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의 제작시기보다 수세기 앞선 무덤이 중국의 진시황릉이다. 이 고분에는 벽화가 있는것은 아니지만 고구려 고분벽화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히 멘트합니다.( 완전히 발굴이 끝나면 상황이 달라질수도~)

진시황릉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은 드물것입니다.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에서도 관련 전시회가 있었고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묘의 부장품 들이 관심을 끌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원전 221년 진나라 왕 영정은 여섯나라를 쳐부수고 전국을 통일함으로써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 왕조의 황제가 되었답니다. 진시황은 즉위 후 함양에 대규모 궁실 공사를 일으킴과 동시에 자신의 능묘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 공사는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세상을 떠나고 2세가 즉위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섬서성 임동에 자리잡은 서산 최고봉의 북쪽 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진시황릉은 흙을 달구질해 바른 네모뿔 모양으로 높이 쌓은 지상의 봉분은 남북 길이 350M 동서길이 345M 높이가 47M에 이르는 거대한 묘입니다.< 중국사기>와 <>진시황본기>에 따르면 능묘 안에는 진주와 보석을 비롯해 모형 궁궐과 갖가지 장식품을 가득 넣었고 위에는 해, 달, 별 등의 천문도형을 아래에는 강, 내, 호수, 바다 같은 지리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강과 내에는 수은을 흐르게 하고 묘실 도굴과 파괴를 막기 위해 장인들로 하여금 자동 발사되는 활을 만들게 하여 문위에 설치했다고 합니다. 아직 묘의 발굴이 모두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과학적인 방법으로 묘실을 탐사한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묘실 안에는 확실히 수은이 저장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1970년대 고고학자들에 의해 일부 발굴된 병마용은 능묘 밖 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진흙으로 만든 인형인 도용이 수천건, 도마가 수백필, 전차가 수십대 도용이 손에쥔 무기 1만여점 등이 출토이었다고 합니다.

<진시황 본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매장이 끝나자 어던 사람이 말하기를 장인이 기계를 만들었고 함께 참여한 노예들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들의 숫자가 많아서 누설될 것이라 했다. 장중한 샹례를 마치고 보물들도 다 파묻히자 묘도의 중앙문을 폐쇄하고 바깥문을 내려 장인과 노예들을 모두 가두니 다시는 빠져 나오는 자가 없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진시황릉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무덤을 제작했던 장인들과 숱한 인부를 모두 묘실속에 가두어 죽여 버렸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70만며명의 인력을 동원해 세운 진시황릉의 비밀 역시 금세기 까지 땅속에 묻혀있었습니다. 

아직까지 고구려 고분속에는 산자를 매장했다는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역시 우리민족은 휴메니스트-

소수의 비밀을 위하여 힘없는 사람덜을 주기다니...무서운 중국사람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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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8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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