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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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은 1901년 3월 31일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1989년 2월 4일 여든 여덟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삶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한편에서 그는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함석헌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선을 향한 가장 치열한 싸움의 한 복판에서도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철학자였다. 그의 철학의 진정성은 바로 이처럼 그의 철학이 언제나 비극적 현실과의 치열한 대결의 소산이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철학의 가장 심오한 결실을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감히 단언하거니와, 만약 이 책이 없었더라면, 20세기 한국에 철학은 아무 것도 없었을 것이다.


철저히 무시당해온 이 책의 가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1932∼3년 ‘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1950년에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그 후 1961년 펴낸 셋째 판에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고 책이름이 바뀌었고, 1965년 펴낸 넷째 판에서 내용적으로 지금 우리가 보는 최종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가진 비할 나위 없는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참된 가치는 지금까지 철저히 무시당해왔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국의 철학계에서 한 번도 철학책으로서 대접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그것은 딜레탕트 역사학자가 쓴 정체가 모호한 종교서 정도로 치부되었을 뿐, 본래적인 의미의 철학적 저작이라고 인정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이 진정한 철학의 고전인 까닭은 그것의 주제가 자기인식이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감이 아닌 개념으로 자기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남의 초상화를 자기의 자화상이라 생각했던 가련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철학에서 우리의 자기상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제나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의 이념에 기대왔다. 그러나 그것은 한갓 이념일 뿐,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 속에서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우리의 철학계는 외래 이론의 홍수 속에서 자기망각의 늪에 빠져 있었다. 함석헌의 가치는 그가 이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소크라테스적 질문을 치열하게 던졌던 데 있다.

그런데 반성과 자기의식은 언제나 자기에 대한 회상으로 발생한다. 그런 한에서 한겨레의 자기인식은 역사의식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물음 속에서 대답되고, 이 물음은 다시 우리가 걸어온 역사를 통해서 대답될 수밖에 없다. 이 때 역사란 지나간 사실이 아니라 역사와 “지금과의 산 관련”을 의미한다. 그것이 함석헌이 말하는 뜻으로 본 역사이다.


“역사란 지금과의 산 관련”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경우 역사와 지금 사이에 어떠한 산 관련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를 긍정하기엔 우리의 역사가 너무도 비참한 고난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지나간 역사는 지금의 눈으로 볼 때 어떤 뜻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함석헌의 가치는 그가 우리 역사의 이런 모습을 얼버무리거나 미화하지 않고 도리어 철학이 대답하고 극복해야 할 궁극적 과제로서 제시했다는 데 있다. 우리 역사에 끝없이 널려 있는 아무런 뜻 없는 비참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 의미가 있는가. 아니라면 그렇게 단절되고 의미 없는 역사를 살아온 우리는 또 누구란 말인가.

함석헌은 고난의 의미를 말함으로써 이 물음에 대답하려 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서만 까닭의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 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르고 만다.” 고난은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함석헌은 이 깨달음 속에서 우리 역사의 뜻을 찾으려 했다.

오랫동안 철학은 빛을 향한 오름길이었다. 그러나 참된 빛은 가장 깊은 어둠으로부터 도래하는 법이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우리 민족이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있었던 시대에 우리에게 비친 한줄기 새로운 빛의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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