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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말들
박이문 지음 / 민음사 / 2010년 1월
평점 :
형이상학적 자기 인상
어쨌거나 우리는 결국 먹고, 싸고, 발정하고
성교하고 번식하는 쥐들이다
부조리하건 아니건
그게 전부다, 또한 그게 전부다
우리의 철학적 고뇌
우리의 윤리와 정치, 그리고 시는 모두
의미가 결여된 소음에 불과했다 어쨌거나
그게 전부다, 또한 그게 전부다
삶이라는 우리에 갇혀서 어쨌거나
우린 모두 쳇바퀴 안에서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다람쥐
들이다
철장 속에서 끝도 없이
그게 전부다, 또한 그게 전부다
어쨌거나 우리의 언어는 뒤엉킨 소음
우리의 인식은 그저 부서진 그림자
우리의 의미는 그 그림자의 그림자
그게 전부다, 또한 그게 전부다
어쨌거나 우리의 비명
우리의 희망, 울음, 우리의 투쟁과 고통은 고통스러운 악
몽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는 이곳에서 결코 깨어날 수 없다
그게 전부다, 또한 그게 전부다
................[전문]
시의 전체적인 느낌은 암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삶을 바라본다. 삶의 되어지는 모습을...물론 시인의 삶을 되돌아보았을때 되는대로 살지는 않았다. 그저 시들을 읽는 느낌이 먼 발치에 서 있는 거울앞에선 자신의 허무한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맥이 빠진다. 워낙 시를 읽는다는 자체가 그런면이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저 삶을 고뇌적으로 철학적으로 읽어내려간다. 얼마전에 읽었던 김경주의 시처럼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말들이 없어서 너무 감사하게 술술 읽어내려갈수 있는 그런 이이다.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시인의 절규섞인 음성이 들리는 듯한것은 나뿐일까? '그게 전부다, 그게 전부다'라는 구절에서는 마음이 아주 시려진다. 그럼 삶이란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라는 공허감이 내 주위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분리의 접합
비- 현실은 시간이다
비- 진리는 공간이다
실체와 실존 사이- 우리의 절규
우리의 눈물 우리의 웃음
우리의 고뇌 우리의 언어
정액과 두개골 사이
침묵과 소리 사이
우리의 호흡은 분리의 접합이다
무도, 존재도 없는
궁극의 신비를 이루기 위하여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기 위하여
삶을 죽음으로 잇기 위하여
바람과 비와 눈은
언어도 사상도 노래도 아니다
산과 강과 사막은
진실도 미도 미덕도 아니다
분리에서 나온 접합
접합에서 나온 분리
드넓은 연결의 미학
................[분리의 접합] 전문
시인인 박이문 교수는 시인이자 철학자이다 교수이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진 학자라고 한다. 서울 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이대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프랑스에 유학가고, 파리의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 박사 학위를 받는등의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만큼 삶의 연륜들이 시 속에서 그대로 담겨있다.
미국에 있을때는 찰스강을 보고 시를 쓰고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을 바라보며 그리고 어머니를 회상하며 시를 썼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쓰기도 한 철학자로서의 철학적인 고뇌들이 시에서 읽을수 있다. 이 시집은 원래 영어로 발표한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시집은 미국과 독일에서 호평을 받고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몇 편의 작품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박이문 교수의 시편이 철학을 공부하다 쉽게 쓴 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시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운율이나 이미지나 상징과 같은 작시법에 통달해야 가능한데 이것은 언어 자체의 사용이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작품해설에서 말하고 있다. 시를 읽는것도 재미있지만 시집의 작품 해설을 읽는 것도 지름길을 찾아가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나같은 경우도 그냥 시를 읽을때와 작품 해설을 읽을때 다른 감흥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왠지 모르는 문제를 풀어서 풀이를 보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쥐
사자는 그러지 않아, 그저 쥐만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항상 벌벌 떨며 주위를 살피고
계속해서 불안해하고
죽은 벌레는 놓고 투닥거리고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위엄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이
어둠 속으로, 나아가
침침하고 깊은 쥐구멍으로 달려간다
사자가 아닌
쥐만이 그러지
실존의 어두운 쥐구멍 속 병든 쥐만이
.............................
내가 쥐라고 생각할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상황역시 쥐처럼 번잡스럽고 투탁거리고 있다. 내 마음가운데에서 사자라는 심성을 도대체 찾을수가 없고 쥐의 시끄벅적함만이 내 마음을 꽉 채우고 있다. [소말이아의 기근] 에서도 너무 가슴 아픈 구절들이 많다. 찔리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는 모두 이기주의자, 위선자/ 개보다도 더 개 같은/ 난 가만히 떠올려 보는 것이다/ 철학 강의에 들어온 작은 소녀의 티셔츠에 새겨진 그 말/ '사람에 대해 알수록 개가 더 좋아진다' 정말 사람에 대해 알수록 개가 더 좋아지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내 속에도 개보다 못한 나일때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