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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루크레시오는 수프와 어느 집을 털기로 한다. 수프가 고른 그 집에서 기다려도 수프는 오지 않아 루크레시오는 혼자 들어가기로 한다. 조심스럽게 정원을 가로지르는데 누군가 덤불 속에서 번뜩이는 두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을 하지만 전속력으로 달려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간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모두가 잠들어 있을줄 알았는데 갑자기 불이 켜지고 정면으로 어떤 아이가 무섭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어보이는 체구가 작고 무척이나 고집이 쌔보이는 아이가 서있다. 커다랗고 파란 눈동자는 무엇이든 꿰뚫어볼것 같고 옷차림은 온통 검은색이며 머리칼은 한 올도 없는 대머리이다.
아이는 전혀 도둑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도둑인 루크레시오가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이가 소리지르면 붙잡힐 까봐 망설인다. 그리고 루크레시오가 자신의 이름이 에메트리오 엘 아스투토라고 이야기를 하자 아이는 루크레시오의 본명을 알고 있고 거기다 '은밀한 루크'라는 별명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루크레시오는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나가려 하지만 칼비노가 문을 잠가서 나가지도 못하고 머무르게 된다.
칼비노는 도둑인 루크레시오에게 머리를 밀고 이 집에 살면서 아버지 노릇을 해주기를 제안한다. 얼마전 아빠가 어딘가를 급하게 가셨고 돌아오시지 못할 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을 고아나 버림받은 아이들이 있는 시설로 보낼지도 모르기에 아빠 노릇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웃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가끔씩 개를 산책시켜 주기도 하면서 말이다. 개가 어디 있냐고 자신이 들어올때 못봤다고 이야기하자 어두컴컴한 서재 한 구석에서 크고 새카만 늑대가 소년에게 다가와 소년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는 모습에 루크레시오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조금전 봤던 번뜩이는 눈의 정체가 바로 이 크고 거대한 늑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머무르게 된 루크레시오는 별 상상도 못할 일들을 겪게 된다. 집 안의 관속에 칼비노의 엄마의 시체가 누워 있지를 않나, 경찰이 와서 엄마를 찾자 홀연히 시체로 누워있던 엄마가 나타나지를 않나 말도 안되는 일들을 루크레시오는 맞닥드리게 된다. 과연 루크레시오는 그 속에서 살아남아 나갈수 있을까?
작가의 상상력이 아주 재미있게 펼쳐진다. 이 책을 시골에 가는 기차 안에서 보게되었다. 몇시간을 이 책을 붙잡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에 실갱이를 하면서 보았다. 그랬더니 옆에 앉아있던 중학교 1학년의 우리 딸이 "뭐야?" 하기에 다 보고 "읽어봐~~"하고 주었더니....한 삼십분 만에 보더니..."말도 안되~~이걸 몇시간 동안 읽었단 말이야?" 라고 이야기를 한다. 역시 어른의 굳어진 머리와 아이의 말랑말랑한 머리는 상상력의 차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절실히 드는 무안한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과연 이 책을 몇분만에 볼까? 제대로 이해하면서 말이다. 작고 아담한 책 속에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