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사랑
쯔유싱쩌우 지음, 이선영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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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낭만적인 사랑이 있어. 하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에도 보는 이를 눈물짓게 만드는 드라마에나 나오는 사랑이고, 또 하나는 상대가 아무리 형편없어도 정작 본인은 잠을 못 이룰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

   작품의 시작에서 주인공 추우가 같은 회사 상사를 짝사랑하다 자살을 기도한 동생 추월에게 쏟아붓는 말이다. 대학시절부터 연애하다 결혼하여 8년을 함께한 끝에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제발 헤어져 달라고 무릎 꿇고 사정하던 전남편과 헤어진 이후로, 추우는 더 이상 두 사랑 모두를 믿지 않는다. 그녀의 눈에는 하나뿐인 여동생이 허황된 망상에 빠져있는 걸로만 보여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안쓰러워진다. 결국 보다 못해 추우가 직접 나서기로 마음 먹는다. 동생이 스스로 끊어내지 못하는 처절한 짝사랑의 고리를 끊고자, 그녀는 동생이 짝사랑하던 당사자인 본부장 임계정을 찾아간다. 동생을 회사에서 해고해달라고, 다시는 당신을 보지 않아도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중국 굴지의 재벌가의 아들인 임계정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기업을 물려받는 태자 자리를 놓고 배다른 형제들과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놓여 있기는 해도 사실상 모든 걸 갖춘 완벽한 남자다. 수려한 외모에 집안 배경은 말할 것도 없는데다 돈도 많고 능력도 출중하다. 그를 좋아하다 못해 자살을 기도한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고, 그가 온다는 날에는 온 여직원들이 옷을 차려입느라 난리가 난다. 추우는 그것이 못마땅하면서도, 곧 스스로도 그의 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만 추우의 눈에 비친 임계정은 다른 사람들이 본 것과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이상하게 자꾸 마주치는, 그리고 마주칠 때마다 의외의 방식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임계정을 보며 그녀는 그의 맑은 눈빛이, 웃을 때 볼에 패이는 보조개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관계가 순탄한 것은 아니다. 임계정에게는 약혼녀가 있다. 임씨 집안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쥔 강씨 집안의 외동딸과 이미 결혼 날짜까지 받아둔 상태다. 추우의 주변에는 후회하며 돌아와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사정하는 전남편과 오랜 기간 짝사랑했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매일 프로포즈를 해오는 절친한 친구가 맴돈다. 무엇보다 추우의 동생 추월이 여전히 임계정을 잊지 못해 그와 우연히 마주치기만 해도 덜덜 떨며 시선을 내려깔기 바쁘다. 임계정이 추우와 연락하는 것만 알아도 둘이 무슨 사이냐고 살벌하게 묻는 동생 앞에서 추우는 한없이 막막해지고 만다. 그런 이유들로 두 사람은 시작 전부터 서로의 마음을 밀어내며, 서로에게서 도망치며, 각자의 감정을 아프게 삭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대외적으로 두 사람이 사랑을 인정받을 방법은 없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파멸로 향해 간다.

   중국에서 7년 동안 베스트셀러였다는 이 책은 제목처럼 제3의 사랑을 다룬다. 두 사람의 만남은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이 극적이지만 결코 브라운관 시청자들이 오그라드는 손발을 추스리며 보는 이야기들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홀로 짝사랑하며 괴로워하는 그런 종류의 사랑도 아니다. 두 사람이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가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누구 혼자의 마음이라기엔 서로의 감정을 너무도 잘 알게 된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제3의 무언가가 되어 회색지대에 머무른다.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그렇다고 서로를 놓을 수도 없는 이야기는 중독성이 있어서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붙잡고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만든다. 올해 송승헌, 유역비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된다고 하니 영화로 만나보면 또다른 재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처럼


   책을 읽기 시작하고 처음 임계정에 관한 묘사에 맞닥뜨린 순간부터 '이거 되게 한국 드라마 같은 인물설정인데?'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초반부에 추우가 추월에게 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며 타박하는 묘사가 있어 혼자 한참 웃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부터는 어릴 적 밤을 새워가며 읽었던 인터넷 소설들이 자꾸만 떠올랐는데, 마지막 작가 후기를 보니 이 소설은 인터넷에서 인기리에 연재되며 중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 인터넷에 다음 편이 업로드되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중국의 독자들을 생각하니 또다시 웃음이 났다. 

   '제3의 사랑'은 그렇게 드라마 같기도 하고, 인터넷 소설 같기도 한 작품이다. 아주 심오한 주제의식을 지니기보다는 감각적이고 즉흥적으로 누구나 한번쯤 상상할 법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재벌 2세 남자와 평범한 여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한국에서도 이미 한 차례 유행했었고, 그 여자가 이혼녀라는 추가 설정 역시 이제는 크게 새롭지 않은 것이 되었지만 그렇다 해서 '제 3의 사랑'이 뻔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일단 재벌가의 사랑 이야기가 중국이라는 배경에 들어서니 스케일이 남다르다. 더불어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추우의 털털하고 밝은 성격과 맞물려 한층 활기를 띄고 살아난다.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까지 덩달아 피식 웃게 되면서 위계정이 어째서 반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위계정은 멋진 남자다. 그를 둘러싼 설정들이 아무리 식상해도 그건 어쩔 수가 없다. 이 대목에서는 가지 말라 하겠지, 여기선 백허그를 하겠네, 그렇게 예측을 하면서도 실제 그렇게 맞아떨어지면 멋있구만, 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물론 로맨스에 약한 나는 그럴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어 책을 내려놓아야 했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말린 장미꽃 빛깔의 이야기

 

   삶이란 결국 타인과 크고 작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놀이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p. 135


   '사랑하는 사람에게 약을 사주며 그 사람에게 약을 먹으라고 명령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행복 아닐까.'

- p. 167


   "부 형, 완전 신세대시네요."

   부 형은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원래 이런 것 마시지도 않았어요. 한 반년 되었나, 임 본부장님 따라서 매일 커피숍에 드나들며 마시다보니 이제는 맛을 알겠네요."

   "오! 임 본부장님이 그런 취미가 있으세요?"

   나는 호기심에 물었다. 사실 임계정에 대한 거라면 뭐든 궁금했다.

   "네, 그것도 매일 아침 중산로에 있는 스타벅스만 다니세요."

   "중산로 스타벅스요? 거긴 우리 사무소 맞은편인데?"

   나는 조금 의아해했다.

   "맞아요. 왜 그곳 커피숍만 가시는지 모르겠어요. 커피숍이라면 본부장님 사시는 곳에도 스타벅스가 있는데...... 어쨌든 출장이 없으신 날은 매일 아침 30분 정도 차를 몰아 중산로 스타벅스에 가세요. 대략 8시 30분에서 9시까지 계시다가 다시 차로 20분이나 걸려 회사로 출근하시죠. 아마 그 집 커피가 특별히 맛있나봐요. 그래서 저도 매일 따라 마시다보니 중독됐네요."

   부 형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부 형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거기 앉아서 커피를 마시다보면 추 변호사님이 출근하시는 것도 보여요. 매일 9시 정도에 택시를 타고 오셔서 스타벅스 앞에서 내려, 길을 건너 사무실로 들어가시죠. 맞죠?"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 p. 252


   "불공평해."

   "왜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몸을 기울여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이 내 존재를 모를 때부터 나는 당신을 사랑했는데."

- p.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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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여자
존 그레이.바바라 애니스 지음, 나선숙 옮김 / 더난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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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남자 금성남자' 시리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스테디셀러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마냥 이해할 수 없는 남과 여를 분석하여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나아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작성된 일종의 '이성에 관한 설명서'이다. 그 시리즈의 저자 존 그레이와 '성별이해 지능'이라는 개념을 주창한 바바라 애니스가 함께 작성한 이 책에서는 직장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나아가 직장에서 어떻게 하면 이성 동료를 더 잘 이해하고 협동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능률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지 조언하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이 책은 뭉뚱그려 남자를, 혹은 여자를 말하는 대신 직장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오해 8가지에 집중하여 그에 관한 상반된 남과 여의 입장을 다룬다. 그리고 그 입장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쉬운 해석을 반복해준다. 책에서 다루는 풍부한 예시를 따라가다 보면 이 세계의 직장에서 나타나는 남자와 여자의 갈등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핵심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경쟁적으로 일하는 걸 좋아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며 타인의 질문이나 참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남자와 협동하여 일하는 걸 좋아하고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시하며 질문이나 충고로 관심을 표현하려 하는 여자. 같은 팀에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다 보면 남자와 여자는 자꾸만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한다. 때로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 인해 분노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사직서를 내고 직장을 완전히 떠나게 되기도 한다. 회사에 완전히 등을 돌리는 그 순간까지도,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책을 읽다 보면 공감이 가는 대목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대목도 있었다. 어느 부분은 여성에 대해 다소 차별적이라 느껴진 반면, 어느 대목은 여성이 지닌 특징을 더 나은 것으로 부각시켜 남성 독자들에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마 존 그레이와 바바라 애니스가 함께 써내려간 책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 말았다. 남성 작가가 남성들의 편을, 여성 작가가 여성들의 편을 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편견이었기 때문이었다. 다 읽고 나니 책을 읽으며 남과 여에 대해 고민한 그 과정 자체가 두 성을 이해하고 그 간극을 좁힐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이 책에서 그리는 '남성'과 '여성'은 결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완벽한 모델이 아니다. 때로는 책에서 묘사한 남성의 특징이 나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여성적인 측면이 나와 무척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책이 풍부한 예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었다. 이 책이 지니는 의미는 거기에 있다. 존 그레이와 바바라 애니스는 '모든 남성은 이렇다'거나 '모든 여성은 이렇게 대하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당신이 직장에서 만난 '어떤 남성은 이럴 수 있다'고, '어떤 여성과는 이렇게 일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이성 동료와의 반복되는 갈등에 너무도 지쳐버렸다면, 상사와 소통하는 게 너무도 힘이 든다면, 나를 너무도 힘들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을 펼쳐보면 어떨까 싶다. 뜻밖의 지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던 상대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실마리를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책을 읽으며 두 작가가 던지는 조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업무 자체만으로도 벅차고 힘든데 이런 것까지 일일히 신경써야 하나? 어떻게 이런 면까지 다 맞춰주지? 이런다고 누가 내 노력을 알아줄까? 이게 그렇게 가치있는 일인가? 함께 협력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관해 상의하는 중에 자기 피피티 고치기에 여념이 없는 남자 동료를, 시간에 쫓기는 희의 시간에 자꾸 질문을 하는 여자 상사를, 내가 왜 굳이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꽤 중요한 일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직장에서 불편하고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개인적인 성격이나 문제 때문에 불편한거라면 그 사람 1명만 열심히 피하면 될 일이지만, 상대가 남자, 혹은 여자여서 불편한 일이 생기는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즘은 대부분의 회사에 남자 직원과 맞먹는 수의 여자 직원이 있다. 사무실에서, 회의실에서, 점심시간 구내식당과 회식자리에서 필연적으로 이성 동료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면 회사 생활 자체가 힘들어지고 만다. 때로는 직장을 그만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이성인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바바라 애니스가 말하는 '성별이해 지능'을 갖추는 것은 상대를 위하는 일인 만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짜증나게 하던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순간, 편해지는 건 바로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여자'는 어려운 책이 아니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기도 좋다. 회의실에서 실컷 싸우고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이 책을 펼쳐 몇 페이지 읽어보는 건 그렇게 대단한 노력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사소한 행동이 내 직장생활을, 나아가 연인과의 관계나 가정생활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99%는 달성한 셈이다. 마지막 1%의 진짜 이해는, 아마 이 책이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읽어보면 좋은 대목들

 

   남녀 간의 균형을 비슷하게나마 유지하고 문화적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일터에 있는 남녀의 마음속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지 않고, 꼭 똑같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여자가 남자처럼 행동하거나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남녀평등을 이루고 유지하는 길이다.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과 성취감, 그리고 남녀평등으로 가는 진정한 길이다.

- p. 48


   엄마가 어떤 요구를 할 때,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절대로 못 마땅하거나 짜증스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얼핏 보기에 별 해로울 게 없는 듯한 이 작은 제스처가 엄마의 가치를 깎아내릴 뿐 아니라 아들에게 나중에 다른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무시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 pp. 222-223


   여자의 말 또는 행동: "괜찮아요."

   남자의 성별이해 지능: 여자가 짧게 대답하는 것은 상황이 그리 괜찮지 않다는 뜻이다.

- p. 269


   성별이해 지능이 있는 남자라면 자신이 나서서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함께'라는 느낌을 전달할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배려해주는 남자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믿을 것이다. 그 남자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여성을 상품화하는 대화가 이어질 경우 거기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남자들의 그런 행동을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 대화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남자들에게 그게 유치하고 잔인하며 수준 낮은 짓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 p. 286


   여자들에게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사소한 것들이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 하는 작은 행동들이 진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여자는 그런 행동을 보면서 남자가 자신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이런 게 남자에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아니, 힘든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뭔가를 계속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늘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에 맞게 대접할 때,  둘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신뢰가 자라나는 한편, 둘 사이의 관계도 함께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 p. 305


   앞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여자들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하지만, 일과 삶의 조화를 찾는 면에서는 이 능력이 저주가 될  수 있다. 여자들은 너무 과도하게 일하고,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며, 모든 일에 성과를 내려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죄책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 p. 347


   "다 가질 수는 있지만,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은 우리가 여성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경력을 쌓아 가거나 계획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소중한 통찰력을 제공해줄 것이다.

   늘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먼저 생각하고, "안 돼", "나중에"라는 말을 하지 못하며,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면, 분명 '다 갖지' 못할 것이다. 죄책감은 스트레스를 키운다.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질수록, 남들을 위해 해줘야 할 일들의 리스트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 리스트 맨 밑에 자신을 적어 넣을 것이다.

   퇴근 후에 왜 원하지도 않는 술을 마시러 가는가? 동료들과 출장 갔을 때 왜 즐겁지도 않으면서 밤새 깨어 있는가? 남자들은 "난 이제 자러 들어갈래. 너희들끼리 재미있게 놀아"라는 말을 쉽게 할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남자들의 그런 말에는 전혀 개인적인 감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상대방 남자 역시 "내일 보자!"는 그 말에 대해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여자들은 남이 아닌 자신을 생각하는 게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믿음을 갖게끔 길들여졌다. 관계를 형성하려면 서로 공감하고, 시간과 관심을 쏟고, 그 보답으로 비슷한 관심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자신을 돌보는 훈련을 받은 여자들은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더 충분히 생각하게 되는 효과를 경험한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에게 이해와 격려를 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더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 pp. 356-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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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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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록 속 스웨덴 여자


   모잠비크의 수도 마푸토에 보관되어 있던 식민시대의 여러 문서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스웨덴 여성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매음굴을 운영했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헨닝 망켈은 이 단순한 사실에 살을 붙이고 생명을 불어넣어 한나라는 인물을, 그리고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짧지만 강렬한 몇 년을 창조해낸다. 그렇게 완성된 소설이 '불안한 낙원'이다.

   한나는 스웨덴의 산골짜기에서 매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집의 첫째로 자란다. 가난이 익숙하고 추위가 일상적인 그 곳에서,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도시로 보내겠다고 결정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모든 일이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는 듯. 이따금 산골짜기를 지나던 부호 포르스만의 썰매에 올라 순드스발로 향한다. 그 곳에서 그녀는 어머니의 계획대로 친척을 만나는 데에는 실패하지만, 포르스만의 저택에서 하녀로 일하며 새로운 인생을 얻는 듯했다. 친구가 있고, 익숙한 업무가 있고, 가끔씩 좋은 옷을 입고 시내에 나가 젊은 남자들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웃어버릴 수 있는 일상을.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1904년 포르스만의 소개로 선상 요리사가 되어 로비사 호에 오르며 다시 한번 파도를 탄다. 한나를 어디로 떨어뜨릴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파도를.

   한나는 로비사 호에서 룬드마르크를 만나고, 한나 룬드마르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망인이 된다. 1935m의 깊이에 남편을 묻고 한나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아프리카 어딘가의 부두에서 배를 내린다. 그리고 파라다이스 호텔에 숙박한다. 그녀의 인생을 다시금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갈 곳, 겉으로만 호텔로 치장한 아프리카 최고의 매음굴에서.

   그렇게 한나는 아프리카에 오고, 세뇨르 바즈와 그가 고용한 흑인 매춘부들을 알게 되고, 두번째 결혼을 하고, 로우렌소 마르케스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된다. 저녁에 먹을 게 있을지 걱정했던 때에서 채 2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남아프리카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재산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동시에 남편의 죽음과 함께 그녀는 매음굴의 여주인이 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한나는, 아니 이름을 바꾼 아나는 아프리카에서 흑인 여자를 위해 싸우는 첫 백인이 된다. 백인들의 비난과 흑인들의 침묵 속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양쪽에 한 발씩을 걸친 채 살아야 하는 삶. 그 삶에서 자유롭기 위해 떠나는 마지막 여정을 끝으로 한나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자유를 향한 여정


   그녀의 이야기는 그토록 단순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지만도 않다. 1904년에서 1905년까지 한나의 일기장을 통해 남아있는 기록은 한나가 살아간 하루하루에 대한 기억인 동시에 그녀의 내면에 일어났던 변화, 그녀가 느꼈던 감정, 그녀가 아프게 깨달았던 진실, 그리고 그녀가 관찰했던 사람들에 대한 진술이다.

   처음 로우렌소 마르케스에 도착한 한나는 혼자다. 남편은 죽었고 배는 떠났으며 아프리카에는 아는 사람은 물론 제대로 말이 통하는 동향조차 없다. 그런 그녀에게 아픈 그녀를 정성스레 돌보아주는 라우린다와 펠리시아는 고마운 은인이고 서투른 포르투갈어로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된다. 그러나 곧 매음굴의 주인인 세뇨르 바즈와 한나를 돌보도록 파견된 백인 간호사 아나 돌로레스는 한나에게 백인과 흑인의 차이를, 그 차이를 결정짓는 질서를, 그리고 그 질서에서 파생되는 일련의 행동지침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벤치에서 잠든 흑인 노인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자리에 앉는, 서슴없이 매음굴의 여자들을 때리는, 흑인들을 멸시하고 천대하며 증오와 냉소를 숨기지 않는 아나 돌로레스에게 한나는 처음에는 환멸을 느낀다. 흑인에 대한 비뚤린 시각과 이유 없는 증오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한다. 그러다 곧 아프리카의 백인들을 점차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끔찍함에 몸서리친다. 어느새 자신 역시 흑인들에게,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바로 그 사람들에게 잔인해지고 있음을 깨달으며 한나는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질서가 부조리하고도 강력함을 몸소 체험한다.

   그러나 한나는 다른 백인들처럼 그 질서에 몸을 맡기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흑인과 백인 모두를 바꾸기 위해 분투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함에도, 그래서 뼛속까지 외로움에도 한나는 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그리고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한나는 베이라의 빈민들의 모습에서 가난했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본다. 매음굴의 흑인 매춘부들이 유산하거나 낙태한 아기들을 묻은 나무 아래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게 허락되지 않았던 자신과 룬드마르크의 아이를 떠올린다. 백인 남편을 죽인 죄로 감옥에 갇힌 이사벨을 보며 자신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기에 그녀의 편에 설 수 밖에 없음을 직감한다. 그렇게 한나는 누구와도 다른 사람이 되고,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불안한 낙원'은 아프리카에 관한 이야기이다. 백년 전 그 곳에서 일어났던 끔찍했던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자, 지금도 현존하는 폭력에 대한 고발이다. 동시에 이 소설은 하나의 사회질서로 굳어진 증오와 공포 앞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삶을, 그리고 그 삶을 바꾸는 힘을 향한 간절한 응원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래서 글을 통해 아프리카의 고통을 고스란히 비춰내고자 했던 헨닝 망켈. 그가 전하고자 했던 건 광기 어린 피의 역사가 아닌, 마룻바닥 속 일기장처럼 고요히 묻혀 있던 희망이 아니었을까.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로우렌소 마르케스의 백인과 흑인은 서로 다르다. 백인들에게 흑인들은 주술적 사고에 사로잡힌 미개한 민족에 불과하고, 흑인들은 실존하는지도 모르는 땅속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백인들이 허황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한나에게는 흑인들에 대해 이유 없는 미움과 분노를 내보이며 끔찍한 짓도 서슴지 않는 아나 돌로레스도 치가 떨릴 만큼 싫은 존재지만, 아무리 대화를 오래 지속해도 끝끝내 평행선을 유지하고야 마는 펠리시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한나는 매음굴을 정리하며 매춘부들에게 5년 수입에 해당하는 넉넉한 금액을 보상하면 그들이 가족에게 돌아가 다른 삶을 꾸릴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 매춘부들은 그 돈을 받지 않겠으며 어디든 따라가 한나가 새로 여는 매음굴에서 몸을 팔겠다고 주장한다. 오랜 기간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영위했던, 판이한 삶을 살아온 두 집단의 만남은 결코 쉽게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남긴다. 그리고 그 간극을 채우는 것은 침묵이다. 때때로 침묵을 깨고 울리는 음성은, 온통 거짓을 말할 뿐이다.

   한나는 그 침묵이 두려움임을 알아차린다. 백인들도, 흑인들도, 온통 서로를 두려워한다. 낯선 존재를, 그 존재가 휘두르는, 혹은 휘두를지 모르는 낯선 종류의 폭력을. 유럽인들이 스스로 발견했다 의심치 않는 대륙, 그러나 그 이전에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오랜 시간 살아오며 삶을 일궈왔던 대륙에 자리잡은 공포를 한나는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삶을, 그렇게라도 살아남고 싶었던 삶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쓴다. 로우렌소 마르케스를 떠나는 날까지 한나에게는 제대로 된 친구가 없다.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한나는 자신과 그들의 간극이 영원히 매워질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와는 조금 멀리 있는 너를, 그대로 알아주겠다 말한다. 그런 마음으로, 그녀는 그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조화와 화합은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끝끝내 불가능한 순간도 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때로는 죽을 때까지 서로 다른 삶을 살기도 한다. 백 년 전 아프리카의 백인과 흑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럴 수 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그것을 잘못이라 낙인 찍고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서로를 미워하고 또 두려워했다. 처음에는 마찬가지로 그 빈틈에 빠져 괴로워하던 한나는 떠나는 순간에는 다르다는 것 자체를 인정한다. 그것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다르지만,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서로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에 남는 문장들

 

   그녀는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세뇨르 바즈의 눈빛에서 발견한 두려움에 관해 생각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서는 그런 두려움을 보지 못했었다. 스웨덴에도 물론 상류층이 있었지만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여기는 모두가 두려워했다. 다만 백인들은 침착과 자기절제, 또는 사전 계획된 분노의 폭발 같은 가면 뒤에 두려움을 감출 뿐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왜 두렵지가 않지? 두려워할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일까? 완전히 혼자여서?

- pp. 160-161


   처음에는 한나도 흑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세뇨르 바즈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차츰 그 주장은 백인들에게도 인도인들에게도 아랍인들에게도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식은 다를지 몰라도 어쨌든 모두가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거짓말과 위선 위에 세워진 나라에 살고 있었다.

- p. 208


   "그런 건 걱정거리도 못돼요. 흑인들이 뭘 할 수 있어서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것이 있어요."

   처음으로 그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뭔데요?"

   "그들의 숫자요."

   그는 그녀의 대답에 실망한 눈치였다. 그녀가 뭔가 엄청난, 자신은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대답을 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단순히 숫자가 많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아요." 그가 성급하게 말했다. "결코 현실이 되지 않을 악몽인 거죠.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들은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될 거예요."

   "저는 신경이 예민한 유형은 아니에요. 보이는 것을 보고 들리는 것을 들을 뿐이죠."

   "들리는게 뭔가요?"

   "침묵이에요. 부자연스러워요."

- p. 228


   열여섯쯤 되었을 소년은 문간에 멈춰 섰다. 숨을 죽인 모습이었다. 나랑 비슷하구나, 한나는 생각했다. 저 아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문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저 아이 속에서 내 모습이 보여.

- pp. 293-294


   나는 백인들이 스스로와 흑인들을 기만하느라 모든 기력을 소진하는 흑인 세계에서 살고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은 이곳 사람들은 백인 없이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흑인들은 돌과 나무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열등한 인종이라고 생각해. 반면에 흑인들은 어떻게 신의 아들을 모질게 학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지. 그리고 백인들이 심장이 곧 멎어버릴 만큼 늘 바쁘게 움직이며 부와 권력을 향한 끝도 없는 추구에 휘둘리는 걸 보고 놀라기도 해. 백인들은 삶을 사랑하지 않아. 대신 시간을, 언제나 부족하기만 한 시간을 사랑해.

- p. 403


   그 순간 아나는 주변의 모든 것이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목가적 풍경처럼 느껴졌다.

   그건 불안한 낙원이었다.

- p. 407


   하지만 며칠 후 흑인 동네들을 되풀이하여 방문했을 때 그녀의 눈에 새로운 것이 들어왔다. 이 극빈자들에게서 삶에 대한 뜻밖의 갈망이 엿보인 것이었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즐거움조차 하찮아하지 않고 두 팔을 벌려 움켜쥐었다. 나눌 것이 전무한 상태에서도 서로 돕고자 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이 모든 빈곤과 불결의 표면을 파고 들어가면 발견할 수 있었던 것들을 일기에 적어보려 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이 불가해한 가난의 한가운데서 나는 풍요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없었을 행복, 살아남을 수 없었을 온기. 이것을 통해 온갖 부와 안락에 파묻혀 사는 백인들의 또 다른 종류의 가난을 나는 볼 수가 있다."

- p. 454


written by. 가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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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존 피글러는 법을 준수하는 고등학생이다. 그는 편지에 자신은 내 책을 거의 다 읽었으며 이제 내가 평생 동안 써온 작품의 핵심에 있는 단 하나의 사상을 말할 준비가 돼 있다고 썼다.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공손함은 항상 승리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버논 선생님이 교실 뒷편에 액자로 걸어둔, 포샤가 자신의 소설 제목으로 차용한, 더불어 작가인 매튜 퀵이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러브 메이 페일'의 출처는 위에 적은 커트 보네거트의 '제일버드'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사랑이 실패하는 순간, 그것을 뛰어넘고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공손함보다는 또다른 사랑이다. 그것은 좋은 남자와 새로 시작하는 사랑일 수도, 한번도 변한 적 없었던 엄마의 사랑일 수도, 선생님을 어떻게든 구하고 싶은 제자의 사랑일 수도 있다. '러브 메이 페일'은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랑으로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다시 일으켜 세우고 눈에 반짝이는 빛을 돌려주는 이야기이다.

   책의 각 챕터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붙어있고, 그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쉽사리 '러브 메이 페일'의 주인공은 누구다, 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어느 시점에는 포샤도, 버논 선생님도, 매브 수녀님도, 척도 이야기의 주인공 위치에 선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느 순간을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또 어느 순간은 우리 주변 소중한 사람의 이야기에 기꺼이 조연이 되어준다. 때로는 아주 잠깐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한다.

   소설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포샤는 그녀가 쓴 소설의 주인공처럼 '웃기고 재치 있고 상처받고 망가진 캐릭터지만 마음씨가 곱다'. 그녀는 포르노 산업의 큰손으로 늘 여자의 권리를 짓밟는 영화만 제작하며 페미니스트이자 소설가를 꿈꾸는 포샤의 꿈을 짓밟는 남편 켄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고 분개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곳에서 그녀를 맞아주는 건 변함없는 모습의, 정신이 온전치 않은 호더인 어머니이다. 그러나 우연같은, 혹은 운명같은 만남들을 통해 그녀는 옛 친구인 다니엘과 재회하고, 그녀에게서 오래 전 포샤의 인생을 변화시켰던 버논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 또 다니엘의 오빠인 척을 알게 된다. 그리고 포샤는 버논 선생님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게 어떤 방법이 되었든 간에, 그 모험을 해보기로.

   포샤의 모험은 순탄치 않다. 버논 선생님은 그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에서 한참 변한 상태로 오직 자살만을 원한다. 그에게는 그만의 사정이 있고, 성질 급한 포샤는 열정이 넘치지만 정작 그의 마음에는 가닿지 못한다. 3일만에 버논 선생님을 구하겠다던 포샤의 포부와는 달리, 버논 선생님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매브 수녀가 죽기 직전까지 답장 없는 아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남겼던 편지들. 밉지만 또 안쓰러운 친구의 아들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했던 캐서린 원장. 포샤의 소설. 그렇게 다시 일어선 버논 선생님은, 그 긴 시간동안 세상의 벽에 부딪혀 다시금 부서지고 녹초가 된 포샤를 다시 서게 한다. 아주 오래 전 어느날 어린 소녀였던 그녀에게 그랬듯이. 그렇게, 제각기 부서지고 아픈 삶을 살던 '러브 메이 페일'의 주인공들은 서로를 구한다. 그래서 이 책은 종교적이라 하기엔 헤비메탈과 술과 담배와 마약과 욕설이 너무 많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매튜 퀵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아프게 넘어져도 일어설 때까지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러브 메이 페일'은 동화가 아니다. 그래서 포샤의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지도 않고, 평단의 찬사를 받지도 못한다. 오히려 포샤가 꿈에 그리던 소설가로의 데뷔는 참담하고, 그녀의 인생이 다시 회색빛으로 오그라드는 계기가 되고 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자꾸 넘어지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는, 그런 희망적인 말들은 다 거짓말이고 성공한 사람들의 위선일 뿐이라고 아마 포샤는 소리를 질러댈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불씨가 사그라질 것만 같던 위기의 순간에, 그녀의 남편 척과 친구 캐서린 원장, 그리고 버논 선생님은 힘을 합쳐 그녀를 위해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 준다. 쏟아지는 종이비행기, 반짝이는 눈빛의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에 들린 '러브 메이 페일'. 어느 학교 방과후교실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고 해서, 그 아이들의 눈빛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작가로 존경하는 마음을 읽었다고 해서 포샤의 인생에 달라지는 것은 엄밀히 말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때로는 그토록 아무것도 아닌 일이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종류의 기적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억에 남는 문장들

 

   근사한 남자들은 다 동성애자거나 순교자 콤플렉스가 있는 신의 아들들이다. 맹세코 우리 이성애자 여자들은 운이 다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 Part I '포샤 케인', p. 44


   "넌 왜 현실에서 뛰어내렸니? 침실 창문에서 말이야. 너 정말 그 동반 자살 협약에 따라 그렇게 한 거니?"

   <멋진 인생>이란 영화에서 수호천사 클라란스가 조지 베일리를 속여서 그의 목숨을 구하려고 다리에서 뛰어내린 거 기억나요? 클라란스가 이런 말을 했죠. "내가 뛰어내리면 당신이 날 구해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내가 당신을 구했어요." 우린 지난 2년 동안 크리스마스마다 그 영화를 같이 봤어요. 기억나요? 거기서 내가 아이디어를 얻은 거죠. 당신을 구할 방법을 알아냈단 말이에요.

   "날 구하기 위해 네가 뛰어내렸다고?"

   알베르 카뮈는 마치 맞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내 입술을 한번 핥았다.

   "하지만 나는 널 구하지 못했어."

   그렇다고 자살하지도 않았잖아요. - Part II '네이트 버논', p. 216


   "방금 날 '고양이'라고 부른 거야?"

   나는 바보같이 허공에다 대고 손가락으로 인용 부호를 만들어보이면서 말했다.

   네, 그랬어요. 이건 개가 또 다른 개에게 쓸 수 있는 가장 나쁜 욕이에요. 고양이. 지금 주인님은 그렇게 굴고 있잖아요. 남을 헐뜯고, 이기적으로 굴고, 자기밖에 모르고, 남은 믿지도 않고, 뚱해 있는 고양이 같아요. 믿음직스러운 개가 되세요, 네이트 주인님. 진실하고 선량한 개는 상냥하고 사랑이 넘치고 친절하고 모험을 떠날 준비가 항상 돼 있어요. 온 세상에 오줌을 갈겨서 구석구석 영역 표시를 하는 거죠. 그래도 자기 오줌이 고갈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이야기가 좀 이상해지는데, 알베르 카뮈. 암만 내가 이상한 인간이라도 그렇지. 이건 인정해야겠어."

   새 삶을 살아보세요. 주인님의 본질인 오줌으로 세상에 영역 표시를 하세요. - Part II '네이트 버논', pp. 303-304


written by. 가비

* 이 서평은 박하출판사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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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1918년, 도끼를 든 살인마가 미국 남부의 도시 뉴올리언스를 공포에 떨게 한다. 도끼 살인마 '액스맨'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침입해 사람을 무참히 살해한 후, 훼손된 상처 부분에 '정의'와 '심판' 타로카드를 꽂아둔 뒤 유유히 현장을 떠난다.

   피해자는 시칠리아 출신의 이민자들. 살인범은 신문사에 지옥에서 보내는 편지를 남길 정도로 대담하고, 겁이 없으며,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군중을 심판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가 든 도끼가 정의의 여신이 내려치는 검이라도 되는 것마냥.

   20세기 초의 뉴올리언스는 소외된 자들의 도시이다. '북으로는 크리올 흑인이, 남으로는 아일랜드인, 서쪽에는 아프리카 흑인이 살았고 중앙에 위치한 리틀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인이 살았'던 분열된 도시의 잔혹한 연쇄살인은 고립과 의심을 증폭시킨다. 시칠리아인이 희생되면 마피아가 범죄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가 발생한 리틀이탈리아에서는 흑인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길거리를 걷던 선량한 흑인들이 린치를 당하고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도시를 지배한다. 그렇게 액스맨은 각 개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넘어 뉴올리언스 사회를 파괴한다. 공포는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과 타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와 관용을 좀먹는다. 재즈가 울려퍼지는 낭만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그렇게 불안과 광기에 잠식당한다.

   '액스맨의 재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액스맨을 추격하는 여정을 담았다. 그것은 정의를 위한 길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길고 질긴 인연의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뉴올리언스의 도끼 연쇄살인은 분명 끔찍한 범죄다. 하지만 사건의 진행과 함께 드러나는 것은 인간 내면 깊은 곳의 추악한 단면들, 사람이 사람에게 품게 되는 다양한 감정, 같은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다른 의도와 목적, 그렇게 온통 벌거숭이가 된 인간 그 자신이다. 어쩌면 마이클이, 루카가, 그리고 아이다와 루이스가 잡으려 했던 것은 액스맨 그 자체인 동시에 온통 벌거벗겨진 뉴올리언스에 덮어줄 새 이불이었을지 모른다. 흙먼지 너머 쇼걸처럼 누워있는 어두운 도시에 살포시 얹어줄 희망을. 함께 피흘린 시간을 딛고 화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말이다.


100년의 간극


 실제 사건이었던 뉴올리언스의 도끼 연쇄살인사건은 약 100년 전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이다. 레이 셀레스틴은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소설의 형태로 재탄생시켜 극적 요소를 가미하면서도 팩트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100년 전의 살인사건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모습이 현대와는 어떻게 다른지, 당시의 수사기관은 어떤 증거를 놓쳤고 어떤 부분을 분석할 수 없었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피묻은 신발 밑창을 피해자의 부엌에서 씻고 가며 거기서 떨어진 진흙이며 피를 고스란히 싱크대에 남기고 갔는데도 그걸 저기서 부츠를 씻고 갔군, 하고 넘기는 모습에 경악했다. 그러다 100년 전에는 싱크대에서 지문을 채취하여 전산에 등록된 수많은 지문과 대조할 수도, 잔여물을 끌어모아 섞여있을지 모르는 범인의 상피세포 속 DNA를 분석할 수도 없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액스맨이 1918년이 아닌 2018년을 범행의 무대로 삼았다면 그토록 오랜 시간 많은 희생자를 남기며 유유히 사라질 수 있었을까. 아마 그가 악마에 빗댈 정도로 뛰어나다 생각했던 기술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고, 첫 희생자의 사체가 수습되며 이미 꼬리가 밟히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세기 초라는 시대상이, 그 당시의 낙후된 기술과 수사의 한계가, 그리고 무엇보다 신문에 범인에 대한 명확한 정보 대신 새벽에 길거리를 거니는 악마를 보았다는 제보를 보내는 사람들의 인식이 액스맨을 지옥의 심판관으로 만들어주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과학수사가 태동하기 이전 시대의 수많은 잔혹한 범죄들에 대하여. 억울함조차 풀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던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처음 제목을 접하고 당연히 미국 작가의 소설일 줄 알았는데, 작가 레이 셀레스틴이 영국 소설가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더구나 '액스맨의 재즈'가 데뷔작이라는 걸 알고는 더더욱 놀라고 말았다. 생애 첫 소설로 100년 전 일어난 미국의 범죄사건을 다루려는 영국 신예 소설가라니. 그러나 이 주제에 자신이 있다는 듯, 그리고 명확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레이 셀레스틴은 차분하고 침착하다. 그래서 '액스맨의 재즈'는 주제의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감각적인 슬래셔 같지도, 그렇다고 팩트만 나열하는 역사기록 같지도 않다. 그 중간 어딘가를 걸으며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엮고 독자를 1919년의 뉴올리언스로 홀리듯 끌어당긴다. 마치 그 곳을 좀 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 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 때 사람들은 이런 마음으로 이런 공포에 떨며 이렇게 살아가야 했다고.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종류의 범죄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돌아보는지, 누군가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의심하며 증오하지는 않는지, 때로는 범죄 그 자체보다도 더 잔인한 마음으로 서로를 상처 입히지는 않는지. 21세기에 액스맨은 없지만, 뉴올리언스의 그 깊고 짙은 어두움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드리워져 있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악마는, 우리 안에 있다.


written by. 가비

* 이 서평은 황금가지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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