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1918년, 도끼를 든 살인마가 미국 남부의 도시 뉴올리언스를 공포에 떨게 한다. 도끼 살인마 '액스맨'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침입해 사람을 무참히 살해한 후, 훼손된 상처 부분에 '정의'와 '심판' 타로카드를 꽂아둔 뒤 유유히 현장을 떠난다.

   피해자는 시칠리아 출신의 이민자들. 살인범은 신문사에 지옥에서 보내는 편지를 남길 정도로 대담하고, 겁이 없으며,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에게 군중을 심판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가 든 도끼가 정의의 여신이 내려치는 검이라도 되는 것마냥.

   20세기 초의 뉴올리언스는 소외된 자들의 도시이다. '북으로는 크리올 흑인이, 남으로는 아일랜드인, 서쪽에는 아프리카 흑인이 살았고 중앙에 위치한 리틀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인이 살았'던 분열된 도시의 잔혹한 연쇄살인은 고립과 의심을 증폭시킨다. 시칠리아인이 희생되면 마피아가 범죄의 배후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가 발생한 리틀이탈리아에서는 흑인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길거리를 걷던 선량한 흑인들이 린치를 당하고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도시를 지배한다. 그렇게 액스맨은 각 개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을 넘어 뉴올리언스 사회를 파괴한다. 공포는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과 타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와 관용을 좀먹는다. 재즈가 울려퍼지는 낭만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그렇게 불안과 광기에 잠식당한다.

   '액스맨의 재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액스맨을 추격하는 여정을 담았다. 그것은 정의를 위한 길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길고 질긴 인연의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뉴올리언스의 도끼 연쇄살인은 분명 끔찍한 범죄다. 하지만 사건의 진행과 함께 드러나는 것은 인간 내면 깊은 곳의 추악한 단면들, 사람이 사람에게 품게 되는 다양한 감정, 같은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다른 의도와 목적, 그렇게 온통 벌거숭이가 된 인간 그 자신이다. 어쩌면 마이클이, 루카가, 그리고 아이다와 루이스가 잡으려 했던 것은 액스맨 그 자체인 동시에 온통 벌거벗겨진 뉴올리언스에 덮어줄 새 이불이었을지 모른다. 흙먼지 너머 쇼걸처럼 누워있는 어두운 도시에 살포시 얹어줄 희망을. 함께 피흘린 시간을 딛고 화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말이다.


100년의 간극


 실제 사건이었던 뉴올리언스의 도끼 연쇄살인사건은 약 100년 전에 일어났던 실제 사건이다. 레이 셀레스틴은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소설의 형태로 재탄생시켜 극적 요소를 가미하면서도 팩트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100년 전의 살인사건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모습이 현대와는 어떻게 다른지, 당시의 수사기관은 어떤 증거를 놓쳤고 어떤 부분을 분석할 수 없었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이 피묻은 신발 밑창을 피해자의 부엌에서 씻고 가며 거기서 떨어진 진흙이며 피를 고스란히 싱크대에 남기고 갔는데도 그걸 저기서 부츠를 씻고 갔군, 하고 넘기는 모습에 경악했다. 그러다 100년 전에는 싱크대에서 지문을 채취하여 전산에 등록된 수많은 지문과 대조할 수도, 잔여물을 끌어모아 섞여있을지 모르는 범인의 상피세포 속 DNA를 분석할 수도 없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액스맨이 1918년이 아닌 2018년을 범행의 무대로 삼았다면 그토록 오랜 시간 많은 희생자를 남기며 유유히 사라질 수 있었을까. 아마 그가 악마에 빗댈 정도로 뛰어나다 생각했던 기술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고, 첫 희생자의 사체가 수습되며 이미 꼬리가 밟히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세기 초라는 시대상이, 그 당시의 낙후된 기술과 수사의 한계가, 그리고 무엇보다 신문에 범인에 대한 명확한 정보 대신 새벽에 길거리를 거니는 악마를 보았다는 제보를 보내는 사람들의 인식이 액스맨을 지옥의 심판관으로 만들어주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과학수사가 태동하기 이전 시대의 수많은 잔혹한 범죄들에 대하여. 억울함조차 풀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던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처음 제목을 접하고 당연히 미국 작가의 소설일 줄 알았는데, 작가 레이 셀레스틴이 영국 소설가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더구나 '액스맨의 재즈'가 데뷔작이라는 걸 알고는 더더욱 놀라고 말았다. 생애 첫 소설로 100년 전 일어난 미국의 범죄사건을 다루려는 영국 신예 소설가라니. 그러나 이 주제에 자신이 있다는 듯, 그리고 명확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레이 셀레스틴은 차분하고 침착하다. 그래서 '액스맨의 재즈'는 주제의 잔혹성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감각적인 슬래셔 같지도, 그렇다고 팩트만 나열하는 역사기록 같지도 않다. 그 중간 어딘가를 걸으며 실제와 허구를 교묘히 엮고 독자를 1919년의 뉴올리언스로 홀리듯 끌어당긴다. 마치 그 곳을 좀 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 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 때 사람들은 이런 마음으로 이런 공포에 떨며 이렇게 살아가야 했다고.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는 다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종류의 범죄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돌아보는지, 누군가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고 의심하며 증오하지는 않는지, 때로는 범죄 그 자체보다도 더 잔인한 마음으로 서로를 상처 입히지는 않는지. 21세기에 액스맨은 없지만, 뉴올리언스의 그 깊고 짙은 어두움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드리워져 있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악마는, 우리 안에 있다.


written by. 가비

* 이 서평은 황금가지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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