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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출간 소식부터 반가웠던 양정무님의 미술 에세이
✔고전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미술은 문명의 표정이 될 수 있는가?
˗ˋˏ 미술 ˎˊ˗이 신비주의의 베일에 가려져 고상한 취미나 교양으로 포장되는 현실을 넘어 인류사를 담은
생생한 실체라는 인식의 변화를 담고자 했다고 출간 의도를 소개한다.
4개의 챕터로 나뉘어
▶️벗은 몸의 신화
▶️웃는 표정
▶️근대 박물관 탄생의 역사
▶️팬데믹 속 미술의 역할 등을 다룬다.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가장 포괄적인 시선으로 미술과 일상의 연관관계를 이렇게 조목조목 연결해놓은
책이라니... 읽으면서 저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예술에 대한 그 인과관계의 연결고리들을
이렇게 명확하게 정리하는 책이라니! 책 속에서 루브르, 피렌체의 장면들에서는 추억여행이 더해져
시대와 공간을 거스른 미술여행 같은 시간이었다.

고전미술이 우리의 일상에 생각보다 가까이 있음을 사례별로 제시하고, 고전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벨베데레의 아폴로>부터 서양문명의 요람이라고 알려진 그리스의 예술의 영향과 변화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을 비롯해 문화적인 생경함을 느꼈던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분위기 등.
적절한 자료 사진과 비교 등을 통해 이해와 재미가 더해졌다. 김복진의 조각에 대한 재발견까지.
개구리에서 아폴로까지 아름다움의 등급화를 표현한 스위스 학자 바바터의 인간 얼굴의 24단계가 주는
미에 대한 기준도 미술사와 미학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독자에게 어느 단계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
<문명의 표정>을 다룬 두 번째 파트에서는 얼마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열렸던 영국 국립초상화
박물관을 소개하며 웃음을 금기시했던 그리스 고전기 문명의 표정을 비롯해 시대 상황에 따라 그 이유
들을 분석한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금욕주의로 인해 시민들의 웃음이 억눌러져야 했고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며 회화에 웃는 얼굴이 빈번히 드러나는 이유들을 작품들과 함께 소개한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화가 개인을 넘어 17세기 네덜란드 사회를 대표하는 시대상으로도 해석이 된다.
그림으로 그렸던 초상화들은 1839년 프랑스의 미술가이자 사진가인 루이다케르가 새로운 사진술을
도입하며 사진 매체가 빠른 속도로 대중들에게 전파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후세에 자신의 얼굴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웃음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소개되고 있는데 진심으로 나타나는 미소와 표정을
'뒤센 미소'라고 하는 반면 미소와 감정 없이 입꼬리만 올리는 가짜 미소는 과거 팬암 항공사의 승무원들
의 감정노동에서 비롯되어 '팬암 미소'라고 부른단다.
박물관. 미술관에 대한 공간의 기원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건과 인과관계를 돌아보는 과정도 새로웠다.
유럽여행에서 루브르와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바티칸 등 직접 보고 왔던 기억을 돌아보아도 엄청난
유물이나 작품들의 출처는 놀랍게도 약탈의 산물이었음을 당시에도 알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정통과 계보를 따라 공공미술관으로서의 출발점을 되짚어보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거슬러보는 통찰적
시선을 제시한다. 지배층의 전유물에서 시민들의 공공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 그리 오래전이 아니다.
참담한 정복전쟁 속에서 부당한 미술품 갈취가 빈번했던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 의궤도 몇 년 전
영구대여 형식으로 우리나라로 돌아온 유물 중 하나였다.
문화적 전통과 위엄을 보여주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과거의 전쟁이나 전염병이
불러온 변화들의 시점과 같은 기로에 선 지금의 미술관의 온라인화 등 빠른 시간에 예고 없이 이루어진
현재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인간 감정의 다면성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위아래를 뒤집으면 마주하는 웃는 얼굴이 울상으로 변하는
신기한 작품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풍자화.,1770~1800년대>이기도 한 작품인데 예술가의 탁월한
표현방식에 또 한번 감탄했다.

지금 현재의 팬데믹이 아니었으면 유희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을 흑사병 시대의 새 부리 형 가면을 쓴
의사의 모습이나, 흑사병이 피렌체를 강타한 시기에 시골로 피난을 간 젊은 남녀 10명이 2주간 머물며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들을 묶은 것이 중세문학을 대표하는 데카메론의 탄생배경
이다. 데카메론은 그리스어로 '10일'이라는 뜻으로 십일 야화라고 해석이 된다.
이 시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팬데믹과 관련해 작업실에 고립된 시간이 많아져서 작업에 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말들이 종종 들리곤 하는 지금의 모습들과도 일정 부분 닮아있다.
저자는 결국 르네상스란 흑사병이라는 공포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낸 도전적인 역사였고,
스페인 독감과 1차 세계대전 또한 '다다'와 '초현실주의'의 세계로 이어졌음을 상기시킨다.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 실제로 혁신과도 같은 변화들과 또 다른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앞에 직면해있다. 예술은 그 과정에서 현실이 반영된 일상적 번민과 희망이 담긴 결과물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인간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학문적인
관점이 아닌 인간 중심의 우리 삶의 역사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제시해주었고, 확실한 관점의 기준을
세워준 것 같아서 무척 유익했고, 또 다른 시선을 갖게 해주었다.
마술 같은 미술"이라는 저자의 한 문장이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너무나도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