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 생각대로 성경읽기
이현주 지음 / 자리(내일을 여는 책)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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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기독교신문도 아닌 매체를 통해 하느님과 성경에 관한 책을 소개하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친정부 보수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상당수 개신교 기독교인들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모두 도매금으로 비난 받은 일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방부 금서목록에 포함된 권정생 선생님이 남기신 <우리들의 하느님>같은 훌륭한 책도 있고,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 하시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청와대에서 기도회를 열어 종교 차별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거나 시청광장에서 '부시 대통령'을 추앙하고, 인공기를 불태우는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전자에 예를 들었던 권정생 선생님과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뜻을 읽습니다. 대신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고, 기독교 나라를 만들려고하는 후자의 사람들은 주로 성경을 '문자'로 이해합니다.

<이현주의 생각대로 성경읽기>는 인간의 언어로 기록으로 남아있는 하느님 말씀을 자신의 내면으로 모시고자하였던 노력과 흔적입니다. 지은이는 "따로 읽는 곳을 정해두지 않고, 말 그대로 아무 데나 펼쳐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고 하지만, 책을 보면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말씀의 뜻을 새기려 하였다는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뜻으로 성경을 읽는 이현주 목사는 성경읽기를 밥는 먹는 일에 비유하였습니다.

"밥은 그것을 먹는 순간 위장에서 분해되어 에너지로 바뀌고 마침내 그것을 먹은 사람으로 바뀝니다. 성경읽기도 그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읽을 때마다 무엇을 읽었는지는 다만 머리 속에 기억으로만 남고, 말씀 자체는 우리 삶 속에서 용해되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바뀐다면, 밥을 먹고 소화하여 그 기운으로 사는 것과 같은이치지요"( 본문 중에서)

성경 말씀은 우리 삶 속에 용해되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성경은 이 땅에 살면서 하느님을 만난 우리 선조들의 자취를 기록한 책인데, 성경을 읽고 쓴 <이현주의 생각대로 성경읽기>는 이현주 목사가 성경을 읽고 이해한 발자취에 해당되는 책입니다.

야훼 하느님이 미국에게 하는 말

이현주 목사는 에레미야서 7장에 나오는 말씀을 오늘날 하느님 미국에게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에레미야서 7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 말한다. 너희는 생활태도를 고쳐라. 그래야 나는 너희를 여기에서 살게 하리라. 이것은 야훼의 성전이다 한다마는 그런 빈말을 믿어 안심하지 말고, 너희의 생활태도를 깨끗이 고쳐라. 너희 사이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여라. 유랑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말라. 이곳에 죄없는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지 말라."(본문 중에서)

이현주 목사는 에레미야서 7장 나오는 야훼 하느님 말씀을 이제 뜻으로 새겨 오늘 날 미국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답니다.

"세계 초일류국가의 자부심을 안고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미국 사람은 모두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는 생활태도를 고쳐라. 그래야 나는 너희를 여기에서 살게 하리라.....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말을 화폐에 새겨넣는 것으로 안심하지 말고 너희의 생활태도를 깨끗이 고쳐라. 너희 사이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여라. 유랑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말아라"(본문 중에서)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말씀에 담긴 뜻을 헤아리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서 불법체류자를 체포구금하고, 죄없는 사람을 죽여 피흘리게 하며, 세계 곳곳에서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하여 죄없는 여자와 아이들을 죽이는 일을 거만 두라는 것이 하느님 말씀이라고 합니다.

미국이 지금이라도 부를 축적하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지구자원을 고갈시켜가는 생활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그러면 미국은 무너진다는 것이지요. 예레미야서가 옳다면, 유다의 패망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면, 성서가 뜻으로 새겨야 하는 하느님 말씀이라면 다른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선포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병사들에게 함께 하시기를"기도하였고, 그가 기도 한대로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고, 수많은 여자와 아이들이 전쟁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렇지만, '알라'라고 부르는 하느님을 믿는 알카에다 입장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역사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라라고 불리는 하느님이 오사마 빈 라덴으로 하여금 뉴욕 무역센터 빌딩을 치도록 함께 하셨고, 같은 하느님이 이라크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벌이도록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성경이 "야훼께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편드셨다고 기록하지 않는"것 처럼, 아군을 편드시는 하느님과 적군을 편드시는 하느님이 다르지 않다는 진실에 눈 뜨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상태로 기도하라

루가복음에는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고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아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날이 갑자기 닥쳐 올지도 모르다."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지은이는 성경말씀처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 없는 세상걱정이 실속없는 없고 허망한 일이라고 말 합니다.

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 일 수 있기 대문에 평상시에 늘 조심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또한 허망한 것에 마음을 빼아기지 말고 실속있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 합니다. 실속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깨어있고,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무턱대고 기도만 하는 껏이 아니라 깨어있는 상태로 기도해야만 실속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마태오 복음 24장에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이 한 종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 때에 양식을 공급하도록 책임을 맡기는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는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주인이 맡긴 일을 제대로 하다가 주인을 맞이하고 다른 하나는 주인이 맡겨준 일을 태만이 하다가 주인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지은이는 이 비유가 담긴 마태오 복음을 묵상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떠났던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였고, 다른 하나는 주인이 한참 뒤에나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쪽은 매일 주인이 돌아오는 날로 생각하고 맡겨진 일을 착실히 하였지만, 다른 쪽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보다 먹고 마시며 노는 일로 허비 하였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살고 있다. 하나는 태어난 날이 있으니 죽을 날이 있을텐데 그 날이 바로 오늘 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그나그날 하늘이 자기에게 맡긴 일을 성실히하며 살아간다. 다른 하나는 태어난 날이 있으니 죽을 탈도 있을 터이나 그날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서 자기 욕망을 채우는 일로 세월을 보낸다."(본문 중에서)

결국, 사람이 어느 쪽으로 살아갈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아무도 강요하지도 않거니와 강요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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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 사회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31
노명우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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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식당에도 공항에도 버스터미널에도 심지어 심야고속버스에도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다. 텔레비전을 완전히 안 보고는 단 하루도 지나치기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

정말 조용히 쉬고 싶은 때에도, 뭔가 깊이 생각하고 싶은 때에도 텔레비전이 쏟아내는 소음과 번뜩이는 빛을 뿜어내는 화면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사람은 소수자다. 장애인이나 채식인 같은 다른 소수자처럼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소수자 역시 배려받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장애인이나 채식인보다도 훨씬 더 소수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을 권리 같은 것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냥 "싫으면 너나 보지 말라"거나 혹은 "유별나게 굴지 마라"는 대답을 듣기 일쑤다.

TV를 없애라고? 불가능한 주문

텔레비전을 연구하였던 제리 멘더는 "총기를 규제하지 않고 총기의 위험을 없앨 수 없는 것처럼 TV를 규제하지 않으면 TV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하였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위험은 더욱 증가한다.

나는 TV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급적 텔레비전을 적게, 혹은 완전히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다. 수년 동안 내가 일하는 단체 회원들과 함께 매년 한 차례 텔레비전 안보기 주간을 정해서 'TV 끄기' 운동을 하고 있다.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프로네시스 펴냄)을 쓴 노명우는 이 책을 통해 텔레비전을 없애라고 하는 제리 멘더 식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텔레비전은 아이가 담긴 욕조와 같기 때문에 더러워진 목욕물만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의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지만, 그가 쓴 책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은 텔레비전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한 책임에 틀림없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노명우는 아주대학교 사회학 전공교수로 있다.

그는 텔레비전을 버리자고 선동하기보다, 왜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언어와 문자·이미지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의 탄생과 변화를 조명하는 작업을 통해 텔레비전이 어떻게 주류 미디어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명료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텔레비전이 지닌 정치·경제·문화적 속성을 해부함으로써, 단순히 텔레비전을 끄는 것만으로 주류 매체인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그는 미디어가 변화, 발전해온 역사적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텔레비전을 반대하는 것만으로 결코 그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평균 한국인은 텔레비전을 얼마나 보나?

2004년에 실시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하루 24시간 중 우리가 잠자고 식사하는 데 소비하는 시간은 평균 10시간 34분(44%), 일하거나 공부하고 이동하는 데에는 평균 8시간 13분(34%),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남는 시간은 고작 5시간 13분(22%) 뿐이라고 한다.

"(평균 한국 사람들은) 고작 5시간 13분 중에서 평일에는 2시간 6분, 토요일에는 2시간 28분, 일요일에는 무려 3시간 14분을 텔레비전 보는 데 할애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주말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푹 쉬는 날이다. 텔레비전은 평균적인 한국인의 여가 시간을 지배한다."(본문 중에서)

통계청이 조사한 한국인 생활시간 조사를 보면, 텔레비전이 사람들 여가 시간뿐만 아니라 생각과 대화를 지배하고 있지만, 텔레비전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늘 가까이에 있는 공기에 대하여 성찰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노명우는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에서 텔레비전 때문에 생긴 부작용보다는 현대인들이 텔레비전 없이 살 수 없는 이유, 텔레비전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 더 주목하였다. 집에만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켜고, 아파트 거실은 중앙에 텔레비전을 설치하도록 만들어지고, 거실 소파는 텔레비전 시청에 편리하게 놓여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가족들은 거실에 나란히 앉아 있지만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네모상자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아서, 상자가 켜지면 자신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시청자라는 기호로 바뀐다고 한다. 인류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TV는 지배권을 가진 블랙홀

저자는 텔레비전이 가진 미디어 지배력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미디어의 역사와 변화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그는 문화적 구성물인 미디어의 파급 범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넓고 깊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미디어 선택권이 없다고 한다. 하나의 미디어가 사회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선택권은 사라지고 적응만 남는다고 한다. 따라서 미디어는 한 사회를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환경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에는 기원전 1500년 무렵에 발명된 알파벳이라는 미디어와 기원전 105년에 발명된 종이, 16세기의 인쇄술, 18세기의 신문, 19세기의 사진과 영화가 20세기의 텔레비전과 공존한다."(본문 중에서)

그렇지만,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가 사회를 지배해도 이전 미디어인 사진이나 영화, 신문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미디어의 주도권을 설명하기 위하여 도구-미디어와 환경-미디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도구-미디어는 개별 인간이 개인적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지만, 환경-미디어는 마치 공기처럼 개별인간이 선택할 수 없다."

공기라는 환경을 거부할 수 없듯이 환경-미디어는 개인이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음성의 시대에서부터 문자시대, 인쇄술과 텍스트 시대, 그리고 사진과 영화가 등장하는 기술복제의 시대를 거쳐 텔레비전이 등장하는 시대까지 도구-미디어에서 환경-미디어가 어떻게 주도권이 바뀌는지를 알기 쉽고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텔레비전은 1928년 처음 지구상에 등장하였지만, 한국에서 텔레비전이 환경-미디어로서 주도권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고 한다. 통계를 살펴보면 1976년 텔레비전 보급률이 41.4퍼센트에 달했다고 한다.

텔레비전은 영화 기술을 전승하였지만, 영화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포드시스템이 작동하는 점이라고 한다. 텔레비전 방송시스템은 포드주의적 생산 방식을 전제로 하였으며, 충분한 임금과 여가시간을 제공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생활원리가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TV 시청자는 광고 이윤을 창출하는 무임금 노동자다

따라서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시청자들은 알게 모르게 포드주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재택근무자와 다름없다고 한다.

"개인은 거실에서 오락을 위해 텔레비전을 시청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행위는 방송국이 광고주로부터 더 많은 돈을 얻어낼 수 있는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텔레비전 시청자는 무임금 재택근무자이다. 우리는 매일 밤 시청률 통계로 잡히면서 재택근무를 한다."(본문 중에서)

결국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이념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이며, 과거 다른 미디어에 비하여 훨씬 이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디어라는 것이다.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탈정치화는, 경제 지향적 태도의 확산"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텔레비전의 의사소통은 항상 일방적이며, 시청자는 영원한 시청자일 뿐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산업 혁명 초기 영국 지배계층이 노동자 계층에게 읽는 능력은 가르쳐주되 쓰는 능력은 가르쳐주지 않으려"했던 일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텔레비전이 대중을 탈정치화시키고 시민을 소비자로 바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텔레비전은 국가가 국민을 호명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텔레비전은  상황에 따라 시청자를 국민, 세계시민, 붉은악마로 호명하는데, 결국 시청자를 개인에 머무를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전파는 국가가 통제하고, 텔레비전은 국가 표준어를 방송하고, 주기적으로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국가 간 경쟁 스포츠가 국가적 열광의 순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방에서 혼자 시청하더라도 다른 시청자와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는 특성 때문에 시청자는 개인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여러 가지 비교를 통해서 같은 영상미디어인 영화와 텔레비전의 차이를 비교하여 텔레비전이 환경-미디어로서 주도권을 가지게 된 근거를 확인시켜준다. 저자의 마지막 질문은 과연 시청자가 텔레비전을 끌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오프 버튼을 누른다고 해서 텔레비전이 지배하는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지금도 지구의 어느 곳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시청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 한 텔레비전은 절대 꺼지지 않는 영구동력을 내장한 미디어다." (본문 중에서)

결국, 텔레비전이 꺼진다는 것은 개별 텔레비전 장치가 꺼지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시대가 종말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는 텔레비전이 켜져 있더라도 새로운 미디어가 환경-미디어로 등장하여 지배적인 미디어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한편, 텔레비전 시청 환경도 1인 시청 방식으로, 시청자가 원하는 방송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고, 환경-미디어로서 주도성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과 텔레비전 미디어 주도권 다툼

텔레비전이 주도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증거는 앞서 인용했던 '국민생활시간' 조사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여가시간에 컴퓨터 사용시간이 증가하고 있고, 특히 10~20대의 경우는 텔레비전 대신 컴퓨터(인터넷)가 주도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한다.

2002년 미선·효순 촛불집회, 2004년 탄핵반대 촛불시위, 2008년 광우병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는 모두 텔레비전의 주도성이 약화되고 웹과 모바일이 주도적으로 작용하였던 사례라는 것이다. 웹기반 의사소통 방식은 1인 매체와 같은 여러 가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조직화된 중앙집권적인 힘의 조직적인 대응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진단한다.

"웹기반 의사소통망은 촛불시위와 같은 특별한 정세에서만 힘을 발휘할 뿐이다. 웹 기반 의사 소통망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기가 끝나면, 텔레비전은 다시 개인들의 일상을 제압하는 막강한 능력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오늘날 텔레비전은 중앙집권적 시스템과 자본의 힘이 결합하여 괴물 같은 상황에 도달한 미디어라고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텔레비전이라는 괴물로부터 벗어나려면 이제는 텔레비전을 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는 소극적 부정 대신에 중앙집권적으로 내뿜는 텔레비전의 메시지에 응답하는 적극적 부정을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비평이나 방송국 시청자 참여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키보드 전사가 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개별 프로그램 피디가 누군가 보다는 방송사 대표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니는지, 통신위원회의 위원이 누군지에 따라 시청자라고 부르는 국민의 일상 향방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텔레비전과 시청자의 의사소통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KBS 정연주 사장이 쫓겨나는 데도, 대통령 최측근이 방송통신위원장이 되고, YTN에 낙하산 사장이 임명되어도 가만히 있으면, 국가와 자본이 지배하는 텔레비전의 막강한 지배력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노명우는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에서 영혼이 없는 시청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텔레비전에 대하여 '성찰'하고 생존기술을 익히는 것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책은 텔레비전이 등장하기까지 미디어 발전과정과 텔레비전이 지닌 사회, 문화적인 영향력과 경제 지향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탁월한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지만, 텔레비전에 대하여 '성찰'하자는 결론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디어와 매체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오래된 진귀한 사진과 상세한 통계는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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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 창의.다양.여유를 배운다 양철북 청소년 교양 8
이하영 지음 / 양철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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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명의 외국인 학생을 위해 통역 선생님을 붙여주는 교육제도
▲ 수업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긴 학교
▲ 예체능에 소홀하면 국영수를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는 진학제도
▲ '우리 모두 똑같이 잘하자'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선생님들
▲ 15세 창의력 테스트에서 세계 일등을 하는 나라
▲ 꿈꾸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

웬 뜬금없는 소리냐구요? 스웨덴 이야기입니다.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이야기>는 부산과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초등 6학년 때 미국 학교를 잠깐 다녔던 이하영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소피에룬드 학교와 에즈베리 학교에서 경험한 것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스웨덴 학교이야기>는 이하영이 한 인터넷 신문에 실었던 글을 다듬고 새로 고쳐서 책으로 엮었다고 합니다.

지은이는 처음 연재를 부탁받을 때 세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이 책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하네요.

①스웨덴에 대한 선입견을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②주변의 평가(댓글 등)나 상황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 생각대로 쓴다. ③공부에 소홀하지 않는다.

첫 번째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여러 번 사실 확인을 하였고, 세 번째 원칙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악성댓글과 날카로운 비평을 견디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한국 교육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스웨덴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고민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렇지만, 한국과 다른 스웨덴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과 귀중한 경험을 한국 또래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합니다.

쉬는 시간엔 절대 공부하면 안 되는 학교

스웨덴으로 간 하영이 처음 다닌 학교는 소피에룬드 공립학교인데, 외국인을 위한 특별반에서 스웨덴어 과정을 마친 후에 일반학교로 옮겼다고 합니다.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 자유분방한 아이들, 짙은 화장을 한 아이들, 수업시간에도 헤드폰을 귀에 꽂은 아이들을 보며 심한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이런 아이들 모습보다도 더 재미난 규칙이 있는데, 마치 유치원 아이들처럼 학교 적응을 위하여 처음 입학하거나 전학 온 학생은 일주일 동안 반드시 두세 시간만 수업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스웨덴 학교는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이나 되고, 수업과 수업사이 쉬는 시간이 30분씩이라고 하네요. 더욱 기막힌 일은 쉬는 시간에는 절대로 교실에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쉬는 시간에는 학생들을 다 내보낸 다음 교실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절대 열어주지 않는다. 교실 환기도 시키고 학생들도 맒은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 교실로 들어가는 문은 선생님이 열쇠로 열어주지 않는 한 바깥에서는 열 수 없다."(본문 중에서)

학교 건물은 마치 휴양소와 같은 분위기고, 곳곳에 체육시설과 놀이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공부는 시키는 둥 마는 둥 하는 학교, 이하영은 첫 일주일을 보낸 소감을 '어이없음'이라고 하였더군요.

모두 승자가 되는 사회

협동(cooperation), 경쟁(competition), 대립(confict)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은 어떤 것일까요? 협동은 모든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은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대립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방해하면서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하영이 한국에서 잠시 다닌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실험을 해봤더니 선생님 예상과 달리 '경쟁'이 가장 효율적이었다고 합니다. 대립은 난장판을 만들었고, 협동은 나쁘지 않았으며, 경쟁이 가장 빠른 결과를 냈다고 하네요.

'빨리 빨리'(압축 성장)가 아주 중요한 가치인 한국에서 사는 것은 가장 빠른 결과를 끌어내기 위하여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스웨덴 학교는 '모두 똑같이 잘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군요. 스웨덴 학교는 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내주는데, '똑같은 도형 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점자판에 선을 이어 여러 가지 특이한 모양을 만드는 것' 같은 과제들은 대개 모둠을 구성하여 해결한다는 군요.

"내가 일등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을 포기하고 나니 일은 훨씬 쉽게 풀렸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리고, 서로 의논해서 어떻게 하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개성 있는 의견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그 결과 우리 모두 승자가 되었다." (본문 중에서)

그러나 협동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 이하영은, 처음에는 협동하는 것이 일등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부활절을 앞두고 반 친구들과 책상 세 개를 이어 붙여야 하는 커다란 공동화 작업을 하며 '경쟁'을 벌이거나 '대립'하였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작품을 만드는 체험을 한 것은 모두 승자가 되는 '협동'을 익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이하영은 "나 혼자 일등이 되는 것도 기분 좋지만, 모든 사람이 함께 승자가 되는 것도 무척 기쁘고 성취감이 느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스웨덴은 인간관계와 협동, 협상, 협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여럿이 함께 일을 해결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협조, 설득이 몸에 베였다는군요. 이런 경험이 쌓인 이 나라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싸우는 일도 보기 어렵답니다.

1+1이 2인 이유를 서술하시오

독자 여러분은 1+1이 2인 이유를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나요? 모두들 1+1=2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왜 1+1이 2인지를 설명하라고 하면 당황할 겁니다. 1/10과 10퍼센트는 어떻게 다른가? 스웨덴이라는 나라에서는 수학을 이렇게 공부한다고 하네요.

수학 교과서는 숫자와 공식보다 글자가 더 많고,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서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적을 평가하는 방식이 아예 한국과는 판이하다더군요.

학교를 졸업하려면 스웨덴어, 영어, 수학은 반드시 기본 점수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어 점수가 미술 점수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점수도 MVG(매우 훌륭함), VG(훌륭함), G(보통 수준), IG(부족함) 이 네 가지 밖에 없다. 즉, 수학을 MVG를 맞건, 체육을 MVG를 맞건 계산되는 점수는 똑같다.(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주요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도 예체능 과목을 소홀히 하면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체능 과목은 음악, 미술, 체육에서부터 요리, 목공, 봉재 등 별의별 과목이 다 있는데, 모두 주요 과목과 같은 비중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스웨덴 사람들은 학교에서 목공과 같은 기술과목을 배워서 변기가 막히거나 하수도가 고장 나면 모두 직접 수리를 한다는군요. 인건비가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전등이나 변기, 욕조를 직접 설치하는 사람들이 많고 어지간한 집수리는 직접 하기에 학교에서도 목공과 봉재 같은 수업은 모두 실질적인 내용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노력과 열정이 있으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도 우리와 같은 실업계와 인문계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으며, 장래 희망에 따라 수십개의 전공으로 세분화된 다음과 같은 고등학교 과정을 선택하게 된대요.

어린이와 여가 프로그램/ 건축프로그램/ 전기프로그램/ 에너지 프로그램/ 예술 프로그램/ 탈것 프로그램/ 상업과 경영프로그램/ 손작업 프로그램/ 호텔과 레스토랑 프로그램/ 산업, 공업 프로그램/ 요리 프로그램/ 미디어 프로그램/ 자연프로그램/ 과학프로그램/ 간병, 간호, 보육프로그램/ 사회학 프로그램/ 기술프로그램/ 국제학사학위 프로그램.

장래 희망에 따라서 이런 프로그램들을 이수하여 곧바로 직업을 선택하기도 하고, 다시 대학을 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험 점수에 따라서 의사, 변호사, 공무원으로 갈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배우고 차별받지 않고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하영이 에즈베리 학교 선생님 '이다'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바로 "노력과 열정이 있으면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말이었다고 하네요.

"나는 이 문구를 좋아한다. 돈이 없어도, 인맥이 없어도, 엄청나게 뛰어난 두뇌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부모의 경제력과 비싼 과외를 통해 얻어내는 좋은 성적, 다양한 입시정보에 의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참 많이 다르더군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엄청난 대학 학비도 감당해야 하는군요.

지구 저 편 나라에서는 젊은 청소년들이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 우리와는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력과 열정 앞에 기회가 열려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더군요.

<스웨덴 학교 이야기>를 쓴 이하영 역시 한국에 있을 때보다 스웨덴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꿈이 확 바뀌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신 앞에 수많은 선택이 펼쳐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유엔에서 일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못하는 인간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한국교육과 내가 장래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닫게 만드는 스웨덴 교육의 차이를 한 눈에 알 수 있게 해주네요. 어디 학교와 교육제도뿐일까요?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많은 세금을 걷어 기본적인 의료, 복지, 교육시스템이 갖추어진 스웨덴과 우리나라는 완전히 딴판이지요.

책을 시작할 때 머릿글에서 이하영은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같은 스웨덴 이야기가 '속 편한 소리'로 비쳐질까 두렵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지구촌 어떤 곳에서는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우리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도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미국학교를 다녔던 사람, 미국에서 살아 본 사람들의 경험만 주로 전해져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대부분이 미국을 쫓아가서 실패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이하영이 다녔던 스웨덴 학교와 그가 살았던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경험이 이 책을 통해 우리청소년들과 학교에도 바이러스처럼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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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단다 - 진짜 살림꾼 장일순 우리 인물 이야기 20
김선미 글, 원혜영 그림 / 우리교육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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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일대기를 소개하는 이야기책입니다.

민주화운동, 사회운동에 헌신해 온 운동가들뿐만 아니라 영성운동, 생명운동에 참여하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시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제가 마음으로부터 스승으로 모시는 많은 분들 역시 장일순 선생을 스승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90년대부터 생협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장일순 선생의 이름을 들었지만, 제대로 선생을 알게 된 것은 돌아가신 후에 책으로 나온 최성현이 쓴 <좁쌀 한 알>과 이현주 목사가 펴낸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와 같은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책을 살펴보면, 장일순 선생은 192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할아버지 장경호 선생께 한문을 배우고 독립운동가 박기정 선생에게 붓글씨와 그림을 배웠다고 합니다. 보통 학교를 마친 후에는 서울로 올라가서 공부를 하지만 한국 전쟁으로 공부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일생을 살아갔다고 합니다.

장일순 선생은 서울에서 공부하던 중 국립대학 설치를 반대하고 원주에 내려와서 지내는 동안 해월 최시형의 사상을 만나고 평생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교육운동에 헌신하던 젊은 시절에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국회의원 출마를 하기도 하였지만, 감옥생활과 군사정권의 감시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 서로 돕고 살도록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농촌과 탄광지역에 신용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 생활협동조합운동에 헌신하였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대접 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반독재투쟁에도 참여하였지만,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소중히 여기며 온 생명이 서로 돕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난초 그림과 붓글씨로 유명한 예술가이기도 하였지만, 서화 작품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해주었고, 뜻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공짜로 내주어 힘을 보태어주었다고 합니다.

김선미가 쓴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있다>는 어린이를 위해 쓴 책입니다. 이 땅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장일순 할아버지가 생전에 품었던 마음과 생각을 전해주기 위해서 쓴 책이랍니다. 좁쌀 한 알에 땅과 바람과 햇빛과 공기와 물과 우주만물이 담겨 있다는 지혜를 어린이들에게도 전하기 위해서 쉽게, 쉽게 풀어쓴 책이지요.

모자라니까 더 많이 채워지는 거야

이제부터 조한알(장일순 선생의 또다른 이름) 할아버지가 생전에 품었던 마음과 생각 중에 몇 대목을 소개해드리지요. 어린 시절에 조한알 할아버지가 동생과 낚시를 같을 때 이야기 입니다. '게바리' 낚시를 하면서 낚시를 드리우고는 있었지만 물고기를 잡는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일에 흥미도 없었고 재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의욕도 없었다고 합니다.

조한알 할아버지는 스스로 늘 "나는 참 못나고 모자란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까 주위 모든 게 선생님처럼 보여 동생이든, 친구든, 어린아이든 가리지 않고 스승으로 삼았고, 심지어 길가의 풀 한 포기에게도 항상 겸손하게 배우려고 했답니다.

"그릇이 비어 있어야 맛난 음식을 담을 수 있어. 배가 고파야 음식이 더 맛있고 말이야. 항상 내 배가 부르고, 아는 게 많아서 생각 주머니가 꽉 찼다고 여기는 사람은 새로운 걸 배우기가 쉽지 않단다."(본문 중에서)

붓을 들고 독립운동, 붓을 들고 사회운동

조한알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던 차강 박기정 선생님에게서 붓글씨와 그림을 배웠다고 합니다. 차강 선생님은 나라를 빼앗기자 일본군과 맞서 의병으로 싸우셨고, 그 뒤에는 그림과 글씨를 팔아 나라 밖에서 독립운동하던 분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는 칼로, 나이가 들어서는 붓으로 일본이랑 싸웠던 분"입니다. 조한알 할아버지는 차강 선생님께 글씨를 배울 때 늘 자랑스런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훗날, 조한알 할아버지 역시 환갑을 넘긴 나이에 '한살림'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쓴 글씨며 난초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어 작품을 팔아 번 돈을 모두 한살림운동에 내놨다고 합니다. 스승이셨던, 차강 선생님이 그림과 글씨를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을 보내 주던 일을 빼닮았던 것입니다.

조한알 할아버지는 그림이 어떻게 팔렸는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묻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늘 "그림을 그려서 얼마를 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나는 붓을 꺾을 것이야"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선물로 그림을 그냥 그려주기도 했고, 좋은 일을 하느라 돈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언제든 그림을 팔아 쓰라고 했답니다. 귀한 글씨와 그림을 왜 그렇게 헤프게 나눠주느냐는 물음에, 그는 자신의 글과 그림에 부적과 같은 마음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차강 선생님뿐만 아니라 조한알 할아버지의 장경호 할아버지 역시 훌륭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북한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땅을 많이 가졌던 부자들이 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조한알 할아버지 가족들은 모두 무사하였다고 합니다.

조한알 할아버지 집에서는 평소에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오면 늘 따뜻한 밥을 대접하였고, 날이 추운데 동냥 바가지도 없이 찾아온 사람에게 아예 안방을 내어주고 정성껏 밥상을 차려 대접 했다고 합니다. 또한 토지개혁 때도 할아버지 가족들은 소작인들에게 땅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추수 때마다 받아먹은 곡식이면 땅값은 치르고도 남는다. 이제 다 땀 흘린 사람들에게 돌려주거라. 할아버지 뜻에 따라 아버지는 글을 모르는 소작인들을 위해 땅문서까지 직접 만들어 주셨지."(본문 중에서)

가난한 농민들에게 소작을 줄 때도 단 한 번도 수확량을 세어보고 땅 주인 몫을 확인하는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늘 주는 대로 감사히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조한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장경호 어른이었기에 지주라면 무조건 반동으로 몰아 죽이던 전쟁 때에도 소작인과 농민들이 먼저 감쌌다고 합니다.

'브라보콘' 값은 누가 매기지?

마지막으로 조한알 할아버지가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할 때 농민들을 모아놓고 협동조합운동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있었던 이야기 하나만 더 소개할께요.

1970년에 처음 나온 브라보콘은 인기 있는 고급 아이스크림이었다고 합니다. 보통 아이스크림이 한 개 5원 할때 브라보콘은 50원이나 했다고 합니다. '열 두시에 만나요 브라콘 ~ 둘이서 만나요 브라보 콘~' 하는 광고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따라 부를 정도로 유명했다는군요.

조한알 할아버지는 이 브라보콘을 예를 들어 농민들 귀에 쏙 들어오도록 협동조합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브라보 콘) 그게 얼마예요?"
"50원이죠"
"그걸 누가 정했나요?"
"그거야 브라보콘 만드는 데서 정했겠지요."
"그래요. 재료랑 광고비랑 또 만드는 사람 월급까지 계산해서 값을 매긴거란 말이죠. 그런데 쌀은 어때요? 쌀값은 누가 정해요?"

조한알 할아버지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이 값을 매기는데, 쌀값은 농사지은 사람들이 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조한알 할아버지는 쌀값, 배추값을 농사지은 사람들이 옳게 매길려면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농민들을 설득하였다고 합니다.

원주에서 처음으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 때도 이런 이야기로 사람들 마음을 모았다고 합니다.

"십시일반이라고 자기 밥에서 한 숟가락씩만 덜어 내도 금세 밥 한 그릇을 만들 수 있어요. 적은 돈이지만 여럿이 모아 꼭 필요한 사람을 돕자는 게 신용협동조합이에요."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신용협동조합은 은행에 갈 엄두도 못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협동조합운동은 생활협동조합, 의료협동조합, 공동육아협동조합, 농인생활협동조합으로 발전하였고, 조한알 할아버지가 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한 원주는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잘 되는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천주교인이었던 조한알 할아버지는 "서로 돕고 협동하여 잘 살 수 있으면 이 땅이 천당이 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였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유기농산물을 공급하는 한살림 운동을 시작할 때도, 몸에 좋은 것을 먹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우쳐주었다고 합니다.

"몸에 좋은 것만 사 먹자는 게 아니에요. 그걸 기른 농부들을 하느님처럼 모시자는 거죠. 여러분을 잘 먹여 주는 분들이잖아요. 여러분은 또 농부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 주니까 그분들의 하느님이 되는 거지요."(본문 중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와 농산물을 먹는 소비자가 모두 서로에게 하느님이고 가족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것 역시 하느님 일이라고 사람들을 깨우쳐주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세상을 바꾸려면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살림 운동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살림은 온 인류가 함께 사는 길이어야 한다. 나아가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풀과 나무, 벌레와 땅과 바다, 온 우주가 함께 사는 길이어야 한다. 그것을 되살리려면 온 우주와 인간이 결국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 그러니까 내 몸처럼 자연을 지구를 우주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본문 중에서)

이렇게 할아버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를 새롭게 만드는 일"을 시작하신 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 일은 한살림을 넘어서 조한알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에 의해 여러 모습의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생명운동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답니다.

지은이는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밥을 먹을 때 말이야, 밥알 하나 키우는 데도 바람과 비, 햇빛, 땅, 농부 그리고 부모님의 땀까지 온 우주가 힘을 모았다는 사실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 밥이 바로 하느님이거든."(본문 중에서)

김선미가 쓴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단다>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으면서 뭐든 다 하시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마음과 생각을 어린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쓴 책입니다. 부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참 좋을 책입니다.


무위당 장일순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 누리집
http://www.jangilsoon.co.kr 을 방문하시면, 조한알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인 '무위당 좁쌀 만인계'에 참가할 수도 있고 서예작품과 그림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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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아 나하고 친구하자
김재춘 지음 / 소금나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에이즈, 사스나 조류독감, 광우병과 같은 무서운 질환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현대 한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은 역시 암일 것이다.

국내에도 에이즈 환자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암환자의 숫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고, 사스나 조류독감, 광우병과 같은 질병은 국내에서 아직 현실적 위험으로 닥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암'은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질환인 것이다. 암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산업화가 시작된 1950년대부터라고 한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방사선요법이 사용되었고, 1970년대 이후부터 가까운 장래에 '기적의 암 치료제'가 곧 만들어져 상용활 될 것이라는 소식이 '9시 뉴스'를 통해 여러 번 보도 되었지만 여전히 '현대의학'으로는 암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김재춘이 쓴 <암아 나하고 친구하자>는 자연요법을 활용하여, 암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을 다스리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암을 죽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야"하며, "수술이나 항암제로 효과를 보려면 가능한 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수술을 해야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손상을 덜 받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연의학에 몸담아오는 많은 자연의학 지도자, 자연건강연구가들은 의료법위반으로 처벌 받기도 하고, 일부 잘못된 민간요업과 같은 사이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자연의학은 서양의학, 한의학으로 나누어진 의료체계 아래에서 아직도 올바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자연의학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분들이 모여 '한국건강연대'를 결성하고, 민중의학을 합법화하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실제로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이면서 임상에 자연요법을 도입한 전홍준 선생은 "첨단의학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만성, 난치성질환이 갈수록 증가함에 따라 현대 서양의학이 고비용 저효율의 의학이란 비판과 더불어 현대의학에만 의존하는 데 회의를 품는 분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본다.

자연요법을 활용하는 전홍준 선생은 자신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요법이 '서양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탁월한 의학'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현대 서약의학은 특정 병인설에 기초한 분석주의적 기계론이라는 것이다. 특정병인설이란 모든 질병에는 특정한 원인이 있으므로 그 원인을 찾아내서 제거해야 병이 낫는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한 원인을 찾아서 이를 해결하는 식의 기계론적인 서양의학은 탁월한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이 방법이 모든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암,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퇴행성질환의 경우에는 서양의학을 통한 치료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탁월한 의학


이런 난치성 질환들은 오히려 관점을 바꾸어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질병의 병증을 직접 제거하기보다는 그 병증을 발생시키는 건강의 토대를 전체적으로 개선해주어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생 자연의학을 연구하고 <암아, 나하고 친구하자>를 김재춘 선생 역시 같은 주장이다. 서양의학의 특정병인설에 기초한 암 치료법이 오히려 면역체계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암 치료를 위해서는 자연의학의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야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자연의학자 김재춘 선생은 '암은 반드시 낫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음의 일곱 가지 원칙만 지켜내면 틀림없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① 암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자신을 암으로 몰아넣었던 환경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하면, 재물과 명예 등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② 암을 성장시킬 미움, 시기, 질투, 원망, 분노를 잊어야 한다.
③ 암에 대한 특성부터 파악하고 나서 암에 대한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④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치료법을 찾았다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⑤ 수 없이 많은 치료법 중에 자신에게 맞는 합리적인 치료법이 아니면 과감하게 거절해야 한다.
⑥ 자연요법에 대한 신뢰는 그에 상응하는 실천이 뒤받침 되어야 한다.
⑦ 초심을 잃지 않고 자연요법의 유지해야 한다.

서양의학을 전공하고 자연요법을 임상으로 활용하는 전홍준 선생 역시 환자가 건강회복에 실패하게 되는 배경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① 질병의 진행정도가 이미 회복될 수 있는 자기치유력의 한계를 넘어선 경우
② 환자가 그 방법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 제대로 실행하지 않거나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
③ 환자나 가족의 마음이 근심걱정, 두려움, 분노, 비탄, 절망, 피해의식 등의 어두운 감정으로 차 있거나 늘 불안해하고 산란해 있는 경우이다.

암을 이기는 기본 원칙

네덜란드에서 '암에 맞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독립적 암 치료 전문가 로타르 히르나이제도 비슷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로타르 히르나이제는 <화학요법은 암을 치유한다. 그리고 지구는 편평하다>라는 책을 써서 암 치료 방법으로서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에 반대하며, 모든 암 치료법은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녹색평론 2005년 1-2월호) 그것은 바로 다음 세 가지 요소이다.

① 철저한 해독
② 식생활의 변경
③ 정신적 또는 영적 정화작업이다.

로타르 히르나이제에 따르면 "모든 암의 원인은 스트레스"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암은 인체의 과잉당 문제를 제거하기 위한 최후의 방편으로 종양을 만들어서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는 종양이 적이 아니라 바로 스트레스가 진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히르나이제는 종양과 함께 윈-윈 하는 거래를 성사시키라고 한다. 종양이 커지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고, 내가 죽으면 종양도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종양과 사람사이에 윈-윈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종양을 죽이려고 들 것이 아니라 종야의 크기를 정상범주로 줄여서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녹색평론 같은 호에는 발도로프 학교로 유명한 슈타이너의 인지학에 바탕을 둔 인지학의료를 통하여 음악(소리), 빛, 명상과 같은 쉽게 믿기 어려운 방법으로 암치료를 받은 '리타 테일러'교수의 사례도 소개되어 있다.

화학요법에 반대하는 자연의학자들

김재춘 선생이 쓴 <암아, 나하고 친구하자>는 이러한 암의 특성에 따라 자연건강법을 적용하여 건강을 회복 할 수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건강법에 따른 운동요법인 붕어운동, 모관운동, 합장합척운동, 약속요법, 등배운동, 각탕법, 겨자요법, 관장요법, 냉온욕, 된장찜질, 발목떨기, 발목펌프건강법, 풍욕 등의 자연 요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건강요법들 중에서 많은 부분은 장두석 선생이 쓴 <사람을 살리는 단식> 그리고 최민희 선생이 쓴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와 같은 책을 통해서 그리고 국내외의 여러 자연건강법 연구자들을 통해 난치병 치료 또는 아토피 치료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미 소개된 내용들이다.

이 책에서는 자연건강법 연구자들을 통해서 이미 널리 소개되는 자연요법을 그림과 상세한 실제적용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단식요법, 생채식요법, 황토갯벌제독요법, 발효효소, 감잎차, 식이섬유, 식용목초액, 목초수액시트, 버섯균사체발효효소, 토란고약, 함초청국장 요법 등의 자연건강요법들도 만드는 방법과 적용방법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실제로 나는 여러 차례 단식요법, 생채식요법을 비롯한 풍욕, 냉온욕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자연건강법을 직접 체험해보았지만 김재춘 선생의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황토갯벌 제독요법이나 토란고약, 함초청국장 등 새로운 자연건강법을 접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이 책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오염, 안전한 밥상을 위협하는 식품오염과 주거문화 등에 대하여도 자연건강법 연구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서양의학이던, 한의학이던 혹은 자연건강법이던 얼마나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치료과정에 참여하는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방송이나 신문, 잡지 등에 나오는 의학 관련 프로그램이나 의학상담 코너를 보면 결국 정확한 것은 전문의를 만나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하고 있다. 김재춘 선생이 쓴 <암아, 나하고 친구하자> 역시 자연건강법의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결국 경험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따라 하기에는 위험한 부분이 없지 않다.

이 책 역시 자연의학, 자연건강법에 대한 종래의 불신을 회복하고 자연건강법을 바르게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라고 본다. 서양의학을 전공한 전홍준 선생은 "높은 산의 정상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개이듯 질병을 대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같은 질병을 치료할 때도 그 증세를 직접 제거하는 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 하면 그러한 질병이 발생한 사람의 건강의 본바탕을 개선하는 방향에서도 접근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김재춘 선생이 쓴 <암아, 나하고 친구하자> 역시 건강의 본바탕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암치료에 접근하려는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씌어진 책이라고 한다. 지은이는 "이 책은 정보를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정보가 필요한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암 환우들이나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질병을 치료하는데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의사인 전홍준 선생은 "건강과 질병을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단일이론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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