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학이 사랑한 예술
아미르 D. 악젤 지음, 이충호 옮김 / 알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수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이지만 수학에는 관심없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궁금했다. 도대체 수학이 어떻게 예술을 사랑할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말이 되나? 어떻게 수학이 예술을 사랑할수 있지? 제목이 아주 끌린다. 그래서 보게된 수학이 사랑한 예술.
1991년 8월의 어느날 가장 통찰력이 뛰어난 수학자로 꼽히는 아인슈타인과 비교되던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는 자신이 쓴 수학 원고 2만 5,000페이지를 불사르고 아무말도 없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종적을 감춘다. 그후 10년이 넘도록 그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고 가족과도 그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로텐디크는 누구인가?
그가 사라지기전 현대 수학의 중요한 분야들을 완전히 재정립하였고 니콜라 부르바키의 연구에도 깊이 관여하였는데 그가 잠적한 이유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수학자인 니콜라 부르바키 때문이 아닌지 추측하기도 한단다. 그럼 니콜라 부르바키는 또 누구인가? 부르바키는 1930년대에부터 20세기 말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수학에 대한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이를 통해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마저 바꾸어 놓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부르바키와 그로텐스크는 어떤 관계이고 니콜라 부르바키는 누구인가?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는 1928년에 태어났고 부모가 둘다 적극적인 열혈 무정부주의자 였고 아버지는 무정부운동을 하다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죽게되고 알렉상드르는 엄마와 함께 어린 시절을 수용소에서 고통스럽게 보냈는데 한편으로는 고독한 시간은 다른 사람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도 생각을 만들고 개념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을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 그 밖에 수용소에서의 시간은 가혹하고 적대적인 환경이었으며 때로는 다른 재소자들과 근처 마을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은 그로텐디크 모자를 독일계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의 피해자가 아닌 적이라고 여겼다. 사람들의 삶은 흑과 백으로 간단하게 나뉘는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같이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안에서도 자신들과 어느 부분 다르다는 이유로 갈리니 말이다. 알렉상드르는 그러한 끔찍한 현실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투사로 변해갔고 그 때 익힌 권투 기술을 평생토록 연마했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 히틀러를 죽이겠다고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붙잡히기도 했을정도로 엄청난 분노를 내재하고 있었다. 수용소에서 아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혼자만 멀리 떨어진 마을의 고등학교를 다녔고 자신이 우수하긴 하지만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 때의 그는 흥미를 느끼는 것에는 집중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버릇이 생겼으며 그 버릇이 평생을 갔다고 한다. 선생님이 뭐라고 자신을 생각하든 그것에 게의치 않고 흥미를 느끼는 주제가 있으면 몇 시간이고 매달렸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관심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이건 거의 천재들이 드러내는 습성중에 하나인듯하다. 보통 천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하고 싶은 한가지에만 집중하고 그 밖에 다른 것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듯 하다. 아인슈타인도 그렇고 에디슨도 그렇고 그러한 특징들이 비슷하다. 수용소 근처에 고등학교를 다니는 알렉상드르는 나치가 올때마다 숲으로 도망쳐 먹을 것도 없이 숨어 지낸적이 많은 와중에도 수학에 깊은 열정을 보였으며 뛰어난 수준이었다.
그 때의 프랑스 수학은 그로텐스크 모자처럼 양차 대전 사이에 잠깐 부활했다가 2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치명타를 입었고 오직 살아남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었다. 그리고 부르바키에 관련된 많은 수학자들의 이야기들이 줄을 잇고 있다. 어떤 수학자들이 그런 모임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한 사람 한사람에 대한 이야기들도 하고 있다.
부르바키의 가장 중심 역활을 하게 된 앙드레 베유는 다섯살때부터 수학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가정환경은 부유하고 지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으며 전쟁때 타자로 논문을 치는 것을 보고 수상히 여겨 스파이로 몰리게 되면서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려하지만 어린 자식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되고 결국엔 붙잡히게 된다. 베유는 어린시절 자신을 가르치던 수학교사 콜랭에게서 수학에서 엄밀성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배우게 된다. 앙드레 베유는 회고록에서 수학은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을 통해 나아가는 학문이라는 것을 (콜랭 선생이) 확실하게 보여주었다."고 썼다. 베유는 이를 바탕으로 20세기 전체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수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수학은 부정확하고 모호한 방식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베유는 수학에서 명료성, 정확성, 엄밀성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되었다. 베유는 수학 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 공부에도 몰두했다. [바가다드 기타]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출판된 [일리아스], [플라톤]등의 고서들도 즐겨 사서 보곤 했다. 평생동안 [바가다드기타]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고 예술적 줄거움과 정신적 지침을 얻었다고 한다.
예술의 즐거움을 아는 앙리 베유는 모든 문명의 가치는 오직 과학과 예술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프랑스 유학자 앙리 푸엥카레처럼 복잡한 현대 수학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가면서도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와 로마의 시인들, 음악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학과 예술을 사랑한 베유는 뛰어난 수학자들을 모아 부르바키라는 가공의 인물을 탄생시키고 마침내 수재인그로텐디크와 같이 모임을 이끌어가지만 항상 우월한 자신의 실력이 중심에 있던 수학자들의 모임에서 나중에 나타난 그로텐디크를 항상 경계한다. 결국엔 그로텐디크도 수학자들 모임에서의 수학적인 더 나은 결과를 원하지만 그들은 이미 이루어놓은 부르바키를 다시 일구기에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앙리 역시 전쟁통에 프랑스를 떠나게 되면서 자신의 이기적인 영리를 더 추구하게 되면서 부르바키라는 거대한 존재는 빛을 잃어가게된다.
요즘 이런 책 즉 과학과 사회, 수학과 예술 등이 접목되는 책들을 볼때마다 정말 모든 학문은 예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책에 보면 알겠지만 수학과 모든 문학, 예술등의 모든 학문을 한 맥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수많은 학자들은 그들간의 교류를 끊임없이 하고 그들의 인간적인 교류와 대화는 구조주의라는 실존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양식이라는 배에 같이 타게된다. 이런 교류들이 신기하면서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구조주의의 시작은 수학이 먼저가 아니라 언어학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그리고나서 수학이 그러한 구조주의를 더 확립시켜나갔고 그리고 다시 모든 학문과 예술에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마치 세상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삶으로 인해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로텐디크의 삶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삶이 워낙에 그렇다는 것을 약자에게 불리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우호적인 세상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나게 한다. 부모가 두분 모두 반정부주의자였고 그로텐디크 역시 반정부주의적인 아니 반정부주의적이라기보다는 악을 미워하는 그 마음이 한없이 요즘의 정치적인 상황에서도 열심히 저항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오버랩되면서 반갑기도 하다. 전쟁과 수용소안에서의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그의 안에서 더욱더 악을 미워하게 하였다는 말이 참 가슴아프게 울린다. 만약 그런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면 그로텐디크는 계속 수학자로서 명성을 날리며 살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