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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여자
존 그레이.바바라 애니스 지음, 나선숙 옮김 / 더난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화성남자 금성남자' 시리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스테디셀러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마냥 이해할 수 없는 남과 여를 분석하여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나아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작성된 일종의 '이성에 관한 설명서'이다. 그 시리즈의 저자 존 그레이와 '성별이해 지능'이라는 개념을 주창한 바바라 애니스가 함께 작성한 이 책에서는 직장 인간관계에서 드러나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나아가 직장에서 어떻게 하면 이성 동료를 더 잘 이해하고 협동하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능률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지 조언하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이 책은 뭉뚱그려 남자를, 혹은 여자를 말하는 대신 직장생활에서 자주 발생하는 오해 8가지에 집중하여 그에 관한 상반된 남과 여의 입장을 다룬다. 그리고 그 입장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쉬운 해석을 반복해준다. 책에서 다루는 풍부한 예시를 따라가다 보면 이 세계의 직장에서 나타나는 남자와 여자의 갈등은 천차만별이지만 그 핵심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경쟁적으로 일하는 걸 좋아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며 타인의 질문이나 참견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남자와 협동하여 일하는 걸 좋아하고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시하며 질문이나 충고로 관심을 표현하려 하는 여자. 같은 팀에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다 보면 남자와 여자는 자꾸만 서로의 차이점을 확인한다. 때로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 인해 분노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사직서를 내고 직장을 완전히 떠나게 되기도 한다. 회사에 완전히 등을 돌리는 그 순간까지도,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책을 읽다 보면 공감이 가는 대목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대목도 있었다. 어느 부분은 여성에 대해 다소 차별적이라 느껴진 반면, 어느 대목은 여성이 지닌 특징을 더 나은 것으로 부각시켜 남성 독자들에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마 존 그레이와 바바라 애니스가 함께 써내려간 책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 말았다. 남성 작가가 남성들의 편을, 여성 작가가 여성들의 편을 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편견이었기 때문이었다. 다 읽고 나니 책을 읽으며 남과 여에 대해 고민한 그 과정 자체가 두 성을 이해하고 그 간극을 좁힐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이 책에서 그리는 '남성'과 '여성'은 결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완벽한 모델이 아니다. 때로는 책에서 묘사한 남성의 특징이 나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여성적인 측면이 나와 무척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책이 풍부한 예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었다. 이 책이 지니는 의미는 거기에 있다. 존 그레이와 바바라 애니스는 '모든 남성은 이렇다'거나 '모든 여성은 이렇게 대하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당신이 직장에서 만난 '어떤 남성은 이럴 수 있다'고, '어떤 여성과는 이렇게 일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이성 동료와의 반복되는 갈등에 너무도 지쳐버렸다면, 상사와 소통하는 게 너무도 힘이 든다면, 나를 너무도 힘들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을 펼쳐보면 어떨까 싶다. 뜻밖의 지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보이지 않던 상대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실마리를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책을 읽으며 두 작가가 던지는 조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업무 자체만으로도 벅차고 힘든데 이런 것까지 일일히 신경써야 하나? 어떻게 이런 면까지 다 맞춰주지? 이런다고 누가 내 노력을 알아줄까? 이게 그렇게 가치있는 일인가? 함께 협력해야 하는 프로젝트에 관해 상의하는 중에 자기 피피티 고치기에 여념이 없는 남자 동료를, 시간에 쫓기는 희의 시간에 자꾸 질문을 하는 여자 상사를, 내가 왜 굳이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꽤 중요한 일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직장에서 불편하고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개인적인 성격이나 문제 때문에 불편한거라면 그 사람 1명만 열심히 피하면 될 일이지만, 상대가 남자, 혹은 여자여서 불편한 일이 생기는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요즘은 대부분의 회사에 남자 직원과 맞먹는 수의 여자 직원이 있다. 사무실에서, 회의실에서, 점심시간 구내식당과 회식자리에서 필연적으로 이성 동료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면 회사 생활 자체가 힘들어지고 만다. 때로는 직장을 그만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말이다.
결국 이성인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바바라 애니스가 말하는 '성별이해 지능'을 갖추는 것은 상대를 위하는 일인 만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매일같이 짜증나게 하던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순간, 편해지는 건 바로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만난 화성남자 금성여자'는 어려운 책이 아니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기도 좋다. 회의실에서 실컷 싸우고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이 책을 펼쳐 몇 페이지 읽어보는 건 그렇게 대단한 노력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사소한 행동이 내 직장생활을, 나아가 연인과의 관계나 가정생활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99%는 달성한 셈이다. 마지막 1%의 진짜 이해는, 아마 이 책이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읽어보면 좋은 대목들
남녀 간의 균형을 비슷하게나마 유지하고 문화적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일터에 있는 남녀의 마음속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똑같지 않고, 꼭 똑같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여자가 남자처럼 행동하거나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남녀평등을 이루고 유지하는 길이다.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과 성취감, 그리고 남녀평등으로 가는 진정한 길이다.
- p. 48
엄마가 어떤 요구를 할 때,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절대로 못 마땅하거나 짜증스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얼핏 보기에 별 해로울 게 없는 듯한 이 작은 제스처가 엄마의 가치를 깎아내릴 뿐 아니라 아들에게 나중에 다른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무시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 pp. 222-223
여자의 말 또는 행동: "괜찮아요."
남자의 성별이해 지능: 여자가 짧게 대답하는 것은 상황이 그리 괜찮지 않다는 뜻이다.
- p. 269
성별이해 지능이 있는 남자라면 자신이 나서서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함께'라는 느낌을 전달할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배려해주는 남자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믿을 것이다. 그 남자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여성을 상품화하는 대화가 이어질 경우 거기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남자들의 그런 행동을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기며, 그 대화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남자들에게 그게 유치하고 잔인하며 수준 낮은 짓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 p. 286
여자들에게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사소한 것들이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 하는 작은 행동들이 진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여자는 그런 행동을 보면서 남자가 자신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이런 게 남자에게 그리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아니, 힘든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뭔가를 계속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늘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에 맞게 대접할 때, 둘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신뢰가 자라나는 한편, 둘 사이의 관계도 함께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 p. 305
앞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이, 여자들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하지만, 일과 삶의 조화를 찾는 면에서는 이 능력이 저주가 될 수 있다. 여자들은 너무 과도하게 일하고,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며, 모든 일에 성과를 내려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죄책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 p. 347
"다 가질 수는 있지만,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은 우리가 여성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경력을 쌓아 가거나 계획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소중한 통찰력을 제공해줄 것이다.
늘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먼저 생각하고, "안 돼", "나중에"라는 말을 하지 못하며, 자신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면, 분명 '다 갖지' 못할 것이다. 죄책감은 스트레스를 키운다.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질수록, 남들을 위해 해줘야 할 일들의 리스트는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 리스트 맨 밑에 자신을 적어 넣을 것이다.
퇴근 후에 왜 원하지도 않는 술을 마시러 가는가? 동료들과 출장 갔을 때 왜 즐겁지도 않으면서 밤새 깨어 있는가? 남자들은 "난 이제 자러 들어갈래. 너희들끼리 재미있게 놀아"라는 말을 쉽게 할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남자들의 그런 말에는 전혀 개인적인 감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상대방 남자 역시 "내일 보자!"는 그 말에 대해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여자들은 남이 아닌 자신을 생각하는 게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믿음을 갖게끔 길들여졌다. 관계를 형성하려면 서로 공감하고, 시간과 관심을 쏟고, 그 보답으로 비슷한 관심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자신을 돌보는 훈련을 받은 여자들은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더 충분히 생각하게 되는 효과를 경험한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에게 이해와 격려를 받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더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 pp. 356-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