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휴선 - 쉼, 또 한 번의 쉼, 비움을 통한 채움의 역설
이현주 지음 / 소금나무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휴휴선 제목부터가 범상치않은 이 책은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고, 어쩌면 세계에서 유일할지도 모르는 채식한방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이현주가 쓴 책이다. <휴휴선>을 처음 봤을 땐 범상치 않은 제목 때문에 동명이인 이현주 목사가 쓴 책인 줄 알았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보고 이내 동명이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채식한방 약국, 한약사, 먹거리, 생명 등의 키워드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저자 이현주는 인천에서 채식주의 한약국   기린한약방을 운영하고 있고 환경단체, 여성단체, 유기농단체 등의 시민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한 채식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지켜보면서 자본주의 문명의 반생명적 현실과 유물론적 사회운동의 대립적 상황 속에서 비폭력주의 사상에 눈뜨게 된다. 사회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면으로부터 정화되고 각성된 인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회진출 대신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을 선택한다. 자연과 교감을 통하여 생명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영적 탐구와 모색의 과정에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모두 3부로 구성된 <휴휴선>의 ‘제 1부 행복한 아이의 알 수 없는 슬픔’과 ‘제 2부 생명의 길’은 비폭력주의에 대한 각성과 영적 탐구의 모색 과정을 기록한 살아온 이야기이다. 대학에 들어가 이른바 ‘의식화 교육과정’에 속하는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과정과 운동권과 비운동권 사이에서 고민하던 과정 그리고 비폭력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저자 이현주는 먼 길을 돌아와 도시에서 생명주의 사상을 실천하며 사는 직업으로 한약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인간과 삶에 대한 좌절감을 극복할 만한 대안을 계속 모색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여 한약사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런 삶의 여정이 오늘의 그녀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마음이다


한약방을 개업하기 전에 금강경을 공부하고, 불교서적과 영적인 수행서적을 탐독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채식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게끔 길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채식으로 뿐만 아니라 채식으로도 필요한 영양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것이 익히 길든 음식을 원하면 그것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본문 중에서)

채식이던, 비채식이던 어떤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마음에 있는 일이며, 마음이 맛을 결정한다고 하는 것이다. 육식하는 사람들이 과도한 육식에 대한 비판을 참을 수 없어하는 것도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저자 이현주는 푸드낫밤과 프리건 같은 비폭력운동 단체들의 활동에 대하여 알게 되면서 영적인 성장을 위한 채식을 넘어서는 의미를 발견해나간다.

“채식을 한다는 것이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 행위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 운동이 될 수 있으며, 이미 그런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본문 중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에 가까이 다가온 영적인 수행의 길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채식을 시작하지만, 차츰 그 관심의 영역을 환경문제와 지구적 평화문제로 넓혀가게 된다. <휴휴선> 제 2부는 이런 그녀의 변화과정을 자세히 고백하는 내용이다. 또한 한약국을 통해서 만나는 환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생명의 문제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을 쌓아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제 3부 채식이야기’는 좀 더 본격적인 채식운동가로 나서게 되는 과정과 채식을 통해 지구생태계를 지켜낼 수 있다는 주장을 본격적으로 펼친다.

“채식은 먹는 대상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다. 그러나 채식주의는 먹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방식과 가치관의 문제이다.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고통을 전제로 하는 먹거리, 입을거리와 어떤 형태로든 폭력적이고 정당하지 못한, 생태적이지 않은 문화에 대한 선택적인 거부행위이자 생명에 대한 감수성의 문제이다.”(본문 중에서)

저자 이현주에게 있어서 채식은 단순히 어떤 먹거리를 먹느냐의 문제를 넘어서서 삶의 전반을 결정하는 생활방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변화하였다는 이야기다. 
 

채식주의는 오늘날 가장 바람직한 지속가능한 대안적 삶의 방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채식주의 한약국을 설립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삶의 가치를 실천하는 방식이었다는 것.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생명을 지키는 에너지를 담은 한약을 처방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채식주의 한약국을 운영하게 되는 과정을 고백하고 있다.

채식주의 한약국 설립의 과정에서 ‘녹용 없는 보약은 가능한가?’와 같은 좀 더 전문적인 고민은 물론, 일반 환자들의 관심 영역인 유기농 약재와 수입 한약재에 관한 이야기도 소개되어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한약방

아울러, 영적 수행과 채식에 대한 관심은 한약사인 그녀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자연의학과 이어준다.


“환경과 건강을 살리는 먹거리 강좌의 강사로 때로는 난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유기농 조합에 가입하라고 강의를 하면서 한약재는 유기농을 사용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런 저런 고민들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을 때 내가 만나게 된 새로운 분야가 자연의학이었다.”(본문 중에서)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의학은 완전한 채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채식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에서 나오는 먹을거리를 바탕으로 건강한 삶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식을 비롯한 다양한 건강요법을 통해서 병의 근원이 되는 여러 가지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자연요법에 대한 관심도 높지만, 기본적으로 몸 안에 독소가 쌓이지 않는 건강한 식사법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비우는 것은 자연의학의 첫 걸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쉼, 또 한 번의 쉼, 비움을 통한 채움의 역설’이라고 붙어 있는 이 책의 부제와 가장 잇닿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적인 수행을 위해 시작한 채식을 통해 지구와 생태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 채식주의자가 된 저자는 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채식강의를 통계 좀 더 적극적인 실천 활동을 모색한다.

가족들의 변화와 자신의 채식 강의를 들은 주변사람들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면서 먼 길도 마다않고 강의에 나서고 신문에 칼럼을 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간다.

<휴휴선>에는 저자 이현주가 채식 강의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하려던, 육식의 문제점 특히 동물성 단백질의 문제점과 소, 돼지, 닭과 같은 가축과 가금류의 사육환경에 대한 문제를 통계를 인용하여 고발하고 있다.

“항생제 오남용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가축사료에 섞어 쓸 수 있도록 허가된 항생제는 모두 25가지인데,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1종에 대해 식품 잔류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는 상태이다.”(본문 중에서)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먹은 가축 고기에 사람이 먹어도 되는지를 구분해주는 항생제 잔류 기준 치 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기준이 없는 11종의 항생제 가운데는 임신이 잘 안되게 하거나 저체중 신생아를 낳게 할 수 있는 위험물질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약사의 눈으로 본 육식의 폐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육류에는 영국보다 6배, 미국보다 3배나 많은 항생제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의 공장식 축산농장에서 소를 사육하는 미국이나 광우병이 휩쓸고 간 나라 영국보다 더 많은 항생제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대적으로 수입 고기보다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국내산 육류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할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휴휴선> 제 3부에는 육식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가공식품의 폐해는 물론이고 정제탄수화물 과다섭취로 인한 저혈당문제, 비만을 일으키는 중성지방과 트랜스지방, 그리고 단백질 과잉과 미네랄이 부족한 식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세한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제 4부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은 지구환경과 먹거리문화의 연관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살찐 미국고양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굶주리고 있는 코스타리카 어린이가 어떤 관계망 속에 있는지와 같은 생명의 그물망을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미국에서 소비하는 물의 절반 정도가 소와 그 외의 가축사육에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식용가축배설물 양은 전미국인 배설물의 20배에 해당되는데, 이것은 전인구가 수질오염에 기여한 것의 10배 이상에 해당되는 양이다.”(본문 중에서)

“육식은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먹거리이다. 2.5에이커의 농경지에서 생산되는 식품 종류와 인간 에너지 충족비를 비교해보면 소를 기를 경우에 단 1명의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있지만, 양배추를 경작할 경우에는 23명의 에너지를 쌀의 경우에는 19명의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있다.”(본문 중에서)

따라서 공장식 축산을 그만두고 동물 사료로 소비되는 물과 전력, 그리고 동물을 살찌우는 사료를 사람들과 나눌 수만 있다면 전 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고 급격한 기후변화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한약사인 저자는 광우병의 원인과 위험, 최근 멕시코에서 발병하여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 문제 그리고 유전자 조작 식품의 위험에 대해서도 고발하고 있다.

생명운동 하는 채식주의자의 라이프스타일

<휴휴선>의 말미에는 ‘채식주의자’자로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인 이현주가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생활방식이다.


▲ 드라이크리닝을 하지 않는 알뜰하고 평화로운 옷 입기
▲ 밍크코트를 비롯한 동물성 재료를 사용한 옷 입지 않기
▲ 친환경 저탄소제품 이용하기
▲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재활용 매장 이용하기
▲ 희귀 동물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 이용 않기
▲ 중금속과 화학제품으로 색과 향을 만든 화장품 멀리하기
▲ 조식폐지와 현미식사 실천하기
▲ 물 넉넉하게 그리고 제대로 마시기
▲ 외식대신 비싼(?) 유기농 채식식단으로 지출 줄이기
▲ 건강을 위한 짧은 단식
▲ 건강한 식사를 위한 재료준비하기
▲ 모기향 없이 여름나기
▲ 이사비용 줄이기
▲ 가정에서 냉난방 에너지 줄이기
▲ 생태적 감수성과 영적감수성 키우기


이 중에서도 건강한 식사를 위한 재료 준비하기에 나오는 세부적인 지침은 독자들에게 좀 더 자세히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다. 그녀는 첫째 기후변화의 주요원인 중 하나인 육식을 줄이기, 둘째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먹기, 셋째 제철음식,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 먹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잘 분해되는 음식을 먹으라고 충고 한다. 

 -  이현주가 권하는 건강식사법
① 기후변화의 주요원인 중 하나인 육식을 줄이기
②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먹기
③ 제철음식,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농산물 먹기
④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잘 분해되는 음식 먹기




한약사로서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원리를 통해 우리 음식문화의 특징과 좋은 먹거리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체질을 고려한 음식 궁합 등을 알려준다. 각 장기의 기능저하에 맞추어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먹거리에 관하여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체질에 맞는 잡곡, 체질에 맞는 음식과 약초를 소개해 준다.

<휴휴선>을 쓴 이현주는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지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지구를 구하길 바란다고 하는 사티쉬 쿠마르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사회에 대한 사랑은 파멸과 우울함보다 강력하다. 우리는 두려움이 가지는 힘에서 사랑의 힘으로 이동해야 한다.”(사티쉬 쿠마르 글 중에서)

생태적인 삶의 방식, 내면으로부터의 평화롭고 행복한 삶으로의 전환과 실천을 꿈꾸는 독자들 마음에 닿을 수 있는 책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로부터 일어나는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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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 두 교사의 교실 기록으로 들여다 본 초등학교
박남기.박점숙.문지현 지음 / 우리교육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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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그 다음엔 스승의 날로 이어지는 5월입니다. 그 중 스승의 날은, 어린 시절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고마운 스승을 떠올리거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날 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날이기도 합니다.

특히, 올 해 처음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 학부모 들 사이에서는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불만과 스승의 날을 어떻게 넘길지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어떤 선생님이 담임이 될까 하는 기대와 걱정이 아이들 못지 않습니다. 어떤 담임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1년 생활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1년 살이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5월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래, 저래 학부모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를 통해 만나는 교사들은 어이없는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주에도 교생실습 나온 학생들을 성추행한 교사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되었더군요.

일반적으로 학부모들이 교사라는 직업군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교실이 아무나 함부로 넘을 수 없는 높은 문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는 물론이고 동료 교사, 심지어 학교장도 담임교사가 맡고 있는 교실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들의 생활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문지현, 박점숙 선생님이 쓴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는 새내기 교사의 2년간 학교 생활과 교직 경력 30년 된 교사의 교단일기를 발췌하여 엮은 책입니다. 문지현 선생님 일기는 기간제 교사로부터 시작하여 2년간의 '불타는 의욕'이 담긴 교직생활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고, 박점숙 선생님 일기에는 30년 경력 교사의 내공이 베어나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매일 매일 출근이 즐거운 행복한 교사.

"기간제 교사를 마치고 방학이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났다. 보고 싶다.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멀리 보냈을 때처럼 아이들이 보고 싶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으면 다 거짓부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그렇다."

"입 꼬리가 이렇게 무거운지 지난 4개월 동안 모르고 지냈다.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저절로 올라가곤 했던 입꼬리가 어찌 이토록 무거운지. "아침에 자명종이 울리면 피로에 절어 비비적거리다가도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오늘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즐거운 교사와 만나는 아이들은 매일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가는 날 보다는 놀토와 일요일을 기다립니다. 물론 가장 기다리는 것은 방학이구요.

어디 아이들만 그럴까요? 선생님들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지현 선생님은 학교에 가는 일,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합니다. 교사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라면, 그 교사와 함께 하루를 지내는 아이들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여행 가는 날은 아이들보다 더 신이나고, 눈이 펑펑 내린 다음 날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문선생님 모습을 보면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눈사람도 두 개나 만들고 땀이 뻘뻘 나게 뛰어다녔다. 교실에 돌아와서는 젖은 양말을 의자에 걸어 두었다. 젖은 바지는 별 수 없이 입고 있어야 했지만 그것도 좋다. 오늘 아이들이 일기장에 쓴 것처럼 눈이 또 많이 왔으면 좋겠다."

영하4도, 눈이 소복이 쌓인 운동자에서 아이들과 섞여 질펀그리는 운동장에서 쌍쌍축구를 하는 선생님은 영락없이 철없는 개구장이 모습입니다. 월드컵보다 재미있다며 심판을 보다 선수가 되었다 종횡무진 하는 선생님, 5대 1로 뒤진 경기를 5대 5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축구에 몰입하는 선생님은 스스로 행복하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선생님입니다.

이걸 어떻게 가르치지?, 나도 못하는데

세상을 살다보면 선생님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런 경험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초짜 교사는 자기도 할 줄 모르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신도 잘 불줄 모르는 단소를 가르치는 장면이나 시범을 보여줄 수 없는 '철봉 거꾸로 오르기' 체육 수행평가 이야기는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대학시절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어려웠던 단소, 나는 아이들이 한 학기 동안 단소 한 곡은 소화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막상 저질러 놓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단소를 잘 불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지현 선생님은 아예 아이들에게 단소를 잘 불지 못하기 때문에 잘 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노라고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그림을 그려가며 어떻게 단소를 불어야 소리가 잘 나는지를 가르쳐주는 방법을 택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연습할 수 있도록 넉넉한 시간을 주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둠을 마다 단소를 잘 부는 아이들을 단소 선생님으로 정하여 연습이 필요한 학생을 가르치게 하고, 단소 선생님을 맡은 아이에게 보너스 점수를 주는 방법으로 아이들이 단소를 익히게 하였다고 합니다.

"체육 수행평가로 지정된 '철봉 거꾸로 오르기' 때문에 한숨만 나온다. '이걸 어떻게 가르치지? 나도 못하는데.' 네가 철봉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매달리기뿐이다. 그래서 일단 지도서를 꼼꼼히 읽어 보고, 인터넷에서 순서와 방법을 찾아보았다."

시낼 수업시간에 그림을 보여주며 순서와 방법을 설명하고, 학급 홈페이지에는 사진과 방법을 따로 올려두는 노력을 하였지만, 설명만으로 할 줄 아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수업은 운동장에서 새로 시작됩니다. 가장 가벼운 아이부터 한 명씩, 교사와 친구들이 서로 밀어서 넘을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마침내 대부분 아이들이 '철봉 거꾸로 오르기'를 익힐 수 있게 됩니다. 초짜 선생님은 '자신이 할 줄 몰라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치게 됩니다.

30년 경력 교사의 내공이 묻어나는 일기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의 공동 저자인 박점숙 선생님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선생님입니다. 물론 30년 세월이 흐른다고 하여 모두가 베테랑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박선생님 일기에서는 새내기 교사 뿐만 아니라 경력교사들도 배울 만한 기법과 구체적인 적용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가계부 쓰는 선생님 이야기, 멸치를 상으로 주는 이야기, 그리고 젓가락 데이 이야기에 가장 꽂혔습니다.

"용돈 기입장을 나눠 주고난 뒤 쓰면 좋은 점과 쓰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 가계부 쓰세요?' 평소 말이 없고 행동도 굼뜬 건웅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작은 소리로 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응, 왜?'하고야 말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를 보며 선생님은 고민합니다. 다시 불러 사실은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고 고백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아이의 질문에 거짓말을 한 선생님은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내가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왜 쓰지 않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결론입니다.

"건웅이를 다시 불러 고백을 못할 바에야 거짓말하고 불편해하느니 차라리 이참에 가계부를 쓰는 게 낫겠다"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리고 "아, 선생 노릇하기 참 힘들다." 선생 노릇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대로 사는 것, 그것이 선생 노릇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학교에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대로 사는 선생님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칭찬 스티커를 주는 대신에 멸치를 상으로 주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어느날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며 상으로 받으러 나온 아이들에게 주어진 상은 사탕이 아니라 멸치입니다. 멸치를 상으로 주겠다는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은 자지러지는데, 선생님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멸치 한 마리를 통째로 입에 넣고 먹어보이며 아이들 더러 따라하게 합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생각보다 먹을 만 하다는 소감을 말하고...칭찬 스티커 대신에 칭찬 멸치가 자리잡게 됩니다. 멸치로 칭찬 스티커를 대신하고, 멸치에 대한 집중 탐구 과제를 해오면서 아이들은 멸치를 대하는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난 멸치를 싫어 한다. 왜냐하면 멸치 먹는 느낌이 징그럽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멸치 먹는 모습을 징그러워하긴 했지만 집에서 한 번 먹어 보니 맛있고 고소하였다."

"냠냠 멸치는 짭짭하면서도 맛있고 군침이 돈다. 하지만 처음으로 멸치 머리까지 먹어 보니 느낌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눈 감고 먹어 보니 맛이 끝내 주었다. 칭찬에 멸치까지 함께 맛보니 너무 좋았다. 더 열심히 해서 열 개까지 도전해야지. 너무 끝내 준다니까"

이 책에 소개된 아이들 일기입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음식도 '상'이 되면 아이들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볶은콩을 상으로 주거나 시금치를 상으로 줄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튼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이 상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놀라웠습니다.

빼빼로 데이를 젓가락 데이로

박점숙 선생님 일기 중에 마지막으로 젓가락 데이 이야기를 소개해드릴까요? 짐작하시겠지만 젓가락 데이는 이른바 빼빼로 데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빼빼로 데이는 그냥 넘길 수 없어 어제 빼빼로 데이에 대한 유래와 문제점을 조사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11월 11일은 젓가락을 닮은 날이라 젓가락으로 콩 집기 대회를 할 것이니 연습을 해 오도록 했다. 바른 쇠 젓가락의 사용이 우리 민족의 두뇌를 발달시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 얘기도 함께 들려주면서"

물론, 아이들은 이것만으로 빼빼로 사오는 것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숙제를 해 오면서 과자 회사의 상술에 넘어가지 말자, 돈을 낭비하지 말자고 적어놓고도 결국 빼빼로를 사지 않게다는 결심 대신에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우정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단 번에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는 못 하였지만, 빼빼로 데이에 젓가락을 들고 콩 집기 대회를 하는 아이들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과자 회사의 상술 뿐만 아니라 과자 속에 포함된 각종 첨가물의 위험을 알아 갈 수 있는 수업으로 활용할 수 있겠더군요. 아울러 빼빼로 데이 대신에 젓가락 데이로 바꾸어 부르는 것도 참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년 경력 박점숙 선생님의 일기 중에서 특히 '나의 교육활동 실패기'는 더욱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아이 하나를 남겨두고 체험학습 떠난 이야기, 교재 연구를 하지 않아 수업에 실패한 이야기, 학부모를 외판원으로 오해한 이야기, CD 플레이어 오작동으로 행사를 망친 이야기, 한 아이에게만 상을 몰아 준 이야기들입니다.

이 밖에도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에는 아이들에게 배우는 교사의 모습이 여러 장면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사의 모습 말 입니다.

선생님도 칭찬 받고 싶어 한다.

한편, 이 책 말미에는 두 교사의 일기를 통해 학교 현장의 모습과 교사의 성장과정을 분석한 박남기 교수의 글이 있습니다. 이 글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칭찬 받고 싶어 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 교사들을 칭찬할 것을 주문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도 칭찬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칭찬, 동료 교사의 칭찬, 학교장의 칭찬, 그리고 학부모의 칭찬이 교사에게 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음을 교단 일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칭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학부모의 칭찬, 동료교사의 칭찬에 얼굴 붉히면서도 자신감을 얻어가는 교사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늘 잘하는 아이들도 칭찬 받고 싶어 한다는 구절은 늘 잘 하는 교사도 칭찬 받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와 닿아있는지도 모릅니다.

박남기 교수는 부모 교육을 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는군요.

"지난 한 달을 돌이켜 보아 담임선생님께 감사하다는 편지 글이나 칭찬하는 전화 통화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다면 전혀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 칭찬 에너지를 받아 즐겁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적이 없었다면 지금쯤 에너지가 고갈되어 힘들어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육학자인 그는 선생님들에게도 우리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월급이 적고 업무가 과중하지만,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결코 급여가 적은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학생들의 존경도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 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문제 투성이인 학교를 너무 이상적으로 그려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진정한 교사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동료 교사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가르침의 깊이을 더해 주는 따뜻한 교육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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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구스 크루 사계절 1318 문고 41
신여랑 지음 / 사계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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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고사나 논술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책, 웬만한 어른들은 '용어풀이'를 참고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난무하는 책, 그다지 인생의 교훈이 되거나 귀감이 될만한 내용은 별로 없어 보이는 책, 그렇지만 브레이크 댄스에 푹 빠진 고등학생들의 고뇌와 열정은 가득 담긴 소설이 나왔다.

작가의 청소년기나 학창시절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아이들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실감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청소년기의 자녀를 두었다면 이해해야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로 제 4회 사계절 문학상 대상을 받은 신여랑의 <몽구스 크루>가 그 책이다.

이 책에는 비보이, 비걸, 배틀, 루틴, 탈락, 핸드 글라이드, 나이키 프리즈와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가득 들어 있다. 따라서 또래 아이들이라면 다 알만한 내용인지 몰라도 웬만한 어른들은 책 뒷부분에 따로 있는 용어풀이를 열심히 읽어도 '나이키 프리즈'가 어떤 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브레이크 댄스와 관련된 용어뿐만 아니라 <몽구스 크루>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톡톡 튀는 그들의 생생한 언어로 쓰여진 소설이다. 춤추는 아이들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만난 작가의 노력이 맺은 결실일 것이다.

신여랑이 쓴 <몽구스 크루>는 지진아에 왕따 그리고 사고뭉치인 형 오진구와 그의 정상적인 동생 오몽구가 브레이크댄스에 빠져들어 생기는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1학년인 오몽구는 인문계 고등학생이며 뛰어나게 공부를 잘 하지는 않지만 대충 모범생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실업계 고등학교 2학년인 그의 형 오진구는 지진아에 가깝고 사고뭉치에 속한다. 그리고 동생 오몽구는 사고뭉치이면서도 엄마의 편애를 받는 진구를 도저히 형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몽구는 진구를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진구라고 부른다.

형제는 서로가 열등감에 휩싸여 있고 그것 때문에 서로가 갈등한다. 진구는 또래보다 뭐 하나 잘난 것이 없는 자신과 반대로 제 몫은 늘 척척 알아서 해 나가는 잘난 동생 때문에 열등감에 빠져 있고, 엄마는 그것 때문에 늘 진구를 감싸고 돈다. 다행히 진구에게는 춤에 재능이 있어 비보잉의 세계에서 알아주는 수준급 춤꾼이 되지만 동생 몽구에 대한 열등감은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반대로 몽구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던 진구가 어느 날 춤에 빠져든 후에, 미친 듯이 몰입하며 자신만의 춤을 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최고라고 인정받는 진구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진구의 화려한 몸놀림과 신기에 가까운 춤을 보면서 항상 무엇이든지 자신보다 못했다고 생각했던 형이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몽구는 춤과 공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학교 성적도 어느 정도 유지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학교를 마치면 학원으로 달려가지만, 학원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늘 연습실에 가 있다. 형인 진구뿐만 아니라 함께 춤을 추는 친구들도 모두 몽구는 적당히 춤을 즐기다가 결국 자신의 길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젊음을 바쳐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 아이들

그러나 다른 멤버들 역시 공부에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비보잉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현실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들 나름대로의 인생의 고민도 엿볼 수 있다.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려면 상을 많이 받아서 점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춤이 좋아 춤에 푹 빠진 이들 역시 대학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안타깝다.

공부와 학교를 둘러싼 아이들의 고민과 어른들의 염려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과연 요즘 어른들은 이 소설에서처럼 아이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을까? 아니면, 정말 이제는 뭐 하나만 똑 부러지게 잘하면 되는 세상일까? 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다 알고 있다.

"고등학교 자퇴한 서태지도 문화대통령 소리 들으며 사는데, 왜 꼭 대학에 가야 하나? 나는 정말 학교 가기가 싫다. 이 세상에서 학교 가기 좋아서 다니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래도 가는 건, 대한민국 땅에서 고교 중퇴로 살아갈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몇 몇 천재들이야 다르겠지만." (본문 중에서)

"너 춤춘다며? 공부도 웬만큼 하는 것 같더니만, 아무래도 힘들지? 하긴 요샌 뭐든지 하나만 잘하면 되는 세상이니까. 열심히 춰라! 근데 너 춤은 잘 추냐? 대신 춤을 추려면 확실하게 춰! 그래야 뭐가 돼도 되는 거지, 어영부영했다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본문 중에서)


아이들은 그래서 힘들다. 공부 말고 뭐라도 하나 똑 부러지게 잘하면 좋겠지만, 다른 걸 시작해도 자신이 천재가 아닌 아이들이 더 많다. 몽구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진구와 같은 춤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진구는 죽자 살자 열심히 노력하기도 하지만, 몽구의 눈에 진구는 "무대를 들었다 놓는, 그리하여 보는 사람의 입이 쩍 벌어지고, 가슴이 세차게 뛰고 환호가 터지게 만드는" 타고난 춤꾼이다.

그런데, 몽구는 자신이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모습을 진구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공부와 춤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몽구와는 다른, 진짜 춤꾼의 모습인 것이다. 몽구스 크루를 떠났다 돌아와 새로운 리더가 된 진구는 '베틀 오브 더 이어' 대회를 준비하면서 춤만 잘 추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춤에 관한 한 전문적인 연구를 팀원들에게 요구하는 학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춤을 즐긴다, 연습은 놀이처럼...

뿐만, 아니라 대회에서 몽구스 크루의 순서를 앞두고는 팀원들은 모두 불러놓고 뛰어난 리더십을 드러내는 격려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몽구가 상상할 수 없었던, 구구단을 6단밖에 못 외는 진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거야, 바로! 웃어! 즐겨! 나는 좋아 죽겠어. 저기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무대가 있는데, 두려울 게 뭐야! 뭐, 우리 다 알잖아? 다른 팀들이 입 떡 벌어지게, 눈알 튀어나오게 잘한다는 거! 그렇지만 우리 쪼는 건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부터 우리 졸아붙은 심장에 빵빵하게 바람 넣고 간댕이 부은 개구리처럼 미치자! 행복하게 즐겁게, 오늘, 지금, 여기서 미치자."(본문 중에서)

<몽구스 크루>의 '몽구스'는 몸집은 작지만 사냥 실력은 최고인 사향 고양이과의 작고 날렵한 동물 이름인데, 책에서는 비보이들인 춤꾼 주인공들이 이 동물의 이름을 클럽의 명칭으로 사용한다. 몽구스라는 이름은 주인공 몽구를 연상시키지만, 작고 날렵한 사냥꾼에 걸맞는 춤 실력은 형인 진구를 닮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쓴 작가 신여랑은 "어떻게든, 대충 분위기를 풍기면 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작품의 모델이 된 비보이팀 '엠부크루'를 만나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당혹스러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아이들이 춤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졌으리라, 혹독하게 연습하리라, 그것이야 예상했지만 연습을 놀이처럼 즐길 줄은 몰랐다. 자신만의 춤 스타일을 찾아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조차 즐기는 아이들. 재능보다 무서운 것이 노력이고 노력보다 무서운 것이 즐기는 것이라고 했던가." (작가의 말 중에서)

시청이나 구청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수련관 강당이나 복도 한쪽 구석에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춤에 푹 빠진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른들의 눈에는 모범생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그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고 이해하고 나면 그들이 추는 춤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춤이 좋은 아이들은 춤만 열심히 춰도, 음악이 좋은 아이들은 음악만 열심히 해도, 아무튼 아이들이 정말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몇몇 천재들뿐만 아니라 대부분 아이들도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꼭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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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 - 조선병탄과 시선의 정치
한상일.한정선 엮음 / 일조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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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있는 줄만 알았던 만화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만화가 참으로 심각할 수 있다는 것, 만화가 역사와 시대의 아픔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겨레신문> 만평을 통해서이다.

물론 이전에도 <동아일보>의 4컷 만화에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숨죽인 비판을 엿보며 분노한 적도 있었지만, 본격적인 속시원함을 맛본 건 역시 <한겨레> 만평을 통해서였다. 그 만평은 시사만화의 힘을 제대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상일과 한정선 부녀가 쓴 책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를 골랐을 때는 '조선병탄과 시선의 정치'라는 부제를 보지 않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 일본 만화를 소개하는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보니 '조선병탄과 시선의 정치'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고, "근대화에 한 걸음 앞선 일본이 제국으로 탈바꿈하면서 이웃 나라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기간 동안에 일본의 언론매체에 나타난 시사만화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책이었다.

일본 대중의 눈으로 본 을사늑약과 조선병탄

이 책은 1870년대 정한론 논쟁이 시작될 때부터 1910년 조선병탄에 이르기까지 대략 40년 동안 일본 언론에 보도된 시사만화 중에서 조선과 관련된 만화 190여 편을 모아서 차근차근 분석한 독특한 책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정한론 논쟁이 시작된 때부터 일본의 대중매체가 조선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혹은 일본의 대중매체가 '제국건설'을 위하여 어떤 방식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제국건설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100년도 더 지난 일본 시사만화들을 잘 간추려 모아놓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정치사를 전공한 아버지 한상일과 역사를 전공한 딸 한정선 두 전문가의 역사적 지식과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제국 건설(조선침탈)에 나서는 일본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근대화에 앞선 일본이 제국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나온 시사만화로 역사를 재구성해서 살펴보면, 일본의 지배세력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제국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사풍자 만화로 대표되는 일본의 대중시각문화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동아시아에 제국을 건설(조선반도와 대륙침략)하고자 하는 의지가 일본사회, 특히 민중들 자체 내에서 역동적으로 형성되어 갔다는 사실이다. 즉 근대 일본 제국이 국가가 주도한 위에서부터의 강압적인 동원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적극적인 동의와 참여로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이들 시사만화는 조선인이나 청나라인을 왜소하고 더럽고 전근대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반면, 일본인은 당당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서양인에 가깝게 그리면서 일본이 야만의 이웃들을 선도해서 아시아에 제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시선은 만화라는 매체 특유의 재치, 익살, 유머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일본사회로 급속히 전파되었다.

이처럼 "시사만화는 단순히 특정 사실을 묘사하거나 보도하는 매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관점과 그 사실들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데 관여하는 매체로 평가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왜소하고 더러운 조선인·청나라인, 당당하고 단정한 일본인

이 시기 일본에서 시사만화는 단순히 독자들에게 가치 중립적인 즐거움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다. 독자로부터 웃음과 심리적인 쾌락을 끌어냄으로써 동아시아 침략과 제국 건설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시각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의 만화가와 불특정 다수의 독자는 시사만화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문명의 승리이고, 조선병탄은 진보하는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 지극히 당연한 사건"이라는 의식을 자연스럽게 공유하였다.

이러한 인식이 동아시아 제국 건설에 필수적인 일반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근대일본의 발전과 동아시아 침략전쟁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는 일본에 유입된 서양근대언론과 시사만화의 발달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1장은 1870년대부터 조선개국을 전후한 시기, 2장과 3장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시기, 4장은 1910년 조선병탄에 이르는 시기, 5장은 이토 히로부미와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소재로 한 시사만화를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는 현재 일본의 시사만화와 시사만화가가 갖는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일본 시사만화는

문제는 이러한 역사가 다시금 반복된다는 것이다. 1870년대부터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제국을 꿈꾸는 일본만화 시사만화가가 최근에도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본 젊은이들에게 동아시아 침략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 일본을 제국 부활의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사회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현상 중 하나는 새로운 국가상 정립과 국가진로의 모색인데, 특히 타이완·한국·중국에 대한 침략행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역사인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일관된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시사만화는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있으며 이웃 국가에 대한 과거 부정적 이미지를 되살리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고바야시 요시노리가 그린 시사만화는 이러한 일본인들의 인식변화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쟁이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이유는 그 속에 '공적의식'이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본이 수행한 청일전쟁에는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한 '공적의식', 러일전쟁에는 조국방위와 백색인종과의 전쟁이라는 '공적의식', 그리고 태평양전쟁에는 백인 제국주의의 억압에 시달리고 있는 압박 받는 유색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공적의식'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이러한 일본사회의 흐름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만화 가운데 하나로 <망가 겐칸류>가 있다.

일본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만화책인데,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에게는 더 이상 사죄도 보상도 필요 없다" "(한국인들은) 사무라이·검도·스시·다도·닌자·종이접기 등 많은 일본문화의 기원이 한국인 것처럼 날조하고 있다" "한국은 왜 일본의 영토인 다케시마를 침략하는가" 같은 주장들이다.

오늘날 일본의 시사만화는 여전히 서양에 대한 열등의식과 동양에 대한 우월 의식이라는 정체성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이웃나라와 아시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다시 불러내며 국가주의적 진로모색에 시민들의 동참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는 1870년대부터 1910년까지의 일본 시사만화 중에서 특히 조선과 관련 있는 만화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면서 '시선의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아울러 이러한 시선의 정치가 오늘날 일본사회에서 국가주의 부활을 부추기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낸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이 두 번 반복될지 모른다"는 경고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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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존 테일러 개토 지음, 김기협 옮김 / 민들레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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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학교가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
국가 주도의 공교육을 비판할 때 흔히 듣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학교가 아이들을 억압하고 옥죄는 현실을 비판하는 말 정도로 이해하였다.

왜냐하면, 
학교교육이 문제가 많기 때문에 학교를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의무화된 근대적 국민교육 자체가 사라져야할 낡은 유물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존 테일러 개토가 쓴 <바보만들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의무교육이 오히려 문맹률을 높이고 있다는 놀라운 통계였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의무교육 형태가 미국에서는 1850년 무렵 매사추세츠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주민 80%가 의무교육에 반대하여 저항하였으며, 때로는 무기를 들고 싸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였던 케이프코드의 반스터블에서는 1880년대에 주 방위군이 지역을 점령하고 아이드를 학교로 호송해 갈 때까지 아이들을 내놓지 않고 버텼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얼마 전에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공표한 문서에 따르면 의무교육이 시작 되기 전 그 주의 문맹률이 2%에 불과하던 것이 의무교육이 시행된 뒤에는 1990년까지 9% 이하로 떨어진 일이 없다는 겁니다."(본문 중에서)

세상에, 의무교육을 반대하기 위하여 총을 들고 싸웠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왜 그들은 의무교육에 반대하였을까? 1800년 무렵 인위적인 방법으로 국가의 통일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의무교육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아마 당시 미국 사람들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마치 부안 방패장 설치를 반대하는 부모들이 아이들의 '등교거부운동'을 하였던 것 처럼, 중앙집권적 의무교육을 반대하였던 것 같다.


왜 교육받을 수록 멍청해지는가?

미국에서 의무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는 '버트런드 러셀'의 표현을 빌어 잘 설명해준다.

"미국의 대량교육은 비민주적 의도를 함축한 것으로서 인간의 다양성을 제거하고 그 다양성의 원천인 가정을 억압함으로썩 국가적 통일성을 조작해내는 수단이라고 말입니다.... 반지성적이고 그릇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신감 없는 젊은이, 그리고 내면적 자유를 다른 어느 나라 젊은이들보다 적게 가진 젊은이가 미국 젊은이라는 것 입니다."(본문 중에서)

존 테일러 개토는 미국에서 의무교육이 시작된지 110년이 지났지만, '하나의 옳은 길'이 있다고 믿는 군중들은 아직도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바람직한 답을 찾지 못한채 헤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제는 새로운 길, 다른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 한다.

미국에서 공립학교 교사로 20년 넘게 일해 온 저자는 "가정과 지역사회를 재건하기만 하면 젊은 사람들은 이 나라 초창기에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교육시킬 것"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가 학교교육에 쏟아 붓고 있는 돈을 다시 가정교육으로 돌린다면 약 하나로 두 가지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회복시키면서 동시에 가정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제도적 학교를 해체하고, 교사자격 제도를 없애자는 과격(?)한 주장을 펼친다. 가르치고 싶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 재주껏 가르치게 하자는 것이다. 그는 자격증을 가진 교육전문가들이 나서야만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얘기는 멀쩡한 사기라고 강조한다.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세요.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모두 사범학교에서 자격증을 받은 교사들이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아무나 가르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세요. 세금을 돌려 받아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스승을 골라잡으세요."(본문 중에서)

그는, 지금의 학교와 비교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지금처럼 멍청한 고객들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학교가 틀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바람직한 교육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이란 표면에 물감을 덧붙임으로써 형상이 만들어져 나오는 것임에 반해 조각이란 재질의 일부를 떼어냄으로써 재질 안에 내재하던 형상이 풀려 나온느 것이지요. 이게 중요한 차이입니다."(본문 중에서)

게토는 교육이란 그림보다는 조각과 비슷한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아이들 속에 내재된 힘을 끌어내고,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어떻게 익혔는지에 관한 IBM 부사장의 연설을 들어 설명해주고 있다.

"그는 이 나라가 스스로 깨우친 컴퓨터 전문가의 나라가 될 거라고 하더군요. 무슨 학교교육이니 하는 거 없이 말입니다. 벌써 4천 5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익숙하게 컴퓨터를 쓰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컴퓨터를 알게 된 것은 어떤 체계 잡힌 교육을 받고서가 아니란 거죠."(본문 중에서)

게토는 만약에 학교가 공식적으로 컴퓨터 쓰는 법을 가르칠 권리를 쥐고 있었다면, 이렇게 되기는 커녕 엉망진창 뒤죽박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런 게토의 예언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사실이다. 실제로 윈도우 비스타가 출시되기 직전까지 학교에서는 윈도우 엑스피 대신에 오래 전에 출시된 윈도우 98 사용법이 담긴 교과서로 수업을 하였다.

오늘날 아이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모두 컴퓨터 사용법을 익힐 수 있다. 컴퓨터가 학교 정규 교과목이 된 것은 순전히 관련 산업의 시장을 키워주는 것 외에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이기는 하지만, 한극판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나오기 전에 실제로 이 게임을 하기 위하여 아직 영어를 배우지 않은 많은 어린아이들이 알파벳을 그림처럼 외워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게임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의무교육이 시작된 후 대부분 사람들은 학교에서 자격증 가진 교사들에게 배워야만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탈학교운동에 참여하는 백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가르치고 싶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찾아 재주껏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깨닫고 있어 다행이라고 한다.

학교가 아이들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가?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거의 아무런 호기심도 없고 조금이나마 있는 것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미래의식이 약합니다. 내일이 어떻게 오늘과 떼어낼 수 없이 얽혀 있는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역사의식이 없습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서로 잔인한 짓을 합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친근한 관계나 솔직한 태도에 불안해합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물질주의를 떠받듭니다.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며 새로운 상황에 부딪치면 겁쟁이가 됩니다.

존 테일러 개토는 <바보만들기>에서 오늘날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펴보면, 아이들을 망치는 주범이 학교와 TV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1주일 168시간 가운데 아이들은 56시간씩 자야 합니다. 아이들은 1주일에 평균 55시간씩 텔레비젼을 본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30시간, 준비하고 오고 가고 하는 데 8시간, 숙제에 평균 7시간, 학교가 잡아먹는 시간이 모두 45시간입니다."(본문 중에서)

여기에 저녁식사 시간 3시간을 빼면 주당  아이들 자기만의 정신세계를 살찌우거나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개인시간은 딱 9시간 뿐이라고 한다. 그래도 미국 아이들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각종 개인교습을 받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고 하니 다행이다.

한국 아이들은 어떤까? 한국 아이들은 방과후에 보통 하루에 3~4개씩 학원을 옮겨다니면서 일주일에 적어도 20 ~ 30시간 이상을 보낸다. 미국 아이들보다 잠을 적게 자거나 TV 보는 시간을 줄여서 학원을 다니는 셈이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을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는 마약, 맹목적 경쟁, 오락화한 성, 도박, 알코올, 폭력탐닉, 상품구매에 매달리는 탐닉적이고 끔찍한 의존적 삶은 모두 학교와 TV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런 학교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커서 시민이되면 탁월함과 미학을 모두 무시하는 얄팍한 '대중적 성향'을 가지게 되고 자기들 삶의 개인적 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적지 않게 대안교육과 대안학교에 관한 책과 글을 읽고 강의도 들었지만,  존 테일러 개토가 쓴 <바보만들기>는 오늘날 엉망이 되어버린 한국의 교육 현실이 어떤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출발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된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근대교육을 수입한 한국은 미국교육 의무교육이 가진 문제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미국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하여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많은 나라를 망치고 있는 근대적 의무교육 시스템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개토는 지금과 같은 미국학교 교육 체계가 지구상에서 시작된 것은  1819년대 프러시아에서였다고 한다. "국가의 힘에 떠밀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강제적인 학교교육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프러시아는 중앙집권화된 학교 교육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고 한다.

▲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 고분고분한 광산노동자
▲ 정부 지침에 순종하는 공무원
▲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일하는 사무원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들


당시, 학교는 독일 지도층 가정이나 제도권 인사들에게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민족 차원의 동의를 꾸며내고, 대 프러시아로 통합하는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학교에서 아이들은 교사가 던져주는 추상적인 지식만 배우다 보니 말 잘듣고 고분고분하고 전제적 질서에 젖어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불만이 있어도 표출하지 않고, 비판하는 생각을 할줄 모르고 올바르게 토론할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

그는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예로들며, 극단적으로 제 1차 대전은 교사들의 속임수 때문에 일어났다는 '레마르크'의 주장을 되새겨 보라고 한다. 마찬 가지로 본 회퍼 목사는 제 2차 대전 역시 스스로 생각하는 이성 능력을 잃어버리게 한 학교의 책임이 커다고 지적하였는 것이다.

프러시아식 학교 교육은 이성과 지성,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 도덕적 의지까지 마비시키는 '우민화 교육'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많은 미국지도자들이 이런 프러시아교육을 배우기 위하여 독일로 몰려갔다고 한다. 다.

"19세기에 미국 상류 가정의 젊은이 수천 명이 프러시아와 독일 여러 도시로 건너가서 학위를 받아가지고는 그런 자격증 제도가 뭔지도 몰랐던 나라에 돌아와서는 대학, 기업, 정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지 않았거나 독일 박사에게 직접 배운 제자가 아니면 높은 자리는 넘볼 수조차 없게 된 거죠."(본문 중에서)

이런 과정은 한국전쟁 이후에 미국으로 몰려간 한국 지도자들과 지식인의 모습과 쏙 빼닮았다. 


그는 학교는 축소되어야지 결코 더 이상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독일을 미국으로 바꾸면 바로 한국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하는 글이 된다.

학교 교육은 결국 하나의 생각을 과목으로 쪼개고, 그 과목을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누는가 하면, 수업 시간을 토막내어 종소리만 울리면 수업을 마치도록 만드니 스스로 공부하는 마음이 끊이없이 방해 받아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개토는 읽기, 쓰기, 셈하기는 원래 가르치기 힘든 것이 아니라고 한다. 각 개인이 배우고자 하는 의욕을 교육의 강제성과 학교의 교과진도가 가로 막는 것만 피하면 얼마든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글을 완전히 익히고 스스로를 교육시키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 백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증거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 학교가 이것을 가로 막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바보이야기>는 1990년 뉴욕시 올해의 교사상, 1991년 뉴욕주 '올해의 교사상' 수상 연설과 다른 강연 자료 그리고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저자의 살아 온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의무교육이라는 강제 규정으로 국가가 교육을 독점하는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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