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래도 서재 하나 갖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블로그는 언제 다시 드나들게 될지 기약이 없다. 그럴만한 사정이 생겼다. 이제 여기 와서 놀아야겠다. 나름대로, 좋아하는 김점선 화가 그림도 걸고 메뉴도 약간 손 봤다.오랜만에 리뷰도 몇 개 써봤다. 리뷰를 쓰면서 책 얘기보다는 딴 얘기가 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요즘 내겐 '딴 짓'과 '딴 얘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고구마 냄새가 달큰하다. 주말 저녁이다.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고구마를 먹으며 고구마처럼 웃어야겠다. 이젠 그럴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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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구마를 먹으며 고구마처럼 웃어야겠다" 아 이 대목 참 좋아요. 근데 어떤 의미에요?

깐따삐야 2005-12-29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깨에 긴장 풀고 좀 덜 심각해지자는 의미로 썼던 것 같아요. 저 무렵 즈음의 저는 코메디 프로그램에서 누가 장난으로 맞는 것만 봐도 가슴이 아팠거든요. 한 가지 감정에 너무 몰입해 있을 땐 주변의 모든 것이 죄다 그렇게 보이잖아요. ^^

마늘빵 2005-12-29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에. 표현이 좋아요.
 
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전에 구독료도 안 내고 조선일보를 보던 때가 있었다.

그냥 집 앞에 놓아주고 갔다. 구독료 달란 소리는 한 번도 안하고.

고난이도의 상술인가?

어찌 되었든 글 읽는데 주인이 따로 있으랴 싶어 챙겨보곤 했는데 늘 빼놓지 않고 읽던 글이 장영희 교수님의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라는 칼럼이었다.

당시에 한창 영문학을 넘성거렸던 나는 영미문학 쪽으로는 건질만한 작가도, 눈여겨 볼 작품도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던 참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오만한 결론을 다 거두어 들인 것은 아니지만 장영희 교수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작품을 보는 나의 안목을 의심하면서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 먹곤 했다.

글 속에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일상 안에서 무심코 꺼질 수도 있는 반짝임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느리지 않게, 다정히 그러나 너무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문학이 주는 메시지와 삶 속에서 발견한 깨달음에 대하여 조곤조곤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문학이 곧 삶이 되고 삶이 곧 문학이 되는 어렵지 않은 경쾌한 체험, 비극 안에서도 희극을 보고 희극 안에서도 비극을 보는 유연하고 조화로운 시선, 그 밖에도 이 책의 장점은 많다.

우리를 불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큰 아픔을 사소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 상대가 누구였든 사람 하나 하나를 사소하게 바라보아선 안되는 생명에의 사랑.  

영미문학과의 다정한 산책로인 이 책을 따라서 잊고 지냈던 '좋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시원하게 호흡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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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남인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는 내내 느낀 것. 정신일도 하사불성이요.

간단히 말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였다.

처세라는 말을 무슨 거세라도 되는 것처럼 금기시 했던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니 이 책의 저자가 딱한 동생 쯤으로 여기는 이십대 여자의 본보기가 바로 나였다.

그래도 학교 다니던 시절엔 나쁘지 않았다. 싫은 사람 안 보려면 안 볼 수도 있으니까.

그. 러. 나.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찔끔 상처 받고 어느 날은 찔끔 울기도 하고 급기야 찔끔찔끔 쌓인 스트레스들이 모여 원한의 바다를 이룰 때 쯤이면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는 것은 나 자신이요, 원한의 대상인 아무개는 오롯이 멀쩡한 모습으로 이미지 up해서 살고 있더라는 찔끔한 이야기.

제각기 역할에 걸맞는 이미지를 입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언제까지 속을 다 내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벽히 감추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찔끔거리며 살 것이냐?

나 자신에게 종종 던지던 물음이다. 니 언제까지 찔끔댈낀데?

이 책이 인간사의 다양한 경우들, 각양각색인 사람과 상황들, 그 모든 것을 커버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처럼 겉으로 똑똑하고 당당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찔끔찔끔 곪아터지고 있던 여우의 탈을 쓴 곰처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가이드가 되리라 생각한다.

아, 영악한 동료 처녀들에겐 이 책을 권하지 마시길.

그녀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말하리라,

"속물근성을 합리화 시키는 책이에요.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뼛속까지 영악한 사람들은 부러 이 책을 읽을 필요도 없고, 읽고 나서도 이 책을 돈 주고 산 우리를 도리어 이상하게 볼 것이다.  

아, 깜찍한 그녀들. 타고나지 못했다면 노력해서라도 똑똑한 여성이 되어랏.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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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는 조잡했으나 내용은 실했다.

전적으로 내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별 하나 뺀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먼저 알게 된 로알드 달, 진정 이야기의 고수였다.

순진한 동심에서 삐뚜름한 해학까지 그가 아우르는 범위는 실로 광대했다.

난 소설이 세속의 이야기, 딱 그만큼이라고 생각하고 딱 그만큼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단편들은 잘 쓴 작품이다.

세속은 대개 평균적인 지성을 가지거나 혹은 그 이하인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실 평균 이상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도 먼 발치에서 감상하지 않고 가까이서 들이대면 역시나 어리석다.

작가 로알드 달은 온갖 시시껄렁한 어리석음들로 가득한 세상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맛 좀 보시라, 고 대접한다.

이야기 끝에서 뒤통수를 맞거든 놀라지 말고 역시 인간이란~ 하면서 킬킬 웃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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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늘 과거형이다. 결국 다시 말하는 것이다. 지나간 것을 다시 말하되, 소설답게 말하는 것이다. 내게 있어 지나간 것을 소설답게 말하고자 하는 욕구는 언제나 끈질겼다. 요즘 들어 손때가 타는 가죽 재질로 된 다이어리나 무릎 위에 가볍게 얹을 수 있는 빨간색 노트북을 가지고 싶다. 언제고 머물러서 방금 지나간 무언가를 놓치지 않고 활자로 남기고 싶다. 차곡차곡 모인 기억의 조각들을 가지고 언젠간 소설같은 모자이크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늘 그런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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