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20분.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화면조정과 애국가를 사랑해주시는 영달이랑 새벽부터 노느라고 벨소리를 못 들었다. 남편이다. 무슨 일 있나. 친정에서 따순밥 먹어가며 뭉개고 있는 요즘. 우리는 별거중.
전화를 해보니 씻는 중인지 안 받는다. 문자를 보낸다. 조금 있다가 다시 거니 이번엔 받는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아무 일도 아니고 담요 좀 갖다 써도 되냐고 묻는다. 남편이 어딘가에서 사은품으로 받아온 담요를 영달이가 집에 갔을 때, 차 안에서 잠이 들었을 때, 덮어주곤 했다. 그걸 학교에 가져가서 쓰겠다는 얘기다. 일교차가 심해지다보니 아직 난방을 하지 않는 교무실은 밤이 되면 춥기 마련이다. 나는 오들오들 떨며 야자감독을 하는 남편 모습을 상상하며 당연히 갖다 써도 되지 뭘 그런 걸 물어보냐고, 아침부터 무슨 일 생긴 줄 알았다고, 투덜거렸다.
남편은 우선 영달이 것을 산 다음에 가져가서 써야겠다고 소심하게 대꾸한다. 나는 장롱 속 수납함에 내가 쓰던 고양이 케릭터 무릎담요가 있을 거라고 설명을 하다가 다 집어치우고 그냥 그거 갖다 쓰라고 못을 박았다. 남편은 괜찮다고, 아무래도 영달이 것부터 사준 다음에 가져가야겠다고 말했다.
친정엄마가 상황을 전해듣고는 영달이 옷을 갈아입히며 영달이에게 시비를 걸었다. 너 뭐냐. 네까짓게 대체 뭔데. 엉? 너 뭐냐. 영달이는 듣기 싫다는 듯 눈길을 피해가며 왼손으로 상을 꽝꽝 쳐댔다. 영달이는 소중하니까요, 라고 느물거리다가는 수능이 가까워오며 수험생마냥 피곤해하는 남편 모습을 떠올렸다. 냉장고에 홍삼이 떨어져가고 있다는 것도 함께 떠올렸다.
얼굴을 확 파묻고 데굴데굴 뒹굴고픈 아가용 담요를 순식간에 결재한 다음 홍삼 앞에선 망설인다. 그냥 밥 먹으면 됐지. 이제 수능 끝나면 좀 널널해질텐데. 보약이 더 싸겠다. 무심해지다 못해 야박해진 마누라가 바로 나였다.
보채는 영달이를 업고 나갔던 엄마가 들어오는데 아이고, 우리 영달이 얼마나 추웠냐고 호들갑을 떨어대니 엄마가 혀를 차며 대꾸하시길, 넌 니 애미 추운 건 안 보이냐. 저년이 애 하나 낳더니 서방이고 애미고 하나도 안 보이나 보네. 정말 그런가 보다. 정은 하나라더니...
그래서 반성의 의미로 여지없이 홍삼 클릭. 남편이 좋아하는 동그랑땡도 빚고 주말엔 소고기에 토란 좀 띄워 괴깃국도 끓여줘야겠다. 그깟 담요 쪼가리 하나 마음대로 못 갖다 쓰는 남편 때문에 나만 못된 마누라가 된 것 같다. 그런데 만약 그가 언질 없이 담요를 가져갔다면, 담요가 딱 필요한 순간에 안 보였다면, 곰곰 상상을 해보니 후환을 대비하고픈 남편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애 하나 낳아놓고 십수년만에 돌아와서도 무릎 꿇은 자식 앞에서 큰소리 뻥뻥 치던 옛날 아버지들은 참 좋았겠다.