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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쓸모 - 시대를 읽고 기회를 창조하는 32가지 통찰
강은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9월
평점 :

출간 예고부터 궁금하고 기대되었던 한 권의 책. 꾸준히 예술 관련 책들 읽고 있으나 같은 작품을
또 다르게 보는 관점의 글이 참 좋다. 그저 아름답다에서 벗어나, 예술은 참 많은 담론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더 즐겁고, 기존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들을 꺼내주는 책들이 그래서 또 좋다.
예술경영과 미적 사고, 무척 난해한듯하지만 생각보다 우리의 실생활에서 그 연관성들을 찾아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책에서는 화가뿐 아니라 디자이너, 건축가, 컬렉터, 후원자 등 40여 명의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다양한 의미들을 생각해 보게 한다.
최고의 예술은 고독한 천재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눈앞의 장애물을 계속 넘어서는 과정에서
탄생한다는 많은 사례들을 우리는 익히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소개에서 많이 경험하기도 했다.
많은 화가들은 저마다의 작업을 통해 오랜 시간 소통을 이어간다. 윌리엄 호가스는 그림을 스스로의 무대
라고 지칭하기도 했고, 알폰스 무하는 예술을 통해 대중의 감각을 깨우는 등의 소통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관람객들은 우연히 만난 하나의 예술작품에서 스탕달 증후군이라 불리는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책을 읽아보니 예술은 예술가에게도, 그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에게도 저마다의
쓸모를 가진다.
근간에 봤던 전시 중 Eko Nugroho (인도네시아) 누그로호는 벽화, 걸개그림, 조각, 퍼포먼스, 만화책
등의 다양한 영역의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이다. 대학 때부터 인도네시아 신화와 우화를 바탕으로 한
전통 인형극 Wayang의 표현기법을 인도네시아 직물 염색법인 바틱이나 자수와 같은 지역적 기법과
연결해 작가만의 독창적인 표현방식을 구축해왔다.
현대사회에서 전통자수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던 작은 마을의 전통자수를 살리기 위해 작가는 협업을
제안했고, 2007년부터 자수 회화를 제작해오고 있다. 기술에 밀려 소외되고 무가치해진 수공업자들에게
예술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기술이 예술 생산에 활용되는 계기를 통해 예술과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하는 그의 작품이 더 빛나는 이유다.
많은 화가들이 작품은 때로는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되어 전해지고, 캐리커처의 달인으로 그림의
시작을 했던 모네는 스승 외젠부댕과의 만남으로 화가로서의 정식 출발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던 고갱, 그림 속에서 음악의 선율이 들릴 것 같은
칸딘스키는 영혼이 여러 개의 선율을 가진 피아노라면 색은 피아노의 건반이고, 예술가는 인간의 영혼에
진동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고도 했다.
예술가나 작품에 대한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시대의 흐름에 따르기 보다
각각의 예술가들이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 한계를 극복하고 시도하고자 했던 태도와 작업
들을 삶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조명하는 과정이 예술과 삶이라는 구분에서 벗어나 삶의 또 다른 한 방식
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와 여전히 소통 중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던 인물들 중에는 예술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메디치 가문의 행보는 여전히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데 애초에 왕이나 귀족 가문도 아니었고 당시에 그리 평판도 좋지 않았던 금융업
을 가업으로 하는 메디치가는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대신 도시를 위해 예술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피렌체를 르네상스로 꽃피운 도시로 만들었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s)를
실천하는 기업가의 롤모델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예술의 기원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관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하나의 기원을 담고, 기록의 방식에서 출발했던 예술의 기원으로 거슬러가다 보면 일상과 예술을 분리
하는것 조차도 모순이 될 수 있다. 시대를 따라 삶의 방식이 변해오듯, 예술의 표현방식에도 많은 변화
와 발전이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예술과 삶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예술의 쓸모에 대한 논의들과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예술가의 다양한 작업의 결과물을 통해 소통하는 경험들을 통해 끊임없는 무언의 대화가 이어져 갈 것을
기대한다.
예술은 반드시 그 가치를 알아보고 공유하는 사람, 그리고 사회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
예술과 예술가들,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예술을 통한 삶의 통찰과 예술의 쓸모를 일상 속에
적용해 본다.
"예술은 삶의 위대한 자극제다 "라고 했던 니체의 말에 공감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의 서두에서 소개된 한편의 영화 <뮤지엄 아워스> 감상하며 영상으로나마 빈 미술사 박물관으로의
여행을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