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존 피글러는 법을 준수하는 고등학생이다. 그는 편지에 자신은 내 책을 거의 다 읽었으며 이제 내가 평생 동안 써온 작품의 핵심에 있는 단 하나의 사상을 말할 준비가 돼 있다고 썼다.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공손함은 항상 승리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버논 선생님이 교실 뒷편에 액자로 걸어둔, 포샤가 자신의 소설 제목으로 차용한, 더불어 작가인 매튜 퀵이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러브 메이 페일'의 출처는 위에 적은 커트 보네거트의 '제일버드'의 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사랑이 실패하는 순간, 그것을 뛰어넘고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공손함보다는 또다른 사랑이다. 그것은 좋은 남자와 새로 시작하는 사랑일 수도, 한번도 변한 적 없었던 엄마의 사랑일 수도, 선생님을 어떻게든 구하고 싶은 제자의 사랑일 수도 있다. '러브 메이 페일'은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랑으로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다시 일으켜 세우고 눈에 반짝이는 빛을 돌려주는 이야기이다.

   책의 각 챕터에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붙어있고, 그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쉽사리 '러브 메이 페일'의 주인공은 누구다, 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어느 시점에는 포샤도, 버논 선생님도, 매브 수녀님도, 척도 이야기의 주인공 위치에 선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느 순간을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또 어느 순간은 우리 주변 소중한 사람의 이야기에 기꺼이 조연이 되어준다. 때로는 아주 잠깐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한다.

   소설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포샤는 그녀가 쓴 소설의 주인공처럼 '웃기고 재치 있고 상처받고 망가진 캐릭터지만 마음씨가 곱다'. 그녀는 포르노 산업의 큰손으로 늘 여자의 권리를 짓밟는 영화만 제작하며 페미니스트이자 소설가를 꿈꾸는 포샤의 꿈을 짓밟는 남편 켄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고 분개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곳에서 그녀를 맞아주는 건 변함없는 모습의, 정신이 온전치 않은 호더인 어머니이다. 그러나 우연같은, 혹은 운명같은 만남들을 통해 그녀는 옛 친구인 다니엘과 재회하고, 그녀에게서 오래 전 포샤의 인생을 변화시켰던 버논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 또 다니엘의 오빠인 척을 알게 된다. 그리고 포샤는 버논 선생님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게 어떤 방법이 되었든 간에, 그 모험을 해보기로.

   포샤의 모험은 순탄치 않다. 버논 선생님은 그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에서 한참 변한 상태로 오직 자살만을 원한다. 그에게는 그만의 사정이 있고, 성질 급한 포샤는 열정이 넘치지만 정작 그의 마음에는 가닿지 못한다. 3일만에 버논 선생님을 구하겠다던 포샤의 포부와는 달리, 버논 선생님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매브 수녀가 죽기 직전까지 답장 없는 아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남겼던 편지들. 밉지만 또 안쓰러운 친구의 아들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했던 캐서린 원장. 포샤의 소설. 그렇게 다시 일어선 버논 선생님은, 그 긴 시간동안 세상의 벽에 부딪혀 다시금 부서지고 녹초가 된 포샤를 다시 서게 한다. 아주 오래 전 어느날 어린 소녀였던 그녀에게 그랬듯이. 그렇게, 제각기 부서지고 아픈 삶을 살던 '러브 메이 페일'의 주인공들은 서로를 구한다. 그래서 이 책은 종교적이라 하기엔 헤비메탈과 술과 담배와 마약과 욕설이 너무 많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매튜 퀵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아프게 넘어져도 일어설 때까지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러브 메이 페일'은 동화가 아니다. 그래서 포샤의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지도 않고, 평단의 찬사를 받지도 못한다. 오히려 포샤가 꿈에 그리던 소설가로의 데뷔는 참담하고, 그녀의 인생이 다시 회색빛으로 오그라드는 계기가 되고 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자꾸 넘어지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는, 그런 희망적인 말들은 다 거짓말이고 성공한 사람들의 위선일 뿐이라고 아마 포샤는 소리를 질러댈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불씨가 사그라질 것만 같던 위기의 순간에, 그녀의 남편 척과 친구 캐서린 원장, 그리고 버논 선생님은 힘을 합쳐 그녀를 위해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 준다. 쏟아지는 종이비행기, 반짝이는 눈빛의 아이들, 고사리 같은 손에 들린 '러브 메이 페일'. 어느 학교 방과후교실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주었다고 해서, 그 아이들의 눈빛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작가로 존경하는 마음을 읽었다고 해서 포샤의 인생에 달라지는 것은 엄밀히 말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때로는 그토록 아무것도 아닌 일이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종류의 기적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억에 남는 문장들

 

   근사한 남자들은 다 동성애자거나 순교자 콤플렉스가 있는 신의 아들들이다. 맹세코 우리 이성애자 여자들은 운이 다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 Part I '포샤 케인', p. 44


   "넌 왜 현실에서 뛰어내렸니? 침실 창문에서 말이야. 너 정말 그 동반 자살 협약에 따라 그렇게 한 거니?"

   <멋진 인생>이란 영화에서 수호천사 클라란스가 조지 베일리를 속여서 그의 목숨을 구하려고 다리에서 뛰어내린 거 기억나요? 클라란스가 이런 말을 했죠. "내가 뛰어내리면 당신이 날 구해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해서 내가 당신을 구했어요." 우린 지난 2년 동안 크리스마스마다 그 영화를 같이 봤어요. 기억나요? 거기서 내가 아이디어를 얻은 거죠. 당신을 구할 방법을 알아냈단 말이에요.

   "날 구하기 위해 네가 뛰어내렸다고?"

   알베르 카뮈는 마치 맞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내 입술을 한번 핥았다.

   "하지만 나는 널 구하지 못했어."

   그렇다고 자살하지도 않았잖아요. - Part II '네이트 버논', p. 216


   "방금 날 '고양이'라고 부른 거야?"

   나는 바보같이 허공에다 대고 손가락으로 인용 부호를 만들어보이면서 말했다.

   네, 그랬어요. 이건 개가 또 다른 개에게 쓸 수 있는 가장 나쁜 욕이에요. 고양이. 지금 주인님은 그렇게 굴고 있잖아요. 남을 헐뜯고, 이기적으로 굴고, 자기밖에 모르고, 남은 믿지도 않고, 뚱해 있는 고양이 같아요. 믿음직스러운 개가 되세요, 네이트 주인님. 진실하고 선량한 개는 상냥하고 사랑이 넘치고 친절하고 모험을 떠날 준비가 항상 돼 있어요. 온 세상에 오줌을 갈겨서 구석구석 영역 표시를 하는 거죠. 그래도 자기 오줌이 고갈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이야기가 좀 이상해지는데, 알베르 카뮈. 암만 내가 이상한 인간이라도 그렇지. 이건 인정해야겠어."

   새 삶을 살아보세요. 주인님의 본질인 오줌으로 세상에 영역 표시를 하세요. - Part II '네이트 버논', pp. 303-304


written by. 가비

* 이 서평은 박하출판사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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