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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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대한 어떠한 언어도 헛되다는 것을 나는 수목원에 와서 알게 되었다. 꽃은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꽃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그때의 패랭이 꽃을 세밀화로 그려내려면 그 '쟁쟁쟁'한 기운을 화폭에 옮겨와야 할 터인데, '쟁쟁쟁'이 물리적 구조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쟁쟁쟁'은 그 구조 너머에 떠도는 것이어서 화폭에는 좀처럼 내려앉지 않았다. 날이 흐려서, '쟁쟁쟁'은 울리지 않았다. 작업도구를 정리해서 수목원 사무실로 돌아왔다.(164쪽)

 

 ..오므렸던 도라지 꽃잎이 꽈리가 터지듯이 터지면서 벌어졌다. 꽃잎이 벌어질 때 '퐁' 소리가 났다. 내가 다가가는 발소리와 지농에 충격을 받아서 꽃송이가 터진 것이 아닌가 싶어서 큰 나무 뒤에 숨어서 봤더니, 아무런 기척이 없는 적막 속에서 도라지 꽃봉오리들은 퐁 , 퐁 , 퐁 열렸다. 열릴때, 꽃잎에 달려 있던 물방울들이 잎사귀 위로 떨어져 흘러내렸다.(196쪽)

 

책을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책을 보며 아무것도 아닌걸 가지고 철학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심리를 볼수 있었다. 아이의 뒷통수를 문득 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꽃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한다. 나로서는 참 경이로운 일이다. 항상 무슨일이든 호기심이 많고 어떤 상황에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듯한 그런 사람들이 생각났다. 아마도 작가들은 누구나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어야 작가일수 있겠지만 말이다.

 

작중 인물인 나는 김중위와 안실장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려진다. 연주는 꽃과 잎을 그리는 계약직 세밀화 작가로 취직이 되어 수목원에서 일하게 된다. 수목원은 동부전선의 남방한계선에 잇닿은 민간인 통제구역에 있다. 수목원에 처음 갔을때 지키는 군인들에게 자신이 올것이 인지되어있는 않은 상태라 장교급 승낙을 할수 있는 사람들 찾게 되자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이 김중위였다.

 

안요한 즉 안실장은 메마른 색채를 가지고 있는 수목원의 연구실장이다. 안실장에게는 신우라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정도의 아들아이가 있다. 아이는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출근하는 아버지와 같이 수목원으로 나와 시간을 보낸다. 그런 아이에게 안실장은 연주에게 그림을 지도할것을 부탁한다. 신우와 함께 다른 아이둘도 같이 그림을 배우기로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이같지 말도 안되는 다툼으로 그만두게 되고 신우 역시 자폐증이 더 심해지기만 할듯한 고립감에 그만두게 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연주의 세밀화작업을 위한 꽃이야기, 나무 이야기등이 펼쳐진다. 사람들이나 꽃등의 자연이 모두 객관화되어있는듯한 무채색의 느낌이 든다. 꽃나무 등이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듯 연주의 아버지의 비리로 인한 문제들도 한발치 건네어서 그려진다. 꽃의 특징이나 연주의 아버지의 삶, 그리고 엄마의 한없이 연주에게 하소연하는 듯한 삶들이 묘하게 한종류로 보여진다.

 

비리로 점철된 사람들의 삶이 치욕스럽듯이 그 치욕스러움에 같이 얹혀살아왔던 사람들이 무감각하게 그려지기도 하고 꽃들의 생리 역시 그런 시각에서 그려진다. 마치 드라마를 보면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때 모두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는 빤히 보이는 속내지만 그 안에서는 치열한 삶이 아주 담백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꽃에 대해서 그리고 개미에 대해, 그림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참 흥미로웠다. 자신이 겪어보지 않았을 그림의 세계인데 저렇게 잘 알수 있을까? 싶은것이 놀랍기도 하고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알았을까? 내지는 수많은 연구를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엄청난 학구열이 느껴지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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