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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영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허지웅의 에세이.
근간에 건강상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진솔하게 담았다.
도입부의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 삶의 균형잡기부터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영화와 책, 타인과의 관계
속 자신의 경험담 등을 차분하게 풀어내는 과정에 저자의 필력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종종 타인의 삶에 흔들리는 우리에게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는 말로
운을 뗀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가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혀 불가능한 가설이지만, 주마등처럼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가다 보면 많은 이들은 지금 현재에 머물
겠다는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젊음과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 시간들을 돌아보면 그때도
나름대로의 애환이 있었고, 질풍노도의 시간이었음을 떠올리는 탓일 게다.
미래가 희망적인 것은 성공에 대한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일 텐데, 이미 경험했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번민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선뜻 그 시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삶은 경험을 축적해 쌓아가는 과정이다. 이기는 경험을 쌓으면 패배해도 주저앉아 비관하지 않고,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려움의 시간을 겪었던 작가는 타인과의 소통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내 삶을 대표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장면을 꼽아보는 것으로 작가는 삶의 장면들을 떠올리는 과정을 소개하기도 한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사람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들. 삶은 계속해서 생각하고, 의심하고, 고민하는 태도
만이 오직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꿔야 하는 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들을 보는 눈을 갖게 한다는 조언.
행복한 삶이란 거창한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결심들이 동기가 되어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증명해 가는 어떤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작가는 여러 편의 문학작품과, 영화의 장면들을 소환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에세이라고 하는
장르가 조금만 선을 넘으면 너무 개인의 일기장 같은 느낌이 들어 김이 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드라이하다 느낄 만큼 작가는 감정의 선을 긋고 객관적인 장면과 상황들을 담아 자신의 생각들을
써 내려간다. 힘들고 어려운 것들과 마주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타협보다 정면으로
승부하는 저자의 태도가 느껴지기도 했다.
선의가 이끌 수도 있는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도 글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선의가 꼭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종종 일상에서 경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삶의 여러 순간에 우리는 가면을 쓴다.(때로는 가면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가면 안의 내가 탄탄하지 못하면 가면을 쓰는 것은 무의미하다. 타인을 속이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피해 의식에 점령당해 객관성을 잃는 순간 마음
에는 파도가 친다. 삶은 그런 순간의 연속이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시원한 바람을 타는 삶이기를 지향한다. 때로는 타인의 마음속 파도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이유다.
삶은 그리 거창하지 않고, 그리 길지도 않다. 매 순간을 즐길 수는 없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인 것은 확실하다. 간혹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순간이 올지라도.
유난히 어려움이 증폭되는 시간을 살고 있는 요즘. 누군가는 버티는 자가 이기는 시대라고도 한다.
부러지는 삶보다 휘어지는 삶이라도 버티고 견디는 이들이 결국 거친 바다에서 벗어나 육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아... 쓰다 보니 너무 치열해;; 쉽고 녹록한 삶은 없다는 심오한 결론을 또 한번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