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지역의 각 학교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학번 동기들이 포진해 있다. 알고 보니 우리도 그 사실이 참 재밌었는데 다들 바빠서 얼굴 한번 보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다. 그 와중에 K가 함께 출장을 가자고 연락을 했고 마침 업무도 같아서 친구 얼굴도 볼 겸, 이웃 지역 견학도 할 겸, 흔쾌히 동의했다.
K는 20년 지기 친구이니 아마 알라딘 페이퍼에도 이따금씩 출연했을 것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같은 과 동기이자 기숙사 친구로 만나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멀지 않은 거리에서 서로의 변화를 지켜보고 각자의 삶을 응원해 왔다.
내 가방에는 김영하의 책이, 친구의 가방에는 유시민의 책이 들어 있었다. ‘대화의 희열’ 이야기를 하다가 K가 술에 취해 기숙사 가는 길에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열창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니 내가 그랬어? 라는 말이 돌아온다. 대학 캠퍼스라 그런가 우리의 민폐와 경거망동에도 주변 사람들은 다 관대한 미소를 지으며 지나쳤던 기억. 그 당시 우리의 이상형은 정말이지 김영하나 유희열처럼 지적이고 샤프한 남자였는데 현재는 둘 다 가까이 오면 쏘고 싶은 토끼띠 남자들과 살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의 타인들과 점점 조심스러운 대화에 길들어 가는데 친구란 조심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배려가 힘이 들거나 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친근한 리듬처럼 편안하다. 시골길을 걷고 버스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강연을 들으며 정말 모처럼 숱한 대화를 나눴다. 편찮으신 부모님들과 죽음에 대해서, 도무지 합리적 추정이 불가능한 유전적 조합을 물려받은 아이들에 대해서, 중년에 접어들어 여기저기 아프다고 아우성인 심신에 대해서, 학습보다는 계몽이 우선인지, 학습이고 계몽이고 간에 지금 당장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면 그만인가 싶은 시골학교의 새로운 사업들에 대해서, 워킹맘으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이쯤 되면 뭔가 사는 게 되게 자신 있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에 동감했다. 어떤 하루를 보내더라도 아이 앞에서는 늘 밝게 웃어주고 상냥한 대화를 하는 엄마, 분필 하나만 들고 들어가서도 서너 시간 쯤 멋진 수업을 할 수 있는 선생님, 칭찬과 격려로 남편의 기를 살려주고 피로를 풀어주는 아내, 남들이 다 외면할 때 제가 한번 해보죠! 라고 척척 도맡아 해결하는 직장인, 교양과 상식을 갖추었으면서도 유연한 판단력과 공감능력을 발휘할 줄 아는 지식인, 뭐 그쯤 될 줄 알았나 보다. 그러면서도 자기 관리에 철저하여 이십대 시절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저는 관리 같은 건 안 받아요, 제 젊음의 비결이 있다면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능력 때문이 아닐까요? 호호호~ 뭐 이러면서... 물론 현실은 저 어휘들의 반대말만 찾아서 다시 문장을 쓰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우리를 보우하사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살아가지는 느낌이다. 스무 살 초엽에 나를 사로잡았던 카뮈의 전언들.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 생의 부조리를 깨달은 시지프스의 행복... 요즘 다시 되새기며 생각해보게 되는 말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반듯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면 우리의 아이들도 우리를 닮아갈 거라고,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K와 훈훈한 마무리로 헤어졌지만 나도 끝까지 가보지 않은 삶, 무엇을 알고 떠든 것은 아니다. 다만 일상을 이루는 소소하고 반복적인 습관들을 소중한 리추얼처럼 살아내자는 너와 나를 위한 격려였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