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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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산문집 <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이 출간되었다. 꽃을 피우고 오래 피어있다는 의미가 담겨있고, 꽃말은 '인연'을 뜻한다.

어릴 때 아빠 책꽂이에서 눈에 띄었던 책 제목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 제목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지금은 최신 개정판으로 내 책꽂이에 자리한다.

지난해 박수근 화가의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시교육을 진행하며 개인적으로 내게 더 특별한 인연의 작가가 되었다. 다소 늦은 나이에 등단을 하게 되었던 작품 속 인연의 주인공 또한

작가의 시선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다.



동시대의 스펙터클한 장르와 미려한 젊은 작가의 문장을 마주하다가 연배가 있는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감동은 분명 온도차가 있다. 세월과 경륜의 흔적에 대한 공감대가 높아지는 나도 또한 이제는 옛날 사람의 연배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그럴 테지만. 나이가 드는 것은 그런 자연의 섭리를 알아가고 그것에 순응해가는 과정임을 알아가는 것.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p22 박완서_호미 >


4개의 단락으로 작가의 감회는 정원을 가꾸듯 일상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소소한 행복을,삶을 살아내게 했던 희망을 잃지 않았던 태도를, 느지막이 갖게 된 종교에 대한 감회를,

소중한 딸에게 남기는 엄마의 진심 어린 기도 같은 글들을 담고 있다. 나도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고 보니 작가의 소회 가운데 출가한 딸이 '몸과 신경을 쪼개어' 살아가야 하는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걱정하는 그 한 문장만으로도 찡해진다.

그 느낌을 너무나도 잘 아니까. 이런 문장을 읽으며 나 또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가장 치유가 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우가 바로 이렇게 누군가 마음을 알아주는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 문학의 역할, 문장의 역할이 커지는 순간이다.



어릴 때는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완전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삶은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인정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종종 마음이 상한다. 얼마 전 아빠가 잘 키워낸 지인의 아이들 얘기를 하셨는데 나는 무척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는 노년의 부모님에게 자랑하고픈 훌륭한 어른이 못된 것 같았던 자괴감이었겠으나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은 진행 중이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래도 돌아보면

후회가 덜 한 삶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하곤 한다.

호미로 땅을 일구는 일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다독임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그렇게 자연스럽게 때로는 박차를 가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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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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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많은 굴곡을 겪어낸 선배로, 또 엄마의 마음으로 조곤조곤 담긴 감회가 따뜻하고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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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 '아무 몸'으로 살아갈 권리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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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해, 존재에 대해 통찰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니 요즘 내가 해설 중인 전시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디지털 세상의 가시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떠올랐다.

위계질서나 차별적인 시선에서 오염 데이터로 분리되어 존재가치가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실종자, 국적 불명자 그리고 기타 여러 존재들 가운데 50세 이상의 여성이 포함되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곤 씁쓸해졌다. 물론 시사 코미디의 한 코너를 패러디한 다소 과장된 작품 속 이야기지만 무려 17만 명의 존재가치는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사실.

우리의 몸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소모되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장애와 비장애로 이분법적 시선을 갖는가 하면 내실보다 외양에 치중하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안타까운 순간들이 종종 발생한다.


물리적인 운동 참 못하고, 싫어하는데 언젠가부터 운동의 필요성과 효과를 스스로 깨닫는 계기도 있었고 책 속 내용 중 퍼스널 트레이닝 이야기를 하며 근육이 무너지는 상태의 표현을

비닐봉지에 체지방이 담긴 풍선 같은 상태라는 말에 웃기면서 괜히 뜨끔한 마음이 들기도했다. 가끔 공원에 나가보면 왜 그렇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이제는 좀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씁쓸한 현실. 건강은 역시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라는 말 또한 진리다.

몸에서 확장되어 생의 전반, 그리고 우리 주변의 다양한 존재들과 그들의 반려동물까지도 아우르는 책을 통해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닌, 누군가의 체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참 많은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게 되었던 책이었다. 전철에서 읽다가 사소한 문장에 울컥해 난감했던 순간도, 복잡한 차 안에서 유난히 까칠했던 사람들을 마주하며 느껴졌던 씁쓸함도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되돌아보게 했던 시간이었다.

좀 더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까칠하고 민감한 사람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더욱 그렇다. 기억을 잃은 뒤에도 그 태도가 드러날 만큼 자기 삶 속에 깊이 뿌리박히는 태도를 연습한다는 책 속 문장에 그래서 더 공감했다.

늘 에너지 넘칠 것 같았던 몸이 어느새 중년으로 접어들며 피로감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스스로의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기. 이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일이다.

건강검진을 하듯, 몸의 긴장과 이완의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부쩍 하게 되는 요즘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짠하지'만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들은 그마저도 극복할

힘이 된다. 첨단 기술도 할 수 없는 바로 그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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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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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에 어떤 숫자를 더하면 영은 사라지고 그 숫자만 남고, 영에 어떤 숫자를 곱하면 그 숫자는

영으로 바뀌고, 혼자서는 영을 벗어날 수 없고, 다른 숫자에 기댈 때 우주의 단위만큼 거대해

질 수 있는 숫자 "0"



아직 1이 되지 못한 세상의 모든 0이 겨우 1이 되는 과정을 촘촘한 단위로 나누었다.

원근법이 발견되고 세상의 혁신이 시작되었다면, 지금은 위에서 아래를 향하는 전지적 시점

이라고 해야 하나. 하늘에서 내려다 본 까마득한 지구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생인류.

첨단의 시대에서 나노입자만큼이나 존재감이 세분화되는 시대의 존재들.

존재감을 드러내고,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 사람의 인생 여정이 되는 건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내는 숫자 0의 여정

자릿값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해 나가는 숫자 0의 여정.

동그란 지구 위에서 동그란 숫자 0처럼 우리도 동그랗고 유연하게!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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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 산만함의 시대, 우리의 뇌가 8초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
리사 이오띠 지음, 이소영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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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은 놀랍게도 인간이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평균 8초에 지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다. 이미 우리는 운전 중 신호 대기에서도

휴대폰의 창을 열곤 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승용차 자동센서는 앞차가 출발했음을 알리는

신호음을 장착하는 친절을 제공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노모 포비아" 노모바일의 공포를 말한다.

SNS의 충성도 높은 고객수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합친 종교인들의 수치를 능가했다는

사실만 봐도 전 지구적 디지털 의존도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과 15~20년 사이의 인터넷의 발전과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간의 자연적 한계는 디지털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사라졌고, 추론을 하기보다 검색엔진으로 향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이성의 행사보다 즉답의 생활화가 익숙한 세대로 휴대폰을 심장처럼 장착하는 삶으로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사고하는 뇌에서, 저장하는 디지털 기계에 의존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 가족들의 휴대폰 번호

조차 암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넘쳐나는 정보로 스크롤을 내리는 속도가 빨라지고, 놓치는 정보들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FOMO _fear of missing out이라는 용어마저 등장했다.

심지어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의 자료들을 기반으로 광고창을 추천받고, 거대해지는

기가바이트의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곤 한다. 전 세계 인구보다 사용 중인 심 카드가 더 많

아진 세상이라는 놀라운 사실. '팬텀 진동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스마트폰의 진동이 환청처럼

느껴지는 현상은 디지털 사용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불안심리 중 하나이다.

 

 

 

오늘날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8초의 시간은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라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온라인에서 초당 2, .800만 권에 해당하는 정보가 생산된다는 사실이다.

만성적으로 산만해진 세상에서 멀티태스킹으로 포장되었던 산만함에 속아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연구결과 밝혀졌다. 결과적으로는 합리적으로 산만함을 포장하는 단어에 불과했다.

오히려 도파민 중독으로 불안과 만족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었다는 사실.

스마트폰은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주의력이 분산된다고 하니 디지털 디톡스가 시급한 시대다.

 

 

우리가 일부 신경회로의 사용을 포기하면 해당 회로를 잃게 된다고 한다. 뇌가 새로운 신경

경로로 재조정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 뇌의 진화는 세대를 거치며

점점 그 기능을 상실해갈 가능성마저 높아진다. 스마트폰의 지속적인 사용은 작업기억과

장기기억 양쪽 모두에 피해를 준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의 스마트폰 알람을 시작으로, 배차간격이 명확한 버스 도착정보까지,

운전 중 아는 길도 내비게이션 경로를 확인하고, 잠드는 순간까지 디지털 의존도가 너무나도

높은 시대를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 책이다.

이 외에도 SNS의 좋아요 버튼의 함정까지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심각성을 스스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 편리함과 실용성이 높은 반면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을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 디톡스, 디지털 안식일, 간헐적 디지털 단식, 디지털 금욕의 날.

이런 용어들이 이렇게도 친근하고 익숙한 시대가 되었나 새삼스럽게 돌아본 시간이다.

강박을 예의로 착각하는 디지털 작동 방식에 대해 정보의 파도가 몰아치는 세상에서

중심 잡기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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