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재야의 종소리를 함께 듣기로 했다는 E는 설렘으로 충만했다. 치마를 입어야겠지. 카드를 살까. 직접 만들까. 문구는 어떤 게 좋겠어. 영어로 쓰면 좀 그럴까. 아주 모처럼의, 어쩌면 이 친구를 알고 처음 보는 달뜬 모습이었다. 사람을 만나 호감을 느끼고 그것이 연애감정으로 발전하는 일이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비일비재한 일은 아님을 잘 알기에 나는 E를 독려했다. E가 상대를 향해 품고 있는 미혹과 의혹은 슈가파우더를 흩뿌린 듯한 창밖 풍경처럼 달콤하게 눈부셨다.
그날 헤어질 무렵 즈음 E가 내게 한 말. 그때 너는 칼날 같았는데 지금은 상당히 유해졌어. 그리고 내 손을 잡아주며 덧붙였다. 모든 것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제발 너무 깊게 생각하지도 말고. 너는 내가 얼마나 단순하고 다루기 쉬운 사람인줄 모른다며 웃었지만 마음 속으로 E의 말을 곰곰히 새겼다. 고마워. 그래야겠지.
그리고 오늘 복직 신청을 하러 간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과일을 사고 오랜만에 순차적인 화장을 했다. 영달이를 꼬옥 끌어안고 있는데도 영달이가 보고 싶었다. 엄마는 오버하지 말란 식으로 말씀하셨고 나는 아주 잠깐 영달이를 업고 수업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쿡, 웃음이 나왔고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일하는 엄마들의 유일한 자기위안은 아이와 함께 하는 데에 있어 양보단 질을 우선시하는 것이라던가. 나는 그저 영달이의 성장에 누가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너무 많이 또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눈과 귀를 열어놓자.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