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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작품 선집 ㅣ 대한민국 스토리DNA 23
백석 지음 / 새움 / 2018년 10월
평점 :
<흰 바람벽이 있어>
우리나라의 가장 순수하고 시대를 초월한 감수성이 있던 시인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들을 지은 청년 시인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윤동주와 백석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시에 익숙하지않았던 그 시절부터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윤동주시인과 백석시인. 지금은 백석시인의 시들을 교과서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고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시이지만 과거에만 해도 북으로 월남한 작가이기때문에 백석시인의 시들은 금기시됬었다. 그래서 백석의 시인은 윤동주시인에 비하면 남한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지는 못했지만 백석시인 시들은 윤동주시인만큼 시대를 초월한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백석은 슬픔을 노래할 줄 아는 시인이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혼이었다. 얼마전 알쓸신잡3에서 유시민씨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순간들의 감정들에 민감한 사람들이고 감수성이 정말 풍부한 사람들이 시인이 된다고... 나는 백석의 시들을 읽으면서 정말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슬픔을 슬프다고 노래할 줄 아는 시인. 백석의 시들을 읽으면서 깊게 느꼈다. 비록 시 평론가는 아니라서 적확한 시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어렵고 학문적인 시로 평가될 수 없는 시를 쓴 시인이며 시를 읽는 이들에게 자신의 시를 쓴 감성들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시인이 백석이다.
<흰 바람벽이 있어>는 슬픔을 노래할 줄 아는 시인 백석의 시집 중 유일하게 남에서 출간 한 시집 『사슴 』의 모든 작품을 수록하였으며 시인 백석의 창작시와 수필 및 서간, 북에서 발표한 번역시들을 발굴, 선별하여 발표된 순으로 수록하였다. 사실 백석 시인의 시집인 『사슴 』은 읽어본 적 있는데 시인 백석이 쓴 수필 및 서간 번역시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다. 이 시집은 총 3파트로 나눠져 시, 번역시, 수필 및 서간순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해방 전후와 그 이전 시들로 나눠 순서대로 실려있으며 교과서나 일반 시집에서 잘 볼 수 없었던 백석시인의 번역시들과 수필 및 서간들은 처음 알게된 것이라 너무 신기하고 백석 시인의 시들이 가진 감성적인 측면 뿐만아니라 북한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푸시킨, 이사코프스키, 레르몬 토프, 굴리아 등의 시와 시모노프, 솔로호프 등의 러시아 문인들의 작품을 창작 대신 번역 활동을 했던 백석 시인의 삶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백석의 시들 중에 <여승>이라는 시를 가장 좋아하는데 <여승>의 시가 주는 깊이있는 슬픔은 정말 탁월하다고 느끼기때문이다. <여승>뿐만아니라 <여우난골족>, <흰 바람벽이 있어>, <모닥불>등등이 정말 유명하고 좋아하는 시들인데 이 시집에 모두 담겨있어 정말 좋았다. 백석의 시의 특징 중 하나인 향토적인 분위기는 시인의 시를 따뜻했던 그 시절에 그리움을 느끼게한다. 또한 많은 향토적인 정서를 담은 시인들이 있었지만 백석만큼 슬픔을 잘 노래한 시인은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그가 시를 쓴 시대가 역사적으로 어둡고 힘든 시기였고 해방 이후에도 북한의 사회주의 억압 속에 있었기때문에 시인 백석이 마주하고 그려내는 삶의 순간들은 아늑한 것 같다가도 아득하고 따뜻한 것 같다가도 쓸쓸하고 서럽다. 시를 읽는 이들까지 그의 슬픔에 전염된 것처럼 어느순간 세차게 불어오는 세찬 겨울바라보다는 어느순간 살갗으로 느끼게하는 그리우면서도 서러운 그런 슬픔에 저며들게한다. 사람은 세상이라는 많은 순간들을 만나지만 그 속에서 슬프지 않은 것 같은 것에도 슬퍼할 줄 알았던 시인 백석. 그를 추억하며 읽을 수 있었던 시집 <흰 바람벽이 있어>가 많은 분들의 마음 속에 기억되기를 바란다.
여승(女僧)
— 백 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