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uest poetry is the most feigning, and lovers are given to poetry.

 진정한 시일수록 거짓투성이야. 연인들은 시에 취하고 시에 맹세하지.

- 셰익스피어 / 당신이 좋으실대로 / 3막 3장,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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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long a time lies in one little word.

얼마나 오랜 시간이 작은 한 마디 말 속에 잠겨 있는가.

- 셰익스피어 / 리차드 2세 / 1막 3장,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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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호 中 - 리버피닉스

 

예전에 리버피닉스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새 이름인 줄 알았다. phoenix가 원래 이집트에 사는 불사조라는 뜻이 있으니 river phoenix. 얼마나 근사한 이름인가. 나중에 요절한 젊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이 일어 이미지를 찾아 보았는데 과연 완벽한 젊은이였다. 마치 이완 맥그리거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키아누 리브스를 교묘하게 섞어 놓은듯한.

정부를 살해한 어머니 때문에 고아가 된 마이크(리버 피닉스 분)는 남색을 즐기는 남자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젊은이다. 그에게는 흔하지 않은 병이 있는데 긴장을 하게 되면 갑자기 잠으로 빠져 드는 수면 장애가 있다. 한편 거부인 아버지를 향한 반발로 거리를 떠돌게 된 스코트(키아누 리브스 분)는 이러한 마이크가 어머니를 찾는 것을 돕게 되고 두 사람은 우정을 넘어서 동성애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스코트는 로마에서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오토파이를 팔고 남은 돈을 쥐어주며 마이크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포틀랜드의 사창가로 돌아온 마이크는 지난날 두 사람이 의지했던 밥과 함께 지내게 되는데 어느 날 밥은 아버지가 죽고 재산을 물려받아 신사가 된 스코트에게 인사를 건넸다가 초라하게 외면 당한다. 이 충격으로 밥은 세상을 떠나고 스코트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뤄지는 반대편에서 밥의 초라한 장례식이 함께 치뤄진다. 마이크와 스코트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두 사람은 이미 다른 길에 서 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이크는 길 위에서 다시 잠이 들고 짐과 구두를 빼앗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이크가 불쌍해서 죽는 줄 알았다. 아, 나는 고작해야 이렇게 밖에 감상평을 못하겠다. 어머니도 없고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새파란 젊은이가 먹고 살 줄 아는 방법은 몸을 파는 것. 몸을 팔던 젊은이가 태어나서 처음 어머니 다음으로 애착을 느낀 상대는 제 또래의 젊은 남자. 그 남자에게 구걸하다시피 말을 건넨다. 난 돈을 받지 않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어. 난 너를 사랑해. 돈은 안 내도 돼. 그러나 그 남자는 제 또래의 젊은 여자에게 떠나고 마이크는 다시 혼자 남겨진다. 어머니도 못 찾은 채로. 그리고는 밥을 먹기 위해서 다시 몸을 판다. 아, 이 조각처럼 아름답고 병든 사슴처럼 슬픈 남자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나는 지적이지 않은 채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는 남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안다.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러한 남자를 사랑해 본 경험이 있고 시시때때로 내 안에서 모락모락 뿜어져 나오는 모성애를 느꼈다. 매우 위험한 남자였다. 그러나 영원히 크지 않은 채로 방황하는, 신발도 벗겨가고 짐도 빼앗아 갈지 모르는 적막한 길 위에서 혼자 웅크리고 잠들어 버리는, 그 대책 없음은 여자를 어머니로 키우고 모성애의 힘은 사랑보다 강하고 질긴 것이다.

이 영화는 리버 피닉스를 위한 영화다. 길 위에서 어머니를 찾아 방황하는 마이크의 모습은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다. 밥은 죽어가면서 God를 외치고 마이크는 기면증으로 쓰러질 때마다 어머니를 본다. 스코트는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사회의 출발선에 선다. 우리는 의지할 대상을 그리워하며 인생에 던져지고 빈 손으로 길 위에 선다. 

 

"나는 길의 감식가. 난 평생 길들을 맛보며 살아갈 것이다.

이 길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고 틀림없이 이 길로 온 세상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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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자폐 성향이 다분한 것 같다. 자폐가 자기 안으로 숨어들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 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오늘도 어느 자리에선가 그 동안 소식을 몰랐던 많은 지인들과 마주칠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의무만 다 한 채 누가 볼까봐 겁이라도 난다는 듯 그 자리를 총총히 떠나왔다. 바쁜 일이 있었다거나 특별히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냥 얼굴 아는 사람들과 혹시라도 마주쳐서 인사를 나누게 되고 안부를 묻고 해야 하는 과정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는 사람들 서넛을 만났다. 다들 길을 헤매다가 나를 마주쳐서 길만 묻고, 너는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느그들같은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그냥 일찍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

오는 길에 맥반설 달걀을 세 개 사고 호빵을 하나 사고 집에 와서는 된장 기운을 약간 풀어 라면을 끓여먹었다. 아까 어느 오락프로그램에서 크리스마스에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을 것 같은 사람, 이란 타이틀로 순위를 매기더라마는 그것이 그렇게 안되고 딱한 일인지는 몰랐다. 아무튼 오후에 라면 한 대접을 먹고 고구마 찐 것 까지 먹고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이라는 실용서를 몇 장 읽다가 쿨쿨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방학을 맞이한 나의 뒷치닥거리를 하시느라 기어이 엄마는 몸살이 나셨고 내가 좋아라하는 개고기 삶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 있다. 난 저 된장 기운 섞인 개고기 누린내가 왠지 뿌듯하다.

돌아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인간 관계를 상당히 무시하며 지내온 것 같긴 하다. 주변 사람들을 무시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대체로 심신이 피곤했고 다시는 그런 모임에 나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됐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만나서 즐거운 적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일수록 매우 드문드문 아껴서 만나곤 했다. 이후에 사회에 나온 뒤로도 직장에서 만난 사람은 딱 직장에서의 관계만 유지한다, 는 룰을 지킨 것 같다. 그래도 회식 자리에 가선 열나게 놀고 열나게 분위기 띄우고 그랬지만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 다리를 다치고 난 다음엔 나는 정말 내성적이고 자폐적인 인간이 되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끼리라도 고통의 공유는 불가능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나에게 사소한 불편이라도 끼친다면 한없이 냉정해지는 게 사람이란 걸 그 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뒷담화나 까고 서로 반목이나 하느니 책이나 주문해서 읽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도 여전하다. 겉으론 사람 좋은 척 웃는 사람들이 뒤로는 얼마나 깍정이 짓을 하는지 익히 보아왔고, 특히 내가 속한 집단의 사람들은 그것이 누워서 침 뱉기라 할 지언정,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살기에 물처럼 조화가 될 수 없는 인간형들이 태반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즐겁게 지내면서도 왜 나는 늘 혼자이고 싶어서 안달인걸까.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벽이 있고 한 때는 그 벽이 무너지는 기분좋은 체험도 했지만 그냥 그뿐이었다. 나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끼리라도, 그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해도, 불가피한 벽이 있다는 걸 실감한다. 그렇다고 나란 사람이 매일 찡그리고 우울한 얼굴로 다니는 건 아니다. 대개 주변 사람들은 내가 밝고 씩씩하고 유머러스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면의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서일수도 있으나, 정말 사람이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더구나 직업이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내가 사람을 싫어한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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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5-12-2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끼리라도 고통의 공유는 불가능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나에게 사소한 불편이라도 끼친다면 한없이 냉정해지는 게 사람이란 걸" 요 대목 참 좋아요. 저도 자폐성향을 가진 人입니다.

깐따삐야 2005-12-2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징징거리는 글에 동감을 표해 주시니 반가울 따름. ^^ 근데 어쩌면 우리같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더 칭찬 받고 싶고 존경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어 안달인지도 모르죠~

이잘코군 2005-12-28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돌리는 채널마다 족족 황우석 교수 얘기다.

참 안됐다.

진실은 언제고 밝혀진다. 몇 백년이 지난 후라고 해도.

몇 십 년 후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같은 프로그램에 황우석 교수의 후예들이 출연하여 안타까운 역사에 대하여 돌아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가 너무 순진했다고 생각한다.

춥고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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