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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천사
키스 도나휴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주먹으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희미하고 나직하게.
여자는 누에고치같이 웅크리고 누웠던 솜털 이불을 걷어낸 다음, 한겨울 추위를 막으려고 숄을 어깨에 둘렀다. 혼자 사는 집이었지만 마거릿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면서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간신히 청한 잠을 깨우는 환청은 아닌가 하고 숨을 죽였다. 아래에서부터 네 번째 계단에 내려서며 격자 창문으로 밖을 내다봤다. 보이는 거라고는 위협적인 어둠과 달빛에 반사된 파르스름한 하늘, 계속되는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인 대지 위로 저 높이 촘촘히 박힌 별들이 전부였다. 마거릿은 중얼거리며 기도했다. 제발 절 해치지 않게 하소서......(11쪽)
혼자사는 마거릿에게 밤중에 누군가 찾아온다. 누에고치처럼 웅크리고 있었다는 말이 마거릿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무언가에 둘러싸여있는 듯한. 그리고 무언가 깨주어야할듯한 그런 외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 마거릿에게 한밤중 손님이 찾아온다. 아홉살 남짓한 소녀가 낡아빠진 여행 가방에 다리를 기대고 서서 추위에 와들와들 떨고 있다. 소녀의 외투 아랫단 자락과 무릎까지 올라오는 스타킹의 윗부분 사이에 노출된 살갗이 연어의 속살처럼 발갛게 물들어 있다는 표현이 남루한 어딘가에 뚝 떨어진듯한 그런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마거릿은 추위에 떨고 있는 작은 소녀를 집안으로 들인다. 마거릿은 집에 남은 시장기를 덜 크래커를 주고는 소녀를 쉬게한다. 집에 연락을 하자는 말에 소녀는 엄마도 아빠도 태어날때부터 없다고 말한다. 고아라고. 그랗게 작은 소녀 노라와 마거릿의 만남은 시작된다.
마거릿은 딸이 십년전 가출을 하고 남편이 떠나버린 외로움을 노라와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대신하려 한다. 모든 사람에게 집을 나간 딸의 아이가 찾아왔다고 말한다. 노라역시 마거릿의 말에 동조하고 자신은 마거릿의 딸인 에리카의 딸이라고 말한다. 마거릿은 아버지가 떠나 역시 외롭게 엄마와 사는 숀을 만나 노라를 데리고 같이 학교에 다닐 것을 부탁한다.
마치 예전부터 아이가 자신의 삶에 끌리듯이 그렇게 끌려갔을 뿐이다. 마치 예전부터 아이가 자신의 삶에 함계 했던 것처럼. 마거릿은 10년 넘게 간절히 기도하며 소원을 빌었지만 집으로 돌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아이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고 마거릿은 그 응답을 거부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이를 절대 보내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곁에 두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상관없다. ...아이의 손이 어깨에 닿을 때 전해오던 따스한 감동이 아직도 느껴졌다. (33쪽)
마거릿은 마치 딸 에리카가 돌아오기라도 한듯이 노라로 인해 기쁨에 잠긴다. 그리고 누군가 또 다시 노라를 빼앗아 가거나 떠날까봐 노라에게 거듭 에리카의 딸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외로운 둘의 결합에 기뻐하면서 말이다. 숀 역시 노라의 여러가지 독특하고 남들과는 다른 모습에 두려움반 설레임반을 갖고 지낸다. 노라가 천사라고 이야기하자 과연 노라가 천사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얼마후 마거릿의 동생 다이앤이 찾아오고 다이앤은 에리카를 찾아 떠난다.그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는 에리카를 만난다. 에리카는 자신이 집을 떠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모에게 숨가빴던 가출의 경로를 이야기하고 다이앤 이모는 집에 에리카의 딸이 찾아왔다고 말하는데 에리카는 자신의 딸은 없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 엄마인 마거릿과 재회를 한다. 그리고 노라는 어떻게 될까? 노라는 아이들에게 자신은 천사라며 그 증거들을 보여준다. 아이들과 학교 선생님은 그런 노라의 말을 믿지 못하고 말도 안된다고 다시는 그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과연 노라는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에리카는 그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로, 그가 변한 것처럼 변하기로 작정했다. 고요한 웃음이 그녀의 가슴에서 물결처럼 퍼져나가 목을 타고 올라가더니 뇌속에서 메아리쳤다. 영원이라는 관념은 사랑 그 자체처럼 불가능해 보였다. 망망대해에서 해안가를 찾을 수도, 하늘 저 멀리에서 추락하면 살아서는 지구로 되돌아올 수 없듯이, 또한 그녀의 손안에 들어있는 컵의 색깔보다 더한 푸른색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듯이, 그렇게 불가능해 보였다.(308쪽)
에리카는 아버지의 어두운 과거를 우연히 알게되면서 또 다른 삶의 면모를 발견하게 되고 극심한 성장통처럼 사랑하는 남자친구 윌리와 함께 가출을 한다. 그리고 그 가출기간에 에리카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에 마주선다. 그러면서 서서히 자신이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게 되지만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그러진 상태속에 침참해서 살아간다. 자신의 잘못이 발목을 잡아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어쩌지 못하고 지낸다.
살다보면 어느순간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 이미 그 상황이 벌어진 다음에는 다시 돌아갈수 없음에 깊은 회한에 잠기지만 엎질러진 물을 담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다.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외로움에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이 삶이 어둠속에 갇히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펼쳐진다. 과연 그 도전. 노라의 출현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그 무엇인가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낸것일까? 삶의 막다름에 서 있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귓가에 애절하게 들리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