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잘 삐치시고 욱하시기는 하지만 제가 겪어본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선생님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 선생님에 대한 첫인상도 그랬고 그 인간적인 모습이 선생님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가서도 선생님, 중학교에서의 기억을 좋게 안고 가고 싶네요.   - E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선생님이 항상 다정하게 대해주시고 항상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솔직한 면도 상당히 마음에 들고, 또 다른 선생님들과도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 J

1학년 때에는 무척이나 힘이 드셨죠? 철없는 1학년이 3학년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힘드신지... 3학년이 되어 저는 더 힘이 듭니다. 애들이 선생님한테 말장난 하는 것은 아마도 관심받고 싶어서일꺼입니다. 사실 저도 그런 건 싫어요. 그래도 너그럽게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선생님 다리 무다리. ㅋ 그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뭐라고 하지 마시길.  - K

쌤한테 00가 까부는데요. 좋아서 그런거래요. 00가 원래 남한테 감정 표현을 이런 식으로 해요. 그러니까 이해해 주세요. 쌤, 앞으로도 더 이뻐지시구요!  - E  

아, 편지 쓰니까 쌤 생각나요. 우리 참 많이 이해해 주셨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후회되요. 내가 왜 그랬나? 말 좀 잘 들을걸 하고 후회해요. 쌤, 지금 애들은 안 힘드세요? 저희보단 낫죠? 그럼 다행임~ 항상 웃는 선생님이 저는 참 기억에 남네요.  - 졸업생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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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스승의 날이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편지들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 편지를 받았을 땐 남자 아이들이 편지를 '썼다는' 것에 놀랐고 편지를 읽고 나서는 철없는 말썽쟁이들로만 보였던 아이들이 마음 속으로 이만치 의젓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뜻밖의 마음의 호사 때문이었을까. 요며칠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송구스러울 지경이었다. 여전히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는 나를 솔직하고 인간적인 선생님으로 너그럽게 보아줄 정도로 그새 그렇게 훌쩍 커버린 것인지. 내딴엔 허구언날 버럭버럭 화만 내고 이래저래 다그친 기억 뿐인데 다정하고 잘 웃는 선생님으로 좋게 기억해 주고, 다소 버릇없이 보이는 친구들을 이해해 주라고 내게 조언을 할만큼, 아이들 마음 속엔 저마다 듬직하고 의젓한 어른 하나씩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았다. 저만치 속 깊은 아이들 앞에서 붉으락푸르락 하면서 열을 올리던 나였으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부끄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고 하는가 보다.

체육대회를 하루 앞두고 각종 예선경기가 치러졌던 오늘도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다독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몇몇 경기에서 결승에 오르지 못했고 아이들 저마다의 실망도 컸을법한데 "선생님, 딴반 애들이 뭐라고 해도 기죽으실 필요 없어요. 우리가 중간고사는 일등 했잖아요." , "선생님, 우리반은 개개인만 놓고 보면 다들 뛰어난데 단결력이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담엔 더 잘해요.", "선생님, 씨름만큼은 우리가 백전무패에요. 내일 기대하세요." 선생인 나야 아이들을 향해 전체적으로 '수고했다'  한 마디 해 줄 뿐이지만 아이들은 그 머릿수만큼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니 나는 너무나 복이 많은 셈이다. 꼭 우승을 못하면 어떠랴. 즐겁게 운동하고 뛰어 놀며 아무데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그 날을 즐기면 되는 것이리라. 내일은 우리반 아이들 모두에게 맛있는 햄버거와 음료수를 쏴야겠다. 배불리 먹고 즐겁게 놀자.

모든 일이 대개 그러하듯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늘 좋기만 한 것도, 늘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나를 싫어하는 아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은 관자놀이가 미칠듯이 아플 정도로 아이들 문제로 진이 빠지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아이들 덕분에 정말로 기분이 유쾌해지고 따듯해져서 행복한 걸음걸이로 귀가하는 날도 있다. 나는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아이들은 여전히 마음 한켠에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고 학교란 곳 또한 아직도 눈물이나 불화보다는 웃음과 화목이 더 지배적인 곳이라고 믿는다. 모든 길은 한 가지 루트로만 통하지 않는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아이들조차 선생님의 어설픔을 솔직함으로 덮어주고 이해하며 앞으로 더 잘해보자고 하는데, 다 큰 어른들이 서로 한 가지 잣대만을 들이대며 싸운대선 말이 되겠는가. 모름지기 사람은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한 손가락이 남을 가리킬 때 나머지 네 손가락은 나를 가리킨다고 하지 않던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일일이 답장을 해주지 못한 나는 한 번 찡그리고 싶을 때 두 번 웃고, 한 번 잔소리 하고 싶을 때 열 번 칭찬하는 것으로 부족하게나마 내 마음을 전하려고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작해야 얄팍한 지식 나부랭이를 넣어주고 있지만 아이들은 나를 하루하루 더 나은 인간으로 키운다. 정작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다. 나의 사소한 실수로 그들의 맑은 눈에 재를 뿌릴까 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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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5-25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 좋네요.

BRINY 2006-05-2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반 애들이 뭐라고 해도 기죽으실 필요 없어요. 우리가 중간고사는 일등 했잖아요 ->Oh~ 저랑 같은 경우시군요! 어제가 체육대회였는데, 오늘1교시 수업 들어간 반이 줄다리기에서 저희를 이긴 반이었어요. 우리보고 몇등했냐고 물어보길래, '우리는 중간고사 잘봤고, 씨름에서 3등상 받았으니까 만족해'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그 반 애들이 '우리가 중간고사 2등인데~'그러길래 '우리가 1등이거든?'했더니 조용~해지더라구요. 하하!

깐따삐야 2006-05-2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좋지요. ^^

BRINY님, 저도 경기에서 진 걸 가지고 약을 바짝바짝 올리는 다른 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모든 걸 다 잘할 수 있겠니? 제 유치함의 끝은 어디까지일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ㅋㅋ

마태우스 2006-05-26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욱하는 성격이신가봐요^^ 지금 제 네 손가락도 깐따삐야님을 가리키고 있어요 ^^ 홧팅. 근데 제 제자들은 왜 편지를 한통도 안쓸까요...-.-

깐따삐야 2006-05-26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쿠쿠. 제가 좀 욱하는 성격이긴 합니다. 마냥 하하호호 하다가도 한 번 화가 나면 머리 꼭지가 홱 돌아버려서 덜 되먹은 인간이란 걸 곧잘 표내곤 하지요. 고치려곤 하는데 성격이란 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서 아이들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저도 선생님께 편지를 썼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 마지막이었답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쓸 기회도 없었고 쓰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머리가 커질수록 자기만의 세계가 점점 더 확장되면서 선생님이란 존재가 가까이 와닿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