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나침반 - 거대기업과 전문가들은 어떻게 정보를 조작하는가
존 스토버.셸던 램튼 지음, 정병선 옮김 / 이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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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진리를 탐색하는 것, 과학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과학자들의 진리 추구 방식은 독립적인 새로운 발견과 함께 시작되고, 이어서 동료들의 비판을 받고, 최종적으로 공익을 위해 발표되고 사용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믿음에 기초하여 오늘날 ‘과학’이라는 용어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과학적 사고, 과학적 사회주의 등의 표현처럼 인문 사회과학분야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고의적인 기만행위나 의식하지 못하는 편견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이른바 홍보산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과학자들에 의하여 과학은 무수히 많은 옳지 않은 결정들을 쏟아내고 있다.

미디어민주주의센터에서 일하는 존 스토버와, 셸던 램튼이 쓴 <거짓 나침반>은 바로 이러한 거짓 과학이 작동하는 메커니즘과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 일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는지를 낱낱이 밝혀놓은 책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홍보산업이 만들어 낸 거짓 NGO와 단체, 과학을 빙자한 연구소와 그들에게 고용된 연구자들 그리고 종내에는 산학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부도덕한 기업들의 연구비 지원과 기업이 원하는 연구결과를 쏟아내는 과정, 군사기밀이 산업기밀로 변모해가며 대중의 이익과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모두 고발하고 있다.

산업재해, 흡연과 간접흡연의 유해성, 유전자조작 식품, 광우병 소, 제초제와 농약 화학약품, 온실가스 배출, 지구온난화와 같은 인류의 생명과 삶을 다루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하여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홍보와 선전의 가면을 벗겨내고 있다.

과학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홍보와 선전의 가면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①납중독과 같은 직업병의 원인은 100% 납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없다.
②간접흡연이 암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③유전자 조작 식품은 기아와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④제초제와 농약은 곡물의 생산량을 늘려주는 적절한 수단이다.
⑤온실 가스 배출은 나무의 성장을 도와 숲을 살릴 수 있다.
⑥지구온난화에 대하여, 더운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이 같은 주장들은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지 않으면,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만한 논리로 인류 전체의 삶을 결정하는 과학적 주제들에 대하여 ‘물 타기’를 시도하곤 한다.

이 책에는 많은 홍보기업과 홍보기업을 이끌어가는 CEO들 그리고 1950년대 몬산토사로부터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이르는 기업의 주요 고객사들의 실명도 모두 공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홍보와 선전 그리고 로비에 놀아나는 정부 관료들과 정부의 정책결정 직책과 홍보기업을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실명도 모두 까발려져있다. 아마도 미국에서 이 책이 발간되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언짢아하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전문가들이 대중을 속이는 기술

존 스토버와, 셸던 램튼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할애하여 거짓 과학 = 거짓 선전을 구별하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이미 스탠리 밀그램과 같은 심리학자들은 개인과 권력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그릇된 전문가들이 다른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손쉽게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거짓 과학을 선전하는 선전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기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중상모략 - 배신, 부정, 부패, 실패, 위선, 급진적, 묵인, 쓰레기와 같은 부정적 단어를 사용하여 반대파들을 공격하라.

②화려한 일반화 - 긍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단어 상냥함, 어린이, 선택권, 헌신, 상식, 꿈, 본분, 권한, 자유, 근면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라.

③완곡어법 - 모호한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의미를 희석시키는 방법으로 거짓말을 ‘전략적 허위진술’, 해고를 ‘직원변화’로 보통의 하수 찌꺼기를 ‘조정된 유기 영양 물질’과 같은 방식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④전이 - 국가, 교회와 같은 권위 있는 어떤 것의 구속력이나 명성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⑤증언 - 유명인사를 활용하여 생각, 제품, 대의 따위에 보증을 서도록 하는 방법이다.

⑥평범한 대중 - 평범한 보통사람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대중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다.

⑦부하뇌동 - 다른 모든 사람이 지지하고 있으니 당신도 지지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기술

⑧공포 - 더 나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포를 조장하여 설득하는 방법으로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주장과 같은 것을 말한다.

평범한 대중들은 이러한 기교에 쉽게 속아 넘어가곤 한다. 일찍이 나치의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 같다. 그는 “거짓말이 엄청나게 터무니없으면 없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말을 믿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거짓 과학자들과 선전가들은 대중을 속이기 위하여 정보과잉 공급 전술도 자주 활용한다. 그들은 정보의 과잉공급을 통해 대중들을 굴복시키곤 한다.

“대중에게 아주 많은 통계 수치와 다른 정보들을 우겨넣으면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분류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곧 생각하기를 멈춰버리고 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따라서 공공적 쟁점의 결정과 관련하여서는 기술, 지식, 경험, 과학으로 표현되는 전문 지식은 가치에 대한 근본적 질문보다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낙태는 옳지 않은가? 부모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타당한가?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도 되는가? 본인의 동의 없이 인간을 상대로 의학 실험을 해도 되는가? 이런 질문들은 대하여 과학으로 대답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가치와 도덕적 기준을 동원하여야만 한다.

과학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과학은 우리사회가 과학에 대하여 바치는 지나친 존경 덕택에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실의 원천이라는 아주 비과학적인 관념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과학은 어느 정도 불확실 하다. 자연은 복잡하고 연구는 어렵다. 주어진 질문과 관련하여 과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최대치는 이러이러한 대답이 진실일 가능성이 아주 많다는 정도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이라는 이름의 연구 결과가 과연 진실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정직한 연구자라면 거의 언제나 연구의 결함들을 본문에 적어둔다. 그러나 부정직한 연구자라면 자신의 연구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게끔 만들고 싶어하는 과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너무 복잡해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너무 복잡해서 안전하지 않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대중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과 관련하여 민주주의는 매우 중요하다.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쟁점과 관련하여 다른 결론을 주장하고 있을 때, 결국 우리는 그것이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금지하여야만 한다. 유전자 조작이나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이루어질 때도 마찬가지이다.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은 과학자나 전문가들이 할 것이 아니라 평범한 민중들이 하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자나 전문가들은 대중의 이익보다는 흔히 기업과 선전가들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고, 훗날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사회의 궁극적 권력은 결국 민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의 궁극적 권력을 믿고 맡길 만한 안전한 대상으로 민중만한 것이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민중이 건전한 분별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깨우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에게서 권력을 빼앗지 말고 그들의 판단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토머스 제퍼슨, 본문 중에서.


오늘날 많은 전문가들은 민중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민중의 판단력을 키워주기 보다는 민중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자신들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인류의 미래를 위험으로 몰아가고 있는 세상의 많은 잘못된 결정들은 모두 ‘전문가’들이 하고 있다. 세상은 결국 전문가들이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거짓 나침반>에는 대중들을 속이는 위장단체 파악하기, 거짓 과학을 만들어내는 검은 돈의 흐름, 거짓 과학을 만들어내는 위장 연구소들, 그리고 거짓 과학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거짓 매체를 구별하는 법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도 누군가가 꼭 이 같은 책을 써야만 할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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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 오만한 제국, 미국의 신화와 허울 벗기기
데이비스 D. 조이스 지음, 안종설 옮김 / 열대림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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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은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불복종의 이유>, 그리고 <미국민중사>를 쓴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다.

노암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으로 알려졌으며, 흑인 민권운동부터 반전운동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운동의 대표적인 실천적 지식인이자 활동가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D. 조이스가 쓴 <하워드 진>은 진에 대한 첫 번째 전기라고 할 만한 책이다.

그렇지만, 진의 사생활이나 사회운동가로서 삶의 궤적보다는 진이 쓴 많은 책을 중심으로 책이 쓰인 과정, 시대적 상황, 책에 대한 학계와 전문가들의 평가, 그리고 책이 그 당시 미국 사회와 미국 사회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하였다.


일반적인 전기와 많이 다른, 수백 개의 주석이 붙어 있는 마치 학술 논문을 읽는 것 같은 전문 느낌을 주는 책이다. 또 다른 특징은 이 책이 아직 살아 있는 하워드 진의 전기라는 점이다.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전기가 살아 있는 동안 쓰이는 일이 드물다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하다.

<하워드 진>은 저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객관적인 역사서술의 형태를 띠지 않았다. 데이비드 D. 조이스는 스스로 하워드 진이 쓴 <베트남 철군의 논리>, <미국민중사>와 같은 책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존경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데이비드 D. 조이스는 다분히 있을 법한 '객관성을 잃을 만한 우려'에 대하여, 진의 인터뷰 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객관성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모든 역사는 주관적이고, 모든 역사는 하나의 관점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언제나 수없이 많은 사실들 가운데 일정한 부분을 선택하며,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당사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객관성을 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저자 서문 중에서)

이 책은 하워드 진을 존경하는 데이비드 D. 조이스에 의하여 쓰였고, 서평 역시 하워드 진이 쓴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불복종의 이유>와 같은 책을 읽고 그의 역사적 정치적 견해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쓰였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은 가능하지 않다

하워드 진은 1922년에 태어났으며, 양친은 모두 유럽에서 이주해온 유대인이었다. 수많은 직업을 전전한 가난한 부모를 둔 '진'은 배를 곯은 적은 없지만,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짧은 대학생활을 그만두고, 해군 공창에서 노동자생활을 하다가 공군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진은 공부를 계속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3년 동안 조선소와 막노동, 양조장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49년 뉴욕대학에 입학한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거쳐 역사학을 전공으로 정치학을 부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진은 자신의 첫 인생 33년을 이렇게 썼다.

"실업과 열악한 일자리의 세계, 대부분의 시간을 비좁고 지저분한 곳에서 살면서 두 살, 세 살짜리를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기고 학교나 직장에 나가야 했고 아이들이 아파도 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개인 의사에게 데려가지 못하고…… (중략)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조차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적절한 학위를 갖추고 나서 그 세계를 빠져나와 대학교수가 된 후에도, 나는 결코 그 세계를 잊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계급의식을 버리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진은 1956년 흑인여자대학인 '스펠먼' 대학의 교수가 되면서부터 흑인 민권운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고 참여하게 된다. 진은 "선생은 강의실 안에서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생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때의 경험을 담아 <남부의 신비>라는 책을 쓰게 된다. 그리고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한 경험을 통하여, 민권운동이 인종 문제만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표현의 자유, 언론과 출판,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이 수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흑인 인권운동과 학생운동에 깊이 참여한 진은 마침내 1963년 스펠먼 대학에서 쫓겨나게 된다. 소송을 제기하면서 스펠먼 대학과 싸움을 하지만, 인생을 속박시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싸움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 <남부의 신비>, , <뉴딜단상>과 같은 책을 집필하게 된다.

진은 뉴딜정책의 성과를 "공황을 맞아 급격히 몰락해 가던 미국의 중산층을 살려냈고, 실업자의 절반가량을 구제했으며, 가장 밑바닥 계층에게 어렴풋한 희망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평가했다.

진의 평가에 따르면, 불황이 늪에서 빠져나오자 미국은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실업자들, 중산층의 그늘에 가려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2000∼3000만명의 극빈자들, 지극히 무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산 설비가 남았지만, 그것은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기보다는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하는 시설만 남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전쟁을 촉구하는 지도자를 믿지 말라 

<달리기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는 하워드 진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진이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진은 객관적인 역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역사란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나도 나 자신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나는 세상을 밑바닥에서부터 떠받치고 있는 민중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싶다." (본문 중에서)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는 말은 곧 세상이 이미 특정한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략) 아주 좋지 않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세상에서 중립을 지킨다, 혹은 방관자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곧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부역한다는 의미다. 나는 부역자가 되고 싶지 않다." (본문 중에서)

그리고 진은 이러한 자신의 철학을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도 일관하게 유지하였다. 사회적 행동과 책을 통한 공부를 적절히 연결하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믿었다.

베트남 전쟁과 관련하여, 하워드 진은 <베트남 - 철군의 논리>를 통해 반전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난한 민중을 착취하는 소수의 부유층으로 구성된 독재정권조차 공산주의보다는 낫다"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정부의 논리에 진은 정면으로 반박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호치민 치하의 통일 베트남이 월남의 독재정권보다 낫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승리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그는 자시의 학생들과 미국인들을 향하여 "잘못은 전쟁 세력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동의 없이 군사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일이 벌어지도록 방치하고 정, 군사, 재계의 복합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못 박았다.

훗날 하워드 진은 베트남전의 교훈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무차별적인 살상무기로 대변되는 현대의 군사기술을 고려할 때, 모든 전쟁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에 불과하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전쟁일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전쟁을 촉구하는 정치 지도자는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본문 중에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두 번의 전쟁에서 수십만명의 어린이가 죽었으며,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에서 수십만명의 어린이와 민간인이 피해를 봤을 뿐만 아니라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전쟁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

데이비드 D. 조이스는 자신이 쓴 책 <하워드 진>에서 하워드 진 저작 중에서 <불복종과 민주주의>, 그리고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는 <미국민중사>를 살펴보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불복종과 민주주의에서 진은 불복종운동과 관련된 아홉 가지 잘못된 비난과 오해에 대하여, 아홉 가지의 새로운 원칙을 제시한다.

불복종이란 "필수적인 사회적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법률을 위한 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시민의 임무는 법과 양심을 세우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법과 양심의 간극을 메워가는 것이다. 시민 불복종을 실천하는 사람은 잘못된 법에 대하여 더 큰 시민 불복종으로 맞서야 한다. 정부는 국민과 동의어가 아니다. 필요할 경우에는 국민은 정부를 교체하기도 해야 한다와 같은 원칙들을 제시한다.

진은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우리는 언제나 정의의 발전과 함께 해온 건강한 혼란으로, 거짓 질서를 지키는 자들과 맞서는 싸움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워드 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미국민중사>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일원서각에서 <미국민중저항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최근에 <미국민중사>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신화와 허울을 벗겨낸 미국 역사를 서술한 하워드 진의 관점은 <미국민중사>에 나오는 문장에 잘 드러나 있다. 상당히 긴 인용문을 옮겨 본다.

"역사를 바라볼 때, 선택과 강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어느 한쪽을 편드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면, 나는 아라와크(인디어 부족)의 관점으로 본 미국, 노예의 관점에서 본 미국 헌법, 체로키 인디언의 눈에 비친 앤드류 잭슨, 뉴욕의 아일랜드인들이 바라본 남북전쟁, 스코트 부대 탈영병의 관점으로 본 멕시코전쟁, 로웰 직물공장의 젊은 여성노동자가 바라본 산업주의, 쿠바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스페인 - 미국전쟁, 루손의 흑인 군인들이 바라본 필리핀 점령, 남부의 농민들이 바라본 '도금시대', 사회주의자들의 눈에 비친 제1차 세계대전, 평화주의자들이 바라본 제2차 세계대전, 라틴아메리카 일용노동자들이 바라본 뉴딜정책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신화와 허울'을 벗겨낸 미국 역사 <미국민중사>가 하워드 진에 의하여 쓰였다. 미국민중사는 인종주의, 제국주의, 성차별, 계급구조, 폭력성, 환경 파괴 등의 문제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 민중사는 미국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중단의 실패, 계속되는 변화를 위한 희망

하워드 진은 1988년 은퇴를 결심하지만, 사회운동가로서 역사학자로서 활동은 '중단의 실패'로 말미암아 팔십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7월 4일생>의 저자 론 코빅은 하워드 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우리에게 희망과 힘을 주었고, 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불의와 맞서 싸우는 모든 사람들에게 궁극적 승리를 거두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정신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본문 중에서)

"나는 희망에 차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 변화를 이루기 위해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면, 그 사람은 희망을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본문 중에서)

하워드 진은 여전히 희망을 품을 자격이 있다. '중단의 실패'로 여전히 희망에 차 있다. 진은 자신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본보기를 남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본보기로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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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 - 식량은 상품이 아니라 주권이다
피터 로쎗 지음, 김영배 옮김 / 시대의창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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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대형마트에서 사다 먹는 토마토는 농산물일까?

대형마트에서 토마토를 구입할 때 우리는 화학비료와 살충제, 때로는 유전자변형 종자, 트렉터 등의 농기계, 관계장비, 살포장비, 국제 환물운송선박, 중간상, 슈퍼마켓 체인점과 광고회사 등 수 많은 다국적기업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식량주권>(시대의창 펴냄)을 쓴 피터 M. 로셋은 "이런 식으로 수입된 토마토가 내가 사는 지역 농부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산한 것과 같은 토마토가 맞는가?"하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지은이는 농산물은 강철이나 마이크로칩, 운동화와 같은 그런 상품이 아니라고 한다.

"농산물은 다르다. 그저 그런 상품이나 물건이 아니다. 농산물은 농업이며, 농업은 농촌의 삶 자체를 의미한다. 전통이자 문화이며 생존이다. 농업은 농촌의 사회며 농경의 역사다. 농촌은 그 나라와 국민이 문화유산을 간직한 보고다. 농산물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좋거나 나쁜 맛을 낼 수 있으며, 우리에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본문 중에서)

 WTO가 목표로 하는 무역자유화가 수백만 농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식량 안보를 위협하며,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넘쳐나는 증거들이 있다고 한다. 무역자유화가 생산량 증대를 부추기고, 농산물 가격을 떨어뜨리며, 농가부채를 증가시켜서 수많은 농민들을 농장에서 내쫓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농민운동가, 이경해에게 바치는 책

그 죽음의 극단에 바로 '이경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피터 M. 로셋이 쓴 <식량주권>은 "대한민국 농민대표였고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 농민의 길) 회원이었으며, 충분히 가능한 더 나은 세계를 위해 WTO에 맞서 2003년 9월 10일 멕시코 칸쿤에서 장렬히 희생한 이경해 열사에게" 바치는 책이다.

책의 첫머리에 스테판 스미스가 노래한 '이경해를 위한 발라드'(A Ballad for Lee Kyung Hae)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실려 있고, 머리말을 대신하여 이경해가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을 앞두고 시위 도중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서서 했던 "무역 대상에서 농업을 제외하라"는 연설문을 싣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WTO에 대한 자신의 투쟁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인 차원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맞서 싸운 이경해의 용기를 기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민들이 왜 목숨을 걸고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지를 설명한다.

자유무역 협정 때문에 한국 시장에 세계 곳곳에서 생산된 저가 농산물이 물밀듯이 들이닥쳤고, 한국 농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수익을 얻을 수 없는 낮은 가격이 형성되었다. 아울러 이런 비극은 한국 농민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 수출국으로 알려진 미국과 인도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수많은 가족단위 농장, 소작농, 농장 노동자와 토착민들이 같은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가족단위 농장, 소작농, 농장노동자, 토착민들이 중심이 된 국제농민운동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는 바로 지구적 차원의 자유무역에 대항하여 WTO와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고 있다. 'WTO 협상 대상에서 식품과 농산물은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피터 M. 로셋이 쓴 <식량주권>은 바로 여러 통계자료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연구결과를 그 증거로 제시하여, 국내 시장에서 유통할 목적으로 생산하는 소규모 농장들이 훨씬 생산적이고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고용 등을 통해 사회경제적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진실을 전하고 있다.



농업보조금과 가격덤핑이 농민을 죽인다
미국에서건 유럽에서건 농업 보조금 혜택은 넓은 농장을 소유한 부유한 농민들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간다. 농업 보조금 수혜자들은 농민이라기보다는 기업가에 가깝고, 농산물 가격을 하락시키는 주범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1140억 달러의 농업보조금이 편성되었다. 전체 농업보조금 가운데 상위 1퍼센트의 부유한 농민에게는 연평균 21만 4088달러, 상위 20퍼센트에게는 평균 9916달러가 돌아갔고, 나머지는 거의 받지 못하거나 아예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본문 중에서)

상위 21퍼센트를 제외한 미국 농민 대다수는 농업보조금으로 지탱되는 싼 농산물 가격 때문에 빚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낮은 농산물 가격으로 매년 12만 명의 소규모 농민들이 농장을 포기하고 있다.

농업보조금이 선진국 기업식 농장주에게만 혜택을 주어 덤핑을 야기하여 가족단위 농민과 소농 그리고 제 3세계 농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정책이 되고 있지만, 농민의 진짜 적은 보조금이 아니라 아니라 '낮은 가격'이다.

"시장의 집중화가 가중될수록, 공급과 공급가 관리가 소흘해질수록, 경제적 힘을 통해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기업들은 저가 농산물을 생산해나가는 한편 소비시장에는 점점 고가 농산품을 판다는 것이 핵심적 내용이다."(본문 중에서)

 제3세계 국가에서는 덤핑으로 자신의 농토에서 쫓겨나는 농민이 점점 늘어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는 것.

"2002년 미국에서 수출된 농산물의 상당수가 생산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다. 몇몇 사례를 살펴보면, 수출용 밀의 가격은 생산가 대비 평균 43퍼센트 낮은 가격이었고, 수출용 콩은 25퍼센트, 수출용 옥수수는 13퍼센트, 수출용 면화는 평균 61퍼센트, 수출용 쌀 가격은 생산가 대비 평균 35퍼센트 낮은 가격이었다."(본문 중에서)

결국 농업보조금과 덤핑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가족 단위 농민과 소농을 땅에서 쫓아내고 있고, 제 3세계 국가 농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농업보조금과 덤핑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각국의 농업정책과 세계 시장 점유율 90퍼센트에 육박하고 있는 카길, ADM, 콘아그라, 루이 드레퓌스, 벙기 등 곡물 메이저 회사들에 대한 집중화가 생산지 가격하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곡물 메이저 회사들에 대한 집중화 때문에 소비자가 더 많이 지불해도 농민에게 돌아가는 수입은 점점 적어지는 기현상이 벌이지고 있다는 것.

자유무역의 재앙에 신음하는 '멕시코'


멕시코는 NAFTA 체결 후 10년을 거치는 동안 무역자유화가 어떻게 농업을 무너뜨리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표면적 지표로만 본다면 멕시코는 무역자유화로 1980년 29억 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이 1994년에 110억 달러로, 2001년에는 218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물론, 경제성장과 함께 극심한 빈곤층도 늘어났다.

그런데, NAFTA가 효력을 발휘하기 전까지 수출 흑자를 기록하던 멕시코 농산물 무역은 1994년 이후 급격하게 적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에는 멕시코의 무역적자가 27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멕시코는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주식으로 삼아왔던 옥수수 농업이 무너지게 되었다고 한다. 멕시코 농민들은 9000년 전부터 옥수수를 재배해 왔는데, 1990년 이후 멕시코 국내시장에서 옥수수 평균 가격이 50%이상 급격하게 하락하였다는 것이다.

"NAFTA 이전에는 옥수수 수입량이 전체 멕시코 수입액의 2.9퍼센트에 불과하였으나 최근 들어서는 전체의 20퍼센트에서 25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같은 기간 미국의 경우 오히려 옥수수에 대한 보조금을 늘렸다. 보조금 비율은 미국 내 옥수수 농가 수입의 47퍼센트에 이르게 되어 즉, 실제 생산가보다 13~33퍼센트 할인 된 가격으로 미국산 옥수수가 세계시장을 잠식해 나간 것이다."(본문 중에서)

농가 수입의 47%를 보조금으로 보전 받은 미국 옥수수 농가들 때문에 멕시코 농민들은 더 이상 옥수수를 수확해서는 이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자국 농산물 시장 안정을 위해 멕시코에 신용지원을 약속했고, 멕시코는 이를 미국산 옥수수 구입에 활용할 것을 합의해주었다. 결국 멕시코의 수입업자들은 신용지원금으로 15억 달러어치의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했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멕시코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결국, 멕시코 옥수수 시장은 카길, ADM, 젠노와 같은 거대기업들에게 집중화되었고, 1999년 멕시코에서 옥수수 소비자 가격은 NAFTA가 체결된 초기 5년과 비교할 때 300퍼센트 이상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콩류, 밀, 가금류, 쇠고기 등 다른 농산물 역시 수입량이 500퍼센트나 증가했으며, 10년 만에 117만 5000명의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2003년에는 1930년대 이후 최대의 농민저항운동이 일어났다.

NAFTA는 미국 농산업기업들과 그들의 멕시코 파트너 회사들을 승자로 만드는 대신에 대다수 멕시코 농민, 특히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토착농민을 패자로 만들었다는 것.

식량과 농업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

"안전하고 건강한 식량의 충분한 공급과 생산의 측면에서 그리고 건강한 공동체, 문화, 환경적 측면에서 식량과 농업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이 비아 캄페시나와 식량주권 네트워크의 공동성명에 실린 주장이다.

"식량주권은 인간이 자신의 식량생산과 농업활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산품을 보호하고 규제할 수 있는 권리,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역의 권리, 자급자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자국시장에서 덤핑판매를 제한할 수 있는 권리, 어업공동체가 수산물 자원을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된다."(본문 중에서)

즉, 식량주권이란 농민과 소비자인 국민이 자연자원, 일상적인 생산과 소비, 생활의 모든 과정에서 식량과 관련한 자기결정권을 확립하고 행사하는 권리를 말한다. 자연재해나 인재,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먹을 권리만큼은 보장돼야 한다는 기본권리 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식량주권을 지키는 것이 무역을 방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올바른 무역 정책을 수립하고 안전, 건강, 지속가능한 생산을 영위하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량주권을 보장하는 여러 가지 정책을 간략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모든 농산물 덤핑을 금지하고 적정가격을 보장하여야 한다.
- 저가 농산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고 과잉생산을 방지해야 한다.
- 모든 종류의 직간접 수출 보조금, 생산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
- 식량안전성 및 품질과 환경문제를 고려한다.
- 토지, 물, 종자 등 생산자원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보장한다.
- 유전자 변형 종자, 식품, 사료의 교육과 생산을 금지한다.
- 원산지, 정보제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 농식품 기업의 산업독점을 금지한다.
- 농어업 자원의 다양성을 지키고 남획을 막는다.


이런 식량주권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국제무역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무역이 지역이나 국가발전, 사회, 환경, 문화적 가치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것.

"WTO는 전 세계의 불평등과 위험을 악화시켰으며, 지속불가능한 생산과 소비행태를 조장했고, 다양성을 파괴하고 사회적 환경적 우선순위를 훼손시켰다."

따라서 식량주권을 국제무역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며, 식량주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WTO가 농업분야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WTO는 식량 또는 농업과 아무 상관도 없는 기관이기 때문에 전 세계인의 식량주권이 보장되려면 WTO 체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

피터 M. 로셋이 쓴<식량주권>에는 이 밖에도 WTO의 오랜 친구인 세계은행과 IMF가 어떻게 개발도상국의 농업분야를 파괴하고 있는지, 그리고 식량주권을 확립하는 새로운 대안체제는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전국농민회 총연맹 이창한 정책위원장이 쓴 한국판 보론 '식량주권은 우리의 미래다'에는 2006년부터 시작된 국제곡물가격 폭등이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과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식량위기 상황, 우리정부의 대책 그리고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WTO에 맞서 싸우는 세계 농민운동가들이 멕시코 칸쿤에서 "열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매일 열 사람이 죽는 것 보다 낫다"고 절규하며 죽어간 한국 농민운동가 '이경해'에게 바치는 특별한 책이다.

지은이는 농산물이 기계에서 생산된 다른 물건들과 똑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은 바로 '초국적 농기업'과 '곡물투기자본'들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 회사들은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농작물을 파는 자가 '승리'하는 구조를 만들어 농민과 농민이 싸우게 만들며,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경작으로 건강하지 않는 농산물을 생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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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눈물 - 문학으로 읽는 아시아 문제 팔레스타인
수아드 아마리 외 지음, 자카리아 모하메드 엮음, 오수연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수아드 아미리를 비롯한 9명의 팔레스타인 현지 작가들이 쓴 11편의 글을 모아 놓은 산문집이다. 이 책에 나오는 9명은 모두 낯선 이름의 작가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기획한 팔레스타인의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이다.

조 사코라는 미국 작가가 쓴 <팔레스타인>이라는 두껍고 무거운 흑백영화 같은 만화책을 읽어보기 전까지 팔레스타인은 한 번도 내 관심 영역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읽고 난후 '팔레스타인'이라는 제목만보고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조금씩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하자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티모르나 이라크 그리고 북한만큼 많은 자주 팔레스타인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에서 어떤 일어 벌어지고 있는지 정말 모른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문학적으로 성공을 거둔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해서 소개한 책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이 책을 엮은이는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와 우리나라 소설가 오수연이다.

오수연은 2003년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통해 이라크 전쟁취재 작가로 파견되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다녀왔으며, 그 때 자카리아 무함마드를 만난 인연이 발전되어 국내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오수연과 자카리아 무함마드를 비롯한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예술가들 그리고 평화운동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문화적으로 두 나라를 잇는 일을 벌이고 있다고 하는데,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두 나라를 잇는 첫 번째 다리가 되는 책인 셈이다.

가물거리는 희망에 대한 집념으로 쓴 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20세기에 시작되어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은 마치 1세기 전에 있었던 일본에 의한 조선 병탄을 현재화시켜서 보는 듯한 끔찍함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고 알고 있는 사태는 분쟁이 아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막강 이스라엘 군대의 꾸준한 군사작전 대상은 고작해야 구식 총을 쏘는 민병대나 돌 던지는 소년들이며, 그보다는 그저 재수 없는 민간인들이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자기 집에 앉아 있다가, 또는 길바닥에서 난데없이 폭탄이나 총알을 맞는 보통사람들이다. 거기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일은 싸움이 아니라 학살이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1948년 5월 14일 영국과 미국, 소련의 인정을 받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같은 해 주변 아랍국가들과 전쟁을 벌여, 이스라엘은 전 팔레스타인 지역의 78%를 장악하고, 전쟁동안 주변 아랍국가로 피난한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은 거주 아랍인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그들이 돌아올 수 없도록 만든다.

1950년에 만들어진 이른바 '부재자 재산법'은 피난한 아랍인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동시에 주변아랍국가에 거주하였거나, 이유를 불문하고 본인의 거주지를 떠나있었던 모든 사람을 부재자로 분류하고 부재자의 재산을 점유자에게 귀속시킨다. 이후 이는 이스라엘 정부가 점유자 소유의 토지를 매입하는 근거가 된다.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일으킨 두 번째 중동전쟁을 통해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대상이 되는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 지역을 점령한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해 국제법상 불법 점령지로 규정된 이 땅은 전 팔레스타인 영토의 22%에 해당되며, 이때 또 다시 43만 4천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쫓겨나 요르단 등지로 이주한다. 그리고 이 때 피난가지 않은 100만 명 정도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점령 하에서 생활하게 된다.

"갑자기 우리가 살아온 땅이 분할되었고 우리는 분할된 땅에 갇혔다. 갑자기 패배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우리는 패배자가 되었다. 우리는 고국에 산과 들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패배자로, 고국을 '점령지역'이라고 불러야 했다. 우리는 땅과 우리의 지위를 한꺼번에 잃어버렸다."(본문 중에서)

<팔레스타인의 눈물>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들 점령지에서 일어나는 웃지 못 할 황당한 일들과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자행되는 고문과 살인, 파괴와 같은 끔찍한 이야기들 그리고 1948년 전쟁 당시에 팔레스타인을 떠나 있다가 1950년 사이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그들이 어렵게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아가야하는 아픔을 담아놓은 책이다.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펼치면 처음 만나는 이야기는 작가이며 건축학자인 수아드 아미리가 쓴 '개 같은 인생'이라는 글이다. 예루살렘 여권을 가진 개 '누라' 보다 못한 자신의 인생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 하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신분증명서에 의해서 겪고 있는 차별과 시민권이 어떻게 유린당하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사람보다 나은 예루살렘 여권을 가진 개

'심문'은 이스라엘 저항군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은 소설가 아이샤 오디가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된 자신이 심문 받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쓴 글이다. 갖은 구타와 고문, 동지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동지를 배신하지 않고 저항하는 저항군 투사가 겪게 되는 심리적인 갈등과 나약함에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마음이 섬세하게 그리고 현실처럼 드러나 있다.

일제 감옥에서 민주화운동 기간에 국가정보기관에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구타, 고문, 회유, 협박과 너무도 흡사하여 더 마음이 아팠다.

시인인 주하이르 아부 샤이브가 쓴 '집을 지키는 선인장을 남겨두고'에는 팔레스타인이 누구 땅 인지를 알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마치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는 두 여인을 재판한 '솔로몬 왕'의 재판과 같은 이야기이다.

"길에서 아무 이스라엘인이나 잡고 물어보라. 당신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느냐고. 그러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기가, 또는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정확한 날짜를 댈 것이다. 그러나 같은 질문에 팔레스타인인은 아무 대답도 못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여기 있었으므로."(본문 중에서)

주하이르 아부 샤이브는 이스라엘의 가혹한 점령정책과 안보정책은 결국 이스라엘이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실증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스라엘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고국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인들은 우리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들은 아직 자기 고국을 찾지 못했음을 아주 잘 안다. 이것이 그들이 정말로 걱정하는 비밀이며, 그들이 안보를 영원히 추구하는 이유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여기 고국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안다."(본문 중에서)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의 눈물과 그 눈물 속에 담긴 희망도 동시에 시작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을 상징하는 오래된 모든 것들과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추억들과 내면에 있는 다른 것들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이 땅의 주인이다.

팔레스타인, 눈물 속에 담긴 희망

2000년에 일어난 제 2차 '인티파다' 이후에 이스라엘은 '인티파다'를 막는다는 구실로 2002년부터 서안 지역에 총 길이 800km, 높이 8km의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사회학자 자밀 힐랄이 쓴 '점령지에 밀어닥친 폭풍우'는 바로 얼마 전 2002년 4월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점령지 침탈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다. 일기 형식으로 씌어진 이 기록은 이스라엘이 '라말라'를 침공해 통행금지와 가택수색을 빌미로 행한 도둑질, 그리고 점령지에 대한 이야기다.

경찰과 보안군 건물 시설파괴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각 부처 시청을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약탈과 도둑질 그리고 전기와 수도, 전화, 도로와 같은 도시기반 시설을 파괴했다고 한다. 아울러 비정부기구와 공공단체마저도 철저히 약탈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침탈은 도시뿐만 아니라 난민촌에서도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군이 난민촌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며 소총으로 저항한 투사 수십 명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즉결 처분 했다고 한다. 지금 난민촌에는 식량과 물, 의약품이 고갈되었다. 현재 난민촌에는 불도저 열일곱 대가 집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있어, 아이들이 부모를 찾아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불도저들은 죽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묻으려고 큰 구덩이를 팠다는데, 아수라장을 깨끗이 청소 한 다음에 외부에 보여줄 작정인 것 같다. 난민촌에 들어가려는 UNRWA, 적신월사, 제닌 의료종사자들은 지금껏 접근도 못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동전의 양면 같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좌파적인 이스라엘 일간 신문 <하아레츠>에 실린 기사가 제시하는 해법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도시와 농촌을 포위했을지 몰라도 그 자신 역시 포위당했다. 이 전쟁은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져 유대인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결론은 자명하다. 자신의 목을 조르는 압박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반드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철수해야한다."(본문 중에서)

처절한 파괴를 딛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내 놓은 <그날 이후>라는 성명서처럼 이스라엘이 1967년 6월 4일 이전의 국경 밖으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땅과 물, 하늘, 국경에 대하여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고,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함으로써 그들이 결국은 '함께 평화'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스라엘의 평화와 팔레스타인의 평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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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가끔 해외토픽을 보면, 사람이 개나 고양이에게 상당한 유산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사람이 개에게가 아니고 개가 사람에게 유산을 남겼다면? 아마 개짖는 소리쯤 여기고 대부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개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100억의 유산을 남겼다는말을 전해듣는다면? 그리고 누군가 "개가 유산으로 남긴 것"이라며 100억을 전해주면 당신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거절할 수 있겠나?

통쾌하지만 씁쓸한 '풍자문학'

2008년 대한민국 풍자문학의 최고 작품은 다음 아고라 폐인들이 아고라 게시판에 올라 온 글을 엮어 낸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다. 물론 순전히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다.

비꼬고 비틀고 다르게 보는 풍자는, 첫맛은 통쾌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깊은 여운이 남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때로 풍자는 풍자하는 자들이 스스로 힘없음을 시인하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아고라>에 쏟아부은 2mb 풍자 역시 선거를 통해 현실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하여, 달리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쏟아 붓는 언어 폭탄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반문해 본다. 아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풍자는 민중의 힘을 모으는 도구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50년 전에는 힘있는 자, 가진 자들을 어떻게 풍자하였을까? 아지즈 네신이 쓴 <개가 남긴 한 마디>는은 1958년 터키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다. 올해가 2008년이니 딱 50년 전에 출간된 책이다.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터키 풍자문학의 거장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생사불명 야사르>를 통해서다. 이 소설에서 네신은 주민등록이 없는 '야사르'가 국가가 필요할 때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자신이 필요할 때는 죽은 사람 취급을 당하는 어이없는 현실을 풍자했다.

200개의 필명, 100권의 책, 그리고 250번의 재판

아지즈 네신은 200개가 넘는 필명으로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100권이 넘는 작품을 발표하여 터키의 국민작가로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터키 문학사에 있어 신화적인 존재인 그의 작품은 34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국내외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아지즈 네신이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가 작가 이전에 실천적인 지식인으로 열렬히 살았기 때문이다. 터키의 폭력적 정권, 특히 언론인들에 대한 정부의 검열과 탄압을 비판한 작품들을 발표해온 그가 내란선동이나 좌익활동이란 죄목으로 250번의 재판을 받으며 유배와 수감생활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계엄령 하에서 권력의 억압으로 신문·잡지마저 외면할 때는 스스로 신문을 발행해 칼럼을 쓰고, 출판사를 만들어 작품 발표를 하면서 비판의 칼날을 멈추지 않은 실천적 지식인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국내에 번역된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모두 번역한 작가 이난아는 <개가 남긴 한 마디>를 "네신 문학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풍자 정신이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소개하였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풍자의 칼날이 한결 더 서슬 퍼렇고, 읽으면 읽을수록 풍자의 묘미가 더욱 맛깔스럽게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생생한 풍자 정신뿐만 아니라 200개가 넘는 필명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도 아지즈 네신은 요즘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는 네티즌들과도 닮은 구석이 많다. 번역 작가 이난아는 풍자를 일컬어 "인간이 지녀야 하는 살갑고도 무거운 웃음이며, 부드럽고 인간적인 비판"이라고 하였다.

아고라에 쏟아진 2mb에 대한 풍자는 예리하고 날카롭고 매서운 비판이 주를 이루는데, 네신의 작품은 부드럽고 인간적인 비판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부드럽고 인간적인 비판이었기 때문에 풍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그 풍자가 자기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끝내 깨닫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개가 남긴 유산은 무엇?

<개가 남긴 한 마디>에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는 어처구니없고 살벌한 정책들과 실수, 민중의 고통과 분노가 담긴 이야기 열다섯 편으로 엮여있다. 이번 책의 제목으로 뽑힌 <개가 남긴 한 마디>는 주인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개 '카라바쉬' 이야기를 통해, 부패한 재판관에 대해 풍자한다.

동정심 많은 개 주인 카슴은 너무나 개를 사랑한 나머지 카라바쉬가 죽자 사람처럼 장례를 치러주려 하다가 재판관 앞에 끌려가 경을 치게 된다. 그리고 종교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죄를 추궁당한다.

개 주인 카슴은 궁지에 몰리자, 자신이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선행이 모두 카라바쉬의 행위였다고 재판관에게 이야기한다. 카라바쉬가 가난한 사람을 돕고, 기부금을 내고 라마단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공공 우물을 보수하고 학교를 후원하였다는 것.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재판관은 카슴을 윽박지른다.

"당신 미쳤어? 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한단 말이야?"

"물론, 재판관님께서는 그 개가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았는지 가늠하시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그 개가 죽기 전에 저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 미친 놈아! 너는 다른 사람들이 너처럼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느냐? 어떻게 개가 유언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재판관님, 제발 믿어 주십시오. 정말로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금화 오백 냥을 재판관님께 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카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재판관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신의 이름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겠네. 카슴 선생 ! 좀 더 말해보시오. 고인이 무슨 말을 더 남겼나요? 제발 하나하나 읊어 주시오. 고인의 유언을 모조리 실행합시다. 그건 종교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선행 중의 선행이지 않습니까?"


이 책 중에서 '개가 남긴 한 마디' 편을 읽으면서, 종합부동산세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떠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종부세 위헌 판결을 심판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에 8명이 종부세 부과대상이었다는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이거 정말 50년 전에 쓴 거 맞아?

'늑대가 된 아기양' 편은 부당한 대우를 받던 어린 양이 참다참다 결국 늑대와 같은 분노를 표출한다는 이야기로 억압당하는 자의 고통과 분노를 풍자한다. '스타를 닮고 싶은 원숭이'는 평생 동안 남을 흉내내다 결국 누구도 될 수 없는, 정체성 잃은 원숭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 세상에 퍼진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도무지 50년 전에 씌어진 책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그의 풍자는 작금의 우리 현실에도 변함없이 투영된다. 국민들의 비판에 귀를 닫은 지도자, 자신이 바라는 정보만 전해주면 되는 총리 임명,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법률, 자신을 칭찬하는 소리만 골라 듣는 지도자, 국민 모두가 서로 잘못이 없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이야기는 모두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과 멀지 않아 보인다.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이 반세기 전에 쓴 <개가 남긴 한 마디>는 5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비춰보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다. 동화처럼 씌어진 책이라 청소년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주기에 손색이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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