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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평점 :

내가 미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장 즐겁게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이 가능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상관없이 시각예술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이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한
적이 있을 만큼 예술은 우리의 삶 속 깊숙이 이미 들어와 있다.
다양한 필터를 통해 그림 이야기, 예술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철학도 미술만큼이나 어려운 학문이라기
보다 일상의 매 순간 우리는 철학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창한 학문적인 이론만 철학이 아니다. 명작이 누구에게나 다르게 다가서는 것처럼.
한겨레 출판사의 그림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필터를 장착하고 있어서 늘 기대가 된다.
지난번 역사와 그림 이야기를 접목한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 이어 이번에는 철학이라는 필터
를 장착하고 그림 이야기를 다룬다.

첫 번째 그림부터 흥미진진한 철학자의 시선으로 익숙한 그림의 새로운 시선을 발견했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었던 이유가 충분했다! 고 할 만큼 너무 의외의 시선에 감탄했다.
우리는 종종 아는 것만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거기에 더해진 철학자 니체의 촌철살인 "신은 죽었다"에 대한 아름다운 해석
신은 죽었으므로 신의 위치를 향하여 스스로 드높이는 삶을 살라. 영원회귀의 깨달음 속에서도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춤추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다."라는 저자의 해석은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생각!!
일상의 흔한 메이슨 자를 작품으로 담고, 투명한 유리그릇에 투영한 철학적인 사유들.
쓸모없음마저 종종 쓸모로 전환이 되고,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삶을 인정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삶이 될 거라는 유연함을 소환한다. 세상에는 완벽한 정의보다 때로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각박해지지 않는 삶을 위해 학문도, 철학도, 예술도, 돈도 고루 필요한 삶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파울 클레는 화가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시인이기도 하다. 그간 많은 예술작품에
<무제>라는 제목이 예술에 대해 막연하고 그럴듯한 제목으로 다가왔다면 클레는 그 애매모호한
"제목 없음"같은 표제를 버리고 자신의 작품에 꼭 맞는 이름을 세례에 비유하여 정성스럽게 붙였다.
저자는 예술작품을 모티브로 철학적 사유를 탁월하게 비유했다.
쓸모없음에 대한 정의는 바로 눈앞의 쓸모만을 왜곡되게 바라보기 쉬우나 지금 당장 쓸모가 온전히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기 어렵다는 철학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예술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색과 형태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기대하지만, 막상
의외의 장면이나 혐오스러움을 발견하고 재미를 느끼거나 당황하거나 했던 경험들이 종종 있다.
지오토의 작품속 주먹을 휘두르는 고정관념과는 다른 예수님의 모습이 묘사된 작품처럼 말이다.
무방비적으로 감상하는 작품들에서 입체적인 상호작용은 예술을 통한 철학적 사유가 실현되는 가장
일상적인 순간이고, 가장 효율적인 예술사 용법이 아닐까.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인용해 저자는 금세기 위대한 발견은 물리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사람이 생각을 바꿀 때 그 사람 인생 전체가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이라고 했다.
인간은 어느 한가지 모습으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존재로 말랑하게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진리를 우리는 알면서도 종종 잊고 사는 또한 망각의 존재이기도 하다.
현대사회에서 테크놀로지의 영향 이전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고 실제 군인으로 참전하며 목격했던
여러 단상과 조국 독일을 나치의 광기로 몰고 간 정치적 망령과 관련된 예리한 통찰들을 작품에 담았던
파울 클레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시선을 통해 한 예술가의 작업세계를 새롭게 조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막연하게 유쾌한 추상화가로만 알았던 그의 작품에 대한 사유는 철학과 더불어 조금 더 민감해졌다.
우리는 종종 삶과 예술과 철학을 모두 별개의 장르로 규정짓는 오류를 범하지만 삶 그 자체에 예술과
철학은 늘 함께 공존하며 우리를 사유하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삶이 유연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요령은 예술이나 철학을 일상에서 향유하는 일이다.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와 함께 그림과 사색의 폭을 넓히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