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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화가 김홍도 - 붓으로 세상을 흔들다
이충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혹시 접미사 -장이와 -쟁이의 차이점을 아는가? 접미사 -장이와 -쟁이는 글자의 획수는 한 획 차이이지만 두 접미사 간의 의미는 꽤 다르다. 표준국어사전에 따르면 특정 기술이 있는 장인들을 칭할 때는 접미사 -장이를 붙이고 특정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한테는 접미사 -쟁이를 붙인다. 이를 볼 때 특정 기술을 가진 장인으로서 인정받은 것들은 -장이가 붙고 그런 장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쟁이가 붙는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장이가 붙는 것은 대장장이, 옹기장이, 땜장이, 양복장이 등으로 불리우는 반면 현재는 ‘화가‘라고 불리우는 ‘그림쟁이‘, ‘환쟁이‘는 접미사 -장이 대신 -쟁이가 붙는다. 이는 당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다소 천하게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단원 김홍도의 전기, <천년의 화가 김홍도>에서도 ‘그림쟁이‘, ‘환쟁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 그의 어린시절 장면에서 단원 김홍도가 서당에서 글공부나 활쏘기 연습은 하지 않은채 다른 아이들이 하는 모습을 그림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 훈장은 김홍도에게 너의 아버지는 무관이 되기를 바라는데 너는 환쟁이가 되고 싶은 것이냐고 야단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를 볼 때 어쩌면 김홍도가 스승 강세황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단원 김홍도와 그의 그림들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진다.
조선후기 풍속화가로 알고 있는 단원 김홍도는 스승 강세황을 만나 아버지의 뜻대로 무관이 되지도 않고 천한 환쟁이가 되지도 않았다. 그만큼 단원 김홍도의 그림인생에서 스승 강세황은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자 지금의 단원 김홍도를 있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단원 김홍도와 스승 강세황의 일화에서 이러한 사실을 짐작해볼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지금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를 있게 한 속화에 대한 김홍도와 스승 강세황의 대화 장면이다. 이처럼 스승 강세황은 김홍도의 그림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될 멘토이자 친구이며 김홍도의 그림을 알아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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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스승님은 속화가 정녕 속된 그림이라 생각하십니까?˝
제자가 던진 느닷없는 질문에 강세황은 김홍도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김홍도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사능아, 너는 사람의 삶이 속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소인 평범한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나름의 도와 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소재가 다를 뿐 그림을 그리는 자의 정신은 매한가지다. 세상에 속된 그림과 속되지 않은 그림이 있는 게 아니라 속된 화가와 속되지 않은 화가가 있을 따름이다.˝
단원 김홍도는 우리에게 조선시대 풍속화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조선시대 도화원의 화원으로서 나라의 녹봉을 받고 일한 관리이자 영조, 정조, 순조에 이르는 세 왕의 얼굴을 그린 어용화사이다. 3명의 왕을 모셨던 화원이라는 것을 볼 때 굉장히 화원으로서 잘 나간 것만 같지만 사실 3번의 시험에서 3번다 낙제를 해 삼책불통이라는 치욕을 겪기도하고고 녹봉을 받지 못하는 이름뿐인 관리였던 적도 있었으며 정조에게 사랑받는 화원이었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무조건적인 정조의 사랑을 받으며 잘 나가지도 않았다. 단원 김홍도는 그럼에도 현재의 그가 있을 수 있었던 건 그림을 사랑하고 그림으로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단원 김홍도가 한 말 중에 조선은 그림을 그리기에 좋은 세상은 아니라고. 하지만 단원 김홍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렸으며 양반들이 천하다고 여기던 서민들의 일상, 씨름하고, 베를 짜고, 빨래를 하는 등 서민들의 삶을 단순히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애환들을 그림에 담았다. 단원 김홍도, 그저 그를 유유자적한 삶의 화가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어린시절 그리고 그의 고난과 역경, 마지막등을 하나의 소설 아니 영화처럼 펼쳐지는 순간들에 그림에 미처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은 전기라 쓰고 소설이라 읽는다. 단원 김홍도의 전기이지만 대화체로 구성해 소설처럼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단원 김홍도의 생애 전반적인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의 그림을 넘어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