 부유했던 사람들로 보고 있습니다. 이 곳 사람들에게 그들은 모두 똑같아 보입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이상한 선거제도는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고, 2004년 선거에서는 부시와 존 케리 중 한 후보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8면 미국 대통령 선거 역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와 메케인 중에서 누가 승자가 되어도 미국은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누가 선거의 승자가 되건 우리의 정치 경제체제를 지배해왔던 바로 그 계급이 다시 권력을 잡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취임 다음날부터 우리는 똑같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오바마는 “중산층과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이 나라 부유층 세력과 유대를 유지하고 제국주의적인 양당 정치체제를 지지하는 것” 뿐이라고 한다. 하워드 진은 가난한 다수를 대변하지 못하는 미국 정치체제는 늘 ‘법’이라는 이름으로 공고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법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따라서 하워드 진은 미국인들에게 ‘법이 정한 대로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법이 정한 대로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소수의 법률을 만든 집단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민불복종 운동의 중요성을 주창하는 그는 “법이 신성불가침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신이 제정한 것도 거룩한 기관에서 만든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 한다. 그는 미국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일은 단 한 번도 권력기관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인종차별이나 경제적 불평등, 또는 정부가 전쟁에 나서지 못하도록 행동에 나선 것은 의회나 대통령이나 대법원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시민과 시민 불복종 활동이 시민들의 결의를 촉구했고, 대통령과 의회 그리고 대법원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미국 대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기를 바랍니다. 대중들은 정부가 부자들에게 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기를 바라며, 이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만이 혜택을 보는 자본 소득에 대한 세금 경감 조치에 반대합니다.”(본문 중에서)

그들은 민주당원이나 공화당원이 아닌 새로운 정치 세력이 의원직에 도전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미국사회에서 중대하고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변화를 갈망하는 수백만 민중이 더 많은 연대를 이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것이 어둡게 보였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전면적인 변화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라고 한다. “민중의 분노가 강을 이룰 때, 그리고 그들이 모이기 시작할 때 변화는 매우 급격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그는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지속적으로 주장을 펼치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또 참여하도록 한 요인은 바로 그것이 삶을 더 흥미롭고 즐겁고 가치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었다고 회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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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 지음 / 소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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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람, 샬람, 앗살라 말라이쿰", 말뜻을 몰라도 아름답게 들리는 이 말은 "평화를 평화를 부디 당신에게 평화를"이라는 이라크 말 입니다. 세상에는 평화를 위해 목숨 거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세상에는 전쟁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이상하게 평화를 위해서 일한다면 그 위험한 일을 왜 하냐고 해요. 참 이상하죠? 전쟁을 위해 죽는 것 보다는 평화를 위해 살다가 평화를 위해 죽는 게 더 멋지지 않나요?"(본문 중에서)

<평화는 나의 여행>을 쓴 임영신이 이라크에서 만난 '평화여행자 친구 중 한 명인 이탈리아 아가씨 '시모나'의 이야기 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 하는 것은 전쟁을 위해서 일하는 것만큼 위험하지만, 힘겨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사람을 깊이 사랑해주는 매력 때문에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 반대운동을 조직하였던 '이라크반전평화팀'을 기억하나요? <평화는 나의 여행>을 쓴 임영신은 2003년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에서 평화의 증인이 되고자 나섰던 이 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임영신은 2003년 미국의 침공을 받은 이라크를 시작으로 지난 4년 동안 40여 차례에 걸쳐 20개국을 넘나들며 평화를 배우고 평화를 전하는 '평화여행자'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지은이 임영신이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 보름 전부터 침공직전까지 그가 직접 본 이라크의 모습과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후 임영신이 바그다드가 함락된 직후 다시 이라크로 달려가 부시의 종전선언이 이루어진 2003년 5월 1일까지 이라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적은 기록이 이 책의 1부 입니다.

이라크에서 임영신은 전쟁을 앞둔 '수아드'를 비롯한 이라크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녀가 2003년 만난 이라크사람들은 아직 미국의 침공이 전이지만, 이미 1991년 걸프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전쟁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경제봉쇄로 여성들은 영양결핍과 빈혈에 시달리고 이라크 아이들의 25%가 2.5kg 미만의 저체중아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도 달마다 5~6천 명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간단한 약이 없어 죽어갔고, 걸프전 폭격의 결과로 암과 백혈병, 기형으로 무거운 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본문 중에서)

유니세프의 보고서에 따르면 걸프전 이후 12년 간 매달 5천 명의 이라크 아이들이 부족한 의료장비와 의약품이 없어서 죽어갔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서 죽어간 것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제재로 의료 장비를 구할 수 없어서, 백신 같은 꼭 필요한 약을 구하지 못해 아이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라크 사람 '수아드'는 전쟁은 두렵지 않다고 합니다. 전쟁은 두려워한다고 오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랍니다. 그녀가 전쟁보다도 더 아픈 것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전쟁에 빼앗겨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올 보이지 않는 죽음들"이라고 합니다.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차를 마시며...

전쟁은 두려워한다고 안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영신이 모술에서 만난 부부는 전쟁보다 강한 일상을 보여줍니다.

"1991년 걸프전 때도 그랬어요. 전투기가 저 강 위로 날아가는 걸 보면서, 여기 이 강가에서 이렇게 차를 마셨어요. 다시 전쟁이 온다 해도,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이 강가에 와서 물을 끓이고 차를 마실 거예요. 전쟁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걸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우리가 전쟁보다 강한 일상을 가졌다는 걸 볼 수 있도록."(본문 중에서)

그들이 전쟁을 앞두고 일상처럼 살아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떠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바로 광야로 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떠날 곳이 없으며 결국 고향에서, 이라크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차를 마시며, 전쟁을 일상처럼 여기고 사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의 두 배에 이르는 면적을 가진 이라크, 그러나 사람이 살수 있는 땅은 티그리스 강 주변으로 형성된 도시 밖에 없습니다. 우리처럼 도시의 폭격을 피해 시골로 피난을 간다는 일은 그들에게 물과 숲과 집을 버리고 사막을 향해 나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본문 중에서)

우리나라에는 아랍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이라크와 아랍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많은 아랍 사람들이 조국을 버리고 도망을 갈 때,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전쟁 중인 조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저는 훨씬 자라서 어른이 되고나서야 그런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고 나서 "일주일 간 요르단을 통해 5천여 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폭격 속의 조국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지난 월요일에는 무려 백 대의 차가 이라크를 향해 떠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비겁하지도 겁쟁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해 폭격속의 가족들을 향해 돌아간 것 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임영신은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구호단체들이 요르단에 머물며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라크에 들어오지 않아, 총에 맞고 파편에 맞은 사람들로 가득한 병원에는 마취제가 없어 그냥 팔과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전기도, 수도도, 소독장비나 수술 장비도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풀지도 못하고 현관에 두었던 여행 가방을 챙겨들고 곧바로 다시 이라크로 향합니다.

요르단을 통해 이라크 국경을 넘자 그녀를 맞이해 주는 것은 환히 웃던 이라크 사람들이 아니라 승자의 인사를 건네는 미군 탱크와 검문검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 오는 시체와 잘린 다리를 가방에 들고 들어서는 사람을, 총에 맞아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들어서는 소녀를, 머리가 깨져 뇌가 흘러나오는 참혹한 모습"과 마주하게 됩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려면 죽음을 볼 수 있어야

그리고 또 참혹한 죽음의 현장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 의사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독자들은 미군이 점령한 바그다드에서 임영신을 통해 국제구호단체 조차도 접근하지 않는 전쟁 한 가운데서 사람들을 돕는 전쟁의사 '자크'를 만나게 됩니다.

"평화를 위해 일하려면 죽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죽어가는 자를 볼 수 있는 곳에 서 있어야 살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본문 중에서)

그는 1967년 베트남 전쟁부터 지난 37년간 한 해도 그치지 않고 해마다 분쟁지역을 찾아다닌 '전쟁 의사'입니다. 그의 오른손엔 검지가 없습니다. 전쟁터에서 수술을 하다가 총에 맞아 손가락을 잘라냈다고 합니다. 그는 늘 전쟁의 한 가운데 서있는 의사였던 것입니다.

모두 3부로 씌어진 <평화는 나의 여행> 2부는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 후 일본에서 출항하는 '평화를 여행하는 배' 피스보트를 타고 떠난 여정에 관한 기록입니다. 베트남, 인도, 스리랑카, 에리트레아, 터키로 이어지는 한 달여간의 피스보트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피스보트 프로그램, 반전 평화행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본 평화운동가들이 만든 피스보트는 한 해에 세 바퀴씩 지구를 일주하고 남한과 북한을 다녀오는 평화여행이자 평화운동입니다. 수백 명의 승객과 게스트 자원봉사들 등이 함께 여행하며 평화와 전쟁의 이면을 보여주는 분쟁지역 방문, 시위, 토론, 세미나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평화는 결국 나의 선택

독자들은 임영신을 통해 올리버 스톤의 영화 <하늘과 땅>의 원작자인 베트남 여성 랠리 헤이슬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평화는 이렇습니다.

"전쟁을 위해 일한다면 전쟁이 여러분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 일한다면 평화가 여러분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나는 평화를 원한다고, 그러나 그들이 평화를 위한 선택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전쟁과 죽임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 3부는 레바논, 스위스, 프랑스, 독일, 필리핀으로 떠난 평화여행 이야기입니다. 분쟁지역, 폭탄이 퍼붓는 곳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공동체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깊은 성찰을 통해 평화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 입니다. 평화를 위한 거래 '공정무역'은 삶의 현장에서 매일 매일 평화를 위한 선택을 하는 거라고 알려줍니다.

<평화는 나의 여행>을 통해 임영신은 '평화로 가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바로 길'이라고 거듭 이야기 합니다. 책을 시작하는 첫 페이지에 실린, 그녀에게 '삶으로 말씀으로 평화를 가르쳐 주신' 신영복 선생님이 쓴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곧 길입니다"라고 씌어진 붓글씨 인쇄본은 독자들에게 주는 덤 입니다.

<평화는 나의 여행>을 읽는 동안 그녀를 통해, 평화를 위해 목숨 거는 이탈리아 아가씨 시모나, 37년간 전쟁의 한 가운데를 지킨 전쟁의사 자크, 해군제독출신의 평화운동가 인도의 람다스, 베트남의 랠리 헤이슬립, 일본인 노나카씨와 같은 세계 곳곳에서 일 하는 평화운동가들과 만나는 기쁨을 누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책의 끝머리에는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평화를 경험하는 '평화여행'을 권면하는 임영신의 바람이 담긴 '평화여행 길라잡이'가 실려 있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고, 평화를 원한다면 아이들과 평화를 노래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한 선택과 행동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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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상식 사전
패트릭 스미스 지음, 김세중 옮김 / 예원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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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복잡하고 정교하며 한편으로 는 아름답다. 근육질의 멋진 차를 보았을 때,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느껴지는 욕구와는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이 비행기에 있다.”

<비행기 상식사전>을 쓴 패트릭 스미스는 비행기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비행은 예술이라고 하였다.

패트릭 스미스는 어릴 때부터 비행기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팬암과 아에로플로트, 루프트한자, 브리티시항공의 일정표와 노선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들 항공사가 취항하는 외국도시의 이름을 외우며 자신의 항공사를 만들어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그려보며 지냈다고 한다.


항공기 조종사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패트릭 스미스는 16살 때 처음으로 단독비행을 했으며, 제트여객기와 화물 수송기를 두루 조종해보았으며, 전 세계 60개국 이상을 비행기로 여행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이다.

<비행기 상식사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세계무역센터 대참사 직후인 2001년 겨울에 문을 연 온라인 잡지 살롱닷컴(Salon.com)에 쓴 글과 칼럼을 다시 정리하여 모아 놓은 책이다.

그는 당시 “언론매체는 부정확하고 왜곡된 기사를 쏟아내고,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전문가들의 시도도 만족스럽지 못하였으며, 미연방항공국 대변인의 발표는 딱딱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에게 쉽게 비행기에 관하여 알려주기 위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패트릭 스미스는 비행기 중에서도 사람들과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는 여객기에 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의 비행기 예찬론은 다음과 같다.

“여객기는 대륙과 대륙, 국가와 국가를 이어준다. 이 세계의 모든 사람을 연결한다.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는 이 위대한 다리의 핵심은 바로 여객기이다. 비행기 여행과 문화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비행은 여행의 소중한 일부이다.”(본문 중에서)

이러한 그의 특별한 관심을 반영하듯이 이 책은 주로 여객기에 관한 보통 사람들의 궁금증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 책을 서술하였다. 인상 깊은 질문들을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비행기 한 대 가격은 얼마나 할까?

항공료가 비싼 이유는 기본적으로 항공기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보잉 747-400 기종의 한 대 가격은 1억 8500만 달러, 신형 에어버스 A340이나 보잉 777의 한 대 가격은 1억 6500만 달러를 넘으며, 신형 737도 5000만 달러 이상이다. 국내선 제트기는 2000만 달러라고 한다.

물론 값싼 비행기로 있다. 화물수송기를 개조한 구형 727은 200만 달러면 살 수 있고, 비행기도 자동차처럼 정밀점검 여부와 시기에 따라 중고 가격은 훨씬 싸다. 중고 에어버스 A320은 3000만 달러, 5년 된 767은 5000만 달러, 그리고 1993년 빈티지 757은 약 1700만 달러라고 한다.


비행고도와 비행기의 무게, 비행속도 비행기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보잉 747 여객기를 똑바로 세워 놓으면 20층 건물과 비슷한 크기이며, 이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 9900미터를 높이를 대략 시속 960km의 속도로 날아다닌다. 450톤 무게의 이 비행기는 12시간만 날면 홍콩까지 갈 수 있는데, 옛날에는 범선을 타고 7주나 걸렸던 길이다.

대형여객기가 엔진이 멈추어도 비행기는 활강하여 착륙할 수 있는가?

엔진의 기능이 정지된다는 것은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지만, 실제로 파워 오프 상태에서 활강하여 착륙하는 능력은 경비행기보다 대형 제트기가 더 우수하다. 모든 파워를 상실한 채 767과 A330이 착륙한 적이 2번 있는데,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으며 모두 무사히 착륙하였다고 한다.

소형 비행기는 대형 비행기에 비하여 안전성이 떨어지는가?

비행기의 크기는 비행기 사고 가능성과 아무 관계가 없다. 국내선 소형 비행기도 대형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정교하게 제작되면, 지난 10년 동안에 국내선 소형 비행기와 관련된 사고는 두 건에 불과하였으며, 수천 대의 소형 비행기가 매일 아무 사고 없이 운행되고 잇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번개에 맞으면 어떻게 될까? 또는 새가 비행기에 달려들어 부딪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비행기는 번개에 맞는 일이 많으며, 그런 점을 감안하여 비행기를 설계한다. 전기는 날개와 꼬리 뒷부분에 있는 방전 장치를 통해 비행기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번개를 맞더라도 전기가 기내를 통과해 승객이 감전사하는 경우는 없다.

새가 비행기에 부딪히는 경우는 없다. 다만 비행기가 새에 부딪히는 충돌인 ‘버드 스트라이크’현상은 수시로 발생하지만 새가 죽는 경우는 많지만 비행기 자체가 입는 손상은 아주 경미하거나 거의 없다. 그러나 아주 가끔 새로 인하여 기계장치에 결함을 일으켜 사고가 나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비행기는 착륙이 가장 중요하다는데 사실인가?

옛날에는 비행기가 부드럽게 착륙하면 승객들이 박수를 치기도 하였지만, 실제로 비행기는 착륙보다 이륙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의 상식과는 반대로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이륙이, 지상으로 내려올 때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한다.

9.11 테러 때처럼, 민간조종사 교육만 받고도 대형 여객기를 조종할 수 있는가?

납치범들이 민간조종사 교육만 받고도 보잉 여객기를 조종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본적인 비행 기술만 있으면 공중에 떠 있는 767을 조종할 수 있으며, 초보적인 상승과 하강, 선회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서툴기는 하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트트의 ‘프라이트 시뮬레이터’ 같은 상당한 수준의 데스크톱 게임 덕분에 집에서도 제트기 조종방법을 배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위성전화 사용을 위한 사기 행위도 아니고 항공사 마음대로 정한 규칙도 아니다. 휴대전화는 비행기의 전자장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실제로 통화하지 않고 있더라도 휴대전화가 켜져 있기만 하면 신호가 발생되어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휴대전화로 인한 오작동으로 제트여객기가 비상착륙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동차와 비행기 중에 어느 쪽이 더 위험한가?

비행기 사고는 얼마나 될까? 미국에서만 매일 2만 7000대의 비행기가 이륙한다. 10대 항공사만 보아도 매년 500만 회 이상의 비행을 한다. 비행기와 자동차의 안전에 관하여 <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를 통해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목적지까지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를 타고 갈 때 사고가 나서 죽을 확률이 65배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은 이렇다. 비행기가 자동차만큼 위험하려면, 9.11 같은 규모의 재난이 한 달에 한 번씩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쯤 비행기를 타 본 사람들이라면 호기심을 가질 만한 질문들이다. 가끔 혹은 자주 비행기를 타는 보통 사람들의 궁금증에 지은이 패트릭 스미스는 오랜 경험과 비행기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축적한 비행전문가다운 명료한 답변으로 <비행기 상식사전>을 저술하였다.

하루에만 2만 7000대의 비행기가 이륙하는 넓은 대륙을 오가는 미국에서는 비행기를 타는 일이 누구에게나 흔한 경험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비행기는 지구상에 사는 60억 인구 중에서 상위 10%내외의 사람들에게만 유용한 교통수단일 것이다.

얼마 전 영국의 ‘글로벌 리치 리스트’에 발표된 자료를 보면, 연봉 3천만 원을 받는 사람이 세계 5.9%에 포함된다고 하니 상위 10%가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보편적 교통수단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교통수단인 것처럼 비행기를 소개하는 패트릭 스미스의 견해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맨해튼 테러에 대한 그의 견해에는 공감한다. “테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공공장소에 바리케이트를 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테러의 근본문제, 과격분자들의 분노를 풀어주지 못한 채 ‘보호’에만 집착한다면, 잘되면 훨씬 안전한 하늘을 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안전을 확보하지도 못하면서 자유까지 침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패트릭 스미스가 쓴 <비행기 상식사전>은 자동차처럼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보다는 가끔 아주 가끔씩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자동차처럼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호기심도 두려움도 사라져버렸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끔씩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가지는 호기심과 두려움, 걱정을 덜어 줄 수 있는, 비행기와 비행에 관한 상식을 넓혀주는 재미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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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 띄운 편지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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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가자는 감옥으로 변했다. 우린 여기 갇힌 채 빵과 남은 토마토, 오이만으로 견디려 애쓰고 있다."

2006년 9월 8일 영국 일간신문 <인디펜던트>에 실린 아부 라마단 가지시티 시장 인터뷰 기사입니다. 6월 말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수백 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다친 이후 지난 11월 26일 휴전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이스라엘 병사 한 명을 납치한 데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군은 "2006년 6월 '여름비 작전'이란 이름으로 가자지구와 레바논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감행하였다. 363㎢의 좁은 땅에 130만명 인구가 북적대며 살아가는 가자는 외부세계의 무관심 속에서 지상 최대의 감옥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저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은 2006년에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침공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계속되고 있는 두 민족 간의 분쟁, 아니 이스라엘의 점령정책과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관하여 미국 작가 '조 사코'(팔레스타인)의 시선을 빌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팔레스타인 현지 작가들의 최근 작품을 모아놓은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읽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슴 아픈 역사와 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팔레스타인에 대한 저의 관심은 <가자에 띄운 편지>라는 제목만으로도 발레리 제나티의 소설을 선뜻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이 책은 평화운동을 하는 엄마, 아빠를 둔 이스라엘 소녀 탈과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이 주고받는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순전히 '상상력의 산물'만은 아닙니다. 이 소설은 거의 매일 텔레비전 뉴스를 장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쓰였습니다.

예루살렘, 어느 카페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 6명의 사망…. 공포는 일상이 되어버렸고, 탈은 그런 일상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탈은 가슴에 품고 있는 것들을 글로 쓰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조약에 서명했던 날 부모님이 환희로 울었던 기억뿐만 아니라, 환멸, 반항, 공포, 그리고 희망에 대해서 씁니다.

탈은 그녀가 쓴 편지를 저쪽의 누군가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탈은 미지의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마음먹고 가자지구에 군 복무 중인 오빠 '에탄'에게 자기가 쓴 글을 유리병에 넣어 맡기게 됩니다.

분쟁과 증오의 땅에 띄운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

유리병 속에는 '이름 모를 너에게'하고 시작되는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살폭탄테러로 숨진 결혼을 앞둔 여자의 죽음을 떠올리며 쓰인 진솔한 마음이 담긴 편지가 담겨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청년 나임은 가자해변 모래밭에서 우연히(사실 전적으로 우연은 아니었지만) 이 유리병 속의 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유리병 속 편지를 받은 나임의 첫 번째 답장은 마음이 열리지 않은 비아냥 섞인 호기심으로 채워져 있지만, 사실 그들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는 더 큰 '일상의 증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 사촌동생 야신이 작년에 그런(평화를 위한 아이들) 경진대회에 참여했다가 초콜릿 한 통을 받아서 무척 기뻐했지. 그런데 그 행사를 주최한 NGO가 이스라엘산 초콜릿을 주는 바람에 걔네 아빠가 쓰레기통에다 그대로 처넣어버렸어." (본문 중에서)

"이 땅은 젊은이들이 자기가 아주 빨리 늙는다고 느끼고, 수명대로 산다는 게 그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곳, 증오와 복수심은 비싸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도처에 있다 보니 여기선 유일하게 넘쳐나는 품목이다. 절망과 더불어 말이다." (본문 중에서)

탈과 나임은 옛날 동화에 나오는 유리병 편지와는 달리 이메일로 각자의 생각과 일상을 주고받으며 애틋한 마음을 키워갑니다. 여러 번 이메일을 주고받은 후에는 채팅도 하게 됩니다. 소설이라는 이야기 형식 덕분에 독자들은 일기 형식으로 쓰인 글을 통해 탈과 나임의 진심을 먼저 알 수 있게 됩니다.

작가인 발레리 제나티는 나임과 탈을 통해 개인은 없고 집단으로만 존재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의 삶에 대하여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지 않는 개인과 개인으로 소통하지 않는 늘 집단으로 만나는 두 민족은 복수와 증오만이 마주치게 됩니다.

"나, 너, 그 하는 식의 단수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냥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복수만 있는 거지. 불쌍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아니면 나쁜 팔레스타인 사람들 하는 식으로…. 우리는 절대로 하나+하나+하나가 아니라 늘 400만인거야. 그러니 사람들은 민족을 통째로 등에 지고 살아가는 것이고. 무거워. 무거워. 무거워 등이 뭉개질 것만 같아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져 버리지." (본문 중에서)

작가는 정치적인 의도와 매스미디어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마구 잘린 특정한 이미지로 고착된 정보들이 놓쳐버린 인간, 개체로서의 인간에 초점을 맞춥니다. 작가는 번역자와의 만남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가 아니라 '나임'이라는 청년에게로,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아니라 '탈'이라는 소녀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누군가가 안부를 걱정해주는 유일한 팔레스타인 사람

작품 속에서 개인과 개인으로 만나는 탈과 나임은 서로 아픔을 훨씬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집단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테러가 일어난 후, 승리감에 도취하고 있을 때에도 서로 안부를 걱정하게 됩니다.

"나는 이스라엘 쪽의 누군가가 안부를 걱정해주는 유일한 팔레스타인 사람일 것이다. 유네스코는 나를 세계유산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나 정말 걱정하고 있어. 가자에 또 다른 부상자와 사망자들이 생겼다고 라디오에서 들었어. 네가 굳이 날 안심시키기 위해 컴퓨터로 달려들지는 않을 거라는 거 알아."

"네가 무사한지 알려줘. 답장을 해줄 수 있다면 말이야. 걱정하고 있어. 답장이 없으니. 벌써 이틀이나 됐는데." (본문 중에서)

작가는 텔레비전 뉴스 속에 묻혀버린 자살폭탄테러 뒤에 숨어 있는 작은 개인 이야기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테러의 가까이에서 일상을 살다 죽음을 만나는 개인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만약 내가 그날 그 카페에 있었다면, 만약 내가 카메라에 담고 있던 그 버스에 타고 있었다면….

기성세대의 약속이 수없이 어긋나버린 현실에서 그들은 운명에 발이 묶인 삶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가꾸어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바꾸어 갑니다.

라임은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는 NGO '자유로운 발언'의 활동가들을 만나 자신의 삶을 내장까지 뒤흔들어 버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분쟁을 멎게 할 수도 없고, 모두에게 돈을 나눠 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들 속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도록 돕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작품에서 팔레스타인 청년 '라임' 역시 공통된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닮은꼴인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그들을 만나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민족의 운명과 함께 절망으로 가득 채웠던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설보다 참혹한 현실, 2006년 팔레스타인

그러나 참 안타깝게도 현실은 평화와 희망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03년 이 책이 쓰인 후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평화가 깃들지 않았고, 2006년에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과 레바논 침공으로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경제봉쇄와 이스라엘의 폭격이라는 이중 굴레에 꽁꽁 묶인 가자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발레리 제나티가 제안하는 집단으로만 존재하지 않는 둘도 없는 유일한 존재로서 '라임'과 같은 청년으로 살아가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나로서도 오히려 2006년 여름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바라보면 라임과 같은 청년의 삶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그들에게는 공동운명이라는 삶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워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주요 수입원이던 카네이션과 딸기는 버려진 채 밭에서 썩어 가고, 사람도 물건도 밖으로 나갈 수도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는 곳이 됐다고 합니다. 오렌지 농장의 70%가 파괴되고, 어부들은 바다로 나갈 수도 없으며, 공습으로 발전소가 파괴되어 전기 공급도 식수공급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 6월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는 "이스라엘군은 가자 전역에서 미친 듯 날뛰고 있다. 다른 표현은 쓸 수 없다. 무차별적인 살인과 파괴, 폭격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38년 동안 이스라엘 점령 치하에 있다가 1년 전 이스라엘의 정착촌 철수로 잠시 희망을 품었다가 다시 더욱 악화한 재점령 치하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설보다 더 참혹한 팔레스타인의 현실 앞에서 발레리 제나티가 보여주는 '희망'을 발견하기는 참 힘든 일입니다. 희망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에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너무나 참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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