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놀이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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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전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의 평화롭고도 만족스러운 일상의 조화를 깨뜨리고 느닷없이 전신을 드러냈다.
 도심의 하루가 빌딩의 사이사이에서 비껴눕는 햇빛을 따라 희부였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으레 이 시간 무렵이면 그는 3단까지 눕혀지는 회전 의자를 2단에 고정시켜 반쯤 눕듯히 한 그지없이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실눈을 뜨고는 12층 저 아랫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11쪽)

 

그 일에 대한 예고를 책의 첫부분부터 이야기한다. 그 일은? 그 일이 도대체 무슨일일까? 라는 궁금증을 안고 그 일을 찾아내기 위해 서서히 이야기는 전개된다. 예전에 저자의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책에서 태백산맥?인가를 쓸때 반대세력들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전화를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이 쓰여진 것일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어느날 문득 걸려오기 시작한 전화. 그 전화로 인해 잘나가는 부유한 사업가의 삶이 흔들린다. 그의 목숨을 원한다는 그 전화. 그 전화는 매일 밤마다 이어진다. 그리고 그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황사장의 목을 서서히 조여온다. 황사장은 얼마든 원하는 돈을 주겠으니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지만 이미 화살시위는 당겨져 더 이상 제자리에 돌려놓을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과거 어떤 일이 있었기에 황사장의 그런 협박을 받게 된 것일까? 황사장은 일제가 물러가고 신씨 집안에 종으로 살다가 대장간에서 일을 배운다. 그러던중 학교선생인 방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그동안 억눌러 살아왔던 고통의 시간들을 더 이상 방관해선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얼마후에는 급기야 그들의 세상이 된다. 그들은 이제까지 억눌려왔던 울분을 화산이 폭발하듯 거침없이 쏟아낸다.

 

황사장 즉 배점수가 대장장이가 된 사연 또한 이야기한다. 어린 여동생을 신씨 집안의 장남인 병철이 성폭행을 가하게 되고 그 장면을 목격한 점수는 바로 달려들어 그들을 묵사발내놓고 만다. 그로인해 점수는 집에서 쫓겨 대장장이가 된다. 불끈하는 아들을 점수의 아버지는 더이상 그 집안에서 같이살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대장장이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시작된 반격에 반격. 그 누군가가 시작한 잘못은 끈으로 이어져 서로에게 상처로 자리하게 된다. 그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이성이 남아있을때의 이야기이고 이성 이전에 서로의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불러일으킨다. 그들의 아픔은 곧 우리들 역사의 아픔이다. 우리 역사속에서 흐르는 아픔은 곧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갖은자의 횡포. 그 갖은자의 횡포에 치를 떨며 좀더 나은 삶을 살고자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는 힘없는 사람들. 그런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또 다시 노략질하는 그 고통의 연속. 이미 과거는 지나가 버렸지만 그 과거의 상처는 흔적으로 남아있다. 우리 가족의 삶속에도 역시 살아숨쉬는 상처의 소리가 내 귓가에 아련히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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