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소은

개봉에 맞추어 영화를 보게 되면 대개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나 '아일랜드'와 같은 흥미나 오락 위주의 액션물을 고르게 된다. 실제로 가끔 그런 영화들을 보고 싶어질 때도 있긴 하지만 지인들과 함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고르다 보면 관람 도중에 마음을 징하게 건드릴 법한 내용의 영화는 부러 피하게 된다. 영화가 끝난 후 왠지 멋쩍어짐과 동시에 내 눈빛 속에서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가 추억을 되짚는 모습이나 흔들리는 마음의 결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도 신나는 오후를 꿀꿀하게 망쳐버릴 흔해빠진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안젤리나 졸리의 미모라든가 이완 맥그리거의 건재함에 대한 약간 오버 섞인 감탄, 그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고 싶었던 대부분의 영화를 개봉이 한참 지난 이후에 혼자 DVD로 빌려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허진호 감독의 영화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가 그랬고 이 영화 '동감'이 그랬다. 비록 따끈따끈한 맛은 떨어지지만 가슴 속에 차곡차곡 묵혀 두었던 영화들을 하나 둘 씩 꺼내어서 다시 이야기하는 기쁨이 또 새롭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1979년에 살고 있는 여대생 소은(김하늘 분)은 선배(박용우 분)와의 닿을듯 말듯한 짝사랑의 설레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고물 무선기 하나를 얻게 되고 개기월식이 진행되던 날 밤, 무선기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에게 교신해 온 사람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인(유지태 분)이라는 남학생. 그들은 시계탑 앞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지만 사실 2000년의 서울에 살고 있는 인과 과거 속에 살고 있는 소은은 어긋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는 믿기 힘든 현실을 받아들인 후 무선기를 통해 사랑에 대해, 우정에 대해, 세상에 대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그처럼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소통하며 공감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또 다시 믿기 힘든 인연의 줄로 자신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똑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딱 한 번 서로와 마주친 채 스쳐 지나간다.

나 개인적으로는 배우 김하늘을 좋아한다. 한국 영화계엔 종횡무진 폭 넓은 연기력을 선보이는 전도연이나 닳지 않는 진주처럼 빛나는 자태를 드러내는 이영애가 있고 귀여운 마스크로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뭇 남성팬을 사로잡는 시원시원한 미모의 전지현도 있지만 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순진하기 짝이 없는 복길이같은 말투로 권상우를 혼냈다 다독였다 하는 그녀,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귀엽고 깜찍한 내숭으로 한 가족을 사로잡던 그녀, 그리고 '바이 준'이나 '동감'에서의 솔직한 눈매를 지닌 청순한 모습의 그녀를 아주 좋아한다. 그것은 김하늘 그녀이기에 가능했던 역할과 이미지였다. 배우 나름으로 노력해서 바뀌는 이미지도 있으나 타고난 이미지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것 또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배우 김하늘이 무리한 연기 변신을 시도하지 않고 찬찬히 자신의 색깔에 맞는 역할과 연기를 해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역시 이 영화 '동감'에서도 그녀는 촌스러움과 청순함의 경계에 서서 70년대 여대생의 이미지를 잘 소화해 내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나 사랑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2000년대에 사는 남학생과 70년대에 사는 여대생이 서로 공감할 수는 있으나 이어질 수는 없는 것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헤어지는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실제의 삶 속에서 굳이 긴 시간차를 설정해 놓지 않더라도 지금 이 사람을 좀더 늦게 만났더라면, 지금 이 사람을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런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은 당신의 첫사랑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녀는 나를 무척 따르며 좋아했고 나도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공부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고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어서 약속같은 걸 할 수가 없었다."고. 잠시 회상에 잠기셨던 교수님은 바로 웃으시면서 "사랑의 문제를 떠나서 결혼 적령기에 만난 사람이 확률적으로 내 운명의 상대가 되고 마는거지. 운명은 타이밍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강의실에 있던 CC들을 보시면서 "그래도 너희 나이 때에는 쟤들처럼 연애도 열심히 해보긴 해봐야 하는거다."라고 하셨던 기억도 난다. 그 때 아리송하게나마 타이밍이란 말을 이해했고 공감했다. 그 때 나는 무엇에든지 열정적으로 빠져들만한 나이였기에 도리어 산다는 게 힘이 부치기만 했고 자꾸 나이를 먹고 빨리 늙어서 모든 것에 초연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 자신의 어설픔과 성급함 때문에 주변의 많은 것을 놓쳐버리고 소중한 인연들을 싹둑싹둑 잘라내곤 했던 시절이었다. 당최 뭐가 뭔지 분간이 안되던 시절, 다 때가 되면 운명의 그 상대가 나타난다는 말에만 귀가 반짝하던 귀여운 나이였다. 운명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의 유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채로 말이다.

앞으로의 일은 모르고 사는 편이 낫다.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몰라야 한다. 영화 속에서 소은은 인을 통해 우연히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게 됨으로써, 그녀를 설레이게 하고 행복하게 했던 짝사랑의 환희는 일순간 물거품이 되고 그녀를 웃게 해주었던 우정에 대해서도 더 이상 정직할 수가 없게 된다. 소은이 결과에 상관 없이 미래의 인연의 향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면 기대와 가능성 속에서 그녀는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삶의 행복이 하루하루의 만족과 미래에 거는 희망에 있는 거라면 그녀는 행복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더불어 놓쳐버린 인연에 매달린 그녀는 언젠가 한 번 쯤은 나타났을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타이밍까지 놓쳐 버린 셈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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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1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따삐야 2006-01-01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othing special~ 여느 때와 다름 없었습니다. 님이 어떻게 보내셨는지는 방금 페이퍼를 읽고 와서 대충 알겠네요. 저도 그와 비슷했어요.
밥 많이 드세요. ^^
 

한 해가 참 무심히도 가고 있다. 정말 무심히도. 올해는 더더욱 무심하게 가는 것 같다. 어쩜 이리 무심할 수가. 무심해서 환장하겠군. 나는 유심한데 세상은 유독 무심해 보인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안좋은 일이 많았다. 요즘 그나마 황우석 교수님을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정황이야 어찌 되었든 그 동안 일궈온 게 있는데 얼마나 면 팔리고 속상하고 답답할까.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구나. 그 분에겐 참 안됐고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잠깐이나마 그 고통을 빌려 썼다. 쏘리.

2005년 9월 이후로는 온통 아팠던 기억 뿐이다. 분명히 여름방학 때 까지는 나름 운전면허도 따고 해서 발랄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계절이 초가을로 진입할 무렵, 말하기도 남부끄러운 불의의 안전사고로(출장 다녀오는 길에 버스에서 졸다가 내리면서 떼구르르 길바닥으로 추락) 목발 신세로 전락했다. 약 석달 간 깁스를 하고 목발을 낀 채 내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양 쪽으로 갈라서는 모세의 기적을 목격해야만 했다. 이 몸뚱이로 연구학교 발표 때 공개수업을 했으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푸욱 쉬어주었어야 하는건데 뭔가 알았을 땐 늦어버린 다음이었다. 매일 밤마다 쑤신 발목을 쳐다보며 스스로 내 자신을 바부팅이라고 구박했다. 주변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도움을 못 준다는 표정으로 나를 외면했고 나는 나의 불편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간혹 내 앞에서 더욱 바쁜 척을 할 때는 나도 아파 뒈지겠는데 할 수 없이 앉아서라도 일을 하고 있다는 짜증나는 표정을 지어줬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배려했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과 집단의 체면을 위한답시고 나를 구석으로 몰았다. 대개 멋 모르고 지내며 웃고 까불던 나는 그 이후 사회의 속성을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한다.   

다리가 채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또 급성장염에 걸려 주는 센스!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던 저녁, 학교 체육샘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근처 호프집에 원어민 샘과 같이 있으니 얼렁 나오라는 것. 술기운이 헬렐레 돌기 직전인 샘은 교직원 배구대회에서의 승전보를 전하며 우승을 하기까지 크나큰 역할을 해 준 꺽다리 원어민 샘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나보고 중간에서 통역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호프집 이름을 들어보니 중앙 통로 이층에 자리한 무지개라는 곳이었다. 헉... 무지개... 이층. 일층이어도 힘든 판국에. 이러저러하여 곤란하겠다고 둘러댔으나 술이 돌기 시작한 샘은 나를 업고 가네 매고 가네 하시다가는 내가 보다 완강하게 거부하자 그러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전화를 할테니 전화로 통역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그러세요, 그럼~ 하고 전화를 끊었으나 불판에서 삼겹살이 익는 둥 마는 둥 하는 찰나 전화가 오고 저 편에서는 체육샘과 원어민 샘이 수화기를 바꿔가며 자신들의 의견을 과다하게 피력하고 있었다. 아, 네네 서로 사랑하신다구요? Oh, he told you 어쩌구 저쩌구. 나는 삼겹살을 씹다가 물을 마시다가 꺼억꺼억 영어로, 우리말로 정신 없는 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렇듯 지옥같은 저녁이 지나고 고통은 밤부터 시작되었으니 사포로 뱃속을 사악사악 문지르는 듯한 통증이 장장 새벽까지 꼬박 진행되면서 급기야 실신, 응급실에 누워 수액을 맞으며 아침을 맞게 된다. 아, 인생은 왜 이리 고달픈 것인지. 미련한 것. 다리 때문에 독한 정형외과 약을 지어먹고 있는데다 기름기 많은 삼겹살을 먹었으니 탈이 날만도 했다. 거기다 보태어, 울리는 전화벨에 긴장한 채 혀꼬부라진 말로 무지개와 불판을 왔다갔다 했으니 뱃속에서 얼씨구나 화를 낼만도 했다. 아무튼 이후 물과 죽으로 간신히 연명해 가며 난생 처음으로 체중이 줄어 지방흡입술의 의혹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먹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게 된 사이 나와 남자친구는 서로 간에 딴딴한 벽을 쌓고 있었다. 나는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에 부쳤고 남자친구는 나름대로 장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내가 겉으로는 인상을 쓰고 심술을 부리고 있을지언정 마음으로는 여전히 그를 꼭 붙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에 쥐면 서서히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나와 멀어져갔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우리는 그렇게 먼 거리를 둔 채 홀로 지쳐가고 있었고 서로에게 웃음을 주고 위안을 주는 시간보다 다투고 침묵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졌다. 나는 내가 없는 곳에서 그가 더욱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주길 바랬으나 그는 나를 아픈 말등에 호되게 채찍만 가하는 가혹한 마부처럼 여겼던 것 같다. 이렇듯 우리의 언어는 점점 더 어긋나기 시작했고 항상 먼저 웃음을 건네고 말을 건네던 나는 기어이 그에게 아무 말도 하기 싫어졌다.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그가 다가와서 말을 걸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민감했던 그는 길어진 나의 침묵을 이별의 의미로 받아들인듯 했고 어느 날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글을 남긴 채 멀어져갔다. 헤어짐을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런 식의 헤어짐은 상상하지 못했고 너를 위해 떠나주는 게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배려라는 듯한 그의 글이 당혹스럽고도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것은 끝이 났고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동안 복잡한 감정 때문에 힘에 부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잘 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마웠던 그에게 여러가지 심한 말들로 상처를 줬다. 그것은 내가 몸이 아팠다고 해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겨울로 접어들면서 오른쪽 어금니 뒷편에 사랑니가 얼씨구나 드러눕기 시작했고 나의 고통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대학 병원에 수술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요즘 음력으로 날짜를 헤아려봤다. 구래구래, 구정이 지나야 진짜 2006년인 거니까 올해의 액운은 요 사랑니로 마감일꺼샤. 나름의 위안을 해 본다. 두 번째 어금니처럼 튼튼하게 생겨주신 의사샘께서 나의 사랑니를 아작 내고 들어냄과 동시에 모든 아픔의 찌꺼기들도 함께 사라져 버렸음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쉬우면 어디 인생 한 번 살아볼만 하겠다마는. 하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이제는 나도 다시 행복해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다시 건강해졌고 더욱 성숙된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다. 지난날의 고통은 아마 앞으로 다가올 행복을 더욱 달고 맛있게 느끼게 해 줄 당의정이 될 것이다. 아듀- 2005. 그만하면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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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6-01-0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엔 좋은 일이 가득하길 빕니다...

깐따삐야 2006-01-01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아프락사스님도 Happy New Year~ ^^
 
안과 겉 ㅣ 알베르 카뮈 전집 6
알베르 까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안과 겉'을 다시 읽었다.

옛 말에 구관이 명관이라고 요즘은 예전에 읽었던 책들에 다시금 마음이 간다.

카뮈는 내가 선호하는 작가 중의 하나이며 그와 관련되어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이 책은 카뮈 생전에 출판된 그의 작품들 중에서 최초로 발표된 처녀작이기에 어딘가 모호하고 어설픈 구석도 엿보이지만, 아직은 어렸다는 그 조건이 작가 카뮈에게 돌려 말하기를 거부하게끔 만들었고 그 솔직함과 간곡함이 읽는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슬며시 웃음을 짓게 한다.

카뮈에게 명성을 안겨다 준 작품은 '이방인'이나 '페스트'같은 보다 완결된 작품이지만 소설과 에세이 중간 정도의 형식을 빌어 쓴 이 짤막한 작품집 속에서 스물두 살의 카뮈는 머뭇머뭇, 그러나 확신에 찬 어조로 그를 예술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창조의 원천과 삶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집에는 아이러니, 긍정과 부정의 사이, 영혼 속의 죽음, 삶에의 사랑, 그리고 안과 겉. 이렇게 총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무엇보다도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책 맨 앞에 실려 있는 '서문'이었다.

서문에서 카뮈는 그가 앞으로 작품 속에 표현하고 싶고 담아내고 싶은 모든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과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던 가난, 편견과 차별 없이 공평하게 내리쬐던 태양의 고장, 궁핍과 침묵 속에서도 질박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던 가족,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긍정하며 정열적으로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 카뮈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은 그와 다소 멀어진 감이 있지만 한 때 내가 카뮈에게 열광했던 것은 그의 작품마다 발견할 수 있는 카뮈의 인간적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는 내세나 인간으로서의 삶 저 너머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주어진 조건과 한계를 인정하고 단순하고 정직하게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 영생의 댓가나 내세에서의 구원을 위해 착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인식하는 가운데 더욱 더 정열에 찬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카뮈의 지론이었다.

이 책에서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없다, 고 말하고 있듯이 인간사의 부조리함에 눈 뜬 카뮈는 그 부조리한 조건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부조리를 몸소 살라고 역설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 헤매던 중에 발견했던 카뮈는 나에게 아무런 기대도 심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신뢰가 갔다.

평생 폐결핵이라는 지병을 앓았으나 축구 선수로, 지하 운동원으로, 연출가로, 배우로, 소설가로, 에세이스트로, 무궁무진한 삶을 살았던 그는 작품에서 말하던 것을 그대로 삶 속으로 옮긴, 행동하는 인간이었고 그 점에서 나는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

'안과 겉'은 그러한 카뮈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열쇠라고 생각한다.

사심 없이 언제나 명철한 의식을 유지하는, 늘 깐깐하지만 자비가 넘치는 눈빛으로 조용히 반항하고 있는, 흔하지 않은 인간 카뮈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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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경험을 했다는 건 하나의 패배라는 것을, 모든 걸 다 잃고 나서야 겨우 뭔가 좀 알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 p. 40

왜냐하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게 해주는 것은 사랑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사는 것이란 참 어려워요." 나는 그 어조를 기억하고 있다. 또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속삭였다. "가장 큰 잘못은 남을 괴롭히는 일이에요.'라고. 만사가 끝나버리면 생의 갈증도 사라진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 p. 52

그렇다, 모든 것은 단순하다. 사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들이다. 우리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는 말라. 사형받은 자를 가리켜 "그는 사회에 대하여 죄값을 치르려 하고 있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의 목이 잘리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 p. 63

나는 나의 깊은 절망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 중 하나가 지닌 저 은밀한 무심의 대치(對峙) 속에서 그 위대함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용감하면서도 동시에 의식적일 수 있는 힘을 길어내는 것이었다.  - p. 81

왜냐하면, 여행을 귀중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던 일종의 내면적 무대장치를 부숴버리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속임수를 써볼 수가 없다 ㅡ 사무실과 작업장에서 일하며 보내는 시간들 뒤에 숨어서 가면을 쓰고 지내는 짓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에 대해 우리는 그토록 심하게 불평을 해대지만, 실은 고독의 괴로움으로부터 그토록 확실하게 우리를 방어해주는 것도 그러한 시간들이다.)  - p. 88

세계는 지속되고 있었다 ㅡ 수줍고,  아이러니컬하고 은밀하게 (여자들의 부드러우면서도 조심스런 어떤 형태의 우정과도 같이) 지속되고 있었다. 일종의 균형이 지탱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자체의 종말에 대한 두려움으로 온통 물들어 있는 균형이었다.  - p. 90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 p. 91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를 다 포옹할 수만 있다면 껴안는 방법이 서투른들 어떠랴.  - p. 93

큰 용기란 빛을 향하여서도 죽음을 향하여서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직시하는 일이다.  - p. 101

 

알베르 카뮈 / 안과 겉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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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그처럼 저마다 마음속 깊이, 일생 동안 그의 됨됨이와 그가 말하는 것에 자양을 공급해주는 유일한 원천을 갖고 있는 것이다.  - p. 16

태양은 나에게 역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 p. 17

아프리카에서 바다와 태양은 돈 안 들이고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기의 성격에 맞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의 자존심을 받아들여 그것이 보람되게 쓰여지도록 애써보는 편이 나을 것이엇다.  - p. 18

가장 풍성한 호화로움이 나에게는 언제나 일종의 헐벗음과 일치하곤 했다.  - p. 20

사실 나에게는 나 혼자만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격언이 하나 있다. "큰 일에 임해서는 자신의 원칙을 세워 그에 따를 것이요, 작은 일에는 자비심만으로 족하다." 슬픈 일이지만 사람은 타고난 천성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서 격언을 만드는 것이다.  - p. 21

내가 좋아한 사람들은 언제나 나보다 더 낫고 훌륭했다. 그러므로 내가 체험한 빈곤은 나에게 원한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변함없는 마음, 그리고 묵묵한 끈기를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내가 그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었다면 그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또는 나의 결점에 있는 것이지, 내가 태어난 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 p. 22

사회가 갈라놓은 사람들을 고독이 결합시켜주는 것이다.  - p. 25

실은 정열의 인간이면서 도덕을 꿈꾼다는 것은, 아무리 정의를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을 불의에 바쳐버리는 것이 되고 만다. 나에게는 이따금, 인간이란 살아 움직이는 불의라고 여겨지는 때가 있다 - 이것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 p. 28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비밀들, 그걸 우리는 너무나 서투른 솜씨로, 그리고 무질서하게 내보이고 만 것이다. 또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변장시킨 가운데 그것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그것들에게 하나의 형식을 부여할 능력을 갖춘 전문가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차라리 낫다. 끊임없이 그 비밀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는 하되, 자연스러움과 기교를 거의 같은 분량으로 배합할 수 있을 때까지, 즉 존재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동시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p. 30-31

바로 이 유적(流謫)의 시간에일지라도 인간에 의하여 이룩되는 작품이란, 예술이라는 우회의 길들을 거쳐서, 처음으로 가슴을 열어 보였던 두세 개의 단순하고도 위대한 이미지들을 다시 찾기 위한 기나긴 행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꿈꾸어보지 못하게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 32

 

알베르 카뮈 / 안과 겉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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